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
186화
* * *
두 영주는 공주와 함께 합류할 날짜를 정했다. 한시라도 서두르겠다는 의지였다.
그렇게 작전의 세부적인 계획이 수립된 뒤에야 통신 마법구도 꺼졌다.
정해진 D-Day는 나흘 뒤였다.
해로 덕분에 지상으로 올 때보다 시간이 단축된 것이다.
그로 인해 그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루아의 해안가를 확보해야 할 공주 사단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가 다음 장벽에서 벌어질 전투를 준비하며 서두르고 있을 때, 찬영은 관청에 붙어 있는 병사 훈련장에 조용히 앉은 채 에머리 경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중이었다.
-정확히 다섯 시간 후에 출발할 예정이에요.
‘여길 떠나서부터는 더욱 재정비할 시간을 내기 힘들어.’
당연히 장벽들을 넘어선 후엔 숨 고를 여유도 없이 합류 할 병력들을 맞이해야 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전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전부 쏟아 붓는다.’
찬영은 인벤토리부터 확인했다.
‘예상은 했지만 많이 쌓였어.’
인벤토리에 있는 걸 다 쏟아 내고 난 뒤에도 쌓여 있던 아이템은 끊임없이 바깥으로 계속 나왔다.
무려 삼백이십 개다.
쓸모 있는 일회성 포션 종류 열 개와 일회성 아이템 다섯 개 그리고 6급 보석 한 개를 빼놓았다. 이중 민첩성 상승 포션 다섯 개와 세 개의 체력 포션은 보자마자 흡수했다.
맛은 씁쓸했지만 결과는 좋았다.
“……꽤나 올랐어.”
체력 수치는 15나 상승했고 민첩성도 9 정도가 올랐다.
A에는 모자라나 민첩성은 1,430(B)를 달성, 체력은 이제까지의 꾸준한 성장과 아울러 1,820(B)까지 상승했다.
‘이제 대부분 B에 도달해 가는구나. 손재주도 많이 상승했어.’
검술 훈련, 그림 등 손으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의 경험이 늘 때마다 손재주는 자동적으로 동시 성장을 이뤄 냈다.
아직 C이긴 하지만 수치상 곧 B 등급이 될 것 같다. 곧 모든 데이터가 A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기대되는데?’
스텟의 A등급화는 많은 의미를 가진다, 자신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의미가 첫 번째, 오랜 시간이 걸린 히든 퀘스트 한 개의 종결이 두 번째.
‘퀘스트 종결은 곧 보상 획득을 뜻하지.’
단 한 개지만 이제껏 손에 쥐어 보지 못한 보상인 다이아 등급 이상의 박스다.
‘그때가 되어 봐야 그 박스에서 뭐가 나올지 알겠지만 말이야.’
생각만으로 잠시 흐뭇했던 찬영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사실 무엇이 나오든 간에 그걸 쓰는 건 자신이다.
‘지금처럼 꾸준히 나아가야 해.’
스텟뿐 아니라 스스로를 끊임없이 수양해야 한다. 뛰어난 무기일수록 사용자가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걸 아슬란을 통해 배워 뒀으니까.
‘안 그래?’
찬영은 밖에 꺼내 둔 아슬란을 손끝으로 쓸어내린 후 다른 아이템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은 이백구십육 개의 아이템이 보인다.
하지만 딱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뭘 해야 할진 정확히 알고 있다.
‘내겐 마나량의 증가가 필요해.’
목적은 확실했다. 다만 방법이 문제다.
‘세 가지 중 하나야. 합성이냐, 재료들이냐.’
눈을 감고 생각하던 찬영이 조용히 턱을 매만졌다.
‘영약은 재료가 있다고 해도 도안서가 필요해. 그렇다고 마나량과 관련된 게 나올지도 확신할 수 없지.’
찬영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럼 보석은?’
스스로에게 물은 질문에 찬영은 다시 답하며 생각의 생각을 이어 나갔다.
‘아니, 큰 차이는 없을 거야.’
그도 그럴 게 현재 남은 건 이백구십육 개의 아이템이다.
이를 미완성 정수로 분해해서 보석으로 제작한다면?
‘10급 보석 백 개 안쪽이겠지.’
다시 말해 9급 보석 세 개 정도가 최대치라는 얘기다.
물론 나온 9급 보석이 전부 마나량 증가와 관련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무척 낮아.’
그런 면에서 보면 광범위하지만 상세 데이터 수치를 상승시키는 포션이 나올 수도 있는 합성에 기대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래, 여러모로 그게 낫겠어.’
혹시나 1회성 아이템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만 있다면 남는 장사다.
