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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75화 (175/248)

# 175

175화

두 필의 말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빠르게 장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전방 3km 남짓에서 두 물체가 다가옵니다!”

들려온 외침에 장벽에 설치된 망루에 올라가 있던 십인장이 꺼져 있는 마법구 하나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마법구는 저 멀리 1km 바깥에서 달려오는 물체를 정확히 초근접으로 비춰 냈다.

2km까지 초근접 확인이 가능한 원거리 탐색용 마법구였다.

‘얼굴에 피가 묻어 있다!’

그냥 묻어 있는 수준이 아니다. 피를 뒤집어쓴 게, 제대로 얼굴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다.

마법구를 확인한 십인장이 눈을 부릅떴다.

‘적인가?’

십인장은 고민했다.

하지만 마법구로 봤을 때 적일 가능성은 낮다.

입고 있는 갑옷 사이로 보이는 제복이 전부 샤우트 숲으로 출정한 병력의 것들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피가 묻은 동료 둘만이 달려오고 있다.

‘자초지종부터 들어야 한다.’

십인장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고 곁에 있는 손을 까딱해 병사를 불렀다.

“우베 님께 말씀드려라. 클린트 님께 변고가 생긴 거 같다고…….”

“옙!”

사라진 병사와 함께 십인장이 자기가 도맡은 병사들에게 하명했다.

“문을 활짝 열고 쫓아오는 자가 없는지 전방을 주시해라!”

* * *

‘쿠에르노’.

장벽의 수호를 거부하고 후크와 손을 잡으며 비커의 지배를 선포한 조직이다.

먼저 십안의 기사단을 배신하고 후크와 손을 잡은 클린트는 쿠에르노 창설 당시, 두 명을 자신의 대리자로 내세웠다.

스스로를 클린트 총독이라 부르면서 나머지 둘에게 총감의 권한을 쥐어 준 것이다.

한 명은 비커로 진입하는 모든 장벽을 감시하는 우베 총감.

용병 출신인 그는 직접 클린트를 찾아왔고 오른팔이 되길 희망했다. 그 후 뛰어난 실력으로 원하던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문제는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이었다.

클린트에 비해 우베는 성격이 급해서 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이 조금도 없었다.

복도를 걷는 병사가 그에게 보고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였다.

“윽, 흑, 흐윽!”

문 밖으로 교성이 들려온다.

한두 명의 여자가 아니다.

‘도무지 몇 명의 여자인 줄 모르겠군.’

병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우베는 여자를 밝혔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여자를 방에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클린트와 친위대가 자리를 비울 때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한바탕 깨지겠군.’

병사는 오늘 재수가 옴 붙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고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어쨌든 장벽을 지키는 대리인은 빌레드 총감이 아닌, 우베니까.

그때 입을 열려던 병사의 등 뒤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병사가 황급히 고개를 돌린 후 급히 고개를 숙였다.

말을 건 이는 빌레드 총감.

빌레드는 행정관 역할을 했다.

장벽을 넘어간 후크의 병력에게 보낼 보급품을 약속한 날짜마다 실어 보내는 일과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도맡았다.

떠돌이 용병, 도둑, 살인자…… 누구든 상관없었다.

쿠에르노에 충성을 맹세하고 말귀만 알아들으면 쿠에르노에 받아들였다.

그의 악명은 이미 비커 안에 가득했다.

그러나 병사는 그가 우베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짐승보다는 이성이 있는 쪽이 훨씬 낫지!’

병사가 재빨리 말했다.

“동쪽 통행로에 파견된 병력 일부가 피투성이가 된 채 급히 귀환하고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빌레드는 와락 인상을 썼다.

느낌이 좋지 않다.

“자세한 내용은?”

“경비대장이 동문 진입로를 개방했습니다.”

“그래?”

“예.”

“알았다. 가 보도록.”

병사는 부리나케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 와중에도 교성은 계속 흘러나왔다.

빌레드는 미간을 찌푸리며 문을 열려 했다.

‘그럴 필요가 있나?’

사실 빌레드는 늘 우베가 마음에 안 들었다.

멍청하고 우둔하며 고집만 세다.

놈은 별생각도 없이 무작정 병력을 일으켜 클린트에게 갈 것이다.

‘오히려 내겐 좋은 기회지.’

혹시나 클린트가 잘못됐다면 놈과는 권력 다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럴 바엔…… 차라리 여자에 취한 놈을  그냥 놔두는 게 낫겠지.’

빌레드가 씩 웃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한 번 배신한 마당에 두 번 배신 못할까?

빌레드는 장벽으로 가 보기로 했다.

* * *

다그닥, 다그닥.

말은 순식간에 열려 있는 성문을 통과했다.

‘1차적으로 성공한 건가?’

찬영은 곁에서 달리는 홀랜드를 쳐다봤다.

본래라면 혼자 하려고 한 일이지만, 그와 상의해 움직였다.

