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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67화 (167/248)

# 167

167화

찬영은 카멜로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목청이 워낙 커서 평소 말소리조차 쩌렁쩌렁한 카멜로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소. 벼락을 몰고 온 ‘우스’ 라는 괴물에 관한 이야기지.”

“우스?”

찬영의 반문에 고개를 끄덕인 카멜로의 눈이 반짝였다.

“우스는 벼락을 몰고 다니며 많은 종족의 죽음을 빼앗았다고 하오. 그의 뿔은 벼락을 불렀고, 그 벼락은 모든 걸 소멸시켰다고 하지.”

그 얘기를 듣고 난 뒤 찬영은 우스 동력기가 왜 우스라는 이름을 띄고 있는지 점점 궁금해졌다.

“그 우스라는 신화 속의 괴물과 이 동력기 사이에 어떤 연결점이 있는 겁니까?”

“최초의 우스 동력기를 개발한 것이 바로 그 우스를 상대하기 위한 무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해가 되겠소?”

“우스를 상대할 무기……?”

“그렇소.”

카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우스 동력기를 떨리는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대륙의 모든 시대를 통틀어 최고라 불린 드워프이자 불의 손을 지니고 계셨던 ‘케노’라는 분이 있었소. 그분은 우스에게 가족을 잃었지. 그러자 이를 안타깝게 여기신 여신께선 그분께 별의 일부를 선물했다고 하오.”

“별의 일부…….”

우연일까?

혹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찬영은 문득 별들의 속삭임이 떠올랐다.

‘정령계는 별의 힘에 지탱된다고 했었지.’

한 세계를 지탱하는 힘, 그 힘의 일부가 이 광석이라는 걸까?

‘그럴지도 몰라.’

겉만 보고 단순한 철일 거라 생각했는데, 카멜로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우스 동력기에 숨겨진 힘이 있을지 모른단 생각이 든다.

“알데바란.”

카멜로가 우스 동력기의 겉을 이루고 있는 정사각형 테두리를 매만지면서 힘 있게 덧붙였다.

의사소통 팔찌로 인해 드워프의 말도 알아들을 수 있었던 찬영은 조용히 그 단어를 되새겼다.

“가장 큰 별이란 뜻이군요.”

“맞소.”

고개를 끄덕인 카멜로가 마치 눈앞에 그 광경이 펼쳐진 것처럼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분은 여신의 신탁이 내려진 광야 위에서 알데바란을 제련해 갔소. 그분의 목적은 하나였지.”

“우스의 죽음이었을 테죠.”

“맞소. 하나, 단신으로 그 거대한 괴물을 상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오.”

“동료가 필요했겠습니다.”

“그랬다고 하오. 케노께서는 자격을 갖춘 자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대륙을 횡단하고 다니셨소. 험준한 산맥도, 거대한 바다도 그분의 뜻을 막을 순 없었다고 하지.”

“그래서 몇 명이나 모였습니까?”

“단, 한 명이었소.”

“한 명?”

수십 수백도 수천도 아니고 단 한 명이란다. 적어도 열댓 명의 용사를 생각했던 찬영에게 한 명이란 숫자는 꽤나 의외였다.

“강력한 괴물이라 단신으로 잡긴 힘들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한 명만 모였다면 그래 봐야 두 명이 전부일 텐데요?”

“두 명도 아니라오. 실질적인 전투원은 케노 님을 제외한 한 명뿐이었지. 케노 님은 알데바란을 통해 무기를 완성하신 직후 수명을 다하셨거든.”

한 명이라고?

“그게 누굽니까?”

찬영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갓피스이자 대륙 위에 단 세 개만 존재하는 우스 동력기 중 하나의 주인인 마법 공학자, 데미아였소.”

그 얘기를 들은 찬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들어 본 이름이야.’

이전의 기억들이 하나둘, 생생하게 기억났다.

-데미아가 제작한 여왕의 총체

모든 전투에 함께했던 비행체,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방향 전환과 비행이 가능한 기체를 어떻게 잊을까?

우연한 기회로 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던 것처럼, 돌고 돌아 데미아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된 찬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데미아 역시 갓피스였다니.’

카멜로가 놀라워하는 찬영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데미아에 대해 뭔가 아는 것이 있소?”

“한때 제가 사용하던 장비가…… 그가 제작했던 장비였습니다.”

“정말이오? 지금 가지고 있소?”

화색이 도는 그에게 찬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아…… 아쉽군. 마법 공학자 데미아의 제작품은 케노께서 만드신 장비와도 비견되었단 얘기가 있었는데.”

카멜로는 입맛을 다시면서 아쉬워하다가 장비의 획득 과정을 물었다.

