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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88화 (188/248)

# 188

188화

* * *

어둠이 감각을 집어삼킨 지 얼마 되지 않아 찬영은 다시 눈을 떴다.

시야에 맨 처음 들어온 건 처음 눈을 감은 훈련장 풍경 그대로였다.

다만 노을이 진 것으로 보아 시간이 두어 시간 흐른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여전하구나.’

한계치까지 힘을 쏟은 것처럼 기력이 없었다.

소진된 체력을 느끼며 벌러덩 뒤로 누운 찬영은 붉은빛 하늘을 보며 방금 전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교황, 모스, 성녀의 이야기를 넘어서서 교황의 약점과 그의 기억 일부까지…….

‘교황이 지키려고 했던 것이 뭐였을까?’

모스는 분명히 교황의 약점이 그것을 통해서라고 말하려고 했다.

아쉽게 듣지는 못했으나 추측해 볼 수 있는 게 있었다.

‘교황과 성녀는 서로 가는 길이 달랐어. 그건 교황이 자신이 지키려던 것을 손에서 놓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시작된 거겠지.’

정황상 그렇다.

교황은 스스로를 위해 편을 달리 선택했다.

그때부터 성녀와 길이 달라진 거다.

‘그럼 교황의 약점을 찾으려면 그의 지난 행적을 통해 그가 지키려던 게 뭐였는지를 찾아야 하는 건가?’

메테우스가 누군지, 홉스들이 왜 멸망 직전 전부 사라졌는지 밝혀내지 못했는데 의문 하나가 더 생겼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서로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전부 엮여 있어.’

한 가지 진실을 풀면 다른 진실이 보일 거다.

‘교황은 실타래야.’

찬영은 확신하며 모스의 기억을 정리했다.

교황의 약점을 알게 되진 못했지만 그가 자신의 것을 지키고자 편을 달리 했다는 정보는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모스란 이름을 알 수 있었던 게 수확이다.

‘총 추기경인 공주는 모스를 알지도 몰라. 그렇다면 그가 홉스에 속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홉스의 이동 경로나 그들의 목적 등을 알지는 못해도 모스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모스의 흔적을 찾다 보면 교황과 관련된 게 나올지도…….’

그건 공주와의 대화 이후 차차 알게 될 일.

찬영은 눈을 들었다.

노을빛 하늘 한가운데에 수많은 창이 겹쳐져 있었다.

‘이것부터.’

찬영의 눈이 이동하자 창이 더 확대됐다.

-교단의 불경한 자, 모스 프레도의 영혼 교류로 인해 모스 프레도의 영혼 15.2% 가 당신의 그릇 안에서 눈을 떴습니다. 그로 인해 모스 프레도의 유니언Union이 각인되었습니다.

다음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스 프레도와 라인쉐리어 간의 인연을 성립시킬 수 있습니다.

-베아트리체와 모스 프레도 간의 인연을 성립시킬 수 있습니다.

-인연 성립이 중복될 경우 하나의 인연만을 선택해야 합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주세요.

예상은 했으나 또 다시 인연 성립의 택일이 필요해졌다.

‘중요한 순간이다.’

하지만 찬영은 긴 고민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숨겨진 기억 조각이 나온다고 해도 그건 인연 성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베오 루퍼 카드만 되짚어 봐도 인연 성립과 숨겨진 기억 조각은 연계된 게 아니야. 기억 조각은 무작위 혹은 현재 개봉된 카드와 관련되어서 나오는 거야.’

그러니 인연 성립은 이번에도 베아트리체다.

늘 베아트리체와의 대화가 필요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영혼을 채우면 채울수록 언젠가 그녀와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거다.’

그녀는 모든 사건의 중심이자 열쇠이니까.

-베아트리체와 모스 프레도의 인연 성립으로 인해 숨겨진 기억 조각 (2)가 흡수되었습니다. 기억 조각 (2)로 인해 두 사람 사이의 연관 기억을 일부 볼 수 있습니다.

그 창이 나타나자마자 또 다시 손 끝에 전류가 흐르는 게 느껴지며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손등 안을 파고들었다. 그러자마자 연관 창이 연달아 나타났다.

띵! 띵!

-베아트리체와의 인연 성립으로 인해 모스 프레도의 영혼이 7% 상승하였습니다.

-모스 프레도와의 인연 성립으로 인해 베아트리체의 영혼이 7% 상승하였습니다.

모스를 통한 인연 성립이 가져온 결과는 베아트리체 영혼을 이제 40% 가까이 끌어올렸다.

‘굉장해.’

하지만 찾아온 변화는 만족해할 틈을 주지 않았다.

‘다시 바뀐다.’

그 대신 시야가 흐려지며 그들의 기억이 영화처럼 보였다.

주인공은 베아트리체와 모스 프레도였다.

* * *

활짝 열려 있는 창가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한동안의 정적이 흐른 뒤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

“제가 교황님의 순례에 오르지 않을 줄 예상하셨단 말씀이십니까?”

