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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82화 (182/248)

# 182

182화

처음 보인 건 날뛰던 배관들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는 거다.

검은 배관들은 모조리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통했어.’

언덕처럼 솟은 채 굳어 버린 배관 위에서 찬영이 걸음을 옮겼다.

완드를 꺼낸 건 어느 정도 실패할 확률이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최상의 선택이었다.

그도 그럴 게 골렘을 손상 없이 연구할 수 있게 된다면 이들이 어떻게 차원의 돌을 활용하고 있는지 더 면밀히 알게 되고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일전에 차원의 돌, 폭발을 막기 위해 역행의 시계를 사용하려 했던 그날.

차원의 돌을 흡수하기 위해 일체화되어 있던 상황에선 시계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질 않나?

‘하지만 그땐 특수한 상황이었으니까.’

이번엔 다를 거라는 판단이 섰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도 있었기에 이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그리고 그게 제대로 먹혀들었고…….

저벅.

찬영이 걸음을 멈췄다. 앞에 돌처럼 굳어 버린 골렘이 보였다.

놈은 분열 직전의 상태였다.

‘녀석이 다시 돌아올 남은 시간은 1분.’

고작 1분이지만 찬영은 그 시간 안에 많은 걸 할 수 있었다.

‘그 안에 녀석을 이 감옥 안에서 끌어낸다.’

찬영은 죽어 버린 양 꿈쩍도 하지 않는 배관들을 내려다봤다.

녀석을 석화시켜 버린 추가적인 이유다.

‘배관이 있는 장소에서의 녀석은 자신의 가치 이상의 힘을 일으켜.’

하지만 배관 밖이라면?

더 이상 배관이 닿지 않는 장소에서의 골렘의 힘은 줄어들 것이다.

장담컨대 좀 더 손쉽게 차원의 돌을 빼앗을 수 있게 된다. 걸리는 게 하나 있긴 하지만 예상대로만 일이 풀린다면…….

‘계획한 대로 놈들의 골렘을 더 수월하게 연구할 수 있어.’

찬영이 두 팔을 뻗어 3미터에 이르는 골렘을 번쩍 안아들었다.

* * *

“입구란 입구는 전부 무너졌습니다. 검은 배관이 넝쿨처럼 엉켜서 모든 장소를 봉쇄하고 있습니다.”

그 보고에 프치키가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도열된 병력을 둘러봤다.

숫자를 세어 봐도 수감자들은 빠짐없이 전부 빠져나왔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을 구해 준 갓피스가 저 안에 있다.

프치키가 골을 짚고 있을 때 듣고 있던 공주가 말했다.

“골렘이에요. 골렘이 그의 탈출을 막고 있는 겁니다.”

“하면 소신이 들어가겠습니다.”

프치키가 한쪽 무릎을 굽히며 공주에게 말했다. 하지만 공주는 고개를 저었다. 원하던 대답이 아니다.

“내가 가야겠어요.”

“하오나…….”

걱정스럽게 공주를 올려다보는 프치키에게 샤브레 공주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유혹의 돌로 가동되는 골렘이라면 일반적인 공격이 쉽게 통하는 상대가 아닐 겁니다. 신성 마법을 통해 그를 도와야겠어요. 다만 저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제 검은 늘 왕국의 것입니다. 사력을 다해 공주마마를 돕겠나이다.”

“반드시 왕국은 그대의 충성에 은혜 입은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미소 지은 프치키는 공주의 대답에 전율이 일었다. 그녀는 왕족인 자신이 아니라 왕국을 위해 싸워 달라 얘기하고 있었다.

‘그래, 이것이 내가 섬기는 왕국의 모습이다!’

프치키는 검이 없으나 목청껏 소리쳤다.

“전군 들으라! 현 시간부로 오리엔트의 전군은 봉쇄되어 있는 입구를 다시 뚫을 것이다.”

그 외침과 함께 사단에 속한 병력이 일제히 프치키를 필두로 이동하려던 그때였다.

쩌저적!

폭삭 무너져 있던 지상의 감옥의 일부가 반으로 쪼개지며 강한 바람이 일었다.

솨아아!

황급히 팔을 가리며 공주 앞을 가로막은 프치키가 넓은 등으로 그녀에게 쏟아질 바람을 막아 줬다.

동시에 가늘어진 프치키의 눈동자가 빠르게 먼지바람 사이에 일렁이는 그림자를 노려봤다.

‘골렘인가?’

그 생각에 이른 순간, 먼지바람을 뚫고 나타난 인영이 눈 깜짝할 새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공주님을 보호하라!”

순간적으로 프치키가 공주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보다 갑자기 나타난 남자의 목소리가 더 빨랐다.

“공주님을 데리고 이곳을 벗어나세요. 조금 있으면 지하까지 전부 붕괴될 수도 있습니다.”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뜬 프치키와 함께 찬영이 안고 있던 골렘을 바닥에 내려놨다.

쿵!

그 순간 골렘의 석화 상태에 조금씩 균열이 일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이런!’

