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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70화 (170/248)

# 170

170화

“이건……?”

홀랜드는 바람을 따라 불어온 연기가 어디서 불어왔는지, 금방 예상해 냈다.

그곳은 바로 자신의 마을이다.

“느낌이 좋지 않군. 함께 가고 싶지만 상황이 좋지 못한 것 같소.”

“그런 것 같군요. 함께 가시죠. 제가 미력하나 도움이 될 겁니다.”

그의 표정만 봐도 이 탄 냄새가 어디서 불어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근거지가 위험한 거구나.’

그 생각과 동시에 홀랜드가 말했다.

“아니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가급적이면 따라오지 말고 다른 길로 가시오. 어딜 가도 위험하겠지만…….”

“새겨듣죠.”

“정말 새겨들어야 할 거요. 날 만난 게 일생일대의 행운을 빚진 거라고 생각하시고.”

찬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음 대답이 들려오진 않았다. 마음이 급한 건지, 홀랜드는 대답을 듣지 않고 벌써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찬영은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

* * *

찬영을 뒤로한 채 홀랜드는 사력을 다해 달렸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주저 없이 스쳐 지나가며 신속히 이동했다.

타탁!

그는 샤우트 숲의 모든 것을 알았다.

나무, 숲길, 꽃, 약초, 독초 등 모르는 게 없다.

지름길까지 모두……!

달리던 홀랜드가 갑자기 언덕 밑으로 몸을 굴려 진입했다.

쌔애액!

한 바퀴 구르며 몸을 박차듯 일어난 홀랜드가 수풀을 헤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그의 앞으로 펼쳐진 언덕이 보였다. 홀랜드는 그 길을 따라 미끄러져 달렸다.

‘탄내가 강해지고 있다.’

홀랜드의 표정은 점차 굳었다.

‘양의 창자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건가?’

일명, 양의 창자.

워낙 구불구불한 언덕이 많아 넓은 지대를 한 번에 볼 수 없고, 숲이 미로처럼 갈래길이 많아 붙여진 별명이기도 했다.

‘클린트인가?’

그럴 가능성도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는 언제든 여길 쑥대밭으로 만들 세력이 있다.

그런 생각에 이른 그때.

사박!

주변에서 들려온 소리에 홀랜드가 급히 달리는 걸 멈추고 세워져 있는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홀랜드는 활시위에 두 발의 화살을 걸기 시작하며, 슬쩍 나무 사이로 기척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누구냐.’

그러자 북동쪽 수풀이 가볍게 흔들리고 그 속에서 단단한 등껍질을 가진 몬스터가 네 발로 걸어 나왔다.

그런데 한 마리가 아니다.

그 옆으로 점차 몬스터의 숫자가 늘어났다.

‘……놈들이군.’

홀랜드는 인상을 썼다. 아는 녀석들이다.

‘모피오스!’

성가신 몬스터다.

닭의 얼굴을 가진 녀석들은 벼슬 같이 생긴 것으로 서로 소통을 하고, 빠른 이동속도를 바탕으로 집단 사냥을 하듯이 싸운다.

단단한 등껍질로 방어를 하고, 견고한 부리는 웬만한 철제 무기는 단칼에 베어 버릴 만큼 강도가 높으며 입에서 마비 산까지 뿜어낸다.

녀석들에게 온몸이 찢어발겨져 먹혀 버린 동료가 한둘이 아니다.

‘하필 이런 때에……!’

홀랜드는 마음을 다스렸다.

사실 이 일대는 모피오스의 영역이다.

놈들과의 사투는 이곳에 살면서 꽤 오래 지속되었지만, 놈들은 정말 끊임없이 나타났다.

찬영과 조우한 이유도 녀석들의 동태를 살피다 그런 거였다. 녀석들로 인해 싸우지 않고서는 터전을 지킬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곳엔 연못이 있고 다양한 야생 과일 나무들이 자란다.

장벽 밖에서 생존하려면 이곳이 최선이다. 그러나 그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오늘 따라 곤욕스럽다.

‘마을의 상황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는 판국에 놈들까지 데리고 진입할 순 없어.’

선택을 해야 했다.

‘녀석들 역시 연기를 맡고 스멀스멀 이곳까지 몰려온 것이겠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몬스터가 몰려올지 장담할 수 없다.

같은 종인 모피오스는 서로 소통하며 몰려들 것이다.

스륵!

홀랜드는 자신의 활을 부드럽게 쥐었다.

오랫동안 사용한 활, 라이니…….

수많은 싸움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장궁이다.

홀랜드는 걸어 둔 활시위를 힐끗 내려 봤다.

‘남은 화살은 열세 발 정도.’

