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161화
* * *
-A.U. 돌격대, 성벽을 점거 중입니다.
우올로 통신을 들은 제이나는 통신을 끊었다.
지쳐 있는 마법사들이 보인다.
“A.U. 지원대는 자리를 고수하고 추가 지원이 없는지 경계를 취해요.”
말이 경계지, 실상은 휴식을 취하란 얘기다.
1세대 각성자를 제외한 나머지 2세대, 3세대 등의 지원대는 대부분 마법의 길을 걸은 지 얼마 안 된 마법사들이다.
마나 소모로 인해 탈진 증세가 온 건 당연했다.
제이나는 이를 고려해 A.U. 지원대를 모두 쉬게 했다.
남은 건 그녀를 따르는 마법 병단 소대.
“클레인.”
“예, 단장님.”
부단장이 대답했다.
“가용 가능한 소대를 파악해. 2서클 소대원은 전부 A.U. 지원대와 제 위치를 고수한다.”
많은 전투를 경험한 제이나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상황을 조율했다.
그러자 클레인이 신속히 3서클 이상의 대원들을 모았다.
“총 4소대로 재배치했습니다. 인원은 마흔 명입니다. 3서클 서른 명에, 4서클 아홉 명, 그리고 5서클 한 명입니다.”
제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클레인은 그동안 5서클 마법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성과는 확실히 나타났고, 이제 그는 안정적인 5서클 마법 구현이 가능해졌다.
든든했다.
“움직이자.”
“예.”
클레인은 스승이나 다름없는 제이나를 늘 존경했다.
5서클 또한 그녀의 경험과 지식을 배우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벽이었을 것이다.
나이는 자신이 다섯 살이나 많았으나 그건 그녀를 상관으로 모시는 것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그녀의 인품, 위기 대처 능력, 마법사로서의 수양 등은 그가 본 어떤 마법사보다 완벽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갓피스의 한 축이다.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자, 주목!”
제이나는 말을 몰아 선두에 섰다.
함께 선 마흔 명의 마법사의 눈동자가 그녀를 향했다.
“늘, 하던 대로 움직이면 된다. 최대한 대열을 이탈하지 말며 4인 1조로 움직여.”
“예.”
우렁찬 대답이 들렸다.
4인 1조를 택한 건 마법사 특유의 약한 신체 때문이다.
하지만 네 명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면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는 연계 전투가 가능해진다.
제이나는 오랫동안 몬스터와 싸워 온 병단 식구들을 믿었다.
“말에서 내려 본격적인 난전에 돌입하면 1개 조가 전투 중인 돌격대를 보조한다.”
기사, 마법사 혹은 병사, 마법사나 레인저, 마법사 등의 조합이 이뤄지면 상대하는 적도 까다로워진다.
어차피 승리는 적의 궤멸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녀는 철저히, 적들을 무너트릴 생각이었다.
그와 함께 ‘놈’까지도.
‘플로딘…….’
정말 많은 길을 돌고 돌아 이곳까지 왔다.
사실 머릿속엔 온통 놈의 생각뿐이다.
하지만 복수심을 꾹 눌렀다.
마법병단의 책임자로서 해야 할 일을 완수해야 했다.
제이나는 저 성벽 뒤에 플로딘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서두르지 않아도 자신은 이미 그에게 가고 있다.
‘조급해지지 말자.’
그녀는 다시 마음을 다스리며 말머리를 돌렸다.
기다렸다는 듯 마흔 명의 마법사가 일제히 슬롯을 개방했다.
그들의 양 손에 동그라미, 세모 등 다양한 도형이 붉게 빛나며 구현됐다.
캐스팅이 끝난 주문이다.
제이나가 툴챠를 든 반대편 손에 놓인 붉은 원을 허공에 띄웠다.
‘와이드 스틸 스킨Wide Steel Skin’
6서클에 오르며 익힌 제이나의 새로운 마법이 발현됐다.
그녀가 띄운 붉은 원이 회전하며 분열했다.
분열은 숫자를 늘렸다.
곧이어 마흔 명의 마법사에게 날아가는 붉은색 원.
치치칙!
마법사의 피부에 닿은 원이 빠르게 그들의 몸을 감싸며 회색빛의 반투명한 얇은 막을 이뤘다.
방어력을 높여 주는 광범위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사기가 오른 클레인이 고함쳤다.
“베이콥의 마법 병단이 건재함을 보여 줄 때가 왔다!”
