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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215화 (215/248)

# 215

215화

“크윽.”

아론이 신음성을 흘렸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그는 자신이 처한 처지를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빛의 칼날들이 온몸에 구석구석 박혀 있었고, 재생했던 살점, 뼛조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저벅저벅.

찬영이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몇 가지 묻지. 물론 네가 대답할진 모르겠어. 하지만 고통 정도는 느낄 테고, 그럼 알아서 대답이 나오겠지.”

찬영이 룸을 통해 빛의 칼날을 소환해 그의 어깨에 또 한 번 내리찍었다.

“끄악!”

좌우로 들썩이는 아론을 보며 찬영이 다시 말했다.

“보나 마나 너희들이 모시는 선지자는 저기 있겠지. 뭘 하는 진 모르겠지만.”

찬영이 저 멀리 보이는 검은 첨탑을 쳐다봤다.

그의 거취를 물을 필요는 없다.

찾아가면 그만이니까, 물어보고 싶은 건 교황이 알고 있는 진실들이다.

“모스 프레도, 기억 하나?”

찬영은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모스 프레도를 언급했다.

“네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알지?”

사력을 다해 묻는 아론.

놈의 눈빛에 담긴 건 수많은 의문들이다.

‘그래, 그럴 테지.’

“모스 프레도가 전해 달라더군. 신성력을 잃은 교황을 보면 안부를 전해 달라고 말야.”

모스 프레도의 기억을 통해 알게 된 사실들.

찬영은 그것들을 통해 아론을 자극했다.

그리고 통했다.

“닥쳐라! 처음부터 여신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평생을 허상에 매달려 왔는데, 또다시 그따위 허상을 믿으라는 것이냐!”

찬영은 그의 반응을 보며 확신했다.

모스 프레도가 말했던 그가 두려워하던 것.

‘소멸되어 가던 신성력이었군.’

이유는 모른다.

‘그의 믿음이 불러온 여신에 대한 집착 등이 그런 결과를 불러온 걸까? 아니면…… 그 안에 도사린 탐욕?’

어떤 것이든 그는 스스로 자신의 자격을 버린 게 틀림없어 보인다.

생각을 정리한 찬영이 조용히 물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나는 차원 너머의 그분들을 보았다. 그분들이 진실을 말씀해 주셨지. 더 이상 여신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고……!”

“올드 원.”

대신 대답해 주자 아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너는 많은 것을 아는구나.”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찬영의 머릿속은 빠르게 그간의 조각들이 맞춰져 갔다.

사라진 별들, 그로 인해 존재를 잃어버린 정령계, 별들은 승리한 존재를 피해 혼돈으로 떠났다.

‘확실해졌군.’

아론의 말이 사실 그대로라면 별들은 여신을 뜻하는 게 확실하다.

예상은 했지만 좀 더 명확해졌다고나 할까?

‘그럼 그의 말이 맞겠지.’

여신은 사라졌고 그 힘은 곳곳에 숨어들었다.

‘하지만 신성력은 남아 있고 나 역시 그 힘과 관련이 있어.’

그걸 미루어 보아 그 힘들은 대륙 혹은 지구에 뻗어나가 각성자를 비롯한 갓피스들을 불러 모은 게 분명하다.

‘그럼 여신이 원하는 건 뭘까?’

글쎄. 그건 여신에게 가장 닿아 있었던 베아트리체가 제일 잘 알지 않을까?

그녀와 대척점에 서 있던 교황도 어느 정도 그 일에 대해 잘 알지도 모르고…….

‘질문은 정해져 있어.’

찬영이 이글거리는 아론의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그래, 난 많은 걸 알지. 내가 원하는 건 올드 원의 의도를 막고 나아가 그들을 막는 거야.”

“크큭, 성녀조차 해내지 못한 일이다.”

“대신 그녀가 나를 불렀지.”

“뭐라?”

“믿든 안 믿든 그건 네 몫이겠지. 하지만 난 그녀 덕분에 성물의 위치까지 알게 됐다. 이제 그걸 찾고 나면 좀 더 올드 원에게 가까워지겠지. 안 그래?”

그동안 쌓여 온 정보들을 기반해 던진 이야기였다.

교황이 성물을 쫓았다는 것부터 성물을 지키려 했던 라인쉐리어의 모습만 봐도 그랬다.

‘전대 갓피스의 모든 이야기가 성물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어.’

그러니까 이 얘기를 던진 후 살필 건 단 하나.

‘틀리든 맞든 교황은 자신이 아는 걸 통해서 말하게 될 거다. 뭐가 나오든 교황의 반응을 살펴봐야 해.’

