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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89화 (189/248)

# 189

189화

통신 직후 찬영은 공주를 찾았다.

“공주님, 모스 프레도란 이름을 아십니까?”

“모스 프레도?”

“예.”

“그를 어떻게?”

“그도 홉스의 일원이었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이에요. 홉스의 일원 중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니까요. 갑자기 그의 이름은 왜……?”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찬영은 자신이 본 것들을 핵심만 골라 일목요연하게 말해 줬다.

“이번에는 그의 영혼까지……?”

“네, 함께하게 됐습니다.”

“점점 진실에 더 가까워져 가겠군요.”

“예, 그럴 것 같습니다.”

“부디 그리 되길 여신께 청해야겠군요. 과거의 실패를 자양분 삼을 수 있다면 우리에게 두 번의 실패는 쉽게 오지 않을 테니까…….”

샤브레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엿보였다.

하긴, 멸망을 겪었던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두려울 테고 무기력하게 사라질 것이 싫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야.’

멸망을 겪지 않은 자신 역시 그러길 원치 않는다.

생각에 잠긴 사이 공주가 말했다.

“아무튼 그 이후의 상황은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군요.”

“그런 셈입니다.”

“음, 그럼 그가 무사히 탈출했다는 것도 모르나요?”

“탈출했습니까?”

“네, 그는 그 일 이후에 교황에게서 벗어나요. 폐하께서 비밀리에 용인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 후 누구도 그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죠. 교황마저도……. 물론 갓피스들이 차원 다리를 넘어가기 직전 성녀님과 함께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찬영은 그 얘길 듣고 나니, 얼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베아트리체가 움직였구나!’

모르긴 몰라도 성녀는 왕의 동의를 얻어 교황의 손아귀에서 모스를 구해 주었을 것이다.

그래, 그렇게 탈출에 성공해 갓피스로서의 삶을 선택했겠지.

찬영은 고개를 끄덕인 후 공주에게 물었다.

“그럼 그가 사라지기 직전까지 작성했던 남아 있는 기록 같은 건 없습니까?”

“글쎄요. 그 기록은 폐하께 직접 여쭈어봐야 할 것 같군요.”

“공주님께선 아시는 게 없었던 거군요.”

“예, 폐하께서는 많은 일들을 저와 상의하셨으나 그렇다고 전부를 알리진 않으셨지요. 왕이란 그런 자리이니까요.”

충분히 납득이 되는 이유였으나 그럼에도 찬영은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그녀라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기에 물어본 질문이었는데…….

“아쉽게 됐군요.”

찬영이 솔직히 토로했다.

그 순간 공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포기할 건 아니에요.”

“하지만 방금…….”

“아는 게 없다고 했지. 기록이 사라졌다고 이야기하진 않았어요. 왕가는 중요한 기록들을 안전한 곳에 보관해 둡니다. 언제 쓰일지 모르니까요.”

“그럼 기록이 있는 장소를 알고 계시다는 겁니까?”

“네, 왕가의 후손에게는 비밀 서고의 위치가 전해지죠. 그곳은 헤라클 왕가의 핏줄에게만 문을 연답니다.”

“그곳이 기록 보관소군요.”

“그래요.”

“하지만 그렇게 비밀스러운 장소를 제게 공개하셔도 되겠습니까?”

“교황을 쓰러트리기 위해 그게 필요하다면 언제든 개방할 수 있어요. 왕가가 흔들리는 어떤 선택이든 두 번째 멸망만 막을 수 있다면 만족해요. 그것이…….”

샤브레가 오른손 손목 아래 숨겨져 있던 열쇠 형태의 문신을 드러냈다.

“나, 왕의 문을 지키는 콰이렌스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콰이렌스?”

“대대로 콰이렌스를 임명하는 건 역대 왕이셨어요. 나는 43대 콰이렌스이며 왕의 문을 지키고 보존해 왔습니다. 멸망하기 전에도 수많은 기록들을 옮겨 놨죠. 교황의 조사 건에 관한 기록은 분명 그곳에 있을 거예요.”

“교황도 알고 있습니까?”

“우린 왕가입니다. 왕가는 비밀이 필요한 일이 많지요. 교황이 알지 못하는 비밀도…….”

교황이 모른다는 얘기였다.

‘이런 상황은 예상 못 했는데?’

그녀의 말대로라면 굳이, 모스의 과거 행적을 되짚어 볼 필요도 없다.

왕의 문에 봉해져 있는 기록들을 뒤져 교황 조사 건에 대한 기록을 찾으면 그만이다.

