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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90화 (190/248)

# 190

190화

* * *

-푸르륵.

출정한 지 이틀 째, 흑마가 투레질했다.

‘지쳐서 그런 건가?’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여태껏 잠도 안자고 녀석이 달려온 길은 짧지가 않았으니까.

찬영은 말을 툭툭 두드린 후 말에서 내렸다.

여기부터는 늪이다.

1백 명의 선발대는 현재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주위를 경계 중이고 말 또한 이제 함께 갈 수 없다.

문득 늪을 보고 있자니 이곳에 도착하기 전 홀랜드 경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이제 다 왔소. 여기 네 번째 장벽만 넘어서면 우리가 목표했던 해안가에 도달할 수 있소. 그러나 이제부터는 세밀한 계획이 필요할 것 같소.

-이유가 있습니까?

-다른 장벽이야 그 일대의 ‘위글’들이 앞잡이 노릇을 한 터라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그의 말대로 지금까지 건너온 아홉 번째, 여덟 번째, 여섯 번째 장벽은 침투하고 문을 확보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다.

마법사도, 뉴 빌드의 일원도 없었다.

그 대신 자리를 차지한 건 ‘위글’이었다.

위글은 전쟁 후 비어 있는 치안을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존재들을 뜻한다.

한마디로 허울 좋은 양아치다.

홀랜드 경에 의하면 ‘길드’ 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 자들로 혼란한 틈에 붙은 기생충 같은 존재라고 한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장벽은 그런 자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오.

-혹시 이곳에 오며 제가 들었던 자들 때문입니까?

-맞소. 인간을 증오하는 수인족들이 있지.

-수인족?

-그들에 대해선 처음 듣소?

-예.

-그들은 아주 오래 전의 시대엔 인간들과 화합하며 살았다고 하오. 다양한 수인족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인간보다 후대 양성이 느렸고, 그로 인한 문화의 격차가 심해지기 시작했지.

-그때부터 노예로 취급했군요.

-그렇소. 엘프와 드워프도 소수 종족이긴 하나 그들은 적어도 무리 수가 많았지.

-그에 반해 수인족은 정말 적은 숫자였나 봅니다.

-맞소. 그래서 인간들 중 사악한 자들은 그들을 도구로 봤고. 그런 시기를 지나오면서, 수인족 중 남은 종족은 그들 중 강성했던 묘족만 남게 됐지. 그러다가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됐소.

-묘족?

-평소에는 우리와 같이 이족 보행을 사용하나, 사족 보행도 가능한, 양손에 강한 발톱이 있는 초인적인 힘을 갖고 있으며 창술에 능한 종족이오. 특히 묘족 중에서도 레오라는 소수 종족이 마지막 뿌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결국 장벽을 지키고 있는 게 레오라는 이야기입니까?

-루아 장벽을 건너온 이들이 그렇다고 하더군. 나 역시 레오라는 존재들이 아직 남아 있었는지 몰랐으나, 악덕한 자들은 그들을 가둬 놓고 멋대로 이용하고 있었던 모양이오. 왕국에서 금지된 일을 한 것이지.

-하지만 오히려 뉴 빌드에서 그들을 풀어 줬군요.

-맞소. 인간을 끊임없이 증오하고 죽길 원하는 이종족이 원하는 게 무엇일 것 같소?

-멸망을 돕는 것.

-그렇소. 또 다른 이용이 시작된 것이지.

-그들을 생포하는 쪽을 택해야겠군요.

-가능하다면…….

그래서 택한 게 이 늪지대로의 이동이었다.

-네 번째 장벽의 일부는 장벽 대신 드넓은 늪지대가 장벽의 일부를 대신하고 있다오. 그 뒤엔 당연히 보초가 있고 마법으로 이뤄진 트랩들이 있겠지.

-병사들이 건너긴 쉽지 않겠군요.

-그렇소. 병사들이 어렵사리 건넜다고 해도 늪지대 안에 어떤 몬스터가 있을지는 알 수 없소.

-하지만 건너게 된다면?

-트랩까지 모두 피할 수만 있게 된다면 유혈 사태 없이 장벽 안으로 진입할 수 있을 거요. 늪지대를 단체로 건너는 거지.

-병사들을 이동시킨 다음 기습을 시작한다?

-바로 그거요. 그리 돼서 장벽 수복을 완료한다면 우리가 지나온 아홉 번째, 여덟 번째, 여섯 번째 장벽에서 우릴 도울 병사들이 재정비를 마치고 후발대와 합류할 거요.

-그다음 원군과 합류하는 계획이겠군요.

