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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77화 (177/248)

# 177

177화

홀랜드도 우베의 목소리를 들었다.

활시위를 당기고 있던 홀랜드가 흠칫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왔구나!’

놈이 온 게 뜻밖은 아니지만 예상보다 대처가 빨랐다.

우베 같은 거물이라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건만.’

하긴, 모든 일이 예상대로만 될 리가 없다.

그런 기대감을 가지는 게 욕심이겠지.

“들어가마!”

우베가 들어서자마자 홀랜드는 빠르게 화살을 쐈다.

쐐액! 쐐액!

오라로 덮인 화살이 우베에게 한꺼번에 두 발이나 날아갔다.

이미 예상했던지 우베가 씨익 웃으며 오라가 깃든 창을 풍차처럼 휘둘렀다.

펑! 펑!

오라와 오라가 부딪치자 공기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홀랜드의 화살은 전부 반으로 잘린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이런…….’

홀랜드는 한발 물러났다.

‘더 이상 화살만으로는 충분치 않겠어.’

꿀꺽.

마른침을 삼킨 홀랜드는 밀려들려고 하는 병사들을 노려봤다.

그때 우베가 씩 웃었다.

“버러지 같은 것들은 치워 주지.”

우베가 진입하려는 병사 하나의 목을 단숨에 베어 버린 후 소리쳤다.

“누구도 나서지 마라! 지금부터 이 안으로 진입하는 것들은 친히 목을 베어 주마!”

이글거리는 안광을 보이는 우베에게 반항할 병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르르 물러난 병사들과 함께 우베가 입구를 가로 막고 섰다.

“이제 좀 덜 시끄럽군. 안 그런가?”

나직이 묻는 그에게 홀랜드는 대답하지 않고 허리춤에 있는 롱 소드 두 자루를 꺼내 들었다.

“클린트 님은 늘 그러셨지. 네가 우리를 거역하는 자들에게 두려움을 심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듣고 있던 홀랜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를 본 우베가 호탕하게 웃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라 화가 나나 보군. 맞지 않느냐? 겁먹은 쥐새끼처럼 샤우트 숲이나 지키자고 지껄여 댔을 테니.”

“말이 많군. 지난번처럼 방심하다가 남은 눈까지 잃고 싶은가?”

홀랜드의 뼈 있는 반문에 창을 쥔 우베가 이를 갈았다.

뿌득!

“그래, 이 상처……. 잊지 않고 있다.”

어떻게 잊을까?

비가 무섭게 쏟아지던 그날, 샤우트 숲으로 도망친 노예를 쫓다가 홀랜드의 화살을 맞고 낙마했다.

하지만 클린트의 지시가 있어 복수하러 들어갈 순 없었다.

그 날 이후로 홀랜드를 죽일 기회만을 기다렸다.

“난 그래서 이번 파견에도 나서지 않았다. 목적은 네놈의 목을 베는 게 아니라 공주의 신병을 가져오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가 창을 고쳐 쥐었다.

“이젠 상황이 바뀌었지. 네놈이 여기까지 침입하다니. 하늘이 이 우베에게 큰 선물을 주었구나!”

그 말을 뱉으며 우베는 이곳까지 오게 된 순간을 스치듯 떠올렸다.

‘쯧, 빌레드 멍청한 것.’

사실 그가 이곳에 더 빨리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빌레드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빌레드는 모든 게 자신의 뜻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으리라.

‘클린트 님의 예상이 맞았군. 놈은 내게 어떤 것도 알리지 않았어.’

언제든 빌레드가 배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 클린트는 우베에게 빌레드의 감시를 맡겼던 것이다.

그렇게 역으로 빌레드를 관심하고 있던 우베는 악화된 상황을 눈치채고 홀랜드가 있는 기관실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래, 더는 피할 수 없겠지.”

마주 선 홀랜드도 입을 뗀 후, 쥐고 있는 두 자루 롱 소드를 교차하듯 붙였다.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전력을 따졌을 때, 놈과 자신의 실력 차이는 극명하다.

이길 가능성은 없다.

‘후우…….’

샤우트 숲에서야 워낙 단발성 기습이었고, 워낙 은폐가 가능한 지역이 많았기에 쉽게 놈의 손아귀를 빠져나갈 수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통로는 하나.’

빠져나갈 구멍 따윈 없다.

녀석과 부딪쳐야 하는 것이다.

‘……사실 살아남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놈과 싸우는 동안 크라이 워커와 에머리 경, 그리고 공주가 전부 진입하기를 바랄 뿐이다.

타닥!

이를 악다문 홀랜드에게 우베가 창을 붕붕 휘두르며 다가왔다.

