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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93화 (193/248)

# 193

193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드가 찬영에게 맹수처럼 돌진해 왔다.

확실히 인간과는 비교되지 않는 수준의 스피드다.

파밧!

순식간에 구드의 창이 날아왔다.

홀랜드 경이 그랬었지.

‘그들의 창법이 뛰어나다고.’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쐐액! 쐐액!

창법은 딱히 형태가 없었다.

순간순간 본능에 의해 반응하는 생존 창법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휘둘린 게 아니다.

‘호흡을 통한 일정한 흐름이 있어. 그 흐름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거다.’

그러다 호흡이 끊기면 공격을 멈춰서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며 반격 태세를 갖춘다.

‘마나가 뒷받침되었다면 이보다 까다로운 적이 되었을 것 같아.’

스륵!

몸을 낮춰 창을 피한 찬영이 스쳐 가는 창날을 보자마자 아슬란을 휘둘렀다.

그 순간 구드의 보랏빛 눈이 번뜩였다.

-멈춰라.

-흔들려라.

낯선 목소리가 승패를 가르려던 그 시점에 들려왔다.

정황상 이런 능력이라면…….

‘차원의 돌?’

거부하기 힘든 유혹의 목소리, 방금 전 락슨을 멋대로 움직이게 한 능력인 게 틀림없다.

느껴진다.

강제로 몸을 움직이려 스멀스멀 들어오려는 암흑 마력이!

“죽어라!”

구드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맺히며, 찬영의 목덜미 앞까지 그의 손톱이 날아왔다.

굵고 견고하며 날카롭다.

‘창은 미끼, 정작 노린 건 이건가?’

찬영의 시야가 날아온 손톱들에 의해 금방 어두워졌다.

동시에 그라스도 찬영의 위기를 느꼈다.

“구드, 안 돼!”

이대로 그를 베어 버리면 안 된다.

‘그는 먼저 호의를 베풀었고 어쩌면…….’

그의 등 뒤에 더 많은 병력이 있을지 모른다.

이대로 레오족의 미래를 내던질 순 없다.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다.

“음?”

그때 창을 쥐고 달려가던 그가 멈칫하며 눈을 부릅떴다.

방금 전까지 구드에 의해 날아갈 줄 알았던 찬영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구드의 손톱이 힘없이 허공을 가르는 게 보였다.

다음 순간 찬영이 나타났다.

쐐액!

구드의 머리 위였다.

눈 깜짝할 새 구드의 사각지대를 점한 찬영은 준비한 슬롯의 마법을 구현했다.

키란의 반지가 빛을 일으킨다.

-바인드.

순식간에 땅 위에서 솟아오른 넝쿨들이 구드의 온몸을 칭칭 옭아매 버렸다.

-바인드.

한 번 더 같은 마법을 사용.

멋대로 풀리지 않는 싸움에 구드가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

그사이 착지한 후 가볍게 숨을 뱉었다.

‘적중했어.’

그를 다치지 않게 제압하는 건 바인드가 최선이다.

하지만 그의 몸놀림을 봤을 때 정면으로 바인드를 사용하면 피하거나 날아오는 넝쿨을 베어 버릴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타이밍을 쟀다.

주의를 분산시킨 후 그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캐치.’

상황 종료 후 그에게 다가갔다.

“인간! 죽여라! 어서 날 죽이란 말이다!”

분노에 휩싸인 구드가 성난 이빨을 드러냈다.

그의 분노가 여실히 느껴졌다.

하지만 오히려 그에겐 조금도 화가 나지 않는다.

그냥 이런 상황을 만든 자들에게 화가 날 뿐.

찬영은 상처 입은 이들을 이용하려 든 뉴 빌드를 떠올렸다.

‘개새끼들.’

그렇게 이를 가는 동안 그라스가 다가왔다.

“구드…… 이보시게.”

안타까운 눈빛으로 구드를 응시하는 그라스.

구드의 맹렬한 시선이 그라스를 향했다.

“태양의 아들? 우리 종족을 다시 노예로 만들기 위해 인간과 손을 잡은 괴물이겠지. 너 같은 자를 지도자로 추대한 내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듣고 있던 라우켄이 눈살을 찌푸렸다.

“말을 가려서 하십시오!”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진짜 그가 아니다, 라우켄.”

그라스가 라우켄의 어깨를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대체 구드님이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라우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들의 시선이 자연히 찬영에게 모여들었다.

‘해야 할 이야기가 많아지겠어. 그 전에…….’

아군에게 이 상황부터 알려야겠지.

* * *

몬스터가 일으킨 독 안개는 그 힘의 원천이 죽고 난 후 완벽히 늪에서 사라졌다.

저벅저벅.

1백여 명의 오리엔트도 그제야 늪을 지날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 섬뜩하군.”