보상이 극소량이나 안정성 있는 게임과 랜덤이지만 꽝이 없고 대박이 가능한 랜덤 게임이라면…….
‘어느 정도 운에 걸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찬영은 빌이 빚은 항아리를 꺼냈다.
항아리에 들어갈 수 있는 건 3,999 이하의 아이템.
찬영은 그 이상의 가치 측정이 된 아이템을 배제시키고 합성 가능한 아이템부터 다뤘다.
이어진 합성 순서는 이전과 동일했다.
‘대체적인 아이템의 가치가 평균적으로 높은 수치를 유지할 수 있게 하려면…….’
높은 수치인 3,900대의 아이템과 가장 낮은 가치의 아이템을 합성시키고 다음은 두 번째 높은 가치 아이템과 그다음 수준의 최하 아이템을 넣어야 한다.
툭, 툭.
다섯 개의 아이템이 하나둘씩 항아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나씩 빛을 일으키며 여러 아이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합성이 완료되었습니다.
-합성이 완료되었습니다.
…….
‘부디…….’
찬영은 원하는 종류가 나오기를 바랐다.
상세 데이터를 상승시키는 포션이라든지 혹은 높은 등급의 보석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그것도 아니면 일회성 장비라도 나와라 하고…….
하지만 쉽게 되는 건 없었다.
‘옵션이 약해.’
나온 아이템을 살핀 찬영의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그다음도 그랬다.
-합성이 완료되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장비와 맞물려 쓰기 힘들어. 이것도 빼고…….’
-합성이 완료되었습니다.
하나둘 아이템들의 합성이 끝날 때마다 찬영의 표정은 담담했으나 기쁜 기색이 스쳐 가진 않았다.
이후 서른 개 정도의 합성이 끝났을 때 찬영은 나온 아이템을 돌아봤다.
‘전부 무기만 나올 줄이야…….’
2천에서 5천 사이의 무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쓸 만한 건 단 한 개도 없었다.
현재 가진 장비들보다 옵션 면에서 뛰어난 것들도 없었고, 설사 갖고 있는 장비보다 가치가 높다 해도 효용 면에서 쓸모가 없는 게 대부분이었다.
‘예상치 못한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하나, 마나량의 증가가 필요한 마당에 썩 좋은 아이템이 나오지 않자 꽤나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시작한 이상 끝까지 가 보는 수밖에…….’
합성 레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아이템도 남아 있었다. 기대를 저버리기엔 일렀다.
-합성이 완료되었습니다.
‘흐음, 이번에도 무기라고?’
부메랑 같은 무기가 나왔으나 너무 크고 가지고 다니기 불편했다.
더구나 한 번 던질 때마다 체력 소모가 클 뿐만 아니라 아쿤다의 표창처럼 리턴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가동 범위가 한계가 있어.’
찬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후 그 아이템을 뒤로 놔뒀다. 그렇게 다음 그다음 합성으로 이어갔다.
-합성이 완료되었습니다.
그 후 마지막 창이 나타났다. 4천 이하의 백이십오 개 아이템을 다섯 개씩 합성시켰고 이 중 가치가 4,000대를 넘기지 못한 아이템이 총 열 개 남았다. 나머지는 4천대를 넘겨 다시 재합성할 수 없다.
1회는 이미 돌린 상황, 마나량과 관련된 옵션이 붙은 장비가 나올 기회는 이제 한 번뿐이었다.
‘남은 백칠십일 개의 아이템도 합성시킬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괜한 아쉬움이 남지만 다른 도리가 없다. 4천대 이상의 아이템을 합성하려면 그에 맞는 제작 도구와 이를 완성시킬 재료가 필요하다.
‘저것들은 전부 분해로 향할 수밖에 없겠어.’
합성이 불가능하다면 남은 아이템이라도 분해시켜 보석을 제작하는 편이 낫다.
‘그 전의 마지막 합성이다.’
찬영은 남은 다섯 개의 아이템을 하나씩 항아리에 떨어트렸다.
번쩍번쩍!
아이템이 항아리에 들어가며 빛이 날 때마다 마나량과 관련된 아이템이 나오길 바라며 숨죽였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렸던 창이 나타났다.
-합성이 완료되었습니다.
‘됐어!’
찬영은 묘한 기대감을 느끼며 항아리에서 솟아오른 장비를 빠르게 집어 들어 살폈다.
그 순간 창 하나가 나타났다.
-소닉 블레이드
-가치 : 4,530
-효과 A : 충돌 시 고주파 발생.
-효과 B : 고주파 발생 시……….