* * *

에머리 경은 정찰병의 보고를 받았다.

“동문 통행로가 열렸습니다. 출진하려면 지금 가야 합니다.”

정찰병의 보고에 말에 올라타 있던 에머리 경이 샤브레 공주를 쳐다봤다.

“동행하셔도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샤브레 공주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에도 에머리 경은 썩 내키지 않았다.

그녀가 다칠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녀가 총 추기경이라는 직함을 가진 고위급 신관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전투를 통해 겪어 보게 된 그녀는 비전투 인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조 신성 마법에는 뛰어나지만 실제 공격 전투에 크게 쓰는 신성 마법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전술상 그녀가 후방에 있어야 한다고 설득해둔 게 그나마 위로가 되긴 했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여신께서 함께하실 겁니다.”

그녀가 미소 지었다.

“예, 알겠습니다.”

에머리 경은 고개를 끄덕인 후 말을 몰았다.

뒤에 자리 잡은 크라이 워커들이 보였다.

숫자는 대략 아흔 명.

대부분을 잃고 남은 마지막 잔존 병력이다.

“우린 무수히 많은 동료들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훗날에도 지금과 같은 삶을 연명해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 말했다.

“기다리는 건 지쳤습니다.”

수많은 동료들이 그 말에 환호했다.

에머리 경이 사기가 들끓기 시작한 동료들에게 말했다.

“장벽을 되찾읍시다. 모두에게 영광이 있기를!”

축복을 빌어 준 에머리 경이 먼저 말을 몰아 선두에 달렸다.

우아아!

들판을 달리기 시작한 약 백여 명에 가까운 크라이 워커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샤브레 공주도 말을 몰아 그 후방에 붙어 달렸다.

그러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여신의 뜻이 그대들을 돕길.’

그러자 말을 몰고 있는 그녀의 온몸에서 황금빛 서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신성 마법의 발현이다.

‘생추어리.’

무려, 6등급 신성 마법인 이것은 일정 반경에 들어 있는 동료들에게 걸어 주는 보조 신성 마법이었다.

이동속도, 근력이 증가하고, 공격을 한 번 방어해 주는 신성력 실드가 생긴다.

“말이 빨라진다!”

“몸이 가벼워지고 있어!”

함께 달리는 크라이 워커들이 소리쳤다.

선봉에 달리던 에머리 경도 힘의 변화를 느끼며 더욱 말을 빠르게 달렸다.

“여신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 한다!”

6등급 신성 마법의 가호를 받은 크라이 워커들의 사기는 그 어느 때보다 드높았다.

샤브레 공주는 그들의 뒤를 따르며 정신을 집중했다.

‘조금만 기다려요. 모두…….’

그녀의 머릿속에 홀랜드와 찬영의 얼굴이 함께 스쳐 지나갔다.

* * *

“커헉!”

발에 채인 홀랜드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쿠당탕!

바닥을 두어 번 구른 그는 황급히 일어나서 얼른 검을 들어 올렸다.

기다렸다는 듯 떨어지는 날카로운 창날.

챙!

검을 교차해 창날을 막아 낸 홀랜드가 힘겨운 눈으로 검 사이를 올려다보았다.

‘역시……!’

이런 예상은 잘도 들어맞는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자신은 녀석의 상대가 못 되었다.

벌써 자신은 베인 곳만 여섯 곳, 언제 치명상을 입어도 이상하지 않을 순간이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보자!”

복수로 번들거리는 우베의 눈동자에는 적의가 가득했다.

“……걱정 마라. 아직 힘이 남아 있으니까!”

우베의 창을 밀쳐 내며 다시 일어난 홀랜드는 호흡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래, 그래야 네놈의 목을 벨 맛이 나지!”

우베가 달려드는 홀랜드를 향해 창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쐐액! 쐐액! 부웅!

홀랜드는 두 자루 검으로 그의 창을 어린아이 내듯 쳐 냈지만, 그럴수록 손이 저려 오는 게 사실이었다.

챙!

“크윽!”

기어코 한 자루 검이 홀랜드의 손에서 날아갔다.

피가 줄줄 흐르는 왼손과 함께 홀랜드가 잔걸음을 치며 물러났다.

“헉, 헉.”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는 지금, 홀랜드에게 오로지 한 가지 생각밖에 스쳐가지 않았다.

‘버텨야 한다!’

홀랜드는 문을 내리는 기관 장치를 힐끗 쳐다봤다. 기관은 레버를 내리게 되면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돌아가는 형태였다.

‘저것만 지키면 돼!’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홀랜드의 시선을 눈치챈 우베가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뭘 기다리는 것이냐? 샤우트 숲에서 달려올 너희 잔당?”

