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199화
찬영은 배를 몰아 가라앉고 있는 섬으로 접근했다.
섬에 접근할수록 뱃전이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와류의 전조다.
소용돌이의 와류는 섬 사이와 그 부근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 이상 접근하면 와류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겠지.’
적당한 선에서 배를 멈춘 찬영이 바다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제, 이 부근을 지나면 수심이 해안가 근처보다 훨씬 깊어지고 이런 작은 돛단배로 버틸 수 없게 된다.
‘몸 상태가 썩 좋진 않지만…….’
섬은 절반이 넘게 가라앉아 있었고 아마 오늘이 지나면 완벽히 가라앉을 게 분명했다.
그 전에 저 안으로 진입해야 했다.
‘문제는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겠지.’
웬만한 아이템은 수중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상에서 큰 위력을 발휘했던 수많은 장비들은 이 순간은 깡통일 뿐.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이야.’
장담컨대 수압, 산소 부족 등 밀려들 수압을 버티는 것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될 거다.
특히 강한 와류가 일으킬 수압이 어느 정도일 지는 감도 안 잡힌다.
‘일반적인 산소통 가지고는 버티기 힘들겠지…….’
하지만 제이나는 그런 것들을 대비해 여러 가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바로 마법이다.
‘개량된 에어로 봄.’
에어로 봄은 본래 공기를 압축해 일시적으로 터트리는 마법인데, 제이나가 주문을 바꿔 새로운 타입의 잠수형 마법으로 개선해 줬다.
‘압축한 산소들을 주위에 끌어 모아 얼굴에 여러 겹 둘러 수압에 대비하고.’
츠츠츠!
찬영의 양손에 다양한 도형들이 나타나 섞여 들고, 유형화된 바람결이 주문을 맺은 수인 안에서 솟아올랐다.
‘수압에 저항할수록 걸어 두었던 마법이 벌어질 거고, 벌어진 틈으로 공기가 빠지겠지.’
하나 그 전까지 문을 찾으면 될 일이다.
그사이 마나가 잦아들고 몸 주변에 얇은 공기 장막이 생성됐다.
그 후 찬영은 스툼과 액세서리 장비들을 제외하고 모든 장비를 해제했다.
소용돌이 안에서 몸이 무거워 봤자 거동하기만 힘들 뿐이다.
“후우…….”
가볍게 숨을 몰아쉰 찬영이 내려다보던 바다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풍덩!
물보라와 함께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꼬르륵.
입수한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빨려들어 간다!’
어마어마한 수압과 와류였다.
쐐애액!
찬영은 제대로 반응도 못하고 와류 속으로 끌려들어 가고 있었다.
투투투툭!
선풍기 사이에 들어가 날개가 찢겨진 벌레가 된 기분이다.
미친 듯이 밀려드는 소용돌이 물살이 몸을 두른 얇은 공기 막을 눈 한 번 깜박일 때마다 수도 없이 때려 댔다.
‘정신, 정신 차려야 해.’
찬영은 시야가 어지러웠으나 아직은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온몸을 두른 마법은 깨지지 않았고, 호흡도 여유 있게 할 수 있으니까.
‘슬롯 개방!’
미리 준비한 동일한 마법들을 중첩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버티는 시간만 늘었을 뿐, 계속 소용돌이 주변만 떠돌다가 섬과 함께 가라앉을 것이다.
‘그 전에 소용돌이의 핵으로 가야 해.’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않으면 문이고 뭐고 조금도 기대할 수 없다.
찬영은 이를 악물었다.
괜히 다른 장비들을 두고, 스툼을 챙겨 온 게 아니다.
‘중심부로 가려면 와류를 뚫고 갈 만한 가속도가 필요하니까.’
‘스툼, 에어 펀치.’
마나가 결집된 스툼이 맹렬히 회전한 순간.
펑!
앞을 가로막는 수압이 온몸에 쏟아졌다.
예상한 대로 강한 저항력이었다.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어!’
물살을 뚫긴 했지만 나아가다 말고, 소용돌이에 막혔다.
‘이런!’
방향을 잃고 다시 와류에 휩쓸렸다.
‘크흣!’
이대로라면 제어력을 잃고 다시 빨려들어 가게 될 거다.
찬영은 눈을 감았다.
‘내가 이동하는 방향의 역방향으로 나아가면 중심부에 접근할 수 있어. 감각으로 느껴야 해……!’
하지만 와류가 몸을 이리저리 뒤흔들고 때리는 마당.
제대로 집중하는 게 쉬울 리 없었다.
그런데 설상가상.
그그그그!
거대한 빨판을 가진 굵은 촉수가 물살에 휩쓸린 게 보였다.
한 개가 아니었다.
열댓 개가 넘는 다리들이 소용돌이에 휩쓸리며 물살을 더 거세게 만들었다.
