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
210화
이제 반쯤 희미해진 의식.
찬영은 힘겹게 눈을 들어 올려다봤다.
이거 참…….
그토록 원했던 우스 동력기를 기반으로 제작된 빛의 입자물.
그것들이 제멋대로 살아 움직이며 자신을 희롱한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죽는 게 두려운 건 늘 그랬어.’
입을 벙긋거릴 힘이 있었다면 그렇게 쏘아붙였을 텐데.
지금은 숨만 겨우 몰아쉴 힘 밖에 없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도 대답이 전해진 건지, 빛의 입자가 다시 머릿속으로 대답해 왔다.
-그대 마음속에 깃든 의식은 끊임없이 미래를 불안해한다. 내가 그대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그 의식들 때문이다.
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불안은 인간의 것이나 그대는 그대의 선택으로 미래를 이루는 자다. 나는 그대의 의지가 깃들어 태어난 존재, 하나 그대는 나를 다룰 수 없다.
‘불안해하기 때문에?’
-그렇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한 아직 그 자격이 되긴 먼 얘기, 이대로라면 그대에게는 영원히 나를 허락할 수 없다.
그 순간 판도라가 해 줬던 말이 떠올랐다.
-모든 것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말이 맞았다.
판도라가 말했던 그 이유, 그건 아마도…….
‘나의 두려움.’
결국 완성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스스로에게 있었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된다.
‘네 말대로라면 내 두려움은 여전해. 그런데 어째서 달라진 게 없는 지금에야 나타난 거지?’
그 질문에 빛이 대답했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불안과 달리 그대의 선택은 불안의 정반대 지점으로 향한다. 이유를 알고 싶다. 그대의 목숨이 경각에 처한 지금, 그 대답을 듣고 난다면 나는 다시 잠들 것이다. 새 주인을 찾을 때까지…….
어쩌면 이 절체절명의 순간 녀석은 마지막 동아줄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전환점이 될 보상이며 앞으로 나아갈 또 다른 기반.
하지만 녀석에겐 자아가 있다.
원하는 조건이 충족하지 않으면 녀석은 자신을 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 나는 너와 연결되어 있고 너의 의지를 이었으나, 너에게 반한다.
찬영은 숨죽여 생각했다.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까?’
그 생각을 읽은 듯, 빛이 말했다.
-너의 의식이 끊기면 너는 답을 할 수 없을 것이고, 나는 사라질 것이다.
빛은 단호했고, 다신 돌아오지 않을 기회였다.
하지만 불안하지 않았다.
어떤 대답을 하던 그것은 빛이 결정할 문제, 자신은 그저 그가 궁금해하는 걸 말할 뿐이다.
‘호흡이 끊기기 전에 전부 털어놓을 수 있으면 좋겠군.’
찬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후우, 후욱……. 그래, 맞아. 난 불안해하지.”
속이 울렁였다.
뜨거운 게 몰아치는 것 같았고, 입안에서 핏물이 턱 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그럼에도 생각을 이었다.
‘네가 물었지? 불안은 인간의 것이라고.’
-그래.
‘그게 사실이야. 부정하지 않겠어, 나는 인간이기에 끊임없이 의심하고 두려워한다.’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가? 하긴, 크게 놀랄 것도 없군. 자, 이제 질문에 대답하라. 그대는 어째서 그대의 두려움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인가?
‘아직 내 얘기 안 끝났어.’
솔직히 화가 난다. 이제껏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별 일 아닌 것처럼 품평하듯 말하는 녀석이 두려움에 대해 운운하는 게 심사가 뒤틀린다. 그러니 눈이 흐릿하지만 이 순간, 빛에게 정확히 전해야 할 거 같다.
어차피 놈의 재생력을 버텨 내려면 둘 중 하나.
‘너를 얻어 여길 빠져나가거나 혹은 이곳이 내 무덤자리가 되겠지.’
그러니 직접 경험하며 느껴온 대답을 사력을 다해 얘기한다.
내가 가진 두려움에 대해.
-아무렴 좋다. 말하라, 네가 가진 답을.
‘난 두려움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게 아니야.’
-뭐?
빛이 처음으로 일렁이며 동요했다.
‘그래, 말 그대로야. 난 끊임없이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그 감정 그대로의 행동으로 선택한다.’
처음부터 대답은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빛은 모른다.
‘당연히 너는 내 말의 뜻을 모르겠지. 내 의지가 깃든 너는 그저 내 일부에 불과해. 나를 정의 내릴 수 없으니까.’
-끊임없이 두려워하는 너의 그 이야기는 내게 어떤 설득력도 없게 느껴질 뿐이다.
