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164화
-히든 퀘스트 발생
-히든 퀘스트 : 크루 일족의 명맥을 지켜라
-크루 일족은 드워프 일족 중 가장 제련에 뛰어난 일족이며 그 일족의 족장은 대륙 10대 대장장이와 무기 제작술에 있어서 호각을 다툰다고 합니다.
살아남은 일족은 단 둘, 족장 카멜로와 그의 딸 키썬입니다. 키썬의 목숨을 구할 약초를 구하세요.
-퀘스트 완료 조건
-세번째 차원 다리통과
-세 번째 차원 다리에 있는 리젤초를 구하라.
-히든 퀘스트 완료 시 획득할 보상 목록 :
-카멜로의 존경심+100
-카멜로의 임의 보상
갑자기 나타난 창을 들여다본 직후 찬영은 생각에 잠겼다. 카멜로의 딸인 키썬을 구해야 하는 일이기에 나선 것인데, 그게 히든 퀘스트와 접점을 이룰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도타에게 리젤초의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게 이 히든 퀘스트의 발생 조건이었던 건가.’
틀림없다.
“차원 다리로 가야겠습니다.”
“갑자기? 그의 딸에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소. 약초부터 구해야…….”
“그게 그녀를 구하는 길입니다.”
딱 잘라 말한 찬영은 글로리에게 자신이 받은 히든 퀘스트에 관해 말해 주었다.
그제야 글로리도 찬영의 의중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그럼 이제?”
“예, 그곳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대답을 하긴 했으나 찬영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차원 다리에 뭐가 있을지 아직 확언할 수 없어.’
위험한 길이 될 수도 있다.
이전에 싸웠던 글라투에 버금가는 존재가 세 번째 차원 다리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혼자 들어가겠습니다.”
“안 되오. 르리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모를까, 차원 다리는 전혀 다른 문제이지 않소?”
이미 글라투와의 힘든 격전을 치루고 르리에를 수호했던 글로리다.
그의 걱정은 당연했다.
“차라리 로레인과 제이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 어떻겠소? 그들 역시 갓피스가 아니오?”
“안 됩니다.”
“어째서?”
“그건…….”
말끝을 흐린 채 서 있던 찬영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함께 가고 싶지 않습니다.”
순간 글로리는 엄습하는 불안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건 그의 직감 같은 거였다.
“설마…….”
찬영이 불쑥 글로리 앞에 다가왔다.
동시에 글로리의 등 뒤에 르리에로 돌아가는 나무 문이 소환됐다.
지잉!
찬영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미 결정한 일이다.
글로리가 찬영의 팔을 탁 잡았다.
“안 돼!”
“미안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찬영이 글로리를 문 안으로 던졌다.
“찬영!”
글로리의 고함이 터져 나온 다음 순간, 대륙으로 향하는 문이 닫혔다.
* * *
-음모오오…….
타우린이 눈치를 봤다.
찬영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타우린도 놀란 것이다.
찬영은 부드럽게 타우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쩔 수 없었어.”
아니, 사실 도움을 받아야 했다.
무슨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어떤 적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새로운 차원 다리에서 글로리를 돌려보낸 건 멍청한 짓이다.
오히려 제이나도 부르고 로레인에게도 부탁했어야 했다.
머리로는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찬영은 누군가가 또 죽는 걸 지켜볼 자신이 없다. 이기적인 결정이지만 이규복의 죽음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걸 떨쳐 낼 수가 없다.
-음모오.
타우린이 큰 눈망울을 굴렸다. 한동안 타우린을 바라보던 찬영이 도타를 쳐다봤다.
“도타.”
“딱. 예, 주인님.”
“타우린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전해 줘요.”
도타는 부탁한 대로 했고 그러자…….
쿵쿵.
타우린이 발을 구르며 콧김을 뿜었다.
“딱, 타우린 님께서 위험하다고 하십니다. 딱, 함께 가야 한다고 합니다.”
타우린도 알고 있는 것이다. 차원 다리에 위험한 존재가 있음에도, 찬영은 혼자 가려고 한다는 걸…….
“안 된다고 말해 줘요. 모두가 위험해질 바엔 혼자가 낫다고.”
“딱, 딱. 그럴 수 없습니다. 타우린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주인님. 딱, 딱.”
찬영은 놀랐다.
도타가 이렇게 감정 표현을 한 적이 있었던가? 모든 일을 감정 없이 수행해왔던 그였기에 더욱 놀랐다.
“도타…….”
“딱, 딱, 위험합니다. 딱, 딱. 주인님을 지켜야 하는 것도 농장 일의 일부입니다.”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러나 고마움을 느낀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진 않는다.
“알아요. 알지만…….”
찬영이 한 걸음 물러나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아닙니다.”
확실히 얘길 꺼낸 찬영이 걸음을 돌렸다. 타우린이 계속 뒤를 따르려 하자, 찬영이 타우린에게 소리쳤다.
