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자동보상-212화 (212/248)

# 212

212화

쿵쿵!

시간이 갈수록 왕성은 크게 흔들리는 중이었다.

수호 방호벽은 점차 줄어들어 균열도는 마침내 82%.

“곧 덮쳐 오겠구나…….”

탑주인 하인리히는 성벽 위에 서서 상공, 지상 할 것 없이 빼곡히 채운 적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나마 레드 드라켄은 보이지 않으나…….’

이제 머지않아 저 사이에서 그 괴물 같은 것이 등장할 거다.

그들이 검은 별이라 부르짖으며 선보인 그것.

하나 방호벽은 더는 검은 별을 막을 힘이 못 된다.

“현재 방호벽의 수치로 검은 별에 대적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을 걸세. 콜록!”

그의 손가락 사이로 미처 막지 못한 핏물이 터져 나왔다.

뚝, 뚝…….

버켄이 황급히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은 하인리히를 부축했다.

“여단장님!”

버켄은 상아탑, 왕성의 마법 병단 구분 없이 생존한 마법사들로 개편된 수도 마법 여단의 부관이었다.

실눈을 뜬 하인리히가 피를 ‘툭’ 뱉으며 말했다.

“방호벽을 충전하느라 무리를 한 모양이로군. 난, 괜찮다네, 쿨럭!”

방호벽은 사용과 함께 어마어마한 마나량을 필요로 했다.

왕성의 최첨단 마법 발전실이 이를 충당하긴 했으나 최초 가동을 할 땐 수급량이 부족해 많은 마법사들이 마나를 보태야 했던 것이다.

하인리히는 그 중 어느 마법사보다 많은 마력을 보탰다.

그렇게 많은 마나를 한꺼번에 소모한 결과는 하인리히의 수명 단축이었다.

“버켄.”

“예.”

“나는 이제 금지된 마법을 사용할 것일세.”

“설마……!”

버켄은 하인리히가 말하는 마법이 무엇일지 단숨에 떠올렸다.

금지된 마법 중 그에게 적합한 마법은 단 하나뿐.

눈을 부릅뜬 그에게 하인리히가 말했다.

“폐하와는 이미 마지막에 관한 이야기를 해 왔지. 자네도 알겠지만……. 콜록!”

또 한 번 피를 토하는 하인리히.

버켄이 로브 소매로 그의 피를 닦아주며 말했다.

“제발, 더는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후우, 후우……. 아니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이네. 잘 듣게. 이제 우린 수호 방호벽을 거두고 마지막 남은 수단에 모든 힘을 쏟아부을 것일세.”

“수단이요……?”

“보면 알 것일세.”

“그러니 여단의 남은 마법사들을 데리고 해안가로 가게. 가서 왕세자님을 보필해.”

“함께 가시지 않고요!”

“아니, 그럴 수 없네. 누군가는 이곳에 남아 시간을 벌어야 하네. 정박되어 있는 배에 접하는 모든 적들을 막아야 해. 폐하께만 그 짐을 넘길 수 없음이야.”

주름이 자글자글한 하인리히의 눈가가 세차게 떨렸다.

눈 뜨기조차 힘겨운 상태, 그가 손을 뻗어 버켄의 손을 꽉 잡았다.

“모든 마법사들이 제자 혹은 스승이나 가문을 잃었다네. 이 치욕을 잊지 말게나.”

“예, 그리 하겠습니다.”

“좋네. 자, 이제 나를 일으켜 주게. 곧 방호벽이 사라지면 폐하께서 모습을 보이시겠지. 왕의 나팔 소리가 들리면 키란 공의 전설이 살아 있음을 목격할 것일세.”

그 순간, 버켄은 한때 전설로만 취급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신을 모시던 초대 왕과 그 공신의 이야기.

‘폴리스 가문을 세운 키란 공은 창조의 비밀을 탐구해 왔던 마법사로서 왕의 후손을 위한 마지막 선물을 남겼다고 했지…….’

너무 놀란 버켄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키란 공의 전설이 사실이었습니까?”

“아무렴, 자 이제 열을 세어 보게나.”

하인리히의 얼굴은 그가 지은 미소와는 달리 그의 안색은 더욱 새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스스로의 생명을 원동력으로 삼아 한계 이상의 인간에게 허용된 마나량을 초월하는 금지된 마법.

‘마나 브레이크.’

왕실이 보관하고 있다는 그 마법서가 왕의 손에서 하인리히에게까지 옮겨간 거였다.

“하나, 둘, 셋…….”

버켄은 뒤로 물러나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넷, 다섯…….’

한 걸음씩 물러나며 세기 시작한 버켄의 앞에 놀랍게도 생명의 기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츠츠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마나량이 죽어 있는 하인리히에게 몰려 갔고, 마지막 깊은 생명의 숨소리를 몰아쉰 하인리히의 동공에 다시 생명의 푸른 불길이 솟아올랐다.

화르륵!

심장 안에서 타오르는 마나가 그의 동공까지 번져나가 생기기 시작한 두 눈을 덮은 푸른 불길.