‘아니, 난 의심과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직면해 왔고 인정했으며 그것을 원동력으로 최선의 선택을 해 왔어.’
이제껏 단 한 순간도 두려움이 없었던 적이 없고, 걱정하지 않은 적도 없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 두려움이 새로운 생각들을 일깨웠고, 한층 더 생각을 성숙시켰고 좀 더 나은 존재가 되게 했다.
‘내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게, 더 성장할 수 있게! 그렇게 나를 의심하고 또 의심해서 결국, 이 세계 뒤에 뭐가 있는지 대면하고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낼 거다!’
어느새 빛은 침묵했고 서서히 눈과 귀가 닫히는 이 찰나의 시간, 진심을 다했다.
‘그러니 솔직히 말할게. 난 네 힘이 필요해. 하지만 난 인간이고, 인간으로서 살아가길 원해. 그런 나를 기다려 주고 믿어 주는 이들과 함께 살아갈 땅 위에서.’
-그대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존재군.
‘동의해. 두려움이 원동력이 된다……. 그런 모순됨이 내 힘이거든. 그러니 네 전제는 처음부터 잘못됐다. 질문을 다시 하든지 아니면…….’
마지막 힘을 짜내 입술을 달싹였다.
“날…… 받아들여.”
‘어차피 넌 평생 가도 이해 못할 일이니까.’
뜨고 있던 눈이 서서히 닫히고 삽시간에 사위가 어두워졌다.
‘젠장.’
빛은 끝끝내 손을 건네지 않았다.
* * *
그 후 어딘가로 푹 꺼지는 느낌을 받으며 몸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졌다.
마치 물에 잠긴 것 같은 기분.
‘이런 게 죽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누군가 물 밖에서 손을 뻗어 강하게 자신을 끌어올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분명히 누군가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게 느껴졌다.
* * *
그다음 순간 찬영은 눈을 떴다.
“헉…… 헉!”
치켜 뜬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꿀렁이는 위장이 보였다. 그런데 호흡이 이전과는 달리 안정되게 나왔다.
아까와 달라진 게 없는 상황, 심지어 눈앞에 빛의 입자가 일렁이고 있는 것도 같았다.
“어떻게 된 거지?”
양손으로 얼굴을 만져가며 물었다.
자신에게 묻는 것이기도 했고, 빛에게 묻는 것이기도 했다.
“대답해 봐. 내가 어떻게 여기 살아 있는 건지.”
-나의 힘을 일부 심었다. 너와 나는 연결되어 있고, 내가 개방한 일부의 힘이 그대에게 깃들었다.
“네가 나를 살렸군. 왜지?”
이 순간 너무나 궁금해졌다.
이해하지도 못할 대답을 단번에 인정했다는 얼토당토한 말을 할 리가 없었으니까.
-처음부터 그대를 방관할 생각이 없었다.
“뭐?”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럼, 구태여 시간을 끈 이유가 뭐야?”
-난 그대가 끊임없이 궁금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대는 끊임없이 두려워하면서 앞에 있는 길을 걸으려 하지. 그 대답을 들을 완벽한 기회가 이 순간이라고 판단했다.
“들으면 뭐가 달라지는데……?”
-그대를 좀 더 이해하게 되겠지. 그리고 나는 많은 고뇌를 통해 그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대는 복잡하지. 복잡하기에 약하지만 견고하며, 후퇴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를 반복한다.
이제야 빛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맞아.”
-나는 그대를 이해함으로써 그대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대는 그대만의 방법으로 사명의 길을 걷는구나. 이제 그대를 주인으로 납득할 이유 또한 충분하다.
“주인……?”
-그래, 내 자아는 그대에게 귀속되어 침잠할 것이며 그대의 자아 안에 포함될 것이다. 그러니 묻겠다.
꿀꺽.
빛이 일으킨 분위기에 압도되어 절로 몸이 경직됐다.
빛은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났으나 눈이 부시지 않았고, 따스했고 위엄 있었으며 신비로웠다.
-그대는 사명의 길을 계속 걸을 것인가?
“그 길이 내가 생각한 그 길이 맞는다면…….”
-세계의 끝에 서 있는 존재들이 그대 앞에 나타난 순간에도 그대는 그대의 사명을 다할 것인가?
빛은 자신의 일부라고 했다.
하나 들으면 들을수록 빛은 시스템이 자신에게 원하는 의지까지 포함된 것 같았다.
그래서 대답했다.
“언제든지.”
-비로소 사명의 길이 열렸도다.
그다음 순간 빛이 눈앞을 가득 메웠다. 귓가로 창 띄워지는 소리들이 가득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눈을 떴을 때 한 가득 놓인 창이 보였다. 그중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당신은 사명의 충족 요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이제 온전한 사명이 되었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장비가 사명의 장비였다는 사실에 찬영은 얼어붙었다. 찾아 헤맸던 사명으로서의 완성.
