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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208화 (208/248)

# 208

208화

* * *

“후우…….”

마나를 관조하던 찬영이 눈을 떴다.

당장 떠나도 충분할 만큼 슬롯부터 장비까지 모든 준비는 끝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눈빛은 많은 생각들로 복잡해 보였다.

“이제 약속한 때예요, 사명.”

그때 룸을 다시 회복한 판도라가 로레인, 카멜로와 함께 다가왔다.

“예, 압니다.”

찬영이 대답하며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마치 모래 알갱이 같은 형태의 물질이 새하얀 빛을 흘리며 손 안을 빙빙 휘돌았다.

“하지만 아직도 이건 여전하군요.”

말을 하면서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이 작은 빛의 구체는 우스 동력기, 알데바란, 심비 하트, 그리고 카멜로의 사력을 다해 이뤄 낸 물질이다.

그래, 장비는 완성됐다.

하지만…….

-????

-가치 : ?

-효과 : 완성되었으나 완성되지 못하였다.

띄워진 창을 본 찬영은 입 안이 썼다.

억울하게 느껴질 만큼 완성된 보상은 아무 형태도 띄지 않았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어.’

판도라와 카멜로조차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고, 설명해 주지도 못했다. 당연히 자신 또한 알지 못한다.

그저 문구대로라면 완성되지 않았다는 걸 추측할 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한 것일까요?”

“글쎄요. 하지만 데미아 님이라면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유가 있다면 언제든 찾을 수 있다.’라고요.”

판도라의 이야기는 어쩌면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인지도 모른다.

‘맞아, 그녀 말대로 모든 일엔 이유가 있고, 난 그걸 찾기만 하면 돼.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이미 그녀 룸이 재충전 될 때까지 현재 이 ‘????’ 장비가 왜 이런 것인지 많은 시간 고민했다. 하지만 당장 그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인내해야 한다.

인내를 감내하며 끊임없이 시도해 봐야 한다.

‘그게 뭐든.’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려면 반드시 그래야 했다.

“판도라 말이 맞아요. 이유는 분명히 있을 테고, 난 그걸 반드시 찾을 겁니다.”

“현명하군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판도라가 찬영에게 물었다.

찬영은 그동안 생각했던 장소를 곧바로 떠올렸다. 왕성 전투를 앞두고 샤브레 공주가 향할 그곳으로…….

* * *

‘오자마자 이럴 줄은 몰랐지만!’

찬영은 슬롯을 개방해 일으킨 7서클 마법, 리플렉션 필드에 집중했다.

그러자 마치 돔과 같은 반구형의 구체가 또 다시 불길이 쏟아지는 범위 위로 병사 위를 덮었다.

화르륵!

그 순간 병사들은 화끈거림만 느낄 뿐.

불길은 병사들 대신 마법 위를 뒤덮었다.

와아아!

살았다는 것에 병사들이 환호가 들렸다. 사기가 오른 것이다.

어마어마한 마나와 맞바꾼 보람이 있었다.

하나, 아직 패가 하나 더 남았다.

‘이 마법은 방어력만 갖춘 게 아니니까.’

동시에 삼두룡이 쏟아 낸 불길이 리플렉션 필드 꼭대기로 휘감겨 모여들었다.

화르륵!

이 마법의 백미.

‘반사.’

꼭대기에서 환한 빛이 터지며 몰려든 불길이 다시 기둥처럼 솟아올랐다.

-키에에엑!

삼두룡이 반사된 불길을 뒤집어쓴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삼두룡의 견고한 가죽은 금세 불길을 꺼트렸다.

‘강해.’

단 한 번의 불길로 7서클 방어 마법에 절반의 균열이 일었다. 반사된 공격마저도 무효화시킨 방어력까지…….

‘이 마법이 시간 끌기에 불과할 줄이야…….’

찬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한 번 더 마법을 중첩시켰다.

이 마법으로도 시간 끌기가 최선이라면, 다른 방법으로 싸워야 한다.

‘하지만 지킬 게 너무 많아.’

우선은 대비할 방법이 없는 영주들의 병력부터 대피시켜야 한다.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찬영과 가장 가까이 있던 베이콥 영주가 달려왔다.

“무사했군! 그나저나 대체, 이 마법은 뭔가? 그리고…….”

동시에 베이콥 영주의 시선이 파리한 안색의 판도라에게 머물렀다.

그 시선을 느낀 찬영은 당장 그녀에 대해 설명할 시간은 없었기에 대강 넘어갔다.

“긴 얘기는 나중에 드려도 괜찮겠지요.”

“그러세!”

호탕하게 웃는 베이콥 영주는 이어서 로레인과 인사를 나눴고, 그 사이 찬영에게 샤브레 공주가 다가왔다.

“공주마마!”

“제때 왔군요.”

“운이 좋았습니다.”

정말이다.

룸의 사기적인 능력이 아니었다면 이때를 맞춰 여기 나타나지 못했을 거다.