선두에 서서 걷던 홀랜드가 죽어 있는 킹조를 힐끗 내려다본 후 중얼거렸다.

“동의합니다.”

뒤를 따르는 프치키가 말했다.

그도 그럴 게 찬영이 아니었다면 현재 병력으로 이렇게 강한 몬스터와 승리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예상하건대 전원 전멸이다.

‘대단해.’

새삼 그의 힘에 감탄한 프치키가 홀랜드에게 물었다.

“사실 갓피스들의 힘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들이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익히 들어왔지만…….”

“나 역시 그렇다오. 대단한 괴력이지. 하지만 내 생각에 그의 진짜 무서운 점은 단순히 강한 무력이 아닌 것 같소.”

“그럼?”

“매 순간 사력을 다할 뿐만 아니라 목표한 것에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지. 기어코 레오족과의 대화를 시작한 것도 그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요…….”

홀랜드 경은 레오족을 따라간 찬영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런 그의 눈에 아직 대치 상태에 머물러 있는 레오족이 보였다.

‘일이 잘 풀려야 할 텐데.’

저 너머에 있을 찬영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 * *

그라스가 물었다.

“다른 방법이 없다고……?”

찬영에 의해 기절한 구드는 포박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예.”

찬영은 대답과 함께 눈앞에 뜬 창을 확인했다.

‘‘주문을 해제한 후 흡수가 가능하다.’라…….’

역시나 이번 경우도 이제까지와 다르지 않았다.

“소유자의 죽음이 올드 원의 주문을 해제시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방법은 그게 유일합니다.”

“그렇군.”

그라스는 대답과 함께 침묵을 지켰다.

찬영도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그를 포기하든, 포기하지 않든 이미 그는 차원의 돌에 이성이 마비됐어.’

찬영은 차원의 돌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그라스와 공유했다.

그라스의 고민이 이해된다.

‘쉽지 않은 일이야.’

믿고 있던 동료가 차원의 돌에 지배됐고, 그를 죽이지 않으면 이성이 마비된 채 살아야 한다는 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때 그라스가 침묵을 깼다.

“라우켄.”

“예, 그라스 님.”

“내 창을 주게.”

라우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당혹스러워하는 그에게 그라스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했다.

“어서!”

단호한 목소리에 라우켄도 더 주저하지 않고 창을 넘겨줬다.

엄숙한 분위기에 찬영도 마른침을 삼켰다.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라스는 구드의 목숨을 직접 거둬 가려는 게 틀림없다.

탁.

이윽고 창을 건네받은 그라스가 찬영을 쳐다봤다.

“그대가 그랬지. 구드의 혀에 이식된 돌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통제하고 있다고.”

“맞습니다.”

“그럼 지금, 그를 풀어 준다면 다음은 어떻게 될까?”

“글쎄요. 당신의 정신을 제어하려 들 수도 있습니다. 그에게 박힌 돌은 상대의 정신을 지배하는 능력 같으니까요.”

“날 지배해서 동족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

“어쩌면요.”

가혹할 테지만 이게 사실이다.

“알겠네.”

그라스는 대화를 끝내더니 구드 앞에 섰다.

“구드!”

포효 섞인 그의 외침이 숲을 울렸다.

푸드드득! 츠츠츠츠!

서늘한 바람이 휘돌 만큼 강렬한 외침에, 기절해 있던 구드가 서서히 눈을 떴다.

“그라스 님…….”

은은한 보랏빛이 감도는 구드의 눈빛에는 방금 전의 그 광기가 일부 사라져 있었다.

다음 순간 그라스가 물었다.

“우리가 누군가?”

구드가 대답하지 못하자 그라스가 대답 대신 창을 휘둘렀다.

쐐액!

훤히 들여다보이는 죽음에 라우켄은 고개를 돌렸고, 찬영도 지그시 눈을 감았다.

서걱!

하지만 그의 창이 훑고 지나간 건 구드 대신 구드를 묶고 있는 줄들이었다. 잘려 나간 줄을 내려다보며 구드의 표정이 급변했다.

“어째서…….”

자신이 했던 행동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구드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린다.

그라스가 들고 있던 창을 그의 앞에 푸욱, 세게 박으며 말했다.

“혀를 자르고 동족과 함께 남을지, 모든 걸 포기하고 편안한 죽음을 택할지.”

이 순간에도 구드의 눈빛엔 보랏빛이 짙게 물들었다가 옅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도 돌의 힘과 항거하는 게 틀림없다.

그라스가 외쳤다.

“답은 스스로 증명해 보이게.”

이내 정적이 감돌았고 찬영은 할 말을 잃었다.

‘혀를 자른다?’

돌이 이식된 부위를 자르는 건 상상도 못한 방법이다.

“혀를 자른다고 문제가 해결될지, 되지 않을지는 전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찬영이 급히 말했다.