찬영의 눈동자가 날카로워졌다.

다행히 시간 맞춰 녀석을 밖으로 끌고 오긴 했지만…….

‘문제는 이 다음이겠어.’

녀석이 깨어난 뒤 어떻게 날뛸지 모르겠다.

찬영은 주위를 돌아봤다.

최대한 이곳에서 멀리 벗어나야 한다.

“다녀오겠습니다.”

“어디로?”

공주가 묻는 순간 이미 찬영은 사라져 있었다.

‘블링크, 블링크, 블링크!’

찬영이 있는 대로 슬롯을 개방했다.

마나가 순식간에 소모되며 그가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공주의 곁에서 떨어진 찬영은 움직이기 시작한 골렘을 힐끗 내려다봤다.

‘더 멀리 가야 해.’

놈이 완벽히 일어나기 전까지 멀어질 만큼 멀어져야 한다.

그때 골렘이 눈을 빛냈다.

-침입자 즉시 제거…….

“어림없어!”

골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녀석에게 박혀 있는 차원의 돌을 쥐었다.

이대로 흡수를…….

한데, 그 순간.

-차원의 돌을 흡수할 수 없습니다.

메시지는 다음 대답을 전했다.

-차원의 돌에 인식된 올드 원의 주문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근처에 있는 차원의 돌을 흡수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전의 루크를 상대할 때의 경험이 있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마음에 걸렸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올드 원의 주문이 새겨진 차원의 돌은 이유를 막론하고 곧바로 흡수가 불가능해.’

공주에게 멀리 떨어진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어떤 여파가 생기던 공주에게 직격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였던 거다. 어쨌든 이걸로 확실해졌다.

골렘 또한 루크와 같은 케이스였던 거다.

‘흡수하긴 늦었다. 그럼 다시 석화를?’

그 때 하나의 창이 나타났다.

-라일라의 완드는 더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용하려면 라일라의 숨결이 필요합니다.

‘뭐?’

예상못한 반전에 당혹스러웠던 순간, 골렘의 목소리가 들렸다.

-침입자를 즉시 제거한다.

이를 들은 찬영은 곧바로 아슬란을 치켜들었다.

‘그럼, 얼려 버리면……!’

하지만 다른 방법을 쓰기에는 이미 늦어 버렸다.

골렘이 찬영의 코앞에서 괴성을 지르며 온몸이 분열된 게 보였다.

찬영은 그래비티 필드를 쓰려 했으나 그러기도 전에 놈이 날아가 버릴 게 분명했다.

쐐액!

황급히 녀석의 일부라도 막기 위해 아슬란으로 분열된 녀석을 베었다.

하지만 여러 개의 검은 구슬로 분열된 녀석은 순식간에 아슬란의 범위를 벗어나 위로 떠올랐다.

‘안 돼!’

찬영은 이를 꽉 물며 진공나찰보를 펼쳤다.

녀석을 그냥 놔두었다간 석화시켜서 이곳까지 데려온 이유가 사라진다.

‘놈이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어야 해.’

쐐애액!

그러나 검은 구슬처럼 잘게 쪼개져 날아가는 골렘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다시 감옥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쿠쿠쿵!

골렘이 되돌아가는 동안 저 멀리 감옥이 있던 성채도 와르르 무너지며 그 안에서 수천 개의 검은 배관들이 뱀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 * *

성채가 무너지는 것은 공주와 프치키도 보고 있었다.

“부단장님!”

부하들이 외쳤다.

“그래, 보고 있다!”

대답을 마친 프치키가 공주의 곁을 지키며 뛰었다.

하지만 땅의 붕괴가 가속되는 게 더 빨랐다.

쿠쿠쿠!

프치키가 고함쳤다.

“더 빨리 달려라! 붕괴하는 구획을 벗어나야 한다!”

그사이 샤브레 공주는 그들이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신성 보조 마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가 지쳐가는 건 당연했다.

“공주마마, 신의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안 되겠던지 프치키가 그녀를 번쩍 안고 달렸다.

그 선택은 옳았다.

쩌저적!

방금 전까지 공주가 서 있던 땅이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만약 공주님이 떨어졌다면?’

등골이 섬뜩해진 프치키가 더 이를 악물고 달렸다.

그런 와중에 공중에서는 검은 구슬이 된 골렘이 빠르게 자신의 땅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 * *

두두두두!

광속섬뢰보를 활용해 어마어마한 속도로 질주하고 있는 찬영은 위를 올려다보며 더 빠르게 달렸다.

‘내 판단은 옳았어.’

잘못 생각한 건가 싶었으나 분명 판단이 옳았다고 느낀 건 녀석의 선택 때문이다.

‘침입자를 즉시 제거해야 한다고 말은 했지만…….’

녀석은 언행일치를 보이지 않았다.

죽이려 드는 게 아니라 도주를 택한 것이다.

그렇기에 의문이 생긴다.

녀석이 그러는 건 단순히 자신의 영역에서 싸워야 하기 때문인 걸까?