“그나저나 대체 그 희귀한 고대의 유물을 어디서 얻었단 말이오?”

“얻었다기보다는 각성자들에게 주어진 신의 선물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각성자란 존재들은 알면 알수록 놀랍구려. 그래서 그 장비는 이제 가지고 있지 않을 거요?”

“예, 다른 장비가 되어 버렸죠.”

찬영은 그가 이해하기 쉽게 ‘합성’에 관해 얘기해 줬다.

가만히 설명을 듣던 카멜로가 와락 인상을 썼다.

“굉장히 복잡하군.”

그다지 그런 것 같진 않지만 그가 그렇다니, 찬영은 잠자코 미소 짓는 것으로 설명을 마쳤다.

어차피 지금은 데미아의 제작 장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데미아가 가졌었던 우스 동력기에 관한 얘기가 메인이었다.

“그래서 데미아는 우스라는 괴물을 쓰러뜨렸습니까?”

“그렇소, 육지였던 장소가 대륙과 분리되고, 물속에 잠겨 섬이 되어 버릴 만큼 강력한 전투가 벌어진 끝에 말이야.”

“대체 그 무기가 뭐였기에…….”

카멜로는 고개를 저었다.

“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소만, 그저 어마어마한 무기였을 거라는 것만 짐작하고 있다오.”

“그렇군요…….”

“하지만 그 무기의 핵심 장치가 우스 동력기였다는 건 오랫동안 드워프들 사이에서 전해져 온 유명한 이야기라오. 어떤 형태를 띠고 있었는지, 어떤 원리로 힘을 일으키는지에 관해서도 워낙 구체적으로 전해지고 있지.”

“그래서 이걸 보자마자 알아보신 거군요.”

“그렇소, 사실 실존했다는 건 믿었으나 내 생애에 이걸 마주할 줄은 몰랐다오. 내 아버지의 아버지도 이것을 마주해 보는 게 소원이셨지.”

찬영은 그 대답을 듣고 나자 그가 왜 이렇게 흥분했는지 충분히 납득했다.

하긴, 신화 속에서 전해져 내려온 전설의 부품이 눈앞에 있는데…….

‘놀라는 게 당연하겠지. 그것도 대륙에 세 개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더욱 더.’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찬영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한데, 세 개의 동력기가 존재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소. 한 개는 데미아와 케노 님이 공동 제작한 무기가 됐고 남은 두 개 중 한 개는 이곳에. 그리고 한 개의 행방은 당연히 모르오. 전해지는 얘기에 의하면…….”

“의하면?”

“한 갓피스가 케노 님의 숨겨진 무덤을 파헤쳐 그걸 가져갔다고 하는 얘기가 있소. 물론 그저 지나간 이야기일 뿐, 그렇게 잊힌 것이지.”

“그렇군요. 그럼 무기에 대한 행방은 전해지는 얘기가 없습니까?”

“데미아와 함께 사라졌다는 얘기만이 전해질 뿐이라오. 누구도 그 흔적을 찾진 못했지.”

“그럼 우리에게 남은 건 이 우스 동력기 하나뿐이로군요.”

“맞소, 사실 기적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대체 어떻게 얻게 되었소?”

“한 몬스터를 죽였습니다. 죽이자마자 놈이 우스 동력기를 뱉었죠.”

심비는 단순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이제껏 싸워 온 어떤 괴수보다 강력했다.

글라투와 비견되거나 혹은 그 이상이었다.

다행히 놈은 죽었고, 자신은 살아남았지만……. 어쨌든.

“녀석이 뱉어 낸 게 이렇게 대단한 물건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본래 대단한 보물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에게는 흔한 돌과 다름이 없는 거라오. 하지만 그대는 운이 좋았소.”

자화자찬이 몸에 배어 있는 게 드워프라는 종족이라는 걸, 대화를 나눌수록 슬슬 알 것 같은 찬영이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카멜로가 없는 말을 하는 게 아니기도 했다.

드워프의 제작 실력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했다.

거기에다 시스템도 말했었다.

크루 일족의 족장은 대륙 10대 대장장이과 호각을 겨룰 존재였다고 말이다.

그게 맞는다면 카멜로의 말대로 자신은 운이 좋았다.

“그런 것 같습니다. 가지고 있어 봐야 이 물건들의 능력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랬겠지. 하나 걱정 마시오. 약속한 대로 그대가 원한다면 크루 일족의 족장, 나 카멜로가 이 물건들을 크게 쓰겠소. 자, 무엇을 원하시오?”

찬영은 곰곰이 생각했다.

‘내게 뭐가 필요할까?’