쐐애액!
소용돌이만으로도 벅찬 지경.
다리들이 이리저리 엮여 전면으로 물살과 밀려왔다.
‘피해야 해!’
찬영이 에어 펀치를 사용해 방향을 틀었다.
가까스로 전면으로 날아오는 다리를 피하자마자, 회전하는 소용돌이를 타고 다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LEADER 섬의 지배자, 노바
-가치 : 24,200
그오오오!
어마어마한 크기의 수포를 뿜으며 발버둥 치는 녀석의 정체는 거대 문어였다.
‘섬 밑에 잠들어 있었나 보군.’
난데없이 섬이 가라앉기 시작하자 소용돌이 안에 갇혀 버린 게 틀림없다.
찌지직!
이 와중에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방으로 흔들리는 시야보다 그 소리가 더 거슬렸다.
‘마법이 깨지고 있어!’
수압이 워낙 강해서 찢어지고 있는 거다.
찬영은 아직 깨지지 않은 마법 안쪽에 또 한 번의 마법을 중첩했다. 그러나 미봉책일 뿐.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만은 없어!’
에어 펀치의 추진력이 이 이상으로 늘어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때 발버둥 치는 거대 문어가 계속 아른거렸다.
놈은 소용돌이 바깥으로 계속 빠져나가려 다리를 뒤흔드는 중이었다.
놀라운 건 두어 개의 다리가 소용돌이의 물살을 헤칠 정도의 근력이라는 것.
찬영은 와류에 실려 다니는 와중에도 함께 휘돌고 있는 거대 문어를 노려봤다.
문어의 외피는 두꺼워 보였다.
저 정도 두께의 외피 사이의 살집엔 강한 압축력이 모여 있겠지.
그 순간 좋은 생각이 찬영의 머릿속을 스쳤다.
‘일단 와류에 몸을 맡긴다.’
성공할 확률 같은 걸 따질 때가 아니다.
당장 소용돌이부터 벗어나야 다음, 그다음이 있다.
선택은 여유라는 사치가 있을 때나 존재하니까.
츠츠츠!
와류에 몸을 맡기자마자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속도로 시야가 뒤집힌다.
밀려드는 수압의 강도도 더욱 세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주변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가까워진다.’
눈 깜작할 새 놈의 다리 사이를 지나 몸통에 이르렀다.
이제 멈춰야 해!
‘아슬란!’
모든 근력을 손에 집중해 손잡이를 꽉 쥐었다.
그간 꾸준히 훈련하며 성장해 온 근력은 강한 수압에도 쉽게 풀리지 않는다.
이건 그간 흘린 땀방울에 대한 믿음.
번쩍!
솟아오른 오라와 함께 검을 놈의 몸통에 박았다.
쿠쿠쿠!
검에 지탱해 버티기 시작하자 밀려들던 물살이 몸을 세차게 때렸다.
억지로 이겨 내며 눈을 떴다.
그오오오!
고통을 느낀 놈의 다리가 소용돌이를 휘젓는 게 스쳐가는 물살과 함께 보인다.
이제, 생각해 둔 걸 해내야 한다.
‘그래비티 필드.’
열 배로 증폭시킨 중력을 검이 꽂혀 있는 부위에 깔았다.
회복되지 않는 몸으로 끌어낼 수 있는 최선의 마나.
더는 견뎌 내지 못한다.
그오오오!
놈이 더욱 날뛴다.
‘젠장!’
몸통이 흔들릴 때의 충격과 밀려드는 수압 때문에 아슬란을 쥐고 있는 것마저 벅차다.
쿠쿠쿵!
소용돌이 물살이 지나갈 때마다 몸이 휘청거렸지만 기다렸다.
‘조금만 더.’
그러나 있는 힘껏 버티던 손도 의지와 다르게 풀려가는 게 느껴진다.
이대로라면…….
‘아슬란을 놓쳐!’
그럴 수 없다. 안간힘을 써서라도 나아갈 것이다. 그러려고 자처해 들어왔다.
‘으아아!’
찬영은 아슬란을 으스러지도록 쥐었다.
그다음 순간.
쾅!
놈의 상처 부위에 억지로 쌓여 있던 중력이 폭발적인 수압을 일으켰다.
응축되어 있던 강한 수압이 아슬란을 타고 진동으로 전해져 온다.
놈의 상처 부위 중심에 중력으로 한가득 물살을 밀어 넣은 것이다.
그리고 이젠 응축된 수압이 터질 때.
‘지금!’
수압에 밀린 아슬란이 강제로 뽑혔다.
맞서면 온몸을 뒤덮은 공기막이 전부 터져 버릴 만큼 강한 위력의 물살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맞설 때의 가정.
찬영은 아슬란을 회수함과 동시에 반대편으로 스툼을 겨눴다.