‘그 완성이 여기서 시작될 줄이야…….’
“말도 안 돼.”
수많은 시련을 거쳐 기어코 획득하게 된 사명이라는 칭호에 찬영은 속에서 울컥, 하는 벅참을 느꼈다.
-‘사명의 완성 1’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수집해야 하는 엘리야의 깃털이 완성됩니다. 100개가 충족된 엘리야의 깃털은 새로운 사명의 장비에 깃들어 소모됩니다.
그리고 변화는 손끝에서 시작됐다.
빛이 하얀 광채를 일으키며 은백색의 정체 모를 금속들이 손가락 끝부터 팔을 타고 올라오며, 목과 머리, 나아가 온 얼굴을 뒤덮었다.
‘대체, 이건…….’
아래를 내려다보자 발끝까지 뒤덮인 은백색의 금속이 보인다.
-길을 여는 자, 요그 쇼토스의 포스 알데바란(1단계, 사명 전용)
-사명 귀속(단, 사명의 심장이 멎을 때 소멸)
-가치 : ?
-업그레이드권 사용 불가
-효과 A : 룸 환산(마나, 신성력이 상위 단계인 룸으로 재환산)
-현재 룸 : 32,300(소모 후 일정 시간 후 자동 회복)
-효과 B : 룸 흡수(룸 보유량을 상승시키려면 스텟 업그레이드 포함 및 소유자가 획득한 소유물을 흡수)
-효과 C : 룸 체인지(룸 소모 시, 원하는 형태로 변화 가능. 단, 사명이 아무 형태도 원하지 않을시 최초 보유 형태로 되돌아감, 룸 소모는 범위나 위력에 따라 책정되어 지속 소모됨)
-효과 D : 하위 단계 지배(신성력, 마나, 완전하지 않은 암흑 마력은 피격 피해 무효화)
-효과 E : 하위 단계 즉시 사용 가능(마나, 신성력)
-효과 F : 엘리야의 날개 사용 가능(룸 소모 시 워프 가능)
-효과 G : 알데바란의 권능 사용 가능(권능 사용 시, 하위 개체는 이동 불가)
은백색의 전신 갑옷을 두른 채 문구를 전부 읽었다.
그다음 단, 한마디도 벙긋거릴 수 없었다.
‘이건 더 이상 장비가 아니야. 장비 이상의 권능이지.’
이제껏 봐 온 아이템은 제한이 걸려 있거나 혹은 각자의 한계가 분명한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룸의 소모란 제한이 있긴 하지만 이제껏 봐 온 룸의 능력에는 어떤 결점도, 한계도 없었다.
‘또 다른 차원의 힘이야.’
신성력과 마나 등이 하위 단계에 포함될 정도로 놀라우며 신비로운 힘이다.
‘이미 판도라를 통해 충분히 봐 와서 알지.’
그러므로 이제껏 수집해 왔던 수많은 아이템은 이제 룸 증가에 활용될 것이다.
‘……하지만 내 개인의 성장이 필요한 건 여전해.’
룸의 성장에 끼치는 영향 중의 하나가 바로 자신의 개인 스텟이 되어 버렸으니까.
‘하지만 그건 올드 원과의 남은 싸움을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지.’
이제껏 만난 대륙에서의 강자들은 더는 위협적인 존재들이 되지 않게 될 거다.
‘느껴져.’
그럴 만큼의 권능이 온몸 구석구석 노도처럼 흐르고 있는 게 충분히 체감된다.
츠츠-!
거기다 자신의 체형에 맞춤형으로 완벽히 구현된 ‘포스 알데바란’은 촘촘히 결속되어 움직일 때마다 가볍게 들썩이면서 방향 전환에 따라 유연하게 좌우, 전후, 다양하게 움직였다.
우스 동력기와 알데바란 그리고 판도라의 룸을 통해 새로 이뤄 낸 물질이 근간이 된 덕분일 거다.
또한 찬영은 보지 못했지만 눈가부터 양 관자놀이까지 세로로 자리 잡고 있는 검은색 ‘V’라인에서는 은은한 빛이 흘러나와 신비로움을 더했다.
씩 웃은 찬영은 내려다보던 슈트에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어색했지만 플레이 체험을 할 필요도 없었다.
좋은 상대가 바로 여기 있었으니까.
저벅, 한 발 걸음을 뗀 찬영이 위를 올려다봤다.
그녀에게 약속한 대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스파크가 튀며 마치 전류 같은 것들이 뭉쳐 날개 형태를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