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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76화 (176/248)

# 176

176화

지잉!

차폐의 얇은 막이 화살과 부딪쳤다.

활시위 소리를 분명 들은 터라, 확실히 화살이 날아올 줄 알았다.

펑!

하지만 부딪쳐 보니 화살이라기보다는 암흑 마력으로 뭉쳐진 탄환 같았다.

그것도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투명한 탄환……!

강한 힘에 찬영의 균형이 흔들렸다.

쐐애액!

바람 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지상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게 보인다.

위험천만한 상황!

하지만 찬영의 눈빛은 더 없이 차분했다.

그는 찰나 간 방금 전의 상황을 되짚었다.

‘육안으로 볼 수 없었어.’

렌즈를 통해 탄환의 위치를 순간적으로 파악하지 않았다면 분명 어딘가가 꿰뚫렸을 것이다.

‘저기인가?’

이어서 탄환이 날아온 장소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탄환을 쏘아 보내려면 무기가 있어야 하고, 그 무기는 당연히 차원의 돌이 박혀 있을 것이다.

‘못 찾을 리 없지.’

시계탑 정상에서 바로 아래층에 위치한 그늘진 창이다.

이동 없이 자리를 잡고 자신을 겨누고 있는 거다.

하지만 당장은 놈을 상대할 방법이 없다.

‘……착지부터 해야 해!’

이제 조금 있으면 바닥에 충돌한다.

그 전에 다시 도약해야 한다.

‘진공나찰보.’

중력을 이겨 내며 또 한 발을 내딛으려던 그 순간.

쐐액!

또 한 발의 탄환이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이런!’

내딛으려 했던 발을 거둔 찬영은 이를 악물었다.

‘계속 견제당하고 있다. 놈은 날 그대로 떨어트릴 심산이야!’

녀석은 자신이 추락하고 있는 걸 빈틈이라고 생각한 게 틀림없다.

그래, 예전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찬영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허공에서 허공으로 도약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맞서 주지!’

그 순간 공중에 떠 있는 찬영의 몸 위로 얇은 금빛의 실선 수백 개가 빠르게 스며들었다.

디푸스 갑옷의 소환이다.

-소유자의 체형에 맞춰집니다.

금강신장으로 변형됐어도 주인을 알아보는 디푸스 갑옷의 특성은 여전하다.

금빛의 실선은 용의 비늘과도 같은 형태를 띠며 빠르게 어깨부터 등, 가슴으로 이어졌다.

곧이어 찬영의 가슴 위를 갑옷이 덮었다.

쐐애액!

또 한 번의 탄환이 심장으로 날아온 것과 동시였다.

* * *

‘끝이다!’

빌레드는 서늘하게 미소 지었다.

그 후 그는 후크에게 직접 하사 받은 시카리오 보우를 힐끗 내려다봤다.

이것의 장점은 화살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거다.

‘쏘는 대로 강력한 탄환을 쏘아 보내니까.’

반동도 없다.

활과 함께 받은 장갑은 탄환의 반동을 100% 감소시킨다.

평생 검이 아닌 활을 잡아 온 자신에겐 이 방법보다 적합한 병기는 없었다.

풍향, 사거리 등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그에 따라 화살을 쏘는 건 평생 해 온 일이다.

빌레드는 곧 놈이 추락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 놈만 정리하면…….

‘비커가 내 손 안에 들어온다.’

달려온 병사의 보고로는 클린트와 함께 갔던 친위대 중 일부가 돌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시계탑으로 달려오고 있는 녀석은 버젓이 쿠에느로의 제복을 입고 싸우고 있다.

이쯤 되자 머릿속에 어찌 된 상황인지 대강 파악되었다.

‘클린트가 죽은 거겠지.’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강력했던 클린트와 클린트 친위대는 모두 당한 게 틀림없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들이 입고 있던 옷과 갑옷을 놈이 버젓이 입고 있진 않을 터…….

그러니 그의 죽음이 기정사실이 되어가는 것 같은 지금, 놈들을 제거하기만 하면 비커는 자신의 손 안에 쉽게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여자에 홀린 우베 놈이야…… 독이든 뭐든 금방 정리할 수 있겠지.’

의심 없는 발정한 사냥개 정도야 금방 정리할 수 있다.

‘저 녀석처럼!’

탄환을 맞은 찬영의 허리가 새우처럼 꺾이는 게 보인다.

빌레드는 더 볼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돌아서려 했다.

한데 허리가 꺾였던 그가 멀쩡히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다시 허공을 밟고 솟구치는 게 아닌가!

“어떻게……?”

믿기 힘들었던 빌레드는 자동반사적으로 그 말을 툭 뱉어 버렸다.