맞서지 않는다.
‘에어 펀치!’
모든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니까.
쾅!
터져 나온 가속력과 함께 솟아오른 수압이 등을 타고 느껴졌다.
‘커헙!’
내장이 뒤흔들릴 만큼의 강한 충격.
쩌저적.
마법으로 만든 얇은 공기막이 산산조각 나기 직전이다.
솨아아아아!
하지만 나아가고 있었다.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속력.
찬영은 속도가 줄까 봐, 에어 펀치를 쉬지 않고 발동했다.
마지막 마나가 빠르게 소진되며 머리가 어지러웠다.
‘됐다!’
하나 성공만 한다면 고통쯤이야.
그오오오!
하지만 다음 순간 소용돌이를 가르며 중심부로 빠르게 나아가는 찬영의 등 뒤로 노바의 다리가 물살을 가르고 날아왔다.
‘안 돼, 여기서 잡히면……!’
모든 게 끝이다.
그때 어디선가 빛이 보였다.
보인 게 아니다.
나아가는 소용돌이 중심 방향에서 강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찬영은 빛을 향해 있는 힘껏 손을 뻗었다.
그리고 노바의 다리가 그의 발을 휘감기 직전.
빛이 반으로 쪼개지더니 곧 찬영을 향해 수백 개의 빛살들을 뻗었다.
그렇게 날아온 빛이 노바의 촉수를 단숨에 잘라 내며 웃음기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오래 걸렸군요. 사명.
츠츠츠!
시야가 단숨에 빛으로 가득해졌고 찬영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쫓아온 노바의 다리들이 쿵쿵거리며 빛의 막 밖에서 날뛰는 게 보인다. 찬영은 아늑함에 미소 지었다.
‘여기가 그녀의 유산!’
기어코 오고야 만 것이다.
동시에 빛이 완벽히 그를 집어삼키고 어마어마하게 수심에 몰아치던 소용돌이가 빛과 함께 미지의 공간 속으로 회오리치며 빨려들어 갔다.
심해의 미스터리였던 소용돌이가 소멸된 순간이었다.
* * *
-노바의 꼬리
-노바의 눈
-노바의 뇌
-7서클 마법서
……
찬영은 눈을 뜨자마자 노바에게서 나온 보상들을 열거한 창들이 보였다.
그리고 창 너머 풀밭이 있었다.
풀밭은 산들바람에 따라 가벼이 흔들리고 있었고 환한 빛이 주변 가득 드리워졌다.
‘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방금까지 바다였는데……. 갑자기 풀밭 한가운데에 누워 있다니.’
심지어 몸도 가벼운 느낌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놀라운 일이다.
마치 아무 일 없던 것 같은 평화로움과 회복이라니.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풀밭 위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작은 오두막집이 가장 먼저 보였고, 하얀색의 지팡이를 든 여자가 서 있는 게 들어왔다.
그녀가 누구일지 직감상 느껴지는 게 있었다.
마공학자이자 우스를 잡았다는 신화 속 고대 갓피스.
‘데미아.’
드디어 그녀를 만난 거다.
“하아.”
안도의 한숨이 나왔고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알까? 당신을 만나기 위해 꽤 험난한 여정이 있었다는걸.
우두커니 앉아 그녀를 지켜보는데.
마녀들이 쓸 법한 플로피 햇을 뒤집어쓴 그녀가 걸어오기 시작했다.
* * *
“데미아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마지막 영광, 판도라입니다.”
다가온 그녀의 대답.
찬영은 할 말을 잃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럼 당신이……. 데미아가 아니라?”
“네, 저는 판도라입니다.”
그녀가 하나의 영상을 허공에 투영시켰다.
지잉!
그 영상은 데미아의 연구 기록이었다.
-1,813번째 실험. 차원 다리라는 건 이계의 물질들로 구현된 거라는 게 확인됐다. 난 우스 동력기에서 그 물질이 있다는 걸 발견했고, 그 힘이 창조의 능력까지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창조와 변형, 그 두 가지가 가능하다면 그거야말로 신에 이른 게 아닐까?
창조와 변형, 신의 능력…….
찬영은 문득 자신이 가진 능력을 떠올렸다.
‘시스템.’
어쩌면 그녀가 말하는 그 물질이 자신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라면……?
찬영은 자연스레 그녀의 연구 일지에 빠져들었다.
-2,503번째 실험. 나는 우스 동력기에서 발전한 물질들로 차원 다리와 비슷한 공간을 구축하는 걸 성공했다. 빠져나가는 건 생각하지 않는다. 공간 변형이 성공했으니 이제 창조에 집중할 뿐이야.
“여기.”
찬영은 반사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찬영의 시선이 자연스레 판도라에게 향했다.
“설마?”
다음 순간 찬영은 눈을 부릅떴다.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