그러자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왕은 왜 그 기록들을 활용하지 않았지?’

만약 그 기록에서 교황이 뉴 빌드와 결탁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면 후크와의 협력 관계까지 모두 밝혀졌을 것이다.

찬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 기록이 있었다면 폐하께서는 어째서 그 기록을 활용하지 않으셨을까요?”

“교황과 추종자들을 한 번에 몰아넣을 때를 기다리셨을 수도 있겠지요. 혹은 별다른 증거가 없었을 수도 있었을 테고. 그런 면에서 보면 별 내용이 없는 기록일 가능성도 높아요.”

“살펴본 적이 없으십니까?”

“그래요. 난 기간에 따라 분류할 뿐, 내용을 살피는 건 폐하만이 가능하십니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찬영은 생각에 잠겼다.

그럴수록 공주의 추측이 모두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하긴, 교황은 거물이야. 쉽게 잡을 수 없었겠지. 달리 생각하면 별다른 증거가 없어서 그랬다는 것이기도 해.’

하지만 정황 증거든 뭐든 모스가 남겨 둔 기록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활용될지도 모른다.

‘일단 직접 살펴보고 판단하자.’

앞으로 상대할 적들 중 하나의 약점을 완벽히 틀어쥘 수 있다면 좀 더 효과적인 공격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그러니 반드시 왕의 문으로 가야 한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저는 그곳으로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모스가 사라지며 남긴 이야기가 마음에 걸린다.

-그가 지키려 했던 것을 찾아야 해.

‘모스는 분명히 교황이 지키려 했던 걸 알고 있었어.’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건 왕의 문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

찬영은 확신하며 공주의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그때 공주가 고개를 저었다.

“당장 열람할 순 없을 거예요.”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왕의 문은 이곳에 없으니까요.”

“다른 장벽에 있나 보군요.”

“그래요. 왕의 문은 두 번째 장벽, 폴리스에 있어요.”

찬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폴리스라면……!’

지금쯤 후크의 병력이 도처에 깔려 있고도 남을 것이다.

“이번에도 피해갈 순 없겠군요.”

피할 생각도 없었지만.

그 순간 그들이 앉아 있는 방문 밖으로 에머리 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주마마, 전군 출정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 * *

관청 밖으로 나서자 수백의 정예 병사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서둘러라!”

바짝 기세가 오른 프치키 부단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중무장한 오리엔트들이 그 외침에 부응했다.

쿵! 쿵!

하나둘 도열하기 시작한 병사들의 눈빛에는 죽음에서 살아 나온 강한 독기가 느껴졌다. 남은 원망과 분노의 목표는 오로지 이 모든 일을 벌인 원흉, 후크뿐이겠지.

‘……다 왔다.’

출정하기 직전이라는 게 피부에 와 닿았다.

“통신은 잘 마쳤습니까?”

그때 홀랜드 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잘 마쳤습니다.”

미소 지으며 다가온 그가 옆에 자리했다.

“마법진의 설계의 진행 상황은 어떻소?”

“몇 가지를 더 추가한 탓에 아무리 제이나 경이라고 해도 시간 안에 전달해 줄 수 있을 지 확신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가능해야 할 텐데.”

“예, 상황이 상황인지라 걱정이 됩니다만 그래도 해내리라 믿습니다.”

“견고한 신뢰라……. 보기 좋구려.”

“덕분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씀을?”

여유가 생긴 듯 이제 농담도 걸어오는 홀랜드였다.

그때 홀랜드가 옮겨지는 마나 탱크들을 보며 말했다.

“에머리 경에 의하면 클린트가 모아 둔 마나 탱크들이 대략 20만mp 정도 될 거라고 하더이다.”

20만mp라면 보통 D급 던전을 통째로 가져온 수준이다.

말이 D급 던전이지, 이만한 마나를 한 명의 몸에 담는다는 발상부터가 위험한 생각인 것이다.

“제이나 경에게 듣기로 그대의 흡수율은…….”

“예, 이미 들으셨다시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재 본 게 90%였습니다.”

“더 높아졌을 수도 있겠군. 그렇지 않소?”

“예,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찬영은 그동안의 성장을 떠올렸다.

마나량이 늘어나는 만큼 마나를 다루는 수준은 이전과 비교할 수가 없는 정도다.

오히려 친숙하면 더 친숙해졌다.

마법, 인챈트, 거기에 더해 열세 번째 별들의 유산까지…….

‘100%까진 무리여도 대부분의 마나를 받아들여 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엑스’가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확신할 순 없지만.’