“오지 마!”
타우린의 큰 눈망울이 흔들렸다.
“그게 지금 네게 원하는 거야.”
싸늘해진 정적을 뒤로 한 채, 찬영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타우린이 도타를 한 번 쳐다본 후 다시 따라가려 한 그 순간.
“딱, 딱.”
도타가 타우린을 잡으며 이를 부딪쳤다.
* * *
-현 시간부로 세 번째 차원 다리에 진입하셨습니다. 세 번째 차원 다리는 정령계로 통하는 다리입니다.
-봉인되어 있던 정령계가 들썩이기 시작합니다.
-리젤초는 정령왕의 옥좌에 옥좌에 도착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세계에 입장하자마자 시작된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창’.
-히든 퀘스트 발생
-히든 퀘스트 : 정령의 시험을 통과하라
-정령왕의 옥좌에는 봉인된 정령들이 낸 시험을 통과해야만 다가갈 수 있습니다.
-퀘스트 완료 조건
-정령의 시험 통과
-생존
?히든 퀘스트 완료 시 획득할 보상 목록
-정령왕의 표식
-별들의 속삭임
-네 번째 차원 다리 등장(단, 개방도가 100%가 되어야 통과 가능)
창을 읽어 가던 찬영은 문득 주위 환경에 의해 갑작스러운 전율을 느꼈다.
낯선 세상에 들어온 느낌이 온몸을 순식간에 휩쓴 것 같다.
‘대체, 여긴…….’
뭉게뭉게 피어오른 흰 구름이 지상을 대신하고, 거대한 어둠이 구름 밖을 뒤덮고 있는 세계.
어둠의 중심을 가로질러 있는 하얀 구름다리는 계단처럼 저 멀리, 아득한 공간으로 향해 있다.
‘정령계라…….’
땅의 정령인 타우린과 관련이 있는 곳일까?
‘아마도 맞겠지’
어쩌면 이곳이 타우린의 고향일지도 모른다.
그가 시작된 탄생의 시초…….
‘가 보면 알겠지.’
찬영은 그 끝이 어딘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는 다리 위를 올려다봤다.
수백, 수천의 구름 계단이 거대한 탑처럼 솟아 있다.
저곳을 올라가야 한다.
‘막연하군.’
목적이 없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분명한 게 하나 있었다.
그건 이 낯선 세계의 끝이 정령왕의 옥좌로 이뤄졌다는 것과 그 옥좌에 반드시 이르러야만 한다는 것이다.
‘두 개의 히든 퀘스트가 향하는 곳이 정령왕의 옥좌니까.’
옥좌는 분명히 있다.
없다면 시스템이 찾으라고 말할 리가 없다.
찬영은 걸음을 옮겼다.
물론 ‘생존’이 퀘스트 완료 조건이란 것만 봐도 쉬운 길은 아닐 것이다.
‘정령의 시험이란 게 날 조여 오겠지.’
그래, 그럴 것이다. 하지만 주저할 수는 없었다.
‘정령의 시험이 뭐든 간에, 난 옥좌로 가야만 한다.’
옥좌에 도착한다면 한 생명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별들의 속삭임을 통해 모든 싸움이 시작된 근원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비밀을 알게 될 거야.’
아니, 반드시 알아내야만 했다. 어쩌면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낼 방법이 그 속삭임 안에 있을 지도 모르니까…….
* * *
찬영은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듯 구름 계단은 똑같았고 자신은 앞을 향해 걷고만 있었다.
다만 아까와 다른 게 몇 가지 있었다. 아득해 보이는 앞길만큼, 달려온 길 역시 아득하다는 것, 그리고…….
-돌아가.
-돌아가.
-넌 자격이 없어.
-죽게 될 거야.
끊임없이 귀에 속삭여 오는 목소리들이다.
‘시작된 건가?’
확실히 그런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느껴지는 자괴감은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다.
돌아가고 싶고 걸음을 멈추고 싶은 생각이 한 번씩 떠오른다.
-넌 자격이 없어.
-너도 알고 있잖아?
찬영은 걸으면서 이를 갈았다.
“난 처음부터 자격이 없었어.”
이게 사실이다.
찬영은 자신의 어깨에 하나씩 얹어지는 갓피스로서의 무게감을 견디려고 늘 노력해 왔다.
자격이 없었기에 자격이 있는 존재가 되려 했다.
그러니 이런 자괴감은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없다.
이 길을 걷는 것도, 이제껏 걸어온 이유도 전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눈앞에 놓인 길을 피하지 않은 것뿐이다.
두려워하며,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맞서고 도전하고 넘어서고 싶었다.
‘그게 무엇이든 해낼 가능성을 찾는 일 역시 내 의지에 달린 일이니까.’
다음 순간 끝없이 걸어가던 구름 다리가 사라졌다.
-1차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새로운 창과 함께 디디고 있던 구름이 스멀스멀 발 위로 올라왔다.
