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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200화 (200/248)

# 200

200화

실험 내용들을 살핀 후 찬영은 혼란스러웠다.

“그럼 판도라 당신은…… 데미아의 죽음과 관계가 있겠군요.”

“예, 데미아께서는 목숨 바쳐 저를 탄생시키셨습니다. 자아가 생기고 형태가 생기기 전까지 그분의 사랑을 잊지 못합니다.”

판도라의 말대로 데미아는 자신의 모든 걸 던져 판도라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창조의 비밀을 여는 일은 영혼을 대가로 치러야만 하는 일, 데미아는 서서히 죽어 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사실 하나.

‘인간이 창조를 했다고……?’

듣고도 믿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판도라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생명이 있었고 자아가 있었다.

‘우스 동력기로 제작됐던 무기를 분해해 얻은 물질로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가 탄생됐다니…….’

할 말을 잃을 만큼 경이로운 일.

“허…….”

찬영은 멍하니 판도라를 바라봤다.

그때,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판도라가 다가오며 물었다.

“만져 봐도 될까요?”

찬영은 호기심 가득한 그녀의 눈동자를 보니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네.”

대답과 함께 손을 뻗은 그녀가 찬영의 코를 타고 턱을 쓸어내렸다.

“놀라워요. 그분의 말씀대로 그분의 종족들은 아직도 존재하는군요.”

“네, 그리고 판도라 당신과 정확히 일치하죠. 적어도 겉보기에는.”

찬영은 판도라를 지그시 바라봤다.

연구 기록 중 일부에 의하면, 지금 판도라의 겉모습은 창조자인 데미아와 외형이 99% 동일하다고 했다.

하지만 속은 다르다.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고 했지.’

인간의 겉모습을 가졌으되, 그녀는 인간 이상의 초월적 존재라고 했다.

데미아의 연구 기록을 빌려 말하자면 그녀는…….

‘반신半神.’

말 그대로 신의 절반이라는 얘기.

데미아가 그런 얘기를 했다는 건 판도라의 능력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인데, 과연 어떤 능력을 가졌기에 그런 이야기를 했던 걸까?

의문은 당연했다.

그도 그럴 게 연구 기록엔 판도라의 능력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호기심이 충족됐나요?”

“네, 어느 정도는…….”

판도라가 순수하게 미소 지었다. 티 없이 맑은 그 미소를 보자 찬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데리고 나가도 될까?’

물론 연구 기록에 의하면 여길 나가는 건 단순한 일이다.

데미아가 만들어 놓은 ‘워프’가 있다고 한다.

포탈이 한 공간의 장소들 중 먼 거리를 단번에 좁혀 버리는 개념이라면 워프는 차원 다리와 차원 다리를 잇는 장치였다.

단 이곳에 있는 ‘워프’의 경우 한 번 사용하면 다신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거기에다가 처음 왔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간다고 하니 귀환은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자동 획득한 아이템들만 봐도 위험 요소가 될 노바는 이동 중에 죽은 게 분명하니까.

하나, 돌아가는 게 문제가 아니다.

‘이 친구와 함께 동행할 건지가 문제지.’

사실 여길 온 건 엄밀히 말하면 무기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 마주한 이 여자.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순수함의 열망으로 가득한 이 존재를 과연 제대로 보살필 수 있을까?’

그게 문제였다.

찬영은 그녀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나 솔직히 얘기해 보기로 했다.

“저, 판도라.”

“네?”

“이곳을 나갈 건가요?”

“그래야 해요.”

“왜요?”

“전 사명을 기다렸고, 사명이 제 앞에 왔습니다. 제 임무는 이제부터 시작이죠.”

배시시 미소 짓는 그녀를 보며 찬영이 말했다.

“하지만 제가 온 또 다른 세계는 많은 위험으로 가득해요. 멸망을 원하는 자들과 막으려는 이들의 싸움이 시작됐고 끊임없는 죽음이 반복되는 곳이 됐죠. 이해할 수 있나요?”

순간 판도라의 눈빛이 빛났다.

“죽음이요?”

“네.”

“그럼 사명은 이해하나요? 죽음의 본질에 대해?”

“그건…….”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죠. 살아남은 존재들의 복합적인 감정들이 있겠지만 죽음은 그냥 사라지는 것이에요.”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에요.”

“제가 호기심 많은 소녀 같아 조언을 하고 싶으신 거라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언을 하려던 찬영은 순간 얼어 버렸다.

판도라는 정확히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가 말했다.

“데미아께서는 창조의 비밀 속에서 가능성 있는 미래 중 일부를 엿보셨다고 했어요.”