그러자 그라스는 대답하지 않고 라우켄은 물러나 있으라고 했다.

그들의 선택에 찬영은 할 말을 잃었다.

“왜 이런 무리한 선택을 하게 만드십니까?”

그러자 그라스가 대답해 왔다.

“그럼, 그를 우리에게 돌려놓을 다른 방법이 있는가?”

“하지만 이 방법도 확실하지 않긴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래서……?”

그라스는 조용히 반문했다.

그다음 순간 찬영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에게 뭐든 해 보라는 건가?’

찬영의 시선이 자연스레 구드에게 향했다.

그라스는 구드에게 말하고 있었다.

설사 위험하더라도 그 길이 고통스럽더라도 다시 동족 곁에 서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는 거다.

‘그걸 선택하는 건 그의 몫이겠지.’

만약 이를 거절한다면 글쎄, 그 후에 어떻게 흘러갈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찬영도 더는 말릴 생각을 못하고 물러선 그때.

구드가 입술을 달싹였다.

“벼락 발톱 구드, 당신의 뜻을 이해합니다.”

희미하게 미소 짓는 구드의 눈빛이 다시 보랏빛으로 짙게 물든 그 순간.

구드가 고함쳤다.

“사이한 힘이여, 나를 더는 좌지우지할 수 없을 것이다!”

순식간에 박혀 있는 창을 뽑아 자신의 혀를 가져다 댄 구드.

서걱!

신음성과 함께 구드가 바닥에 엎드렸다.

뚝, 뚝.

잘려 나간 혀와 함께 비 오듯 쏟아지는 핏물.

동시에 지켜보던 찬영의 눈앞에 창 하나가 떴다.

-인식된 올드 원의 주문이 사라졌습니다. 근처에 있는 차원의 돌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돼!’

그건 그들 간의 신념이 낳은 기적이 따로 없었다.

‘단순히 이식되어 있는 부위를 자르는 것만으로 주문이 해제된다고?’

믿기 힘들었으나 눈앞에 펼쳐진 걸 부정할 순 없었고, 더는 돌의 힘에 영향을 받지 않는 그를 구해야 했다.

“비켜요!”

라우켄이 나서려는 찬영을 제지하려했으나 찬영이 그의 손을 뿌리치며 구드에게 다가갔다.

재고 따지고 할 시간이 없었다.

과다 출혈로 쇼크사라도 오기 전에 그의 피부터 멎게 해야 했다.

마침 일회성 포션이 하나 있어서 다행이다.

‘이게 통할지는 모르겠어.’

-우로드의 재생제

-가치 : 3,800

-자생회복력, 1시간 동안 3배 효과.

-섭취한 복용자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

지혈제가 아닌 포션이다.

당장 과다 출혈부터 걱정해야 하는 판에 이런 포션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으나, 당장 차선책이 없는 이상 제일 밑에 쓰인 글귀에 기대를 걸 수밖에…….

콸콸,

쏟아붓는 포션과 함께 찬영이 구드의 어깨를 꽉 쥐었다.

“차라리 당신의 원한 만큼 더, 보란 듯이 살아남아요. 정작 당신을 상처 준 이들은 당신보다 더 평화롭게 살아갈 테니까. 정작 상처를 준 그들보다 아파하는 건…….”

고개를 든 구드의 시선을 마주 봤다.

이건, 진심이다.

“억울하잖아.”

말을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했다.

“피를 더 흘리기 전에 뭐든 해야…….”

그들이 뒷일도 생각 않고 벌인 건가 싶었을 때.

그라스가 말했다.

“피는 곧 멎을 것일세.”

“예?”

“우리 종족이 어떻게 대가 끊기지 않고 오랫동안 모진 세월을 버텨 왔을 거라 보나?”

그라스의 질문에 찬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럼?”

“우린 어떤 종족보다 회복력이 뛰어나네. 부위가 일부 잘려 나갔다고 하더라도 금방, 피가 멎고 자연스럽게 치유될 걸세.”

어쨌든 그의 회복력에 도움을 준 것이니 딱히 괜한 짓이라고 생각 되진 않았다. 다만 앞으로의 그가 걱정될 뿐이다.

“다행이군요. 하지만 이제…….”

“그래, 그는 이제 말하기가 힘들어지겠지. 물론 그 돌의 힘에 영향을 더 받지 않을지도 확신할 수 없고……. 그러나 우린 절대 구드를 포기 하지 않을 것일세.”

무릎 꿇은 그라스가 고개 숙인 구드의 어깨를 콱 잡았다.

그들의 동족이 아닌 찬영마저도 울컥, 코끝이 찡했다.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 것과 동시였다.

-태양의 명예는 여전하구나. 명예의 고귀함이 나를 부르고 있다. 사명이여, 우리를 그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해 다오.

그라스의 창이 빛난 건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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