‘만약 다른 이유가 있다면?’

찬영은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이제까지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겹쳐서 되짚어 봤다.

‘현재 저 배관들은 솟아오르긴 했지만 영역 바깥으로 뻗어 나오진 않고 있다. 그리고…….’

골렘에게는 왜 저렇게 많은 배관들이 있어야 했던 것일까?

‘단순히 수문장으로서의 능력을 높이기 위해?’

찬영은 그런 단순한 이유가 아닐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이유 때문이라면 녀석이 이렇게 서둘러 다시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없어. 나를 침입자로 인식한 이상, 눈앞의 침입자부터 제거하는 게 최우선 목표일 텐데?’

그럼 결론은 하나다.

‘놈에게는 반드시 돌아가야 할 페널티가 있어. 뭐가 됐던 침입자를 무시할 만큼 영역 안에서만 싸워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야.’

찬영은 순간 막혀 있던 게 명확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녀석이 돌아가는 것만 막으면 돼.’

그 뒤 결과가 어떤 여파가 될진 모르지만 당장은 그게 최선이다.

‘설사 전투로 인해 연구가 불가능해지더라도…….’

당장은 녀석의 진로를 막고, 상황을 종료하는 게 최우선이다.

파밧!

기어코 녀석보다 더 빨리 달린 찬영은 기회를 보다가, 있는 힘껏 땅을 박찼다.

‘스툼, 에어 펀치!’

탄력을 받아 떠오르자마자 에어 펀치가 목표로 한 골렘을 향해 펑, 공기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대기를 갈랐다. 이젠 어깨를 짓누른 중력도, 기압도 모두 견뎌 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다 왔어.’

골렘과 초근접한 찬영은 에어 펀치를 한 번 더 사용해 녀석을 앞지른 후 이를 악물며 몸을 틀었다.

쐐애액!

찰나 간 골렘의 앞을 가로막은 찬영의 시야에 날아오는 검은 구슬들이 보였다.

‘단번에 멈추게 해야 해.’

조금이라도 멈칫하는 순간 녀석을 놓칠 거다.

그렇기에 찬영이 현재 택할 수 있는 최선은 단 하나.

전력을 쏟는 것!

“후우.”

순간 깊은 호흡을 말아 쉰 찬영의 주먹에 황금빛 광휘가 새겨졌다.

‘홀리 스트라이크!’

강한 신성력이 오른팔을 타고 흐르고 둘레가 5미터나 되는 커다란 해머가 등장했다.

츠츠츠!

‘조금만 더!’

찬영은 해머를 유지한 채 진공나찰보를 끊임없이 펼쳤다.

치치칙!

50미터, 10미터…….

점점 더 가까워진다.

체공을 유지하기 위해 한 번 더 진공나찰보를 밟은 후 놈을 똑바로 노려봤다.

쐐애액!

골렘도 찬영을 느낀 거 같았다.

날아오던 검은 구슬들이 더 넓게 포진되며 산개했다.

‘모조리 날려 주지.’

하지만 해머의 반경은 한정되고 구슬들은 산개되어 있다.

이것들을 모아야 한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지만!

‘그래비티 필드 30회 중첩.’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동시에 빠져나갔다.

쿠웅!

쏟아진 중력에 의해 검은 구슬들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추락하는 게 보인다.

‘됐어.’

1차적인 봉쇄다.

하지만 오래 시간을 끌 순 없을 거 같았다. 구슬들이 다시 강한 추진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벗어나려는 거야.’

순순히 놔둘 생각은 없다.

‘바인드!’

검은 구슬들을 향해 땅에서 솟아오른 넝쿨들이 빠르게 날아올랐다.

쇄애액!

솟아오른 넝쿨이 그물망처럼 빠르게 구슬들을 엮었다. 그러자 퍼져 있던 구슬들이 넝쿨과 함께 한데 모였다. 한데, 그럼에도 구슬들은 여전히 힘을 잃지 않고 날뛰었다.

‘빨리 끝내야 해.’

두 번 놓칠 생각은 없다.

‘에어 펀치.’

낚여 있는 검은 구슬들을 향해 날아간 찬영은 점점 가속도가 붙는 걸 느꼈다.

‘부족해. 좀 더 빨리! 에어 펀치, 에어 펀치!’

찬영은 중력 따위를 가뿐히 무시한, 빛과 같은 속도를 일으켰다. 몸이 부서질 것 같아도 상관없었다.

견딜 수 있었다.

파지지짓!

운석이라도 된 것처럼 매섭게 낙하하는 찬영.

‘집중해야 해.’

찬영의 시선은 오로지 모여 있는 검은 구슬에 있었다.

쾅!

그다음 순간 여신의 숨결을 담은 거대 해머가 운석처럼 지상에 떨어졌다.

콰콰콰!

내려찍은 곳을 중심으로 황금빛 물결이 일제히 퍼져 나갔고, 그 뒤로 땅거죽이 뒤집어지며 거대한 함몰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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