찬영은 놀라지도, 저항하지 않았다.
1차 시험을 통과했다면 변화가 이뤄지는 이유는 단 하나.
‘2차 시험인가?’
찬영은 어느새 눈앞을 가득 메운 하얀 구름을 보며 지그시 눈을 감아 버렸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 찬영은 하얀 구름으로 덮인 장소 한가운데 서 있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형태는 로마 시대의 검투사들이 싸웠을 법한 장소인 콜로세움처럼 보였다.
‘뭔가와 싸워야 하나?’
그 생각에 이르기 무섭게 디디고 있는 구름 아래에서 뭔가가 뭉게뭉게 솟아올라 형태를 이뤘다.
찬영은 멈칫했다.
“뉴 빌드……!”
한때 조우했던 뉴 빌드의 일원들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 옆에 또 다른 구름이 피어올랐다.
익숙한 낯이다.
아니,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얼굴이다.
“군다 바오트.”
고개를 돌린 찬영의 눈동자에 이채가 흘렀다.
‘이미 죽은 녀석들이 어떻게…….’
믿기 힘든 상황이 꽤 혼란스러웠다.
-2차 시험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지금 뜬 창만 봐도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찬영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목적이 뭐지?’
텃세일지도 모르고,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찬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유가 있을 거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게 아니다.
‘시험이라는 건 분명 출제자의 원하는 의도가 있으니까.’
그래, 1차 시험만 해도 그랬다.
정령은 자신의 의지를 확인했다.
걱정과 같은 불안감을 계속 마음속에 불어넣었고 뒤로 돌아가고 나아가지 말라고 끊임없이 속삭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뭐지?’
찬영은 밀려드는 그들의 공세에 맞섰다. 찬영의 공격에 그들은 형체를 잃고 다시 구름이 되어 바닥으로 소멸됐다.
하지만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과거에 싸웠던 또 다른 적들의 형태로 나타났다.
지쳐 가는 건 자신이었다.
“후우, 후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근력, 마나 등 모든 건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적들은 한계가 없다.
‘끊임없이 부활하고 있어.’
정답을 풀기 전까진 계속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 피할 수만은 없어!’
당연했다. 죽이지 않고 피하기만 하자 적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는 게 보인다. 이러다간 경기장이 빼곡히 찰 만큼 적이 늘어날지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슬란을 휘둘러 적을 벤 후 찬영이 물러났다.
물러나자마자 수십 개의 무기들이 날아왔다.
찬영은 아슬란으로 그 모든 무기를 단번에 걷어 냈다.
쾅!
검 끝 위로 치솟은 오라는 무지막지하게 강력했다.
단 두 번의 찌르기와 베기.
순식간에 대기가 검 주위로 응축되자, 구름이 실낱 같이 아슬란 주변으로 휘날렸다.
쐐애애액!
대기가 울부짖자 찬영에게 몰려들던 적들이 일제히 반으로 쪼개졌다.
탁!
그리고 흩어지는 구름들.
츠츠츠!
그것도 잠깐 디디고 있는 구름은 다시 망자들을 부활시켰다.
찬영은 그들이 부활하는 동안 주위를 가득 메운 성곽을 노려봤다.
적들을 아무리 베어도 끝이 나질 않으니, 주위를 둘러싼 환경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시험에 대한 의문 중 하나가 고개를 쳐든다.
‘이 안에서만 싸워야 하나?’
찬영은 시험 안에 갇혀 있는 자신을 돌아봤다.
그사이 다시 몰려오는 놈들.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아이스 램파트 Ice Rampart.’
구구구!
굉음과 함께 구름이 갈라졌다.
갈라진 구름 사이로 얼음 성벽이 솟아오르기 시작했고, 찬영은 그 성벽을 밟고 빠르게 위로 솟아올랐다.
적들은 끊임없이 얼음 성벽 위로 오르려 했다.
쐐액! 쐐액!
찬영은 얼음 성벽에 서서 날아오거나 올라오는 적들을 베고 찌르며 위를 올려다봤다.
아주 잠깐의 틈이 생겼다.
생각할 틈이…….
찬영이 눈을 돌렸다.
적들이 멀어진 지금, 얼음 성벽은 주위를 두르고 있는 원형 경기장 너머의 세상이 보였다.
새까만 어둠이다.
이곳을 벗어나 봤자 심연에 빠지게 될 것이다.
‘밖을 나갈 수는 없지만, 계속 싸워야만 한다? 죽는 걸 받아들이라는 건가?’
하지만 그 다음 생각을 잇지 못했다.
츠츠츠츠!
얼음 성벽 아래 구름 사이를 뚫고 기어 올라오는 것의 정체를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비…….”
하지만 녀석 때문만은 아니었다.
놈의 등 뒤에 탄 또 다른 구름이 만들어 내는 게 누군지 정확히 봤기 때문이다.
“글라투!”
찬영이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