어차피 이 싸움은 자신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열 번째 장벽, 비커를 수복하는 일은 홀랜드를 비롯한 샤우트 숲의 일원들에겐 터전을 되찾는 일이다.

‘잘한 선택이야.’

오래 떠안았던 큰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다.

특히 홀랜드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됐다.

-장벽의 문을 열고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건 문의 개폐를 도맡는 가동 장치의 장악이오. 그다음은 그들이 이 사태를 알리지 못하게 시계탑을 장악해야 하오.

-그 후에는요?

-비커에는 지하 감옥이 하나 있소.

-감옥?

-그렇소. 그곳엔 충성심 높은 정예병들이 아직 남아 있소. 클린트는 그들을 회유해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했지.

-장벽을 지켰던 경비대군요.

-맞소. 그들에게 무기만 다시 쥐어 준다면 비커 장악을 더 손쉽게 끝낼 수 있을 것이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지.

‘그건 내가 해결해야 하겠지만…….’

찬영은 홀랜드의 조언을 떠올리자마자 주위를 둘러봤다.

‘에머리 경이 진입하기 전까지 여길 봉쇄해야 해.’

그것과 동시에 커다란 종이 있는 시계탑을 찾았다.

‘저기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높은 망루처럼 동떨어져 서 있는 시계탑이 보인다.

그 꼭대기에 달린 타종이 홀랜드가 얘기한 게 틀림없다.

‘이곳을 정리한 뒤에 곧바로 가야겠어.’

그다음 목표는 지하 감옥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도중에 찬영의 시야에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아이들이다.

고작해야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녀석들이 물동이부터 온갖 짐들을 짊어지고 다니며 병사들의 종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헉, 헉!”

반쯤 찢어진 상의와 먼지와 물로 흠뻑 젖어 있는 아이들은 비쩍 마른 채로 힘겹게 움직였다.

그런데도 병사들은 아이들을 모질게 대했다.

발로 차고, 소리를 지르고, 더 빨리 움직이라고 강요했다.

“워, 워! 멈춰 주십시오!”

그사이, 말의 앞을 가로막은 일단의 무리가 다가왔다.

찬영은 속으로 이를 갈며 말의 속도를 줄였다.

옆에 말을 멈춘 홀랜드와 눈빛을 빠르게 교환했다.

“어떻게 된 일이십니까?”

십인장이 깍듯하게 물어왔다. 그것으로 대강 예상되는 게 있었다.

‘클린트와 그 친위대의 힘이 막강했나 보군.’

찬영이 분위기를 파악했을 때쯤 십인장 또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친위대 사이에 검은 머리를 가진 자가 있었나?’

그 질문이 의심으로 이어지려던 그때.

찬영이 먼저 말했다.

“아이들부터 풀어 줘.”

“뭐?”

전혀 예상 못한 얘기에 당황한 십인장.

순간 그의 눈빛에 아차 하는 표정이 나타났다.

“늦었어.”

찬영은 이미 병력들의 위치를 파악한 지 오래.

그들은 배치된 병력을 찬영에게 노출시킨 것이다.

지잉!

순식간에 양팔에 덧씌워진 스툼과 헬레.

첫 번째로 헬레에서 녹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츠츠츠!

날아간 녹색 구체가 향한 곳은 망루가 있는 장벽 상층부.

헬레에서 피어오른 독은 반경 15m까지 한참 퍼졌다가 서서히 소멸된다.

웬만한 병사는 순식간에 호흡이 멎을 것이다.

다음은 스툼.

팟!

에어 펀치로 날아간 가속도를 유지한 채 스툼 브레이크를 일으켰다.

레드 스컬의 두개골을 단번에 깼던 강력한 일격을 한낱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펑!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십인장이 저만치 날아갔다.

곁에 있던 병사들의 정적이 감돌았다.

그 순간, 움직인 사람은 단 한 명.

“홀랜드 경!”

찬영의 외침을 듣자 말 옆에 붙어 있던 홀랜드가 재빨리 안장 위로 올라타며 가동 장치로 달렸다.

‘그가 문을 열 거야.’

찬영은 그가 해낼 것이라 믿었다.

샤브레 공주와의 대화로 가장 크게 깨달은 건 신뢰의 중요성이었다.

‘그럼 나는…….’

재정비할 틈을 줄 생각이 없다.

‘아쿤다의 표창.’

표창은 소리 없이 날아가는 암살자와도 같았다.

서걱! 서걱!

적들 몇몇이 표창에 꿰뚫려 쓰러지는 동안 찬영이 달렸다.

“놈을 잡아라!”

사태를 파악한 적들이 소리쳤다.

하지만 뉴 빌드와 관련된 정예 병력은 전부 왕궁이 있는 장벽에 향해 진군하고 있다.

그들이 와도 못 막을 찬영을 약자만을 죽이고, 짓밟으며 살아남길 택한 앞잡이들이 막아설 수 있을 리 없었다.

