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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203화 (203/248)

# 203

203화

“하아, 하아.”

아까보다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곁에 있는 로레인이 괜찮냐며 묻는 것 같지만 그마저도 웅웅거리는 이명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다.

‘대체 무슨 일인 거지?’

어지럽고 메스꺼운 이 순간 찬영은 문득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봤다.

손등의 박스 문신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다!’

공유의 인장은 서로의 영혼이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표식, 판도라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 생각에 이르렀을 때쯤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괜찮아?”

로레인의 목소리가 다시 명료히 들려오자마자 오한도 사라졌다.

“네, 이젠 괜찮습니다.”

“식겁했네.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손등에서 빛나는 건 또 뭐고?”

“판도라와 제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표식이에요. 마법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그 표식이 빛났다는 건?”

“문제가 생겼다는 거죠.”

대강의 상황 파악을 마친 로레인에게 시선을 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시간이 없다.

“얼른 가 봐야겠습니다.”

찬영과 로레인은 로일시 외곽을 달려 함께 작업실에 도착했다.

빛의 기둥은 오는 동안에 점차 빛이 옅어지며 이젠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히이잉!

울고 있는 말의 등을 토닥인 로레인이 훌쩍 뛰어내리며 먼저 앞서가는 찬영을 뒤따라갔다.

“안에 가서 상황부터 확인해. 난 로일 성에서 파견될 병사들부터 상황 설명하고 진정시킬게. 아마 그들도 놀라서 달려오고 있을 테니까.”

로레인은 로일 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사 생활까지 했다. 당연히 그녀만큼 뒤처리를 잘해 줄 동료도 없다.

“네.”

고개를 끄덕인 찬영이 서둘러 작업실로 진입했다.

* * *

저벅저벅.

작업실 안은 고요했다.

자신의 발자국 소리만 날 뿐.

판도라가 카멜로를 따라나섰던 길을 따라 작업실의 3층 계단을 올라섰다.

계단을 오르자 마나로 제작된 투명한 창문들이 수족관 유리처럼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갖춰져 있었다.

‘엄청나군.’

제일 먼저 대포 형태의 철제 장치들이 순차적으로 세워져 있는 게 보인다.

‘빛의 기둥은 저것들이 가동된 결과인 건가?’

솥단지처럼 펄펄 끓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그런 게 틀림없다.

시야가 일렁일 정도로 뜨거운 열기인 것 같으니까.

찬영은 장치의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포 형태의 옴폭한 용광로들 한가운데에 그려진 마법진, 그 아래를 보자 두터운 관과 연결된 마법 탱크들이 보였다.

더 아래에는 알 수 없는 물질들이 미끄럼틀 같은 기다란 관을 따라 오두막 규모의 거대 용광로 같은 장치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특히 용광로 표면에는 기괴한 문양들이 열기와 함께 하얀 빛을 흘리고 있었다.

‘느낌상 저 용광로 같이 밀폐되어 있는 구조물이 장비가 나오는 곳인 것 같은데…….’

막 그런 생각을 할 때쯤 특수 제작된 거 같은 철제 갑옷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갖춰 입은 카멜로가 구조물로 걸어가는 게 보였다.

‘저기군.’

찬영은 그가 나온 장소와 연결된 방을 찾기 위해 다시 움직였다.

그곳에 판도라가 있을 거다.

* * *

잠시 후, 찬영은 거대 장치들이 갖춰져 있는 광장과 연결되어 있는 방을 찾았다.

치익!

때마침 하얀 연기를 일으키며 광장사이에 밀폐된 문이 열리고, 카멜로가 그 안에서 느리게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뜨거운 기운이 그의 갑옷 밖으로 일렁이는 중이었다.

“후우.”

곧이어 밀폐된 투구를 벗은 카멜로가 우두커니 서 있는 찬영을 발견했다.

“언제 도착했소?”

그는 찬영이 올 거라 예상했던 지 크게 놀라지 않는 표정이었다.

“방금 왔습니다. 판도라는…….”

“아, 판도라 님은 이쪽에 계시오.”

카멜로가 걸음을 옮겨 방의 다른 문을 열었다. 작은 침실에 누워 있는 판도라가 보였다.

그제야 걱정했던 마음이 놓였다.

큰일은 없었던 모양이다.

“기절한 겁니까?”

“그렇소. 룸을 대부분 소모한 상태가 되면 저렇게 되신다고 하더군.”

“네, 그런데 어쩌다…….”

“아, 우선 이것부터 좀 벗고 얘기합시다.”

쿵쿵!

카멜로가 뜨거운 열기로부터 그의 몸을 보호했던 작업 갑옷을 하나둘 벗은 뒤에야 비로소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 강한 열기는 우스 동력기 때문이라오. 그대가 보고 왔을 빛의 기둥도 역시나…….”

