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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96화 (196/248)

# 196

196화

* * *

-그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홀랜드에게 들려온 통신은 전진하는 배들에게 혼란을 주기 충분했다.

소식을 들은 로일 영주가 베이콥 영주를 쳐다봤다.

“이미 소용돌이 치는 해류로 진입했소.”

베이콥 영주도 눈살을 찌푸렸다.

후퇴하기엔 늦었다. 빠른 유속이 배를 빨아들이기 시작해서 뱃머리를 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뭔가 조치하지 않으면 이제 배를 움직이는 조타실은 아무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마법 병단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소?”

로일 영주가 제안했다.

“그러시지요.”

베이콥 영주도 동의하는 바였다.

상황을 들었으니 현재 상황을 자세히 확인할 방법은 마법 병단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제이나는 그들의 곁에 있었다. 그녀는 당장 찬영에게 달려가고 싶었으나 베이콥 영주의 하명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채비하게.”

베이콥 영주가 말했다.

“그리 하겠습니다.”

“병단의 소대를 모두 데리고 가도 좋네.”

모두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병력을 아낄 이유가 없다.

베이콥 영주의 결정에 제이나는 의외로 고개를 저었다.

“혼자 가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나?”

“마법진이 발동 된 후엔 마법진 안의 응축된 마나량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5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아니라면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가야겠군. 괜찮겠나?”

“마법진의 설계 전반부를 제가 책임졌습니다. 그러니 수습 역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알겠네……. 어서 출발 하게.”

베이콥 영주는 길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괜한 얘기를 더 해 봐야 그녀의 심적 부담만 커질 것이다.

이미 말하지 않아도 찬영과 제이나의 손에 이번 상륙행이 결정될 것이다.

수많은 정예병의 목숨, 나아가 왕국의 운명까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이나가 하늘 위로 떠올랐다.

* * *

제이나가 찬영이 자리 잡은 해안가에 도착했을 때쯤 이미 그 근처는 강한 마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문제는 마나 폭풍이 찬영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거였다.

‘……계산은 틀리지 않았어.’

계산이 틀렸다면 응축의 단계도 가지 못하고 이 일대가 마나 폭발에 휩싸였을 거다.

‘그럼 응축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겠지, 이 비정상적인 마나 폭풍의 여파로 미루어 보건대…….’

찬영에게 밀려든 마나가 응축의 과정을 거치며 훨씬 더 정제되고 위력이 강해진 게 틀림없다.

‘그 위력을 찬영, 아슬란, 마법진 이 세 매개체가 견디기 힘들어진 게 틀림없어.’

제이나의 잘못은 아니다.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확신할 수 없는 변수를 계산할 순 없었으니까.’

그사이 그녀는 홀랜드가 있는 곳에 착지해서 홀랜드와 접선했다.

홀랜드가 광풍에 머리칼을 휘날리며 그녀와 인사했다.

“홀랜드 와프라고 하오!”

“제이나 로덴이에요. 상황이 좋지 않으니 통성명은 이쯤 하죠.”

“그러는 게 좋겠소!”

마른침을 꿀꺽 삼킨 그가 제이나에게 물었다.

“이 상황 극복할 수 있겠소?”

그녀가 대답 대신 펄럭이는 로브의 후드 사이로 마나 폭발의 전조를 응시했다.

이대로 놔두면 나아지기는커녕 이 일대가 폭발할 것이다.

‘여파가 어느 정도일지는 상상이 안 돼.’

무려 20만mp 이상의 폭발력이다.

섬 일대가 날아가고도 남게 될 거다.

‘소용돌이가 문제가 아니야. 폭발부터 막아야 해.’

그녀는 마법진을 빠르게 살폈다.

‘아직 찬영이 버티고 있는 터라 마나가 아직 역행하진 않았어. 아슬란에도 균열이 보이진 않고. 마법진이야 찬영이 무너지지 않은 이상 깨지지 않아.’

그렇게 설계했으니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찬영의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다.

‘버티고 있는 걸 보면 아직 의식은 끊어지지 않았어. 그러나 이 상태로 계속 버티다 보면…….’

의식이 돌아오길 바라는 건 불가능하다.

그의 의식이 끊기면 남은 건 마법진의 해체와 엑스로 인한 마나 폭발, 그리고 배들의 침몰뿐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해.’

그녀는 기꺼이 한 걸음을 내딛었다.

“무슨 생각이시오? 저곳은 이미 마나 폭풍이……!”

나서려는 그녀의 팔을 홀랜드가 황급히 붙잡았다.

제이나가 그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천천히 떼어 놓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가야 해요. 가지 않으면 모두가 죽어요.”

“계획은 있으시오?”

그녀가 흩날리는 머리칼 사이로 마법진을 노려봤다.

“있어요.”

확률은 50 대 50이다.