생각에 잠긴 사이, 홀랜드가 말했다.

“이럴 때 상아탑의 마법사들이 남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오늘따라 그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군.”

찬영은 그 얘기에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로일, 베이콥 영주들이 공주와 연결됐을 때 그곳에 대한 언급을 들었고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알게 됐다.

이름하여 노블로스.

제2 장벽에 세워진 총 53층의 탑은 일명 상아탑이라 불리며 마법 총본산이었다고 한다.

높은 학구열을 가지고 끊임없이 연구하는 고위 마법사들의 둥지이며, 3년마다 초청된 수많은 마법사들과 진행되는 노블로스 주관 마법 학회로 명성이 드높은 곳.

제이나를 통해서도 들은 바가 있을 만큼, 왕국을 지탱하는 한 기둥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그곳에 테러가 발생했을 줄이야.’

멸망 직전, 혼란스러운 시기에 벌어진 정밀한 테러여서 누구도 대처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공주에 의하면 탑은 삼십층까지 불이 번지며 와르르 무너졌고, 잠들어 있던 연구실의 마법사들이 대부분 전멸했다고 들었다.

‘로레인의 마을에서 조우했던 상황을 비추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지.’

탑뿐만 아니라 그 일대 주변이 모조리 폭발에 휩쓸렸다고 하는 걸 들어보면…….

‘동일했던 폭발이었을 것이다.’

다만 막았느냐, 못 막았느냐의 차이일 뿐.

하지만 그 차이로 인해 가져온 결과는 수많은 백성과 마법사 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마법사들은 페하 곁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몇 마디 위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으나 한마디쯤은 홀랜드 경의 상실감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이미, 형을 잃은 그니까.

“따뜻하구려. 무척이나…….”

홀랜드가 쓰게 미소 지었다.

“조금이나마 그럴 수 있었다면 다행입니다.”

찬영이 길을 열었다.

“가시지요.”

그사이 재정비된 병력 도열이 끝나고 기마들과 보급 마차가 줄지어 멈춰 섰고, 에머리 경을 필두로 프치키 경이 이동하는 중이었다.

함께 걸음을 옮기던 홀랜드가 갑자기 어깨를 툭툭 쳤다.

“저길 보시오.”

고개를 돌리자 병사들 너머 관청 바깥으로 빼곡히 모인 인파가 보였다.

자유를 되찾은 열 번째 장벽의 백성들이었다.

그들 중 누군가 소리쳤다.

“왕국이여. 영원하라!”

“영원하라!”

그러자 관도 옆에 난 집들의 지붕 곳곳에 왕국의 깃발을 흔드는 백성들까지 보였다.

몇몇은 이렇게 소리쳤다.

“여신께서는 우리들을 버리지 않으셨어!”

“갓피스! 승리하고 돌아와요!”

찬영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함성을 들으며 홀랜드를 쳐다봤다.

홀랜드가 씩 웃었다.

“단언컨대, 백성들은 당신에게 기대고 있소.”

찬영은 솜털이 쭈뼛 곤두섰다.

수도의 운명이 우리에게 걸려 있다는 게 느껴진다…….

‘반드시 사흘 안에 해안가를 접수해야 해.’

출정이다.

* * *

잠시 후 샤브레 공주를 필두로 부대는 빠르게 전진했다.

찬영은 말고삐를 쥔 채 자신의 곁에 달리는 인원을 살폈다.

부대는 두 개다.

하나는 선봉대이며 다른 하나는 보급과 지원을 맡은 후발대다.

선봉대의 역할은 당연히 장벽 침투다.

인원은 1백 명.

스무 명씩 다섯 개 대대로 나눴다.

에머리 경은 공주님과 함께 후발대에 있기로 했고, 프치키 부단장과 홀랜드 경이 함께 움직였다.

이제부터 한 몸처럼 움직일 사람들이다.

‘잠도 안 자고 말이지.’

전략이 속도전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이니 그건 당연했다.

이들의 목적은 하나다.

클린트처럼 권력을 위해 각 장벽을 지키고 있을 후크의 앞잡이, 혹은 지역의 반란 무리에게 갇혀 있는 병사를 풀어 주는 것이다.

물론 남아서 주둔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당장은 그럴 새가 없었다.

그들을 자유롭게 풀어 주고 나면 도처에서 칼룬 백작을 적으로 둔 저항군이 일어나기 시작할 테고, 이들은 해안가로 가야 한다.

찬영은 그 최전방에서 달리고 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상륙 작전이 시작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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