‘다행이야.’

그 후 찬영은 빠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제이나, 어디 있어요?’

하나 둘 모여든 수뇌부들 사이로 시야가 가려지던 그때.

툴챠를 쥐고 다가오는 제이나를 비로소 발견했다.

‘난 괜찮아요.’

제이나의 눈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찬영은 그제야 안도하며 샤브레 공주에게 말했다.

“왕의 문으로 가시던 길이었습니까?”

“맞아요, 이 안에 왕궁으로 통하는 길이 있어요.”

“그럼 이 대열을 유지하셔서 안으로 진입하십시오. 남은 슬롯까지 개방해서 그곳까지 호위해 드리겠습니다.”

공주에게도 이전 상황에 대해 듣고 싶은 게 한가득 있었으나, 당장은 병사들부터 왕궁으로 들여보내야 했다.

‘그러려면 놈을 막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피해가 상당해질 거야.’

벌써 두 겹이나 겹쳐 둔 마법에 균열이 가는 게 보이니까.

-LEADER 레드 드라켄.

-가치 : 52,300

‘52,300…….’

가치만으로도 섬뜩한 녀석이다.

이제껏 만나 온 어떤 몬스터보다 가치가 높았다.

‘하지만 가치는 어렴풋이 힘을 가늠할 뿐, 보유한 능력들의 상성이나 효율성 등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 놈은 가치로 평가된 것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

예민해진 감각들로 인해 온몸의 솜털까지 전부 곤두섰다. 확연히 느껴지는 이 감정은 분명, 두려움…….

그때 로레인이 어깨를 ‘탁’ 하고 잡았다.

“같이 움직이자고.”

빙긋 미소 짓는 그녀와 함께 글로리와 지수가 다가왔다. 찬영은 그들과 빠르게 인사를 나눈 뒤, 판도라를 쳐다봤다.

“판도라, 지수 씨를 따라가요.”

“그래야겠군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아뇨, 이미 충분한 일을 해 주셨습니다.”

우스의 동력기부터 시작해 생각지도 못하게 빠르게 진행된 일들, 전부 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못 이루었을 일들이다.

“함께 가세요. 데미아 님의 고향을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룸이 회복되어야 하고요.”

이어서 찬영이 지수에게 말했다.

“중요한 분입니다. 저 대신 호위를 맡길게요.”

“예.”

지수도 함께 싸우겠다고 고집 부리지 않았다.

찬영이 전투 합류가 아니라 호위를 맡기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걸 직감한 것이다.

그때쯤 베이콥 영주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왕의 문으로 진입하라!”

한때 화산의 화구로 불렸던 입구로 삼천의 병력이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다 됐네.”

대열의 마지막 한 명까지 들어가는 걸 확인한 로레인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왕의 문은 굉장히 많은 인원수용이 가능한 통로였기에 삼천의 병력은 한때, 화산의 화구(火口)로 불렸던 장소로 빠르게 진입할 수 있었다.

이제 화구 입구 밖에 남은 건 찬영은 비롯한 로레인과 글로리, 제이나 마지막으로 르리에를 통해 데려온 타우린뿐이었다.

-크아아앙!

포효 소리가 더 거세졌다.

아니, 거세진 게 아니다. 찬영이 일으킨 마법 결계가 파괴될수록 놈의 포효가 더 강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철컥, 철컥.

자신의 장비를 장전한 글로리가 타우린 위에 올라탔다.

찬영이 타우린의 목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타우린, 글로리와 제이나를 지켜 줘. 함께 협력해서 싸우면 돼.”

마법과 신성탄 사격을 사용하는 두 사람은 타우린의 높은 방어력이 중첩되는 기술들이 필요했다.

특히 셋은 글라투를 상대할 때를 포함해 여러 번 합을 맞춰 본 적 있기에 서로가 익숙해 보였다.

-응, 알았어. 정령왕아.

그 틈에 들려오는 목소리, 놀랍게도 그건 타우린이었다.

하나 찬영은 그리 놀라지 않고 미소만 지었다.

이미 타우린과 대화가 된 시점은 홀랜드와 함께 타우린의 도움을 받을 때였다.

‘유니언이 타우린과의 의사소통도 가능하게 해 줄 줄이야.’

이로써 타우린과의 교감이 훨씬 높아졌고, 잊힌 별들에 대해서도 물어볼 수 있었다. 타우린은 기억나는 게 없다고 했지만 어쨌든 도타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할 수 있지?”

-응, 걱정 마. 나 많이 컸어.

타우린의 이마를 맞댔다.

‘기특한 녀석.’

손으로 녀석을 쓰다듬은 후 손을 뗐다.

“……함께 가자고 말해 줘서 고마워요.”

그 뒤 제이나가 타우린의 목 부근에 탄 채 말했다.

“내가 더 고마워요.”

찬영이 그녀와 눈을 맞추며 대답했다.

정말이다.

이 순간 그녀가 필요했고 그녀는 기꺼이 손을 잡아 줬다.