쉽게 말해 저곳에 홀로 있는 찬영에겐 힘의 분배가 필요하다. 그리고 매개가 늘어날수록 찬영에게 쏟아지는 힘이 덜어진다.

‘저항력이 상승해서 그가 여유를 조금이라도 되찾는다면 우리가 예상했던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어.’

설계했을 때의 계산대로라면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상도 모자라 감히 엄두도 못 낼 마나량이다.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마나 폭풍만 봐도 그러니까.

‘……결국 그를 도울 수 있는 건 나뿐이야.’

다행스러운 건 혼자가 아니라는 거다.

그녀는 자신의 지팡이를 조용히 내려다보다가 홀랜드를 쳐다봤다.

“위험하니 여길 벗어나세요.”

그녀는 자신이 뱉은 말과 정반대로 찬영에게 나아갔다.

“얼른 끝내고 오시오. 기다리겠소.”

홀랜드가 그 뒷모습을 지켜보며 대답했다.

그동안 제이나는 마나 폭풍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이 순간 위험해질 미래보다 홀로 외로울 그가 걱정됐다.

* * *

찬영은 반쯤 의식이 없었다.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통증들이 아프다 못해 몸에 붙은 불처럼 계속 파고든다.

하지만 도리가 없다.

‘버티고 버티다 보면 여유가 있어지겠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응축된 마나들은 쉽게 제어될 생각이 안 된다.

제어가 되어야 다음 아티팩트를 사용할 텐데…….

‘그녀는 틀리지 않았어.’

제이나를 믿는다.

그 믿음은 이 순간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만약 틀렸다 하더라도 그녀의 최선이었다.

‘아니, 우리의 최선이었어.’

그 생각들이 스쳐갈수록 몸의 힘이 점점 빠져나간다.

‘안 돼!’

정신은 아직 더 버틸 수 있는데, 몸이 한계치라며 자꾸 포기하려 든다.

이대로 멈출 순 없다.

실패해 버리는 순간 혼자만의 실패가 아니다.

자신을 믿은 수많은 이들의 실패가 된다.

그런 실패는 원한 적도, 일어나서도 안 된다.

희미한 시야에 아슬란이 보였다.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지탱할 수 있는 아슬란을 모든 힘을 짜내 으스러지도록 움켜쥐었다.

도와 줘,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게.

그다음 순간 아슬란이 대답했다.

-일어나요.

‘……네가 말한 거야?’

의식 저편에서 들려온 소리에 소스라치듯 놀랐고 몸 구석구석 감각이 좀 더 선명히 느껴졌다. 그 덕에 고통이 다시 짙게 느껴지긴 했지만 몸의 제어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아슬란이 한 건가……?’

막 그 생각에 이를 무렵 어깨에 감각이 느껴졌다.

‘제이나!’

그녀가 어깨를 잡은 채 툴챠를 아슬란 옆에 박고 있는 게 보였다.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는 그녀가 말했다.

“많이…… 무서웠어요?”

찬영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몸이 다시 감각을 되찾은 것도, 조금씩 의식이 돌아온 것도 모두 다…….

‘그녀였어.’

평생 눈물이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해 왔는데 아니었나 보다.

그녀의 예상 못 한 등장에 왈칵 눈물이 솟았다.

하지만 그녀가 목숨 바쳐 가져온 기회를 울음으로 날려 버릴 순 없다.

눈물을 꾹 누르고 대답했다.

“아뇨, 그럴 리가.”

당신이 이렇게 올 건데.

“후우…….”

다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사방으로 흩어진 마나들을 끌어 모았다.

마나들이 주먹처럼 다시 몸을 때렸다.

툭!

목구멍에 차오른 핏물을 뱉었다.

몸은 이미 한계치, 다시 의식이 혼미해지고는 있었지만 호흡이 불안정해질 때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이젠 견딜 수 있다.

어느 때보다 그런 확신이 든다.

“크으……!”

맹렬히 떠도는 마나들이 다시 회오리치며 다시 마법진 위에 스며든 것도 그때였다.

쿠쿠쿠!

어마어마한 진동이 마법진을 타고 흐른다. 마법진 중앙에 박혀 있던 툴챠와 아슬란에서 강한 빛이 흘러나온 이 순간.

“지금요!”

소리치는 제이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티팩트를 소환했다.

1차…….

아톨의 저주 받은침이 몸에 박히자마자 마나량이 급변했고 숨이 턱 막혔다.

체력 소모에 이은 흡수율의 상승.

2차, 마나량 3%를 상승시키는 아이템 사용과 함께 3차로 키란의 돌을 사용했다.

우우우웅!

총 능력치가 5% 상승한 아슬란이 울부짖었다.

5%는 크다.

생사의 고비에 선 지금, 아슬란이 견뎌 주는 마나량이 더 커질 거다.

그때까지 몸이 버텨만 준다면.

“큭!”