-가능할 거요. 어차피 장벽을 지키고 있는 주력은 레오족일 테니, 계획대로 기습이 이뤄져 레오족의 생포가 이뤄진다면……. 훨씬 쉽게 장벽을 수복할 수 있소.

-그렇군요. 그런데 레오족은 왜 굳이 떠나지 않고 장벽을 지키고 있는 걸까요. 아무리 인간을 증오한다고 해도……. 자신의 종족까지 멸망하는 상황을 돕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절망 때문 아니겠소?

-절망…….

-그들은 종족의 번영, 안위를 모두 포기하고 그저 죽음만을 원하게 된 게 아닌가 싶소. 모든 것의 죽음, 세상의 끝을 바라는 거지.

-아…….

찬영은 그 생각에 이르렀을 때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둘 순 없어!’

이제껏 자신의 욕심을 위해 뉴 빌드와 동조한 자들을 많이 보아 왔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억압당하고 억울한 존재들이 또 다시 이용되고 있었다.

그들의 절망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지금…….

무작정 싸우는 게 능사는 아닐 것 같다.

하지만 남은 시간은 고작 이틀도 안 된다.

‘앞으로 가야만 해.’

하루라도 빨리 해안가에 도착해야 하고 그러자면 네 번째 장벽을 넘어서야만 한다.

그러나 그들의 한을 풀어 줄 수 없다면…….

‘생포할 수밖에.’

이미 오랜 시간 증오를 키워 온 종족을 단 몇 마디로 해결할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왕국을 무너트리려는 뉴 빌드를 지켜 볼 생각도 없다.

지금 놓인 건 누군가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각자의 이해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콱!

찬영은 자신의 장비를 장착한 후 늪지대로 걸어 나갔다.

저벅저벅.

렌즈를 통해 늪지대에 몬스터가 있다는 걸 확인한 찬영은 아슬란을 늪가에 박아 넣은 후 조금씩 마나를 끌어올렸다.

웅, 웅.

아슬란이 범위를 넓히며 자신의 냉기를 늪지대에 퍼트렸다.

쩌저적!

늪지대에 있던 물들이 냉기에 반응하며 빠르게 하얀 아지랑이를 피우며 얼어붙어 가기 시작했다.

원하던 바다.

덕분에 마나가 많이 필요했지만 직접 늪지대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일 거다.

“……그렇지.”

늪지대 속에 숨어 있던 게 모습을 드러낸다.

스멀스멀 늪지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몬스터.

‘더 나와.’

놈들의 거처는 늪지대다.

늪 안에서의 싸움이 자신에게 불리한 게 당연하니 놈들의 거처부터 파괴하는 게 낫다.

-크르르르.

늪 안에 잠들어 있던 맹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츠츠츠.

달라진 온도를 느낀 듯 노란색 눈동자가 걸쭉한 늪을 벗어나 위로 드러났다.

하지만 한 개가 아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눈들이 보인다.

‘눈이 열 개가 넘어.’

찬영은 늪지대를 계속 주시했다.

‘V’자 형태의 머리를 가진 놈은 열 개의 눈이 달려 있었다. 그 괴물의 피부는 질긴 가죽처럼 보였고 돌기들이 돋아 있었는데, 그 색은 눈앞의 녹색의 늪을 닮았다.

‘악어가 따로 없군.’

하지만 머리에 이어 몸통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생각이 바뀌었다.

‘늪이 이렇게 깊었다고?’

2m쯤 예상했던 몸통이었는데, 늪에서 일으키는 몸통은 2m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아니, 계속 올라온다.

-LEADER 늪에 잠든 킹조

가치 : 14,300

‘이런.’

가벼운 상대가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 급의 대형 몬스터가 나올 줄은 몰랐다.

쿵!

얼음을 부수며 뚫고 나온 머리와 함께 통나무 열 개는 합쳐 놓은 크기의 두터운 다리가 땅을 짚었다.

그러자 지진이라도 난 것 같이 발아래가 흔들린다.

찬영은 놈을 올려다봤다.

이놈, 이무기가 따로 없다.

타타타탁.

달려온 홀랜드가 다가와 중얼거렸다.

“은밀히 잠입하긴 그른 것 같구려.”

“예, 제 생각에도…….”

찬영은 무려 7층 빌딩 높이나 되는 놈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물러나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돕겠소.”

“아뇨, 병력 보전이 우선입니다. 곧 소란을 느낀 레오족이 몰려올 겁니다. 그들을 상대해 주세요.”

어느새 나란히 선 프치키 부단장이 홀랜드 경 대신 대답했다.

