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
204화
찬영은 어차피 브뤼셀의 렌즈는 착용된 상태였기에, 해제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러자 그다음 순간.
-브뤼셀의 렌즈가 로라노의 위에서 브뤼셀의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브뤼셀 렌즈에 숨겨진 효과가 드러납니다.
“숨겨진 효과?”
자동 반사적으로 중얼거렸다.
그 후 황급히, 브뤼셀의 렌즈 창을 띄웠다.
-브뤼셀의 렌즈
-가치 : 4,500
-설명 : 브뤼셀의 렌즈는 반경 15m의 몬스터와 마정석을 감지합니다.
-효과 A : 브뤼셀의 낙인(마나 150 소모 시 반경 15m 안에 있는 표적 1개를 반경을 벗어나기 전까지 추적 가능(중첩 가능)
-효과 B : 브뤼셀의 흔적을 탐색합니다. (1/3)
“시스템 그대로 효과가 생겼어.”
동시에 ‘지잉’ 하는 소리가 나며 눈앞에 갈색빛이 도는 양피지 종이가 펼쳐졌다.
-브뤼셀의 일기 1/3이 완성됐습니다. 획득한 일기는 언제든 열람 가능합니다.
찬영은 곧바로 획득한 일기를 확인했다.
-브뤼셀의 일기 (1)
내 아버지는 어부였다. 하지만 거대한 고래를 낚는 어부였지.
나도 어릴 땐 그게 꿈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고래를 낚는 어부가 되는 것.
물론 어디까지나 아버지의 허풍이란 걸 알고 마음 접긴 했지만…….
그 후 어느 날 바다로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돌아오지 않았을 때부터 나는 고아가 되어 세상을 떠돌았고, 떠도는 동안 용병이 되어 있었다.
남들 말로는 내가 눈썰미가 뛰어나고 눈치가 빨라, 배우고 생존하는 데 필요한 걸 다 갖췄다고 했지.
나도 그 덕분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열아홉 살이 될 때쯤 난 그분을 만났다.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아쉽네.’
일기의 제목처럼 이건 브뤼셀의 일기다.
그리고 직감으로 봤을 때, 이 일기들을 전부 찾게 되면 어떤 유산의 위치나 혹은 유산이 직접 나올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아니면 브뤼셀의 렌즈가 변화하겠지. 혹은 둘 다일 수도.’
하지만 아쉽게 됐다.
딱히 나머지 일기장을 찾을 수 있는 힌트가 이 내용 안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나마 추측해 볼 수 있는 건 그가 바다는 애증 관계일 거라는 것 정도.
‘한때는 고래를 잡는 게 꿈이었으나 아버지를 집어삼킨 게 바다였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지.’
하나 이런 단서 정도로는 남은 조각들을 찾을 만한 여지가 없다.
찬영은 후일을 기약하며 눈앞에 띄운 양피지 일기장에서 시선을 돌렸다.
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아쉽지만 브뤼셀의 일기에 대한 생각은 접어 둬야 했다.
‘영약 도안서도 마찬가지야.’
당장 획득한 재료들을 제외하고 도안서를 완성할 수 없다는 건 확실시됐다.
‘선택 분해할 만한 아이템도 전부 소모시켰으니까…….’
찬영은 영약 도안서까지 따로 챙겨 둔 뒤 다른 창에 시선을 돌렸다.
킹조와 관련된 보상 창들이 정리됐으니 남은 건…….
‘노바.’
찬영은 가장 먼저 획득한 마법서를 살펴보았다.
-7서클 마법서
모든 마법사들이 경이로워할 만한 아이템이다. 하지만 이 마법서는 습득하자마자 자신에게 각인되었다.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시스템이 허락한 자신뿐.
‘왕성 전투 전에 7서클 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면 조셉링 같은 마나 증폭 아이템들이 더 빛을 발할 거야.’
특히 이번에 상대하게 될 존재들은 마법에 능한 존재들이다.
고서클 마법사 이력에 암흑 마력까지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대비해야 한다.
7서클 마법서 한 개만 각인되어도 7서클 마법의 주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적들의 마법에 대처하는 게 훨씬 수월해질 터였다.
‘사용하겠어.’
이윽고, 찬영의 발아래에서 원을 그린 하얀 빛이 기이한 형태로 나타나며 빛을 뿜기 시작했다.
* * *
“후우…….”
눈을 번쩍 뜬 판도라가 주변을 둘러봤다.
“판도라 님, 괜찮으십니까?”
곁에 있던 카멜로가 물었다.
“아, 네.”
판도라는 꿈을 꿨다고 대답했다.
사실 꿈이 아니었다.
자신은 꿈 같은 걸 꾸지 않는다.
한때의 지나간 기억들이 맴도는 걸 꿈이라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방금 전의 그 잠깐의 잔상은 분명 ‘사명’이었다.