“우스 동력기.”

“맞소. 내 그대가 놀라 달려올 줄 알았지. 판도라 님은 쉬면 회복된다고 하시니 더 걱정 말고. 자, 이리 와 보시오.”

카멜로가 앞장섰다.

뒤따라 나서서 2층으로 내려갔다.

“저 장치가 보이시오?”

2층으로 내려가자마자 카멜로가 손가락으로 투명 창밖을 가리켰다.

찬영의 시선이 그 끝을 따라가자 궁금했던 거대 화덕이 더 가까이 보였다.

“나는 여길 처음 설계해서 지을 때 우스 동력기가 폭발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늘 대비했소. 그래서 주위를 이 투명한 창으로 둘렀지.”

“뭘로 만들어진 겁니까?”

“검은 별을 제작할 때 쓰인 돌을 섞어 만들었지. 놈들이 도망칠 때 그것까지 전부 실어가진 못했으니까.”

“아……!”

검은 별은 아딘 암석이다.

아딘 암석은 응축의 주문까지 견딜 만큼 견고하며 가해지는 힘을 분산시키는 데 더 없이 효율적으로 쓰인다.

이어서 카멜로가 말했다.

“다른 구조물도 다 검은 별을 통해 만든 것들이지. 우선 저기 상층부에 세워진 굴뚝 형태의 쇳덩어리가 보이시오?”

“네.”

“저 안에는 내가 정제해 온 마나 물질들이 가득하고 저기서 흘러나온 물질들은 ‘버켓’ 이라고 칭한 곳에 흘러 들어가오. 심비 하트는 저곳에서 완벽히 정제됐지. 하지만 문제는 우스 동력기였소.”

“쉽지 않은 작업이셨군요.”

“물론, 예상대로 우스 동력기는 마나 상위의 힘을 품고 있었소. 그래서 제어해야 할 마나 물질들이 우스 동력기에 닿으면, 모조리 흡수됐지.”

“정제 자체가 불가능했던 겁니까?”

“그렇다오. 하지만 판도라 님은 놀랍게도 내게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셨소.”

“어떤 겁니까?”

“버켓에 판도라 님의 힘을 활용해 새로운 힘의 구축진을 새기는 거였지. 그 구축진은 우스 동력기를 자극하는 구축진으로써 룸의 힘으로만 작동한다오.”

찬영은 그제야 어떤 과정인지 알았다.

‘하긴, 그녀는 우스 동력기와 밀접히 관련된 힘을 쓰지. 우스 동력기의 형태 변화를 이루는데 룸만 한 자원은 없어.’

그렇기에 우스 동력기에 룸의 힘으로 자극을 계속 줘서 마치 담금질을 하듯 형태를 변화시키는 게 틀림없다.

“힘의 여파는 따로 없었습니까?”

“검은 별이 워낙 견고한 데다가 구축진 안에 우스 동력기에서 파생되는 힘의 여파를 줄이는 효과도 있어서 크게 문제 될 건 없었소.”

“그랬군요. 그래서 결과는 어떻습니까?”

“당연히 성공이오. 우스 동력기가 버켓 안에서 반응했으니까. 이제 판도라 님이 지속적으로 룸의 힘을 주입해서 내 설계대로만 형태 변형이 이뤄진다면…….”

“아티팩트가 완성되겠군요.”

“조만간이오. 사나흘 정도면 될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군.”

카멜로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 * *

그 뒤 찬영은 설계도를 다시 살피는 카멜로를 두고 로레인에게 돌아갔다.

때마침 로레인은 작업하는 도중의 일이라 별것 아니라며 기사들을 돌려보내고 있었다.

“납득하던가요?”

“응, 다들 이곳 상황에 대해 잘 알잖아. 이곳에서 검은 별의 대항마를 제작하고 있다는 것쯤은……. 그렇게 얘기하고 그쪽이 들어갔다니까 크게 걱정 안하던데?”

“그래요?”

솔직히 조금 놀랐다.

영내 안에서 벌어진 일인데 이렇게 쉽게 무마될 줄이야.

“그쪽 명성을 너무 얕게 보는 것 같은데, 스스로의 입지가 작다고 생각하지 마. 많은 이들이 당신을 존경해.”

“존경까지나요?”

“그럴 만하니까.”

순간 로레인의 볼이 잠깐 붉어졌다가 다시 본래 색으로 돌아왔다.

정작 찬영은 그녀가 한 얘기를 되새기느라 그걸 못 봤지만.

“어쨌든 별일 아니라니 다행이네. 그래서 이젠 어쩔 거야?”

“작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볼까 해요. 완성만 된다면 단숨에 왕성까지 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도 그럴 게 왕성으로 가려면 나흘이라는 시간뿐만 아니라 체력 및 마나를 많이 소모해야 한다.