찬영은 모스의 질문을 통해 이 상황이 교황이 순례에 오른 후의 상황이라는 걸 눈치챘다.

지금쯤 교황은 자리를 비웠을 거다.

그 순간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미래를 예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여신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 추론할 뿐이지요.”

“그 신탁에 제가 포함되었군요.”

“예, 추기경께서 절 찾아오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모스가 한참 입술을 꾹 다물고 있다가 품속에서 뭔가를 내놓았다.

지켜보던 찬영도 긴장했다.

‘저건 뭐지?’

그 생각이 들 무렵 모스가 말했다.

“그간 교황께서 저를 통해 전해 오신 신탁 기록입니다. 손수 적은 기록들이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신탁이 전과 다릅니다. ‘교황에 충성하는 신도를 늘려라.’, ‘교황을 위한 기도 주기를 늘려라.’ 등 강압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군요.”

“제게 교황님을 조사할 권한을 주십시오.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맡고 싶습니다.”

“폐하께 논의 드리겠습니다.”

* * *

성녀의 대답과 함께 필름이 툭 끊긴 것처럼 그들의 동작이 멈추고 찬영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쉽다.’

짧은 기억 재생이긴 했다.

하지만 대략 모스의 당시 심경과 베아트리체의 다음 행보 정도는 알 수 있었으니 어느 정도 원했던 성과는 달성한 셈이다.

그리고 이제 사건 흐름들이 점점 더 명확해진다.

‘베아트리체는 이 일이 벌어진 이후 왕과 상의했고 본격적으로 교황의 대척점에 서게 돼. 이때가 진정한 홉스 창설의 시작점이겠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찬영은 이번 기억 조각으로 인해 공주와 나눈 이야기들이 좀 더 세밀하게 자리 잡아가는 걸 느꼈다.

‘어쨌든 모스에 대해 공주님과 얘기를 나눠야 하는 건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숙제야.’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후 모스가 교황을 조사했다면 그것에 대한 기록 정도야 공주님도 아시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숙제가 더 늘어난 셈이다.

‘맞아. 공주님과의 대화를 발판으로 모스가 남긴 흔적을 이 잡듯 뒤지는 거다. 그럼 교황이 지키려던 게 뭔지 알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교황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될 거다.

‘좋아, 그건 그렇고.’

찬영은 생각이 정리됨과 함께 자연스레 떠 있는 베아트리체와 모스 프레도의 창을 응시했다.

-알폰의 성녀 베아트리체

-중화中和

-가치 : 3,800

-베아트리체와의 영혼 교류로 인해 중독 시 자생 해독력이 220% 상승합니다.

-지혈止血

-가치 : 1,480

-출혈 시 자생 회복력이 50% 상승합니다.

‘40%가 머지않았구나.’

진실을 향해 가다 보니 어느새 베아트리체의 영혼은 절반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 조금만 있으면 50%에 이르게 될 거다.

괄목할 만한 성과다.

중화, 지혈 모두 성장한 덕분에 자연히 가치가 상승했다.

이런 속도라면.

‘어쩌면 손꼽았던 그녀와의 대화가 조만간 이뤄질지도…….’

오랫동안 기다려 온 그녀와의 긴 대화, 그것만 할 수 있다면 모든 의문이 단숨에 풀릴 거다.

‘조금만 더.’

찬영은 베아트리체 창을 넘기며 머지않을 미래를 고대했다.

* * *

다음은 유니언이었다.

최초 영혼 수치 15.2%에 7%가 더해져 총 영혼 22.2%의 수치를 가진 능력이다.

강력한 일격의 느낌은 아니었다.

-교단의 불경한 자, 모스 프레도

-유니언Union

-가치 : 2,900

-모스 프레도의 영혼 교류로 인해 신성력 3,000 소모 시 1개 영혼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단, 1초당 신성력 1 소모)

-소유자가 신성력 1만을 넘을 경우 2개 영혼 통제 가능 (단, 통제하는 물체의 가치가 신성력 가치 이하여야 함)

‘하지만 신성력의 성장에 따라 엄청난 성장을 가져올 능력이야.’

일격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강력하고 거대한 몬스터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적에게는 골치 아픈 일이 되겠지.’

찬영은 자연히 머릿속에 각인된 유니언의 능력을 떠올렸다.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적진을 코앞에 둔 지금, 정찰용으로도 쓸 수 있을 거다.

‘……확실히 카드 하나하나가 가진 능력은 놀라울 만큼 경이로워.’

베아트리체, 루퍼, 라인쉐리어, 그리고 모스 프레도까지.

이들 중 경이로운 능력이 아닌 게 없다.

찬영은 이번 보상에 흡족함을 느끼며 앞으로 다가올 카드들이 기대됐다.

단순히 캘린더 보상을 통해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게 증명됐으니…….

카드 개봉은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나올 게 분명하다.

‘이것 역시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자연히 늘어나겠지.’

이어진 생각과 함께 찬영은 흠뻑 젖은 옷을 내려다봤다.

카드 개봉은 늘 땀이 흠뻑 젖을 만큼의 기력 소모를 가져온다.