쓸모는 있어 보이지만 아슬란을 뛰어넘을 주력 무기로 사용하긴 힘들어 보인다. 가치 면에서도 효용성 면에서도 아슬란이 압도적이다.
‘……실패인가?’
결과적으로 보면 그랬다. 어느 때보다 마나량을 한계치 이상까지 상승시켜야 하는 현재 상황에서 돌아봤을 때 무척 아쉬운 결과다.
‘하지만 받아들여야겠지.’
찬영은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남은 아이템을 분해하려 했다.
다음 순간 나타난 창을 보기 전까지는.
-손재주가 B가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시도하는 자의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업적 달성 보상으로 인해 빌과 오렌의 협력 제작 도구를 획득하였습니다. 욕망의 합성기를 획득하였습니다.
-욕망의 합성기
-가치 : 10,000
-설명 : 제작 도구로 쓰입니다.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동안 작게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욕망의 합성기를 바라보던 찬영이 서서히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아직 안 끝났어!’
찬영의 시선이 가치가 높아 건드리지 못했던 남은 아이템을 향했다. 끝내긴 무슨, 합성 레이스는 이제 시작이었다.
* * *
-합성이 완료되었습니다.
-합성이 완료되었습니다.
-합성이 완료되었습니다.
…….
새로운 제작 도구는 여태껏 획득했던 제작 도구와 사용법은 동일했으나, 최대 합성 개수가 두 개 더 늘었다.
하지만 도구가 가진 수치가 높은 덕분에 합성 아이템의 평균은 기존보다 100% 이상 상승했다.
‘예상 이상의 성과야.’
맞다. 이미 4천대 이상의 합성이 가능한 제작 도구가 나온 것부터가 예상을 깬 결과물이었다.
‘마나량 관련 아이템이 나온 게 오히려 부차적인 부산물이라고 느껴질 정도니까.’
찬영은 씩 웃으며 늘어나기 시작한 마나를 몸소 느꼈다.
이번에 나온 아이템 중 마나량 상승 관련 아이템은 대부분 1회성 소모성 아이템이지만 영구적인 효과가 있는 약초나 포션 등이 일곱 개 정도에 이르러서 마나량이 2,114mp가 상승했다.
하지만 진짜 성과는 따로 있었다.
‘보고도 믿기질 않네. 세트 아이템이라니…….’
찬영은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이제 키란의 반지가 착용되어 있는 오른손에, 검은색 보석이 붙어 있는 금테 반지가 오른손 중지와 약지에 나란히 착용되어 있다.
-첫 번째 조셉 링
-가치 : 8,300
-효과 A : 착용 시 마나량 20% 영구 증가(두 번째 조셉링과 중복 가능]
-효과 B : 두 번째 조셉 링을 동시 착용 시 마나량 추가 5% 영구 증가(중복 가능)
-두 번째 조셉 링
-가치 : 8,300
-효과 A : 착용 시 마나량 20% 영구 증가(첫 번째 조셉링과 중복 가능)
-효과 B : 첫 번째 조셉 링을 동시 착용 시 마나량 추가 5% 영구 증가(중복 가능)
그렇게 늘어난 마나량은 50% 상승을 가져온다. 상승한 마나량에 추가로 50% 상승까지…….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찬영은 오른손을 내리며 눈을 빛냈다.
선택한 합성도 만족 이상의 대성공을 거뒀고 남은 아이템은 전부 보석 재활용으로 택해 소량의 미완성 정수를 획득했다.
박스야 어차피 박스 조합으로 소비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잠시 묵혀 둘 것이고, 그럼 남은 건…….
‘소울 카드.’
4차 캘린더가 열리지도 않은 상황에 얻게 된 보상이다. 어떤 전대 갓피스가 모습을 드러낼지는 모르나 적어도 추측되는 바는 있었다.
‘홉스의 인물이겠지.’
하지만 그 이상은 알고 싶어도 알 수 있는 게 없다.
하물며 공주도, 왕국의 왕도 그들에 대해 모른다고 하질 않나?
그러니 베아트리체와 홉스의 조직원들이 없는 이상 이 세상에서 홉스에 대해 자세히 알려 줄 수 있는 힌트는 단 한곳밖에 없다.
‘여기.’
찬영은 자신의 눈앞에 떠 있는 창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번엔 어떤 진실이 기다릴까?
혹시 베아트리체와 이야기를 나눴던 메테우스란 자가 나오는 건 아닐까?
수많은 생각들이 찬영의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고민은 고민에서 끝날 뿐,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긴 나 혼자 생각하는 게 뭐가 의미 있겠어? 어차피 모든 답은 여기 있을 텐데.’
-촤르륵.
그다음 순간 오랫동안 다양한 색의 카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