찬영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진입할 때부터 목소리의 주인공인 판도라는 이렇게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다’고.

“제가 찾아올 걸 미리 알고 계셨다고요?”

“네, 엄밀히 말하면 찾아올 가능성을 말씀하신 거죠. 그분은 미래의 일부를 보셨고, 제게 말씀하셨어요. 선택의 끈이 닿아 만약, 사명이 온다면 함께 고향을 지켜 달라고……. 전 그분을 위해 싸워야 해요.”

얼마나 강한 사랑이 있어야 불확실한 가능성에 평생을 던질 수 있을까?

찬영은 데미아가 남긴 가능성에 평생을 쏟아온 판도라가 놀랍다 못해 존경스러워졌다.

“무슨 뜻인지 이해는 하지만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큰 각오가 필요해요. 그리고 전쟁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죽여야 하는 일이죠.”

“그분을 위해 싸우는 건 각오가 아닌가요?”

찬영은 말문이 막혔다.

‘하긴, 난 그녀의 의지를 제약할 이유가 없어.’

세상 밖으로 나서길 원하는 것도, 자신을 도와 자신의 적을 싸우려는 것도 모두 판도라의 의지다.

하지만 지금 기분은 딱 이랬다.

“솔직히 난 당신이 다칠 것 같습니다. 이제 막 태어나 세상 밖을 걸을 인간 아이와 같은 존재니까요.”

“오해하시는군요.”

판도라가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처음엔 그 미소의 의미를 몰랐으니 듣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제 머릿속엔 그분의 영혼이 일부 담겨져 있죠. 그분이 경험했던 감정 등도 포함해서요. 전 복잡한 존재입니다. 그분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고, 독자적인 자아도 존재하죠. 사명과 같은 존재들이 놀랄 지식들이 제 머릿속에 있죠. 오랜 시간을 당신을 기다리며 고뇌해 왔어요.”

생각에 잠겨 있던 찬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만약 그렇다면…….

‘내 생각이 짧았어.’

자신의 생각과 달리 판도라는 어떤 현자보다 현명하고 신중할 것이다.

사실 대화를 하면서도 느낀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고고한 지성이 느껴진다.

“삶의 목표도 뚜렷하죠. 당신의 전쟁을 함께 해 데미아 님의 고향을 지키는 것…….”

“적을 규정함에 있어서 만약 제 결정들이 틀린 거라면요?”

“제 이야기로도 짐작했겠지만 전 데미아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지, 사명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에요. 사명의 선택들이 데미아님의 고향을 지키는 일과 반대된다면 기꺼이 적이 되겠죠. 그런 의미에서 다시 묻죠.”

찬영은 판도라의 그윽한 시선을 마주 봤다. 한참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던 그녀가 물었다.

“반대되는 길이라고 생각하나요?”

“전혀.”

“그럼 믿어 보죠.”

판도라의 대답에 찬영은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녀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도, 세상의 룰에 이리저리 흔들릴 존재도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기에 더욱 그랬다.

“또한 알아 두셔야 할 게 있어요.”

“어떤?”

“저는 한정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어요. 함께 싸우려면 알아 두시는 게 나을 거예요.”

“네, 듣고 있어요.”

“좋아요. 전 능력을 쓸 때 ‘룸’ 이라는 게 소모돼요. 룸은 다양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제 영혼력이죠. 대가가 큰 능력일수록 한 번에 소모되는 룸이 커요. 하지만 룸이 단번에 소멸될 정도로 대가가 큰 능력이 아니라면, 시간이 지나면 룸은 다시 회복되어 가요.”

뭐든지 가능하다고?

“생명을 되살리는 일도 가능한가요?”

찬영은 이규복을 떠올리며 혹시나 싶어 물었다.

“그런 경우.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어요. 영혼이 완전히 육신에서 끊어지기 전이라면요.”

“한 번?”

“네.”

“아…….”

찬영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규복을 살릴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녀도 신이 아니다.

반신의 능력이라고 했던 데미아의 말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이미 그녀가 행할 수 있는 일만 해도 기적이나 다름없지.’

부활은 인간 너머의 초월적인 존재들의 전유물.

그런데, 판도라는 한정적이나 그게 가능하다. 실로 신비로운 존재인 셈이다.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로 했으면 좋겠어요.”

“왜요?”

“어떤 존재든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위협으로 느낄 수도 있으니까요.”

“이해해요.”

판도라의 눈빛은 아주 깊고 신중했다.

‘어쩌면 내가 얘기를 꺼내기 전, 그녀는 이미 그렇게 하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찬영은 판도라에게 물었다.