“…….”

“아직도 장벽을 수복하겠다는 꿈을 못 버렸군. 멍청한 거냐, 아님 겁이 없는 거냐?”

홀랜드는 말없이 피가 뚝뚝 흐르는 왼손을 늘어트린 채 레버 앞에 멈춰 섰다.

솔직히 이젠 오른손에 든 검을 들고 있기만 해도 버겁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홀랜드의 머릿속에 에머리 경, 공주, 수많은 동료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자신만 믿고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 여자, 노인 샤우트 숲에 남아 있는 모든 거주민들은 희망을 품고 있다.

‘내 손에…….’

홀랜드가 피 흘리는 입술을 소매로 쓱 훔치며 말했다.

“날 찌르고 베어도…… 레버는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핫, 둘 다였군…….”

헛웃음을 흘린 우베가 성큼 성큼 홀랜드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기력을 전부 쏟은 놈이다.

‘협소한 공간에서 활을 쏘는 네놈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저벅저벅.

창을 들고 다가간 우베는 홀랜드가 휘두른 검을 연달아 창으로 빠르게 쳐 냈다.

챙! 챙!

마나까지 전부 소진한 홀랜드는 더 이상 반항할 여력이 없었다.

쐐액! 푸욱!

검을 비껴 친 창날이 홀랜드의 가슴을 찢고 어깨를 꿰뚫었다.

“크헉!”

어깻죽지를 뚫고 나온 창날을 바라보며 우베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이 날만 기다렸다!”

잔뜩 흥분한 우베가 더욱 창을 강하게 쑤셔 넣은 뒤, 창에 꽂은 그를 통째로 옆으로 밀쳐 내려 했다.

한데 그 순간.

“음?”

우베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놈을 치워 놓은 뒤, 레버를 내려서 문을 봉쇄하려고 했는데…….

홀랜드가 비켜서지를 않았다.

사실 비켜서지 않은 게 아니라 검으로 바닥을 내려찍은 뒤, 그것에 기대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거였다.

“쯧쯧!”

우베는 사력을 다하는 홀랜드를 보며 혀를 찼다.

“너의 멍청함엔 질려 버렸다! 처음부터 후크의 손을 잡고 이따위 장벽 같은 걸 내줬으면, 너희들은 클린트 님의 품에서 호의호식했을 것이다!”

“그 대신……질서를 잃고 자유를 잃었겠지. 수많은 종족이 오랜 세월 이룩해 놓은……내일마저 잃게 될 거야…….”

“닥쳐! 내일 같은 건 오늘이 없으면 꿈꿀 수 없는 것이다!”

이를 간 우베가 다른 손으로 홀랜드의 검을 빼앗아 들어 그의 가슴에 꽂아 넣으려던 그때.

우베의 팔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고 그에게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네게도 해당하는 얘기겠지.”

“뭐?”

반사적으로 반문한 우베의 가슴으로 길쭉하고 푸른 칼날이 불쑥 솟아올랐다.

“커헉! 어, 언제?”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눈을 부릅뜬 우베에게 천천히 그늘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찬영이 그를 단숨에 베어 버렸다.

서걱!

꿰뚫렸던 가슴부터 어깻죽지까지 완벽히 갈라진 우베가 짚단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풀썩, 쿵!

방금 전까지 의기양양하던 것 치고는 허무한 죽음이었다.

찬영은 그런 그의 시신을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내려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창에 꿰뚫려 있는 홀랜드 경이 보였다.

“이런……!”

가까이 다가간 찬영은 할 말을 잃었다.

“계속 이렇게 버텨 온 겁니까?”

믿기 힘든 몰골이다.

홀랜드가 대답 대신 힘없이 미소 지었다.

그러더니 위에 느껴지는 말발굽 진동에 더욱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오셨……구려.”

찬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후 홀랜드의 팔에 꽂혀 있는 창을 쳐다봤다.

저걸 그대로 뽑아 버리면 그는 과다출혈도 죽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안 돼!’

찬영은 홀랜드를 창과 함께 통째로 안아들었다.

홀랜드가 희미한 의식으로 입을 열었다.

“됐소, 날 놔두고 가시오.”

그의 나직한 음성에 찬영이 대답하지 않고 계속 걸음을 옮겼다.

밖으로 나가면 샤브레 공주가 있을 것이다.

그녀가 있는 곳으로만 가면 그를 치료할 방법이 있을 거다.

“난, 정말…… 괜찮소. 모든 걸 다 바쳤어. 그러니 날…… 놔두고 가시오.”

그의 힘없는 중얼거림에 잠자코 있던 찬영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적어도 오늘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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