“으럇!”
그의 외침과 함께 제이나가 선봉에 서서 달렸다.
마흔 명의 마법사가 그 뒤를 따라 들판을 달렸다.
* * *
“크헉!”
“으아악!”
앞뒤로 둘러싸인 해적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비명을 지르는 건 온통 해적들뿐.
바오트가 후방에 도착했을 때 전황은 이미 기울었다.
“죽어라!”
씨익.
그때 기마에 올라탄 기사가 달려왔다.
바오트가 순식간에 손을 뻗었다.
그는 무기를 쓰지도 않았다.
말에 탄 기사를 훌쩍 넘긴 체격의 소유자인 바오트는 스쳐가는 말을 힐, 본 후 그 말의 허리를 발로 걷어찼다.
퍼억!
말이 기사와 함께 날아가기 직전 바오트가 기사를 쫓아가 그의 얼굴을 손으로 잡아챘다.
히이잉!
말이 울부짖으며 바닥을 볼썽사납게 구른 사이, 기사는 바오트의 손에 찌그러지는 투구를 쓴 채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더 사납게 울어라, 네 전사들이 듣도록.”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사가 투구째로 머리가 터졌다.
퍽!
한 손으로 기사를 죽인 그의 주변에 병사들이 몰려들어 창을 있는 힘껏 질렀다.
쐐액! 쐐액! 쐐액!
열 개에 달하는 장창이 등지고 있는 바오트의 전신을 내리 찔렀다.
텅!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찔렀던 창들이 일제히 부러지며 창날이 산산조각 났다.
“어, 어떻게…….”
무기를 잃은 병사들을 향해 바오트가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흥분기 섞인 살의가 병사들에게 향했다.
쐐액!
무지막지한 해머가 병사들의 머리를 순식간에 쓸어 버렸다.
퍼퍼퍼퍽!
바오트는 그것도 부족한지 쓰러져 있는 병사들의 머리 위로 망치를 또 한 번 내려찍은 뒤 앞서 달렸다.
마주 달려오는 열 필의 말이 하나의 검처럼 진형을 세웠다.
“그래, 그래야지. 이렇게 쉬워서 되겠느냐?”
무기를 다시 집어든 바오트가 달려오는 기사들을 향해 마주 달렸다.
쿵, 쿵, 쿵!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말이 달리는 것보다 더 빠른 보폭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충돌.
열 명의 기사들이 우르르 바오트를 베며 지나쳤다.
“오라가 통하지 않아!”
그를 지나친 기사가 소리쳤다.
“이미 늦었다.”
어느새 말을 따라잡은 바오트가 기사의 목을 잡아채 끌어내렸다.
콱!
나뒹군 기사의 목을 질끈 밟자 기사가 즉사했다.
그리고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바오트는 자신을 지나쳤던 말들을 다시 따라잡았다.
쐐액!
그가 신명나게 움직였다.
소드 메이스의 날이 기사들을 훑고 지나가자 두 필의 말이 통째로 베였다.
콰직!
피분수가 쏟아지는 한 가운데, 바오트의 진격이 있었다.
말을 탄 기사들이 있는 힘껏 달렸다.
더 이상 전투가 아니다.
일방적인 학살이다.
기사들은 이를 악물고 말을 달렸다.
“크큭…….”
바오트는 기사들을 놓치지 않았다. 기어코 쫓아가 소드 메이스를 휘둘렀다.
퍽, 퍽.
나머지 기사들의 머리가 깨지고 부서지며 밟혀 간다.
퍽!
바오트는 또 한 번 뛰어올라 도망치는 기사의 말 위로 떨어졌다.
부웅! 콰직!
망치에 의해 말의 머리가 깨지며 그 반동으로 말의 몸통이 바오트의 머리 위로 치솟아 올라갔다.
쐐액!
말을 놓친 기사가 허공에서 허우적거린 그때.
소드 메이스의 칼날이 기사의 몸통을 반으로 그었다.
서걱!
압도적인 광경.
돌진하던 로일 영주의 기사들이 멈칫했다.
오라도 통하지 않고, 달리는 말도 따라잡는 괴물이라니!
초인이라 불리는 기사들조차 할 말을 잃었다.
난전 속에 고요함이 돌았다.
“어리석은 것들……. 숫자가 백이든 천이든 너희는 나를 넘어설 수 없느니라. 그것이 오늘 정해진 너희의 운명이다.”