하나 변화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맙소사……!”

버켄이 탄성을 질렀다. 둥실 떠오르며 서서히 상체를 들어 올린 하인리히의 모습이 한때, 그의 전성기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스윽.

조용히 그를 내려다본 하인리히가 말했다.

“이제부터 여단의 책임자는 버켄, 그대일세.”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제껏 왕성을 지켜온 방호벽이 서서히 반투명해지며 빠르게 소멸되기 시작했다.

파짓, 파짓!

스파크가 튀는 방호벽을 올려다본 하인리히가 말했다.

“시간이 없네, 남은 마법사들을 모아 항구로 가게.”

“예.”

멍하니 위를 올려다보던 버켄이 자신을 따르는 마법사들을 데리고 성벽을 벗어났다.

“부디 가능한 한 멀리 가게.”

성벽을 등지고 돌아선 하인리히, 그가 공중에 뜬 채 주문을 준비했다.

동시에 방호벽이 빠르게 소멸되어 갔다.

이를 눈치 챈 대형 박쥐 떼가 몰려왔다.

멀리서 보면 대형 박쥐였으나 형태는 커다란 송곳니를 가진 악어가 따로 없다.

“허어, 가고일 따위가 감히……!”

그 중얼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성벽 위로 몰려든 박쥐 떼들을 향해 어마어마한 벼락이 쏟아졌다.

콰쾅! 콰쾅!

벼락은 가고일들의 몸통을 전도체로 타고 빠르게 이어 나가며 뭉쳐 있던 가고일들 단숨에 새까맣게 불태웠다.

화르륵!

잿더미가 되어버린 가고일들 사이로 뒤따르던 가고일들이 빠르게 사분오열 흩어졌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하인리히는 빠르게 상공 위로 올라 왕과 약조했던 마법 주문을 일으켰다.

“나, 하인리히가 살아 있는 한 누구도 왕도의 하늘을 넘보지 못할 것이니라.”

9서클의 마법사는 창조를 엿보고 8서클의 마법사는 파괴를 이해한다.

하인리히는 오랜 세월 경험해 온 파괴의 장을 열었다.

‘컨트롤 웨더(Control Weather).’

그의 손끝에 실린 주문이 어마어마한 안개를 실고 왔다.

순식간에 기온이 떨어지며 하얗게 짙어져 가는 안개.

바닷가에 서릴 법한 안개였다.

적들의 눈을 가린 것이다.

이유가 있었다.

쐐애애액!

그사이 안개를 뚫고 날아온 가고일 떼가 그를 삼키려 지척까지 다가온 그때.

‘소닉 트위스트(Sonic Twist).’

생명을 내건 대마법사의 진노가 눈을 떴다.

* * *

“미친…….”

휘몰아치는 거대한 수십 개의 소용돌이를 보며 말론은 할 말을 잃었다.

소용돌이는 성벽 부근을 뒤덮고 있던 가고일 떼와 공성 병기들을 단숨에 휩쓸어버렸다.

순식간에 압박 진출해 있던 병력들이 손도 하나 못 대고 죽어 가는 게 보였다.

콰콰쾅! 콰쾅!

그 위로 잿더미가 된 가고일들이 유성우처럼 추락했다.

‘가장 위협적이었던 상아탑 마법사가 대부분 정리됐다고 생각했건만 아직도 저런 존재가 남아 있었단 말인가?’

마른침을 꿀꺽 삼킨 말론은 검은 첨탑을 힐끗 돌아봤다.

‘하지만 그건 발악에 불과할 것이다.’

선지자께서 ‘소멸의 문’을 열겠다고 작심한 이상.

이 일대는 이미 지옥문에 접어든 거나 다름없다.

말론은 그간 자신을 포함해 수많은 뉴 빌드의 일원이 연구해 온 모든 집약체를 곧 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전방에 진출한 병력은 그저 하수인들일 뿐.

‘오냐, 본격적으로 놀아 주마.’

조금 반항이 거세진 것뿐이다.

“……제법이로군.”

모르는 새 가까이 다가온 존재의 목소리.

말론조차 흠칫하며 옆을 돌아봤다.

‘교황, 아론.’

방금까지 자신의 옆에 고개 숙이고 있던 교황은 오래전, 직접 다른 차원의 힘을 대면했다.

‘놈은 여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믿었지만 말이야.’

그가 지키려 했던 것은 교황으로서의 권한, 그리고 간절한 기도로도 서서히 사라져 가는 신성력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 신성력을 잃어 가던 그는 선지자의 영광을 얻어, 선지자처럼 차원 너머를 엿본 몇 안 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그 강대한 힘에 굴복했다지?’

말론은 긴장한 눈빛으로 얼굴일 대부분 썩어 있는 교황, 아론을 올려다보았다.

사실 교황 따위를 받들라는 선지자의 뜻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나, 어쩔 수 없다.

놈의 흉측한 얼굴은 한낱 인간이 차원 너머를 엿본 부작용…….