하지만 완성만 된다면…….

최상의 상태로 적들을 조우할 수 있을 거다.

“단숨에? 대체, 뭘 제작하기에?”

“날개요.”

“날개?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지? 새처럼 날아다니는 그 날개?”

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레인은 할 말을 잃었는지 잠깐 멍한 표정이었다.

당연하다.

그녀가 생각하기엔 놀랄 일이겠지.

“이젠 날아다니기까지 하려고? 나, 원 참…….”

그녀는 믿는 건 둘째 치고 찬영이 보여 줄 또 다른 변화에 더욱 놀랐다.

“그나저나 괜찮겠어? 전황이 걱정될 텐데.”

“물론 걱정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다리는 게 최선이죠.”

“그래, 그렇다면야 별수 없겠지. 조금만 참으라고.”

찬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로레인이 자신이 온 곳을 힐끗 보았다.

“그럼, 난 이제 가 봐야겠어. 자리를 오래 비울 순 없잖아. 채비도 해야 하고.”

“채비요?”

“어, 그쪽이랑 같이 떠날 생각이야. 왕성 전투에 합류해야지.”

“하지만 탈파의 일이 있으시지 않으십니까?”

“탈파도 세상이 존재해야 존재하는 거잖아. 그리고 탈파야 내가 없어도 원로님들 덕분에 잘 돌아가. 그쪽이 준 예비 갓피스 명단이야 이미 뿌릴 대로 뿌렸으니까 결과야 시간이 지나면 보고가 올라올 테고…….”

로레인의 합류 결정에 찬영은 씩 미소 지었다.

사실 그녀가 머지않아 이 얘기를 할 거라 어느 정도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제이나 못지않게 뉴 빌드에 대한 원한이 강하니까.

“든든하겠군요.”

거절할 생각도, 거절할 이유도 없다.

그녀의 선택이다.

“그래, 그럼 아티팩트가 완성되는 대로 불러 줘. 채비는 미리 해 두고 있을게.”

“그러죠.”

로레인은 갈게, 하며 휘적휘적 오솔길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찬영도 돌아섰다. 그녀 말대로 전투를 준비하며 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었다.

* * *

작업실 부근, 공터.

찬영은 심법 훈련 전에 인벤토리를 가득 채운 장비들을 살펴보며 영약 재료부터 준비했다.

‘내겐 아이템 가치에 따라 영약 재료를 준비할 수 있는 분해 기술이 있어.’

물론 도안서에 맞는 몬스터가 출몰하거나 만난다면 좋겠지만…….

전투를 앞둔 지금 당장은 기대하기 힘들다.

‘랜덤이긴 하지만 기대해 볼 순 있지.’

레어급 영약 재료가 나올 수 있는 가치를 가진 아이템들이 많아진 지금, 킹조의 울음에 맞는 아이템이 나오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나올 때까지 전부 쏟아붓는 거야.’

레어급 영약 재료가 필요하다면 나올 때까지 분해를 돌리는 거다.

여러 번의 횟수를 통해서 나오지 않는 확률만큼, 나올 확률도 있는 법이니까.

‘선택 분해.’

-킹조의 발톱으로 제작한 판금 갑옷이 분해되었습니다. 분해로 우루콰의 심장이 나왔습니다.

-킹조의 한이 담긴 목걸이가 분해되었습니다. 분해로 바드마의 촉수가 나왔습니다.

-……분해되었습니다.

-…….

찬영은 아이템을 선택 분해하며 조용히 원하는 재료들이 나오길 기다렸다.

사실 나오지 않는다고 실패라고 보기도 어렵다.

여기 나오는 건 전부 영약 도안서에 쓰이는 재료들.

‘꽝’이 없는 분해라고 해도 무방하니까.

하지만 여기서 잭팟이 하나 터졌다.

-업적, ‘영약 재료 수집가1’을 달성하였습니다. 레어급 이하의 원하는 영약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단, 도안서가 존재하는 영약에 한해 가능합니다.

영약에 가치 높은 아이템을 합성으로 돌리지 않고, 영약 재료에 쏟아부었기에 획득할 수 있었던 업적.

“킬리만의 이빨로 하겠어.”

-킬리만의 이빨을 획득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남은 건 단 한 개의 영약 재료뿐이다.

찬영은 다시 아이템 분해에 열중했다.

하지만 선뜻 원하는 재료가 선뜻 나오진 않았다.

-썩어 가는 로라노의 위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쯤에서 만족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로라노의 위에서 브뤼셀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브뤼셀의 렌즈가 반응합니다. 어서, 착용하세요.

설마 영약 재료에서 진귀한 일이 벌어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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