당연한 일이다.

분명히 심장을 정확히 꿰뚫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는데……!

‘탄환이 사라졌다는 건가?’

그가 당황해하는 사이, 찬영은 순식간에 허공을 격하고 빠르게 접근해 오고 있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나직이 중얼거린 빌레드가 다시 자리를 잡고 활시위를 겨눴다.

뱀의 눈동자처럼 싸늘하고 차갑게 식은 빌레드의 눈동자가 향하는 곳은 찬영의 심장.

‘후우…….’

빌레드는 믿기 힘든 상황인데도 금방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의 호흡을 찾았다.

‘어디 또 한 번 막아 보아라!’

펑! 펑! 펑!

빌레드는 연달아 투명 탄환을 쏘아 보냈다.

강력한 연발.

무반동이기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

‘이번에야말로!’

빌레드는 그가 추락하길 기대했다.

하지만.

펑! 펑!

탄환은 그를 저지하지 못했다.

그는 마치 평지를 달리는 사람처럼 허공을 발판처럼 밟으며 빠르게 돌진해 왔다.

‘젠장!’

더는 방법이 없다.

빌레드는 쓰지 않으려고 했던 최악의 수를 쓰기로 했다.

‘종을 울린다.’

놈을 저지할 수 없다면 우베와 모든 병력을 이곳으로 집결시켜야 한다.

빌레드는 활을 쥐고 빠르게 시계탑 상층부로 올라갔다.

타닥!

그사이 빌레드를 향해 다가오던 찬영은 렌즈를 통해 그가 빠르게 시계탑 위로 올라가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포기했구나.’

더 이상 탄환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하긴.’

녀석은 무력감을 느꼈을 거다.

그도 그럴 게 금강신장은 암흑 마력을 거부하는 장비다.

-효과 E : 복마伏魔(소유자 총합 가치 합산보다 가치가 낮은 암흑 마법 피격 피해 무효화)

눈에 보이는 녀석의 가치 측정 결과는 9,921.

복마가 안 먹힐 리 없었다.

녀석도 이젠 그걸 알았으니 더 이상 시간 끌지 않고 동료를 부를 생각일 것이다.

찬영은 놈이 그러는 걸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놈들 중엔 분명 후크와 연락이 닿아 있는 녀석이 있을 가능성이 높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의 상황을 알리겠지.’

그렇게 되면 후크는 그에 맞게 대비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가 대비하기 전에 녀석이 크게 흔들릴 만한 한 수를 준비하고 싶다.

‘그러니 내가 이곳에 와 있다는 걸 들켜선 안 돼!’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찬영은 이를 악물었다.

‘에어 펀치!’

2초간 시속 300km 초고속 발진을 중첩 사용했다.

강한 압력이 전신에 쏟아졌다.

‘더 빨리!’

마음은 급했으나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계탑 정상에 도달하기 직전, 이미 녀석이 정상 위에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늦었다!”

빌레드가 소리쳤다. 그는 빠르게 종 옆에 놓인 굵고 긴 끈을 한 손에 콱 쥐었다.

‘이제 휘두르기만 하면……!’

눈을 부릅뜬 빌레드가 손을 옆으로 흔들려고 하던 그때.

‘음?’

빌레드는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손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어깨가 흔들린다.

“헉!”

빌레드는 저도 모르게 한쪽 무릎이 꿇렸다.

‘크윽!’

항거할 수 없는 중력이 온몸에 쏟아지고 있었다.

츠츠츠.

시계탑 바닥을 뚫고 나타난 넝쿨들이 순식간에 넘어져 있는 다리와 팔을 묶기 시작한다.

‘아, 안 돼!’

빌레드는 쥐고 있던 시카리오 보우까지 손에서 놓쳤다.

그나마 있던 검까지 넝쿨에 휘말려 꺼내 들 수조차 없었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쯤이었다.

종 뒤에서 나타난 찬영이 호흡을 다스리며 말했다.

“차라리 네가 이쪽으로 올라오길 원했어.”

사실 처음부터 그가 먼저 도착할 거란 건 예상 하에 있었다.

그래서 놈을 필드에 묶을 수 있는 반경 안에 들어오자마자 그래비티 필드와 바인드를 사용했다.

이어진 바인드 마법이야 키란의 반지를 사용하면 되는 일이라, 캐스팅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크으윽……!”

빌레드는 그래비티 필드와 바인드 마법에 중첩되어 옴짝달싹 못했다.

찬영은 그를 조용히 내려다보다가 다시 종을 쳐다봤다.

타타타탁.

아래에서 수많은 병사들의 기척이 들린다.

‘나를 쫓아오고 있는 거겠지.’