차분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 순간 아론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흘렀다.

“네놈은 지금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찬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에 아론이 낄낄거렸다.

“어리석은 것, 전부 아는 것처럼 행동한 이유가 나를 통해 진실을 알기 위해서였구나.”

의도까지 간파당한 찬영은 더욱 입술을 굳게 닫았다.

그러자 아론의 미소가 점점 더 짙어졌다.

“네가 뭘 원하는 진 몰라도 내게 더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니.”

그 순간 찬영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맺혔다.

“넌 충분히 대답해 줬어.”

“뭐?”

눈살 찌푸린 아론.

그의 당혹스러움이 느껴진다.

하긴 그러고도 남을 거다.

‘이해가 안 되겠지. 내 의도를 간파한 건 맞으니까.’

아론의 말대로 그의 말을 통해 얻어 낸 건 없었다.

사실 그러기 위해 추측성 이야기를 꺼낸 것도 사실이었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확률 없는 투자였다.

“내가 진짜 원했던 건 성물의 존재 유무였어. 그런데 너는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 의도를 간파했지. 그게 뭘 뜻할까?”

뻔하다.

성물이 더 이상 대륙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리고 아론은 그게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이제 남은 질문은 그것뿐이다.

“성물이 사라진 걸 네가 어떻게 알까?”

“……용케 잔머리를 굴렸구나.”

“질문한 대로 믿은 건 그쪽이지.”

“크큭, 그래. 가상하구나. 한데 말이다.”

아론의 눈동자가 찬영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 물었다.

“믿고 있는 것이 흔들릴 텐데, 괜찮겠느냐?”

“뭐?”

“내가 성물을 쫓은 건 단 하나, 홉스 놈들의 목적을 막기 위해서였다.”

예상 못한 전개에 눈살을 찌푸린 그때, 교황이 말을 이었다.

“멸망을 부르짖은 건 뉴 빌드였지. 한데, 정작 그 멸망을 가져온 자가 홉스에 속한 것들이었다면 너는 그 진실을 감당해 낼 수 있겠느냐?”

“성물이 멸망을 가져왔다고?”

“좋은 말로는 봉인이지. 하나 대륙의 모든 시간을 멈추고 당시의 갓피스들을 일제히 소멸시킨 게 누구 같으냐?”

꿀꺽, 찬영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 순간 아론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베아트리체, 그년이었다. 그년은 모두를 희생시켰지. 싸워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모두를 영원히 봉인시킨 거다. 그리고…….”

아론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래도 네가 봉인을 푼 것 같군, 맞지?”

그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츠츠츠츠!

아론의 몸통 밖에 안 남은 시신에서 검은 기운이 뭉게뭉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계속 늘어난다.

“이건……?”

찬영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한 걸음 물러나자마자 아론이 소리쳤다.

“네가 대화를 원했던 것만큼 나도 대화를 원했지. 그 이유를 아느냐?”

찬영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처지의 아론이 원했던 것?

“시간, 시간이겠지.”

그래, 그것 밖에 없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론은 시간을 끌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다는 걸 아론이 직접 증명했다.

“멸망할 대륙의 구원자여. 아쉽게도 네 구원은 여기서 끝이겠구나.”

놈의 음성이 점점 멀어져 간다.

그리고 그의 몸이 입자처럼 쪼개져서 바람에 실려 검은 첨탑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대화는 즐거웠다.”

아론의 마지막 음성을 듣는 순간에도 뭘 어떻게 할 상황이 아니었다.

미처 뭘 하기도 전에 이미 아론의 형체는 보랏빛 차원의 돌과 함께 사라져 있었다.

콰콰쾅!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기상이변.

하늘을 올려다본 찬영이 주위를 둘러봤다.

난전이 된 전장을 뒤에 위치한 검은 첨탑 주변으로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으며, 그 위로 보랏빛의 광선이 번쩍 솟아올랐다.

‘대체 검은 첨탑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 생각이 이른 사이, 솟아오른 광선으로 인해 먹구름 가득했던 하늘이 보랏빛에 물든 채 반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더 고민할 여유 따윈 없었다.

쐐액!

공간을 격하고 날아간 찬영.

하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콰콰콰!

이윽고 열려 있는 하늘에서 보랏빛 광채가 검은 첨탑을 집어삼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 였다.

* * *

툭툭.

사명 슈트와 연결된 엘리야의 날개가 찬영의 앞을 오므리듯 막아선 채 먼지바람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단숨에 밀려났어.’

방금 전의 강렬한 여파를 되새긴 찬영은 날개를 다시 등으로 되돌리며 걸음을 옮겼다.