그는 큰 변화를 겪었을 테고, 이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기다리면 된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깨어나지 않으시는 게 염려가 되어 잠깐 앉아 있었는데, 일어나셨으니 그만 나가 보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껄껄!”
호탕하게 웃은 카멜로가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판도라의 예상대로 찬영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셨나요?”
그녀의 인사에 찬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침실 옆 카멜로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았다.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죠?”
찬영이 물었다.
“네, 변화가 있으셨다는 것도 알아요.”
“맞아요. 마법이 7서클에 올랐어요.”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누군가 들었다면 경악할 일이었다.
7서클부터는 대마법사의 반열.
짧은 시간에 그가 대마법사의 범주에 진입했다는 건 그야말로 마법사계에 새로운 획을 긋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맞은편에 앉은 판도라 또한 반신의 반열에 접어든 존재.
그녀도 별 표정의 변화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찬영은 그런 그녀에게 자신의 변화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묻지 않았다.
자신이 그녀의 변화를 느꼈듯, 그녀도 자신의 변화를 어렴풋이나마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아까 오한이 들며 느꼈었던 상황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판도라의 감각까지 공유의 인장을 통해 내게 전달되는 건가요? 그런 얘기는 없었던 걸로 아는데.”
“그건 저를 통한 게 아니었어요.”
“공유의 인장 때문이 아니었다는 겁니까?”
“네.”
“그럼……?”
“사명이 획득한 우스 동력기엔 이미 사명의 의지가 깃들어 있더군요. 그 의지는 공유의 인장처럼 사명과 연결되어 있죠.”
“아…….”
찬영은 그제야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것도 같았다.
‘우스 동력기가 내 인벤토리에 진입한 순간부터 그건 내 소유가 됐어. 그때부터 우스 동력기 안에 내 의지가 깃들었다는 건가?’
그것 말고 이런 신비로운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다.
마법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니까.
“그럼 제가 체감했던 그 일들은 우스 동력기와 제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랬다는 건가요?”
“네, 맞아요. 그 힘이 제 룸의 힘에 자극을 받으면서 일종의 저항력을 일으킨 거죠. 그 저항력이 사명에게 향한 걸 테고요.”
“그럼, 앞으로도?”
“아뇨, 사명의 의지는 더는 제게 저항하지 않을 거예요. 그 의지와 부딪치지 않고 포용하는 작업을 마쳤으니까요. 그때문에 룸의 손실이 좀 컸어요.”
“위험할 정도로요?”
찬영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하지만 고개를 젓는 판도라를 보고나서야 겨우 풀렸다.
“무리하지 말아요. 판도라, 내가 부탁한 일에 목숨까지 걸 필요는…….”
“아뇨.”
판도라는 단호했다.
“대체 왜요?”
찬영은 이유를 물었다.
“말씀드렸죠, 저는 데미아 님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사명을 도울 거라고요. 그 말은 데미아 님을 위해 뭐든 할 거란 얘기에요. 제 선택이죠.”
그녀는 스스로의 신념이 확고해 보였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마워요. 하지만 사명, 데미아 님은 사명이 고향을 구원할 열쇠가 된다고 했어요. 그러니 나는 최선을 다해 사명을 도와야 해요.”
또다시 ‘열쇠’란 단어가 나왔다.
찬영은 대체 어떻게 스스로가 열쇠가 되는 것인지는 예상할 수 없었지만 이제껏 마주한 존재들마다 열쇠가 될 거란 얘기에 이젠 스스로도 궁금해졌다.
‘내가 대체 어떤 일을 해야 하기에……?’
그 본질을 겪기 전까진 알 수 없을 테지만, 장담할 수 있는 건 있다.
만약 열쇠로서 중차대한 일을 해야 한다면 거리낌 없이 시행할 거라는 것.
“알겠어요. 판도라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큼 사력을 다할게요. 나 역시도 같은 마음이니까.”
정말이다.
판도라만큼 내 삶, 내 고향을 지키고 싶다.
그 마음을 읽은 판도라가 말했다.
“새로운 차원의 힘을 갖게 될 거예요, 반드시. 그리 제작할 생각이니까요.”
그녀가 자신했고 찬영은 믿었다.
그리고 고대했다.
왕성으로 나아간 병력들 곁으로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기를.
* * *
‘……찬영.’
제이나는 밤하늘을 보며 그를 떠올렸다. 그가 떠난 지 벌써 며칠이 흘렀다. 하지만 소식을 알 순 없다.
언젠가부터 마법구 통신이 두절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올로도 그러했다.
모두 통신 장치를 방해하는 첨탑들의 존재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당연히 예상했다.
딱히 혼란은 없었다.
그저 모두 전운을 느낄 뿐이었다.