보통은 조금 쉬며 한숨 돌렸겠지만 지금은 괜찮다.

‘소진된 만큼 회복해 주면 되겠지.’

꿀꺽, 꿀꺽.

가지고 있던 포션 중 1개를 곧이어 개봉했다.

-우로드의 활력제

-가치 : 3,800

-체력 자생 회복력 100% 증가

-복용할 경우 활력이 넘치게 된다.

이거라면 이동하는 시간 동안 소진된 체력이야 금세 회복될 테니 걱정할 일 없다.

‘못 다한 재정비는 이쯤이면 됐고.’

그 후 찬영은 D-day까지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6급 보석의 장착과 제이나가 건네줄 공성 마법진의 설계를 익히는 것, 그리고…….’

한시라도 더 많은 양의 마나를 끌어 모으는 거다.

찬영은 심호흡을 다스리며 심법들을 준비했다.

당연히 푸른 보주와 아슬란을 대동한 채였다.

* * *

“경이롭군요. 갓피스를 멀찍이 조우해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저런 능력을 갖춘 이는 처음 봅니다.”

훈련장이 멀리 보이는 창가 앞엔 어느 정도 회복이 된 홀랜드와 공주가 함께 서 있었다.

“나 또한 그렇답니다. 이번 일도 그가 아니라면 계획 자체가 불가능했던 일이지요.”

“그렇군요……. 하온데 마마.”

조용히 눈을 돌린 샤브레에게 홀랜드가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마마께서 갓피스이셨다면 어째서 성녀님께서는 마마께서 갓피스이셨다는 걸 모르셨을까요? 소신은 그것이 의아합니다.”

“글쎄요. 어쩌면…….”

공주의 시선은 훈련장에 있는 찬영을 향해 있었다.

“모두가 그를 기다려 온 게 아닐까요?”

듣기에 따라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으나 공주의 눈빛은 홀랜드가 쉽게 흘려버릴 수 없을 만큼 깊고 무거웠다.

‘정말일까?’

찬영을 함께 관찰하는 홀랜드의 눈에 의심과 기대가 뒤섞였다.

하지만 그 의심 속에서 홀랜드도 한 가지는 명확히 알고 있었다.

마나 탱크를 활용한 이런 무지막지한 마법진을 기꺼이 사용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이는 흔치 않다.

* * *

-정말 가능하겠어요? 이론상으로는 얼추 가능할 것 같긴 하지만 확신할 수 없어요. 제가 직접 그 아티팩트들을 전부 확인할 수 없으니까요. 시간도 모자라고…….

출정하기 직전 통신 마법구를 통해 제이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회성 아이템들을 마법진 위에 중첩해서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힌 찬영 덕분이다.

“하지만 해 봐야죠.”

어차피 위험이야 이번 계획에 산재해 있다. 위험 하나를 더 얹는다고 달라질 건 없다.

-그럼 할 수 있는 한 어떤 변수에도 안정적으로 마법을 할현할 수 있도록 마법진의 안정화를 노력해 볼게요. 그게 제가 도울 수 있는 최선이에요.

“고마워요.”

대답 후 찬영은 침묵을 지켰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앞으로 완성 될 마법진에 관해 상의할 게 있다고 하며 홀로 통신 마법구를 사용한 덕분이다.

마침 제이나도 언제든 연락을 취하기 위해 통신 마법구를 독점하고 있었다.

-알겠어요.

“네.”

-……끝인가요?

그럴 리가 단순히 마법진에 관해서만 얘기하려고 이런 기회를 만든 게 아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 하지?’

온갖 말들이 떠올랐지만 무슨 말을 해도 그녀에게 했던 행동에 대한 사과를 전부 채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하는 동안 정적이 흘렀고 제이나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잠시 내려놓으며 물었다.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마음이 바뀐 이유가 있나요?

갑작스럽긴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에 오히려 그 질문이 고마웠다.

“네.”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찬영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제 선택이 가져올 여파들을 끊임없이 떠올려 봤고 시작부터 끝까지 당신 생각이 났어요. 당신이 다칠까 봐 두려워 선택했던 일이…….”

말을 잇던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당신을 더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럼 됐어요.

“예?”

이렇게 간단히 그녀가 풀릴 줄 몰랐던 찬영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돌아왔다는 걸 알아요.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아니니까……. 당신이 얼마나 많이 아프고 고민했을 줄 아니까.

제이나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글썽이는 눈물을 감추려 고개를 돌린 그녀에게 찬영은 쓴 미소를 머금었다.

이 여자, 지난 순간에도 내 생각밖에 안했던 거구나.

나만 생각한 건 나밖에 없었어.

이제는 그 믿음에 보답해야 한다.

찬영은 그녀를 그윽한 눈길로 응시하며 말했다.

“이번 일 반드시 성공시킬게요. 어서 제이나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래요.

부끄러웠는지 귀가 벌게진 제이나를 보며 찬영은 비로소 환히 웃었다.

출정 직전에 얻은 가장 큰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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