“그러는 게 낫겠습니다. 후방에서 엄호 사격을 하는 걸로 하시죠.”

“그러시지요.”

둘은 시선을 교환한 뒤 찬영을 쳐다봤다.

“가능하겠소?”

찬영이 늪에서 아슬란을 꺼내면서 자신을 향하기 시작한 샛노란 눈동자를 노려봤다.

“아마도요.”

확신할 순 없으나 확실한 건 녀석을 넘어트려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거다.

“지금!”

찬영이 외친 순간.

웅!

아슬란의 모인 마나가 소드 마스터의 산물, 오라를 일으켰다.

쿠와아아아!

킹조가 울음을 터트렸다.

* * *

“꺄하하!”

어린 레오족 열 명의 아이들이 루아의 관청 훈련장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한때 인간들의 우두머리들이 살고 있던 이곳은 레오족의 터전이 되어 있다.

“태양의 아들, 그라스여.”

창문 너머 아이들을 내려다보던 레오족의 남자에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군, 형제여.”

얼굴을 뒤덮은 황금빛 갈기 사이로 얼굴의 왼쪽 절반이 검게 죽은 그라스가 말했다.

그는 모여 있는 일백 명 레오족의 우두머리였으며 뉴 빌드와 잠시 손을 잡은 이였다.

반대편에 선 구드는 그라스가 종족을 다시 모으는 데 앞장서 준 동족이었다.

인간에 의해 왼팔을 잃은 구드가 굵고 강한 어금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저를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일족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청했지. 자, 저길 보게.”

그라스가 구드와 어깨동무를 하면서 창문 너머를 가리켰다.

구드가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아름답군요.”

“그래, 그렇지. 나는 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네.”

“아직도 고민하십니까?”

“그렇다네, 그들은 멸망을 원한다고 했고, 우린 어차피 썩어 버린 인간계가 종말하길 원해. 그래서 그들의 뜻에 따랐고, 그들을 도왔지.”

“그라스여. 우리의 증오는 합당합니다.”

“그 증오가 저 아이들에게 향하고 있는데도?”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미래를 일찍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이라도 우리가 왕국의 왕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 어떠한가?”

“인간의 왕들은 우리의 존재를 까맣게 잊었습니다. 우리 같은 종족이 있었다는 것마저 잊었는데, 지금에 와서 우리의 손을 잡아 줄까요?”

그라스의 눈이 슬퍼졌다.

“저렇게 해맑게 웃는 아이들에게 미래를 선물해 줄 수 없다고?”

“마음을 단단히 하십시오. 그라스이시여.”

“무엇으로 말인가? 공허한 복수심은 내게 끝도 없는 절망만 속삭이고 있다네.”

“어디에도 우리가 살아남을 곳은 없습니다. 인간들이 멸망하지 않으면 그들 중에 누군가는 또 다시 우리를 사냥하려 들 것입니다. 미래를 확보할 수 없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말을 쉽게 잇지 못하는 구드에게 그라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음을 주자는 얘기로군.”

“아뇨, 죽음이 아닙니다. 깨끗한 영혼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우리 종족은 더 이상 더럽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네, 알지만……. 나 그라스는 자꾸만 미련이 남는다네.”

그의 시선은 끊임없이 웃고 있는 일족의 아이들에게 향해 있었다.

구드가 유일한 손으로 그라스의 어깨를 잡아 자신에게 돌려세웠다.

“태양의 아들이시여, 강건해지십시오. 아이들도 우리의 뜻을 이해할 것입니다.”

“그대는 미련이 없나?”

“있으나 스스로 잘라 버렸습니다. 단언컨대 제게 남은 미련을 다시 붙일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견고한 구드의 마음에는 팔을 자른 인간에 대한 원한이 가득했다.

팔을 자르며 벽에 걸겠다고 술에 취해 웃고 있던 자들.

너무 아파 겨우 기어가는 자신을 발로 밀며 술을 뿌리던 상인들의 모습을 구드는 잊을 수가 없었다.

뿌드득!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구드가 파르르 몸을 떨자 그라스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진정하게. 구드.”

“……예, 그라스여.”

그를 향해 고개 숙인 구드와 함께 그들을 돕는 동족, 라우켄이 황급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라스님! 서북쪽 늪지대에서 거대 몬스터가 출몰했다고 합니다.”

동족 중 가장 젊고 날렵한 라우켄이 왔다.

구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곳에 누가 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직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라우켄이 그라스에게 물었다.

“전투에 능한 형제들을 모으게. 직접 가지.”

그라스가 자신의 창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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