통신이 두절되었다는 건 그들의 영역 안에 진입했다는 걸 뜻했으니까.
“진군을 멈추고 이곳에서 군단을 나눈다.”
이번 파견의 총사령관 베이콥 영주가 명령을 하달했다.
공주와 에머리 경의 조언을 받아 폴리스 장벽에서 보이지 않을 위치에서 군단을 나눠 진입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깃발이 나부끼고, 공주에 의해 임시로 임명된 각 군단장들이 병력을 분담했다.
제1 군단장, 레지앙 로일.
육십에 이른 나이임에도 그는 보급 전선에서 활약해 줄 터였다.
보급 병력의 숫자는 오백여 명.
최후방 전선을 맡기로 했다.
제2 군단장, 크루거 미프.
이미 오랜 전투 경험으로 그는 충분한 실력을 인정받았다.
제3 군단장, 태양의 아들 그라스.
공주로부터 그의 임명이 이뤄졌을 때 모두가 놀랐으나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전장에 함께 선 병사들은 이미 레오족을 같은 편에 선 혈맹으로 인정한 것이다.
공주는 그에 더해 베이콥 영주가 데려온 레인저 대대를 그라스에게 합류시켰다.
그중엔 헤일로족을 대표해 파견 나온 카일, 도레인, 고베이 등이 포함됐다.
카일은 베이콥 영주를 전폭적으로 지지했기에 그라스와도 별 충돌이 없었다.
직위 등에 연연하지 않는 카일의 무심한 성격도 한몫했다.
제4 군단장, 에머리 브란트.
그녀는 십안의 기사단 부단장으로써 이미 공주를 지키고, 나아가 클린트 무리를 몰아내는 데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특히 그녀를 도울 부관들이 많았다.
프치키 경, 홀랜드 경, 나아가 이제는 해체해 오리엔트에 편입된 크라이 워커 등.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된 용맹한 전사들이었다.
제이나는 이 중 제5 군단장에 임명됐다.
도열된 병력들이 나눠지는 와중, 제이나가 선두에 서서 마법병단의 부단장이자 군단의 부관 중 한 명이 되어 줄 클레인을 불렀다.
“클레인.”
“예, 단장님.”
“이제 다 왔어. 조금만 힘내.”
“어울리지 않게 감상적이십니다. 사랑이 사람을 바꾸긴 하나 봅니다.”
“그래 보여?”
“예.”
클레인의 대답에 제이나는 희미하게 미소 지은 후 도열하는 마법 병단을 힐끗 쳐다봤다.
사실 적들에 비해 마법사의 숫자는 턱 없이 부족한 지경이다.
현재 마법사의 숫자는 총 5소대.
2서클 스무 명, 3서클 서른 명, 4서클 아홉 명. 5서클은 클레인 한 명이다.
2서클 마법사 스무 명을 한꺼번에 묶어 한 개 소대로 두고, 제이나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상위 마법사들을 네 명씩 나누어 한 개 소대씩 나누었다.
이에 비해 적들의 마법사 숫자는 고민할 것도 없다.
무조건 많다.
사실 군단이라고 칭하기도 부족한 숫자.
2서클은 사실 전투 일선을 지킬 마공학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투 마법사는 마흔 명이다.
‘나까지 포함해 마흔한 명.’
이럴 때 상아탑의 마법사들이 생각나는 게 사실이다.
하나, 부정적인 생각도 잠깐이었다.
이런 생각이 전투 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걸 잘 알기에 단숨에 지워버렸다.
‘우리 힘으로 이뤄 내야 해. 이미 그럴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고…….’
제이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했다.
“레인은 준비하고 있나?”
“네, 가동률 100%에 이르면 당장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 가동률 92%까지 상승했다고 보고 받았습니다.”
공학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온 건 제이나의 동생인 레인도 마찬가지였다.
레인은 공학자들의 수장을 맡아 제이나가 전장에서 사용할 아티팩트를 점검 중이었다.
“그래, 알겠어.”
고개를 끄덕인 제이나에게 클레인이 결연한 눈빛으로 조언했다.
“병력의 숫자는 승패의 척도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저희들 또한 그간 많은 전투 경험을 쌓아 왔지 않습니까? 한 명 한 명이 일당백입니다. 저희를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클레인은 제이나가 가질 책임감과 염려를 눈치챘다.
사실 한마디 말로 책임의 무게가 가벼워지진 않지만, 적어도 제이나는 그 덕분에 미소 지을 수 있었다.
“힘이 되네. 조언 잘 새겨들을게.”
클레인이 미소와 함께 말을 몰아 정해진 위치로 돌아갔다.
제이나도 돌아선 그와 함께 말을 몰아 전방을 바라봤다.
저 멀리…….
두 번째 장벽, 폴리스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