본 적은 없으나 그는 선지자에 못지않은 힘을 얻었다고 한다.

‘감히 대적할 수 없지.’

당연하다.

그건 일종의 대륙에 찾아볼 수 없는 권능일 테니.

“말론.”

“예, 아론님.”

“너는 저것들이 두려우냐?”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진정한 두려움은 저들이 겪겠지요.”

아론이 뱀처럼 샛노란 동공을 돌려 말론을 내려다봤다.

“오늘은 거짓 없이 말했구나. 너는 운이 좋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신지요?”

“네놈은 나를 시기해 오지 않았느냐.”

“……그, 그것은!”

말론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몸을 잘게 떨었다.

‘혹여 진실을 알아보는 권능인가?’

그렇다면 부정해 봐야 소용없다.

“하지만 그건 괜찮다. 그러나 만약 적을 네가 조금이라도 두려워하면서 내게 똑같이 거짓을 고했다면…….”

씨익, 아론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너는 목이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올드 원 님의 권능을 경시하는 일은 좌시할 수 없으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말론은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폭풍우로 걸어 들어가는 아론의 등 뒤로 해골 말을 검은 투구를 뒤집어 쓴 마법사들이 하나둘씩 말론을 지나쳐 아론을 따라나섰다.

다각다각.

그 중 두 개의 원뿔 달린 검은 투구를 쓴 존재들이 마지막으로 그 뒤를 쫓으며 말론을 내려다봤다.

“엄살 그만 떨고 검은 별이나 가동시켜 두게나. 저 거슬리는 것은 우리에게 맡겨 두고.”

말론은 잘게 떨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올려다봤다.

살 없이 뼈로만 움직이는 해골 말을 탄 그는 후크 백작이었다.

뿌득!

치욕스러우나 항거할 수 없는 처지.

말없이 이를 가는 그를 비웃은 후크가 힐끗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검은 투 핸드 소드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가세, 플로딘.”

“그러시지요.”

새하얀 피부에 입술이 유독 붉은 플로딘이 빙긋이 미소 지으며 앞서가는 후크 백작을 뒤따랐다.

칼립토 학파가 합류한, 뉴 빌드의 정예 군단.

디스트로이어.

뉴 빌드 내부에선 일명 ‘D의 군단’이 나섰다.

그렇게 그들이 폭풍우로 향한지 얼마 되지 않아…….

부웅!

올드 원의 주문이 주입된 응축 장치가 검은 별 안에서 시동을 건 순간!

콰콰콰!

또 한 번의 보랏빛 광선이 검은 별의 포구를 통해 잿더미가 섞인 백색 성벽을 덮쳤다.

그 순간 상공 위에서 보랏빛 광선을 내려다본 하인리히가 중얼거렸다.

“왕이시여, 나팔을……!”

저 멀리 배에 올라타던 레딩이 중얼거렸다.

“왕이시여, 나팔을……!”

그때를 맞춰 왕의 백색 성벽 아래에서 희끄무레한 물체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구구구궁!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온 보랏빛 광선과 그 물체가 부딪친 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였다.

* * *

츠츠츠!

안개와 마법이 일으킨 폭풍우, 거기다 검은 별의 보랏빛 광선의 여파가 일으킨 먼지바람까지.

성벽 앞은 눈앞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살아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앞에 몰려들었던 공성 병기, 가고일 떼, 모든 것이 광선에 의해 섬멸당한 이 공간.

기잉, 기잉!

기계음과 함께 백색의 존재가 들고 있던 방패를 내려놨다.

쿵!

무려 8m에 이르는 백색의 카이트 실드를 든 존재가 방패 사이로 감춰져 있던 안광을 드러냈다.

그 안광은 수백 개의 마나 탱크와 연결되어 12m의 거신(巨身)을 움직일 수 있게 했다.

신이 남긴 알데바란으로 이뤄진 최후의 병기.

이족 보행하는 인간과 동일한 형상을 가진…….

지잉!

이름하야 ‘샤’의 영혼.

왕국이 오랜 세월 왕의 무덤에 숨겨놓은 진정한 비밀, 그것은 키란이 제작한 골렘이었다.

수만 개의 관절로 이뤄진 이 골렘은 마나로 관절을 움직이고, 오랜 세월 축적된 신성력이 왕의 피와 교감되어 개방된다.

그렇다. 왕은 골렘의 눈동자 뒤에 자리잡은 관에 함께 하고 있었다.

왕의 영혼과 연결된 샤의 영혼이 방패 뒤에서 가로 4m의 새하얀 손잡이를 뽑아 들었다.

치지직!

솟아오르기 시작한 신성력의 검.

그건 7m까지 솟아오르며 안개 너머 적을 겨눴다.

-왕의 나팔이 울릴 때 샤의 영혼이 무덤 아래에서 일어나노니, 누가 막을 것인가.

키아누의 위엄이 전장을 휩쓸었고…….

-왕의 부활을.

그의 영혼이 성벽을 가로막고 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