“그럼 룸이 전부 소모되면 판도라는 어떻게 되나요?”

“소멸돼요.”

찬영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럼 능력을 쓰는 순간 그녀의 목숨이 사라진단 얘기인가?’

이렇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능력을 쓰게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웬만하면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요.”

찬영이 그녀를 걱정하며 말했다.

“갑자기 데미아 님이 말씀하셨던 게 생각나는군요.”

“어떤?”

“‘무언가를 간절히 바란다는 건, 불가능을 넘을 때 종종 하는 것이다.’ 맞나요?”

“그런 것도 같군요.”

사실, 올드 원과의 싸움을 불가능으로 본다면.

‘그래. 그녀의 능력을 쓸 일이 생길 수밖에 없겠지.’

찬영도 그 부분은 동의했다.

“하지만 죽는 건 사라진다는 거라면서요.”

“그래서요?”

“전 판도라가 사라지길 원하지 않습니다. 판도라도 살 수 있는 선택을 해야겠죠.”

그러자 판도라는 뜻 모를 미소만 머금었다.

* * *

그 이후에도 찬영은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대부분 찬영이 질문하고 판도라가 대답해 주는 역할을 했다.

“우스 동력기로 제작하고 있는 장비가 있어요. 판도라가 그 장비를 봐 줄 수 있나요?”

물론 드워프이자 뛰어난 마법공학자인 카멜로의 능력은 높이 산다.

하지만 판도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였다.

창조라는 경지까지 이룩한 데미아의 총체이며 데미아의 수많은 지식까지 그녀가 품고 있고, 심지어 그녀의 탄생이 우스 동력기와 관련이 있다면…….

‘그녀보다 전문가는 없어.’

이런 질문은 당연한 거였다.

“창조의 역할을 해낼 순 없으나…… 원하는 게 무엇이죠?”

“물체의 변형입니다. 좀 더 빠르게 움직이고 더 강력하게 싸울 수 있는…….”

“데미아 님의 고향을 위협하는 존재들로부터?”

“네.”

“가능해요. 룸의 대부분을 소진해서 한동안은 움직일 수 없겠지만…….”

“만약 생명에 위험이 간다면 하지 말아요.”

“룸이 소멸될 정도의 일은 아니랍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담담히 미소 짓는 판도라.

그녀가 별거 아닌 것처럼 얘기하긴 하지만.

‘생각할수록 난 엄청난 물건을 얻은 거야.’

사용함에 따라 창조의 비밀까지 엿볼 수 있는 물건이라니.

찬영은 문득, 두 개나 획득한 우스 동력기를 떠올렸다.

“이런 엄청난 물건을 두 개나……. 새삼 기적 같이 느껴지네요.”

“기적이 아니에요. 선택에 따른 결과죠. 이곳에 오겠다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절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요.”

“하긴…….”

찬영은 판도라의 말에 순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선택과 선택이 부딪쳐 이뤄 낸 또 하나의 성과다.

두 개의 우스 동력기 중 하나도 뉴 빌드와 싸우며 얻은 전리품인 셈이고.

‘하지만 전부는 아니지.’

찬영은 카멜로에게 들었던 얘기 그대로 판도라에게 전해 줬다.

그녀가 말했다.

“그분의 말씀이 적중했군요.”

실로 예상 못 한 대답.

“어떤?”

“아까 얘기했듯이 그분은 사명이 이곳에 도착할지, 도착하지 않을지 그건 그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하셨죠. 하지만 만약 도착한다면, 그 선택이 ‘그’ 를 깨우고 ‘그’가 갖고 있는 ‘케노의 유산’이 드러나리라 말씀하셨죠.”

찬영은 잠자코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그? 나의 선택?’

선택이라 함이 워낙 넓은 의미가 포괄되어 있지만.

앞 뒤 맥락을 떠올려 봤을 때 ‘깨어난다.’는 말은 어쩌면…….

‘남은 대륙 땅의 봉인 해제를 뜻하는 것 같아.’

그러나 좀 더 정보가 필요했다.

“그럼 그에 대해서 다른 말씀은 없으셨나요?”

“네, 그분이 남기신 말씀도, 제가 알고 있는 것도 더는 없어요.”

아쉬운 일이다.

판도라가 좀 더 알고 있는 게 있었더라면 남은 우스 동력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대체 그는 누굴까?’

먼 미래에 만날지도 모를 존재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언젠가 직접 부딪쳐 보면 알게 되겠지.’

찬영은 그에 대한 의문을 접으며 판도라에게 말했다.

“떠날 준비, 됐습니까?”

“언제든지요.”

판도라는 미소를 짓다가 집중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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