지잉!

한데 느낌이 싸늘했다.

일순 먼지바람을 뚫고 날아온 거대한 꼬리.

그것은 칼날 같이 날카롭고 찬영을 덮을 만큼 두터웠다.

쐐액!

찬영이 양손으로 두 자루의 빛의 검을 일으켜 날아오는 꼬리들을 빠르게 베어 나갔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움직임.

그건 레드 드라켄 하트 섭취로 인해 전부 A 까지 상승한 가치 덕분이기도 했다.

룸의 사용과 상관없이 육감 등이 포함된 민첩성이 A까지 상승한 덕택.

서걱, 서걱!

팔십 번째 휘두름과 함께 찬영이 빛의 검을 먼지바람 사이로 집어 던졌다.

쐐액!

그리고…….

번쩍!

날아간 빛의 검이 광휘와 함께 회오리를 일으켜 뿌연 먼지바람을 몰아냈다.

동시에 파괴된 검은 첨탑 앞에 자리 잡은 존재.

놈은 한가운데 2m 너비의 새하얀 인간 얼굴 형태를 갖고 있었고 그 주위로 수백, 아니 수천 개의 꼬리들을 가지고 있었다.

‘6인의 선지자.’

찬영은 이 순간 확신했다.

지금 앞에 있는 자가 영원불멸의 생을 택한 존재, 리치이면서 뉴 빌드 배후에 있는 자들 중 하나라는 걸.

-마침내 이그께서 내주신 권능이…… 완벽한 그릇에 담기었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꼬리들이 한가운데 모여 있던 형체에게서 일제히 물러났다.

츠츠츠.

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에겐 다리 따윈 없었다.

다리 대신 수많은 꼬리들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마치 놈은 뱀의 꼬리로 이뤄진 나무 같았다.

‘끔찍하게 생겼군.’

찬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동시에 방금 전의 상황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럼 첨탑 끝에 있던 돌은 차원 너머의 힘을 끌어당기고, 종래에는 놈에게 흡수된 건가?’

그리고 그게 저 괴물을 만들어 내기 위한 매개체였단 것 정도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문득 차원의 돌을 통해 몬스터 이식이 되었던 적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오늘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던 거군.’

단 한 순간, 이번의 완성을 위한 오랜 대계가 이제야 그 오랜 여정을 마친 것이다.

그 순간 찬영이 노려보고 있던 뱀의 꼬리 사이로 사라졌던 아론의 얼굴이 선지자 옆의 꼬리 사이로 스멀스멀 드러나기 시작했다.

-크큭.

놈이 싸늘하게 웃는다.

그건 조소.

-이그의 권능은 이제 시작이니라.

동시에 꼬리 사이로 수많은 얼굴들이 형태를 띠며 드러나기 시작했다.

저 수많은 얼굴들은 아마…….

‘이 일을 위해 희생을 자처한 자들이겠지.’

여유는 여기까지였다.

쐐애액!

수천 개의 꼬리들이 몸을 노리고 날아왔다.

-룸 체인지.

찬영의 팔을 타고 빛의 칼날 수십 개가 서로 연결되어 풍차처럼 휘돌았다.

치치칙!

잇달아 엘리야의 날개가 좌우로 펼쳐져 스파크가 튄 순간, 찬영은 수천 개의 꼬리와 놈의 형체를 사분오열 찢어발기며 반대편에 서 있었다.

한데…….

잘려 나간 꼬리와 조각조각 났던 선지자의 얼굴 들이 서로 들러붙으며 본래의 형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재생인가.’

아니, 단순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재생만 되는 게 아니라 분열하듯 놈의 형체는 더욱 커져 있었다.

아까보다 두 배는 커진 꼬리들과 선지자의 조각 났던 얼굴이 다시 솟아올랐다.

-변형에는 끝이 없지. 이그 님의 권능 앞에 너는 무릎 꿇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 놈의 말대로였다.

이대로 계속 싸우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룸의 권능으로 인해 초인의 힘을 갖추게 됐다고 해도, 끊임없이 분열하는 적을 소멸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거다.

하지만…….

“아직 전부를 쏟아부은 건 아니야.”

해 볼 만한 방법이 하나 있었다.

놈들이 정말 차원의 돌을 흡수해 그 힘으로 저런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거라면!

“분열과 분해는 다른 말이지.”

이미 Lv. 2 분해는 로레인의 마을에서 올드 원의 주문이 걸린 돌을 분해하는 테스트를 거쳤다.

“내가 그랬지?”

돌파구를 찾은 찬영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찾아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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