열세 발 안에 여섯 마리로 확인된 모피오스의 생명을 끊어 놔야 한다.

‘최대 두 발이야.’

늘 해본 싸움이지만 홀랜드는 방심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흥분하면 그 감정은 활에 그대로 전해지고, 흔들림을 가져올 것이다.

‘늘 하던 대로.’

잠시 무슨 상황에 놓인 건지 잊어 두고 움직여야 한다.

오로지 이 전투에만 집중하고…….

‘지금!’

비장함을 마음에 새긴 홀랜드가 등진 나무를 휘감듯이 회전하며 활시위를 강하게 당겼다.

그다음 순간.

뎅.

당겨져 있던 활시위가 빠르게 힘을 잃었다.

화살이 날아가서가 아니었다. 화살을 쏘려다가 못 쏜 것이었다.

이미 모든 모피오스가 검에 베여 나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

비장함으로 굳어 있던 홀랜드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섰다.

홀랜드는 한동안 죽어 있는 모피오스와 찬영을 번갈아 쳐다봤다.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다.

여섯 마리나 되는 모피오스가 단 한 사람에 의해 순식간에 학살됐다.

심지어 놈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도 못 들었고,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단숨에 처리했다!’

홀랜드는 가까이 다가가 모피오스의 시신들을 살폈다.

‘생각대로야.’

녀석들은 기습을 당한 것도 모자라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렸다.

놈들의 가죽이 웬만한 검으로도 베이지 않는 수준이란 걸 고려해 봤을 때…….

‘오라. 그것도 아주 강력한 수준의……!’

눈을 부릅뜬 홀랜드가 우두커니 서 있는 찬영을 쳐다봤다.

마주한 찬영은 으쓱해하거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하고 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을 해 낸 것처럼 무척 담담했다.

그러면서 별일 아닌 양 태연하게 물었다.

“괜찮습니까?”

“그, 그렇소.”

당황한 홀랜드를 빤히 바라보던 찬영이 자리를 벗어나기 전 다시 입을 열었다.

“가시죠. 그리고…….”

그가 홀랜드의 어깨를 스쳐 지나가면서 말을 이었다.

“빚은 갚은 걸로 해 두죠.”

그다음 순간 홀랜드의 표정에 머쓱함이 실렸다. 순식간에 여섯 마리의 모피오스를 처단할 실력자 앞에서 행운이라는 둥의 이야기한 것이 생각난 것이다.

홀랜드가 찬영을 따라붙으며 물었다.

“왜 말하지 않았소?”

“무엇을요?”

“오라를 사용하는 실력자란 걸 말이오. 아니지, 대체 당신…… 정체가 무엇이오?”

“미리 얘기했다면 뭐가 달라집니까?”

찬영이 정말 의아하단 표정으로 물었다.

선의의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고,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건 자신이 어떤 힘을 가졌건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러니 그저 아까와 달라진 건 홀랜드가 자신을 바라보는 생각뿐이다.

이를 느낀 홀랜드 역시 다시 한 번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워낙 맞는 말만 골라 하는 터라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는 바가 없었던 것이다.

“하긴, 그대가 일부러 숨긴 것도 아니지. 내가 스스로 재단하고 판단했을 뿐이니까.”

홀랜드가 방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찬영의 말에 금방 수긍했다.

지켜보던 찬영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생각이 꽤 유연한 사람이군.’

잠깐 봤지만 이 대답으로 인해 그가 어떤 사람일지 어느 정도 느껴지는 바는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뒤를 돌아보고, 틀린 걸 인정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사과하겠소, 그런 부분은.”

“괜찮습니다. 무례하지 않으셨고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보다…….”

찬영이 바람을 타고 흘러나오는 연기를 힐끗,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서두르시죠.”

홀랜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점점 마을에 다가갈수록 불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 * *

“맙소사……!”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 것일까?

홀랜드는 나직이 중얼거리면서 마을 요새로 빠르게 달려갔다.

잿더미가 된 목책을 지나 요새 안으로 진입한 두 사람. 그들의 눈앞엔 그야말로 생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흑흑!”

“크으…….”

“여기에요! 제발, 여기 좀 도와주세요!”

엄마 잃은 아이의 울음소리와 다친 사람이 가득했고, 가죽 갑옷을 입은 전사들이 죽어 있거나 큰 부상을 입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홀랜드는 불타고 있는 요새를 가로질러 쓰러져 있는 한 동료의 곁에 빠르게 다가갔다.

“스할!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스할이라 불린 드워프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홀랜드를 맞이했다.

허리를 다친 건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한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홀랜드가 내민 손을 콱 붙잡았다.

“호, 홀랜……드.”

“그래, 나 여기 있네.”

“모피오스, 무리의 동……향은?”