겨우 버티고 서 있던 찬영의 한쪽 무릎이 부들거리다가 꺾였다.

하나 상황이 썩 좋지 않은 것 같다.

몸이 버텨 낼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게 느껴진다.

‘시간을 좀 더 늘려야 해!’

그러므로 마지막 선택은 함멜의 포션.

최고 리스크를 가진 마지막 아이템 사용을 견디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체력 70% 상승이 허덕이던 몸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자, 버티고 서 있던 무릎이 풀렸다.

근력이 떨어진 탓이겠지.

툭.

체력 상승으로 인한 리스크다.

‘그래도 견딜 만해.’

몸 안에서 이리저리 휘도는 마나에 견뎌 내는 건 인내가 필요하고, 인내는 강인한 체력에서 온다.

끝에 도달할수록 체력 상승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특히나 마지막 아티팩트를 남겨 둔 거라면…….

찬영의 시선이 손 안에 소환된 꿀렁이는 검은빛의 꿀렁이는 형태의 심장을 향했다.

-마법사들의 썩은 심장으로 제작한 원한의 심장

마나와의 시소 게임.

그 끝에 도달했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 * *

콰쾅!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번쩍거리는 벼락이 쳤다.

마흔 척이 넘는 수송선들이 벼락 아래로 모습을 드러났다.

철썩철썩!

수송선들에 탄 병력은 저마다 사력을 다해 배를 지키려 애를 쓰고 있었다.

밀려드는 파도와 거센 비바람 때문에 쉽지 않은 닻을 내리기조차 힘든 상황.

특히 영주들이 탄 선박은 사정이 더 최악이었다.

닻을 내리긴 했으나 그러자마자 섬 밑에서 밀려들기 시작한 강한 소용돌이가 배를 좌우로 뒤흔들기 시작한 거다.

그때 베이콥 영주에게 루호 제독이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영주님! 무게 때문에 배가 뒤집힐 것입니다. 선적된 보급품을 바다에 일부 버려도 되겠습니까?”

“이를 말인가! 어서, 시행하게!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 하란 이야기일세!”

“예!”

이어서 루호 제독이 갑판 상황을 둘러보며 외쳤다.

“이제 영주님들께서는 선실 안으로 드셔야 합니다! 갑판은 위험합니다!”

그 와중에도 그들 사이로 물이 넘쳐 흘러 그들의 얼굴을 때리며 다시 배 바깥으로 넘어갔다.

“으아악!”

갑판 위로 밀려든 파도에 휩쓸려 바다로 날아가는 병사들이 속속들이 늘어났다.

“난, 됐네!”

베이콥 영주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병사들과 한뜻으로 이곳에 왔다.

그들이 싸우고 있는 이 전장에서 등을 보일 순 없다.

“베이콥 영주께서 그리 하신다고 하는군.”

로일 영주가 베이콥 영주가 담담한 눈빛을 교환했다.

“그 뜻, 받들겠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제독은 더 묻지 않고 항해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했다.

철썩, 철썩!

파도는 끊이지 않고 선박을 노렸다.

“선적된 보급품을 1차 지점까지 버리고 다음 지시를 따르라!”

루호 제독의 지시에 따라 병사들과 기사들이 합심해 빠른 속도로 선적된 보급품 일부를 바다 위로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임시 미봉책일 뿐이다.’

루호 제독은 전방의 바다를 노려봤다.

츠츠츠!

배가 빙글빙글 회전하는 게 느껴진다.

‘소용돌이다.’

빠른 속도로 섬 아래의 심해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게 틀림없다.

‘이대로 배들의 대열이 전부 흩어지게 되면 본래 계획이 성공한다고 해도 아무 의미가 없어.’

타이밍이 중요했다.

콰콰콰!

하지만 그런 막연한 기대를 하기엔 이미 배가 빠른 속도로 휩쓸려 가고 있었고,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아 가는 중이었다.

루호 제독은 병사들의 곁에 있는 영주들을 바라봤다.

‘저 두 분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는다면 더는 왕국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대로 여신께서는 왕국을 저버리시는가?’

점점 배가 더 요동친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보급품을 버려 배를 뒤집히지 않게 막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자연은 인간의 힘으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루호 제독이 무력감에 가볍게 몸을 떤 그때.

쿠쿠쿵!

어마어마하게 밀려들던 비바람과 파도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병사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와아아아!”

“얼음 장벽이 솟아오른다!”

“살았어! 살았다고!”

루호 제독의 눈도 서서히 커졌다.

‘……내가 틀렸구나.’

배 앞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한 어마어마한 높이의 얼음 장벽은 단언컨대 자연의 힘을 이겨 내고 있었다.

배의 흔들림이 적어지고 주위의 물살이 고요해지는 게 확연히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루호 제독이 누구보다 앞장서서 외쳤다.

“다시 닻을 올려라!”

상륙 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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