어느 때보다 든든하다.

지이잉!

마침내, 그들의 머리 위로 펼쳐져 있던 반구형의 반사막이 또다시 쏟아진 브레스에 의해 뚫려 버렸다.

-크르르.

레드 드라켄이 반사 방벽 안에 들러붙어 머리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동안 반사된 브레스도 무시할 순 없었는지, 놈의 견고했던 가죽은 많이 녹아내려 검붉은색이었던 가죽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크아아앙!

놈이 다시 울부짖었다.

피어였다.

하지만 이번엔 찬영 일행에도 타격이 있었다.

“윽.”

찬영의 옆에 있던 로레인이 비틀거렸다.

그 순간…….

-음모오오!

타우린이 목청껏 울린 울음소리가 쏟아지는 음파를 소멸시켰다.

‘좋아.’

찬영은 정신 차린 로레인의 어깨를 붙잡아 주었다.

“로레인, 괜찮아요?”

“무, 물론이지. 그냥 두통이야!”

타우린 덕분에 겨우 안색을 다잡은 로레인이 옆으로 달리며 자신의 이타콰를 꺼냈다.

그러자마자 서늘한 안개가 주위를 뒤덮기 시작했다.

이타콰가 자랑하는 침묵의 안개.

‘지금부터다.’

찬영인 힐끗 위를 올려다봤다.

레드 드라켄은 마나로 이뤄진 돔을 부수며 몸통까지 밀어 넣고 있었다.

이어서 놈의 입가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눈에 띄었다.

“브레스야!”

찬영의 고함과 함께 20m까지 확장된 안개 위로 불길이 쏟아졌다.

화르륵!

눈 깜짝할 새 안개 위를 뒤덮으며 쏟아지는 불길.

펑!

그 순간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찬영이 불길이 뒤덮인 안개 속에서 솟아올랐다.

그의 몸 주변엔 전혀 화염이 들러붙지 않았다.

‘됐어!’

-침묵의 안개 발동 시, 소유자를 포함해 최대 다섯 명까지 지정 방어 가능(지정 방어 시 3분간 모든 피해 무효화)

이제부터 이 효과로 인해 3분 동안 나머지 일행은 자유를 얻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쐐애액!

옆에서 솟아오른 타우린이 제이나와 글로리와 함께 놈의 등을 타고 날아오르고 있었다.

‘지정 방어에 해당된 대상들만 체공 상태 유지……!’

하나, 버프는 이게 끝이 아니다.

날아오르는 글로리가 자유의 바람을 발동했다.

치치칙!

그가 장착한 포들에서 빛이 흐르기 시작했다.

쐐애액!

빛을 머금은 포들에서 발사되는 포탄들을 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공격 속도와 이동속도의 180% 증가가 가져온 효과다.

두두두두!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치는 글로리가 레드 드라켄의 세 번째 머리를 피한 후 빠르게 사격을 가했다. 무반동의 홀리 샤우트가 쏟아졌다. 그 뒤로 각종 버프를 받은 제이나가 툴챠를 들었다.

‘긍지의 광휘!’

쩌저적!

툴챠가 번쩍거리며 빛의 소용돌이를 일으키자, 지팡이가 촉매제가 되어 벼락을 일으켰다.

번쩍! 콰쾅!

벼락이 난데없이 쏟아졌다.

콰직, 콰직!

그러자 날뛰던 레드 드라켄의 눈동자들이 부릅떠졌다.

“마비됐어요!”

80% 확률의 감전, 운이 좋았다.

쿠쿵!

서서히 기우뚱 기울어지는 레드 드라켄을 보며 찬영이 놈의 머리 위를 내달렸다.

지잉!

달리면서 꺼낸 아슬란.

목표로 한 놈의 눈을 향해 검 끝을 겨눴다.

그사이 제이나가 연이어 툴챠를 발동했다.

‘광휘의 벽. 2중첩.’

연달아 중첩된 어마어마한 양의 빛이 옆으로 쓰러진 레드 드라켄의 몸을 그물망처럼 빠르게 뒤덮었다.

촤르르륵!

그것도 모자라 찬영이 아슬란으로 놈의 날개를 가리켰다.

‘아이스 램파트.’

얼음 장벽이 놈의 날개와 몸통 사이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주변이 얼어붙으면 놈의 날개는 쉽게 펄럭일 수 없어!’

램파트는 장벽이 상승하는 그 부근을 모두 얼려버린다.

그 말은 놈의 날개도 그럴 수 있단 얘기……!

‘끝이다……!’

그 순간 가운데 머리에 도착한 찬영은 놈의 눈동자를 향해 아슬란을 치켜들었다.

완벽히 이뤄진 계획에 확신한 순간.

-이제 끝났나?

놈이 말했다.

“뭐?”

그 눈빛이 마치 이때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보여서 찬영은 소름이 돋았다.

놈의 몸을 중심으로 검은 파장이 휘몰아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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