“큰 변화는 없었네.”

홀랜드가 자리를 비운 건 모피오스 영역을 탐색하기 위해서였었다.

그런데 그동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다……행이로군……. 크윽!”

“이제 그만 말하게.”

“후우, 후우! 아니야, 이미 큰 부상을 입었고 썩 나아질 모양새는 아닐세. 큭큭, 잘됐지. 쿨럭, 볼썽사납게 죽을 바엔 긍지 있게 싸우다 죽는 것이 낫지, 않겠나?”

“그만 말하래도……. 정말 자네, 더럽게 말 안 듣는군.”

스할은 대답 대신 가볍게 미소 지은 후 희미한 눈빛에 힘을 줬다.

“클린트 무리가 왔었네.”

“젠장!”

언제나 예상한 일이다.

놈은 비커의 유일한 저항군이 군집되고 있는 샤우트 숲을 늘 주시하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렇게 쉽게 뚫렸을 리가 없다.

“늘 이 날을 준비해 왔는데!”

“끄으…… 그랬지.”

대답한 스할의 허리춤에선 피가 흘러내렸다.

“이런, 안 되겠어. 정말 그만 말하게.”

홀랜드가 자신의 옷소매를 찢어 스할의 허리춤을 막았다.

그러자 스할이 홀랜드의 손을 콱 잡았다.

“문이 뚫렸지만 트랩이 하나도 발동되지 않았네. 은밀히 진입한 거야. 그 후 일제히 들이닥쳐 워커들을 학살했네. 그 다음 그녀를 데려갔어.”

“그녀를?”

“그렇다네…….”

“결국 녀석들이 그녀의 흔적을 쫓아온 모양이군.”

“막을 수 없었네.”

“괜찮아, 자네 잘못이 아니야.”

“고맙……네. 후우, 후우!”

스할의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홀랜드는 그가 더 얘기하지 않았으면 했지만 스할은 멈추지 않고 얘기를 계속 꺼냈다.

“아직 중요한 얘기가 더 있어.”

“우리의 방어선을 어떻게 쉽게 뚫었느냐는 거겠지.”

“맞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건가?”

“나중에 안 거지만, 그들은 투명해질 수 있는 힘을 개발했네. 투명한 채로 오래 버틸 수 있다고 하더군……. 우리는 그들의 습격에 속수무책이었네. 쿨럭!”

기어코 피를 토한 스할이 지친 눈을 들었다.

“돌아가신 형님이 아른거리는군, 껄껄!”

“스할…….”

“슬퍼하지 말게. 산 자는 앞을 봐야지, 뒤를 돌아보면 안 돼. 자네는 계속 걸어가야 할 자, 크라이 워커 아닌가……?”

그게 끝이었다. 더 이상 스할은 입을 열지 못했다.

그가 만든 침묵 속에서 홀랜드는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했다.

‘여신이시여……!’

그리고 다시 일어섰을 때 홀랜드는 눈빛에서 슬픔을 지웠다.

울고 지쳐 있을 때가 아니었다.

스할의 말처럼 수습하고 다시 나아가야 했다.

“내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였소.”

홀랜드가 곁에 서 있는 찬영에게 말했다.

“유감입니다.”

찬영은 죽어 있는 스할을 내려다봤다. 스할의 죽음은 이규복의 죽음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그런 중에 홀랜드의 곁으로 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한 여자가 다가왔다.

“홀랜드.”

“에머리 경……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아요. 그보다…….”

에머리가 흘러내린 금발을 머리 위로 쓸어 올리며 죽어 있는 스할을 내려다봤다.

“너무 많은 이가 죽었어요.”

“예…….”

고개를 끄덕인 홀랜드가 찬영을 쳐다봤다.

“인사드리시오. 이분은 한때 비커를 지키던 십안의 기사단…… 그곳의 부단장을 맡으셨던 에머리 경이시오. 지금은 우리 크라이 워커들을 이끌고 계시지.”

“처음 뵙겠습니다.”

찬영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에머리 경이 찬영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물었다.

“어떻게 이곳까지 오시게 된 거죠?”

찬영 대신 홀랜드가 대답했다.

“정찰 중에 조우했습니다.”

“아뇨, 그 전을 묻는 겁니다.”

에머리 경의 말에 찬영은 침묵을 끝내기로 판단했다.

수도로 잠입하려면 이들과 협력해야 한다.

적어도 적아를 구분할 정도의 정보는 얻었으니…….

찬영은 동공 위를 덮고 있던 렌즈를 해제했다.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찬영의 눈동자가 묘한 빛을 발하며, 에머리 경을 향했다.

“통곡의 산맥을 건너왔습니다.”

더 이상 이 이야기는 홀랜드에게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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