쐐액! 쐐액!

아슬란을 꺼낼 필요도 없다.

찬영의 눈엔 다가오는 적들 모두가 느리게 보였다.

찬영은 적들에게 중력을 얹어 줬다.

‘그래비티 필드.’

“커헉!”

중력만으로도 다가오던 병사들이 고꾸라지거나 다리가 풀렸다.

그사이 표창은 이미 다른 곳으로 날아가 적들을 쓰러트리는 중이었다.

‘그럼…….’

일대 다수의 전투에서 효율성 높은 새로운 기술을 선보일 차례다.

‘베오 루퍼.’

-베오 루퍼의 영혼이 26.5%가 됩니다. 26.5% 달성으로 인해 피의 장막이 업그레이드됩니다.

영혼 수치 + 10%가 가져온 베오 루퍼의 힘.

그건 또 하나의 도약을 가져왔다.

베오 루퍼(어쌔신)

-33대 루퍼 베오

-피의 장막

-가치 : 5,340

-베오 루퍼와의 영혼 교류로 인해 마나 4,000 소모 시 피의 장막이 깃듭니다.

-5분 동안 화상, 동상, 감전, 석화 피해에 면역이 되고 물속에서 자유롭게 숨 쉴 수 있습니다.

-피의 장막의 반경은 3m이며, 반경 안에 접근하는 상대의 이동속도가 50% 감소됩니다.

피의 장막? 아니다.

물론 그것 역시 반경 1m가 늘어났고 마나 소모가 적어져서 효율성이 높아지긴 했다.

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성과에 불과하다.

진짜 성과는 이것이었다.

-피의 탄환

-손가락 끝에 들끓는 야성의 피와 마나의 결합이 탄환을 구현해 냅니다.

-1발당, 450의 마나 소모와 소량의 피가 증발됩니다.

(단, 몸속의 피가 전부 증발될 경우 사용 불가능)

츠츠츠!

어느새 찬영의 양손에 붉은 피가 맺혔다.

그 피는 손가락 끝에 오라처럼 생성되어 맹렬히 휘돌았다.

‘아직 제대로 훈련해 본 적 없어 제어력은 떨어지지만…….’

그래비티 필드로 인해 정지되어 있는 적들에겐 정확히 발사시킬 수 있다.

‘지금.’

쐐애액!

첫 번째 탄환들이 쏘아졌다.

열 개의 핏방울이 손톱만 한 크기의 구체가 되어 쓰러져 있는 병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큭.”

동시에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그들은 모두 정수리에 작은 점 같은 상처만 남기고 사라졌다.

찬영이 지나쳤을 때 다시 일어서는 병사는 없었다.

‘속도를 더 높인다!’

주변이 정리된 걸 확인하자마자 찬영은 시계탑으로 달렸다.

적들도 이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놈이 시계탑으로 간다!”

“종을 먼저 울려야 돼!”

병사들이 달려오는 찬영을 막기 위해 급히 방패를 들고 달려왔다.

척! 척!

순간 찬영의 눈동자에 이채가 흘렀다. 적들에게 가까이 접근할수록 적들이 긴장하는 게 눈에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면 자신을 향해 덮쳐들 생각이리라.

탁!

자신이 허공을 격할 줄은 몰랐겠지만.

쐐애애액!

찬영은 허공을 밟고 날아올랐다.

아니, 허공을 계단처럼 연달아 밟았다.

화르륵!

염왕초혼심법을 근간으로 한 진공나찰보는 어느새 숙련도 70%에 도달해 있다.

이때까지 오는 동안 많은 경험과 훈련이 있었다.

이젠 그 모든 게 이 걸음걸음에 녹아들어 있다.

마나의 제어, 걸음을 내딛는 타이밍, 동작의 자유로운 조절까지 전부 다 능숙해졌다.

“뭐, 뭐야!”

방패를 들고 있는 적들이 너무 놀라 방패를 손에서 놓아 버렸다.

“나, 날고 있잖아?”

“미친. 그게 아니야. 하늘을 거, 걷고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찬영은 인간의 탈을 쓴 다른 세상의 존재였다.

“화, 활을 쏴!”

병사들이 방패를 던지고 황급히 활을 겨누려 하던 그때.

찬영의 양손에 피의 탄환이 맺혀 있었다.

훨씬 정교하고 날카롭게…….

솨아!

마치 비가 내리듯 피의 탄환 수십 발이 연달아 찬영의 손을 타고 병사들에게 쏟아졌다.

털썩털썩!

한데, 그 순간 찬영의 시선은 쓰러지는 적들이 아닌 시계탑 부근으로 향했다.

‘분명히 들렸다.’

활시위를 당기는 소리가……!

예민해진 감각이 감지한 위험에 찬영은 본능적으로 차폐를 펼쳤다.

코앞에 화살 한 대가 날아온 것도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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