얼마 지나지 않으면 시계탑 정상으로 올라오는 계단을 통해 수많은 병사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지잉!

찬영은 아슬란을 쥐고 조용히 적들을 기다렸다.

우여곡절 끝에 시계탑 정상에서 종을 확보했으니 이제 남은 건 이걸 지키는 일뿐이었다.

그 순간 빌레드가 말을 걸어 왔다.

“나, 나와…… 손잡자. 어, 어차피…… 비커를 장악해도…… 와, 왕국은 무, 무너진……다.”

찬영이 시선을 돌려 빌레드를 내려다봤다.

“거절하지.”

찬영의 단호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빌레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워, 원, 원하는 게 무, 무엇이냐? 전부, 전부, 들어줄게. 비커를 네, 네가 가져도 좋다! 카, 칼룬 영주에, 에게 잘 말해 주마!”

“칼룬 영주에게?”

찬영이 반문한 것이 구미가 동해서라고 생각한 건지 빌레드는 사력을 다해 입을 놀렸다.

“그, 그래.”

“너의 저 활도 칼룬 영주가 준 건가?”

“마, 맞다. 워, 원한다면 가, 가져가도 좋다!”

“필요 없어.”

찬영이 아슬란을 들어보였다.

남의 떡엔 관심이 없다. 화살에 박힌 차원의 돌이야 천천히 회수하겠지만…….

계속 거절하는 찬영에게 빌레드는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빌레드의 눈을 보던 찬영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머리 굴릴 것 없어. 무슨 제안을 해도 네 제안에 결정적인 허점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제안을 받아들일 일은 없을 테니까.”

“허, 허점?”

“그래.”

대답과 함께 찬영이 다른 장벽이 있을 방향을 쳐다보며 말을 덧붙였다.

“왕국은 무너지지 않을 거다. 그걸 막으려고…….”

찬영이 아슬란을 고쳐 쥐었다.

“내가 온 거니까.”

* * *

그 시각.

홀랜드는 활시위를 또 한 번 당겼다.

그가 위치한 곳은 문의 개폐를 좌우하는 가동 장치가 있는 기관실이었다.

기관실은 장벽 안으로 진입하는 입구 측면에 있었다.

그 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면 기관실이 있었던 것이다.

철로 된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있는 기관실 안.

쐐액!

날아간 화살이 계단을 내려오는 병사를 맞췄다.

쿠당탕탕!

굴러 떨어지는 병사를 힐끗 본 후 다시 활시위를 겨누는 홀랜드.

‘버텨야 한다!’

자신은 단 한 명.

계단을 내려오려는 자들은 수백, 아니 그 이상일 수 있다.

‘이곳으로 내려오는 문은 하나야. 입구만 지키면 돼!’

이미 기관실을 장악한 뒤 문을 개방시켜 놓은 상황.

계속 버티기만 하면 장벽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에머리 경이 크라이 워커들과 함께 통행로로 돌격해 올 것이다.

‘그때까지 견뎌야 한다.’

사실 무리한 얘기일 수 있었으나 지금 봐선 그게 가능할 것 같다.

입구가 하나이기에 놈들은 들어올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어디 들어와 보아라! 들어오는 순간 정수리를 꿰뚫어 주지!”

이를 갈며 외친 홀랜드에게 병사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드, 들어가!”

“닥쳐! 네가 먼저 들어가!”

입구 앞은 혼란스러웠다.

병사들은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고 주저했다.

당연했다.

들어가면 당장 죽을 판인데 누가 들어간단 말인가?

지하 계단 앞을 빼곡하게 둘러싼 병사들이 주저하고 있던 그때.

계단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머저리 같은 것들.”

나직한 중저음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싸늘했다.

병사들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누가 나타난 건지 깨달은 것이다.

“우, 우베 총감께서 오셨다!”

“길을 터라!”

“어서 비켜!”

황급히 물러나는 병사들 사이로 황갈색 피부를 가진 우베가 자신의 머리를 훌쩍 넘긴 기다란 장창을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쿵, 쿵!

우베는 계단으로 내려가며 차고 있는 안대를 단숨에 벗어던졌다.

그러자 실명된 그의 하얀 동공이 나타났다.

화살에 꿰뚫린 흔적이다.

꽤 깊은 상처로 남게 된 이 흔적은 우베의 치욕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치욕을 남긴 자를 드디어 다시 만났다.

“홀랜드으으!”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모르겠다.

우베는 살이 떨릴 만큼 흥분됐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따위 것은 별로 신경도 안 쓰였다.

“오늘 네놈의 피로 내 몸을 적실 것이다!”

우베의 멀쩡한 눈에는 복수심만이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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