수많은 무기들이 스쳤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장비들이 인벤토리에 가득하고, 그것들의 숙련도를 높이는 훈련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할 지경이다.

그래서일까?

찬영은 한때 소유했던 여왕의 총체까지 떠올랐다.

‘비행이라…….’

만약 아직도 여왕의 총체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기동성이 훨씬 더 확보되었을 것이다.

‘바다, 지상, 산맥 가리지 않고 넘나들었겠지.’

당시엔 여왕의 총체를 포기하는 게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믿었고 지금까지 그건 옳은 선택이었다.

‘그 선택의 선택이 지금의 상황을 있게 만든 거니까.’

그래,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다양한 기동성이 확보됐으면 좋겠는 건 사실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체력이나 마나 소모 없이 적진에 침투하거나, 적을 추격하는 등의 일들이 훨씬 수월해질 테니까.

“날개를 제작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뭐라고 하셨소? 날개?”

“예, 날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굳이 날개의 형태가 아니어도 됩니다. 하지만 비행이 가능한 장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다음 순간 카멜로가 조금 당황스러워했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을까?

아니었던 거 같다.

그 얘길 듣고 카멜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카멜로 씨?”

한 번 더 그를 부르고서야 카멜로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있는지는 아직 확답할 수 없을 것 같소. 나 역시 처음 다뤄 보는 물건들이라 연구가 필요하오. 제작은 그다음 일이지.”

“알겠습니다. 다른 지원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필요 없소. 적당한 터를 찾으면 공방을 열 것이오. 살아 돌아간 적들은 내가 검은 별을 제작할 때, 사용하던 도구들까지 가져가진 못했으니까. 다만…….”

카멜로가 꽤나 질긴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끝을 흐렸다.

“왜 그러십니까?”

찬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그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찬영에게 말했다.

“시간이 꽤 걸릴 수도 있소.”

“제 생각엔 인력도 필요할 것 같은데…… 아닙니까?”

“공학자를 말하는 것이요?”

“예, 아무래도 끊임없이 마나를 공급해야 하는 동력기도 그렇고…….”

찬영은 동시에 심비 하트를 내려다봤다.

네모나게 생긴 심비 하트는,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보석 같은 물질이 겉을 이루고 있었고 그 속에 마치 핏줄이 투영된 살갗 덩어리처럼 보이는 물체가 꿀렁였다.

물체 주변엔 핏줄처럼 보이는 얇은 실선들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심장 주변에 박동하는 혈관과도 같았다. 그것들은 심장이 맥동하듯 끊임없이 굵어졌다 얇아지기를 반복했다.

“이것 역시 다루기 쉽지 않으실 테니까요. 그러니 다른 마법 공학자들의 도움을 받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카멜로가 찬영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군. 하긴, 드워프가 아니니 모를 수밖에 없는 건가.”

“예?”

무슨 소리인가 싶어 찬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린 케노 님의 마지막 남은 유일한 명맥으로 이어져 온 부족이었소. 그리고 명맥은 아무 것도 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게 아니지.”

“그럼……?”

“케노 님이 남기신 일기의 일부도 함께 내려오고 있소. 그 일기는 많은 제작도를 포함했고, 나아가 그분과 함께해 온 데미아의 저서 일부도 첨부되어 있었다오. 그 모든 것들은 족장의 손재주를 통해 전승됐지.”

“마법 공학에도 일가견이 있으셨군요.”

“그렇소, 선조들의 지혜가 나와 함께 하고 있으니……. 난 대륙에서 어떤 공학자보다 뛰어날 것이오. 자부할 수 있소.”

“예, 믿겠습니다.”

찬영은 기꺼이 그를 신뢰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두 가지 아이템을 원하는 형태로 제작해 줄 수 있는 이를 찾는 건 사실상, 쉽지 않았고 그럴 만한 시간도 없었다.

“부탁드리죠.”

“시간은 얼마나 내줄 수 있소?”

마감 기한을 묻는 거였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만 완성만 된다면야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습니다.”

“알겠소. 최선을 다하리다.”

카멜로에게 이 약속은 어느 때보다 귀중한 약속이었다.

소원을 들어준 여신에 대한 보답이면서 동시에 갓피스에게 거는 희망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속죄였다.

‘……반드시, 검은 별을 능가하는 장비로 만들 것이다.’

자신이 제작한 파괴의 무기가 세상을 불바다로 만드는 꼴을 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꼭 약속하겠소.”

“기대하겠습니다.”

대답한 찬영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대화가 끝나고 나니, 확실히 느껴진 것이다.

떠나기 전 해야 할 일이 얼마 남지 않았단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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