바오트는 자신을 빙 둘러싼 기사들을 보며 비웃었다.
놈들은 한계를 보고 있다.
한계는 곧 절망을 가져올 것이다.
바오트는 소드 메이스를 단단히 쥐었다.
놈들이 꾸었을 달콤한 꿈을 짓밟을 것이다.
그건 허락되지 않은 사치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군다 바오트의 눈동자가 검게 물들었다.
척추에 박힌 차원의 돌도 더 짙게 빛났다.
저벅저벅.
바오트는 걸음을 다시 옮겼다.
포위망이 해체되며 모두가 뒤로 물러났다.
“그래, 두렵겠지.”
그가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걸어갈수록 분위기가 묘했다.
두려워하며 도망쳐야 할 놈들은 물러나기만 할 뿐, 자리를 고수했다.
‘누굴 기다리는 것이냐?’
바오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포위망을 해체한 병사들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바오트의 시선이 함께 움직였다.
쐐액!
그다음 순간 눈앞에 번쩍이며 푸른 검이 나타났다.
여유롭던 바오트가 얼굴을 찌푸렸다.
치치칙!
암흑 오라가 맺힌 소드 메이스 위로 냉기가 실린 검이 나타난 것이다.
펑!
오라와 오라의 부딪침에 강한 바람이 사방에 퍼졌다.
‘밀렸다?’
바오트는 주르륵, 밀려나는 걸 느꼈다. 이만한 반탄력을 느낀 건 모든 전투를 통틀어 봐도 처음이었다.
두어 걸음 밀려난 바오트가 눈을 부릅떴다.
쐐액!
다음 번 공격도 그랬다.
펑! 펑!
연이어 쏟아지는 푸른 검의 연계기에 바오트가 처음으로 물러나기만 했다.
‘북평검법.’
숙련도가 43%까지 성장한 북평검법은 바오트에 맞서 조금도 부족한 감이 없었다.
‘천빙강살.’
푸른빛의 작은 섬광 수천 개가 바오트를 덮었다.
소드 메이스를 휘두르지만 어림없다.
츠츠츠!
그의 몸에 들러붙은 천빙강살에 이어.
‘극빙절혈.’
얼음 꽃이 자라나 놈의 전신을 삼킬 것이다.
츠츳.
거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자라나던 얼음 꽃이 빠르게 흩어졌다.
‘……디스펠!’
찬영은 이런 반응을 잘 알았다.
“당황하지 않는구나.”
검을 대고 마주한 바오트가 말했다.
“겪어 봤으니까.”
찬영의 대답에 바오트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놈은 모른다, 자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그리고 그건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지금.’
디스펠 반응을 확인한 찬영이 뒤로 빠졌다.
신성마법의 캐스팅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자 로레인이 움직였다.
“반갑다. 군다 바오트.”
반대 방향에서 나타난 로레인의 등장을 바오트가 쳐다보자마자.
그를 중심으로 안개가 피어올랐다.
‘지정 방어.’
로레인이 일행에게 모든 피해 무효화를 걸었다.
찬영을 놓친 바오트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바오트가 망령의 개 여섯 마리 풀었다. 망령의 개는 적의 냄새를 맡는다. 두 마리가 찬영을 물었고 남은 네 마리가 로레인을 덮쳤다.
“이, 이건 뭐야!”
로레인이 뒤로 물러나던 그때.
“내게 맡기시오!”
안개 속을 뚫고 기관총과 박격포가 불쑥 튀어나왔다.
무음의 살육자인 망령의 개들 위로 신성 탄이 쏟아졌다.
두두두두! 펑!
단숨에 구멍이 뚫려 소멸되는 개들을 보며 로레인이 씩 웃었다.
“제법이야? 토끼 양반!”
“하루 이틀도 아니지 않소.”
“의연한데?”
그 순간 그들의 등 뒤로 거뭇하고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찾았다.”
바오트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물러나지 않았다.
지정 방어 때문이기도 했지만…….
“왔다.”
로레인이 웃었다.
이 순간을 기다린 것이다.
‘홀리 스트라이크.’
신성력 마법 준비가 끝난 찬영이 안개 속을 걸어 나왔다. 왼팔을 통째로 물들인 대형 해머가 안개를 뚫고 등장했다.
“신성력?”
반문한 바오트를 향해 금빛 해머가 떨어졌다.
바오트가 황급히 소드 메이스를 들었다.
퍼퍼펑! 콰지짓!
강렬한 충돌과 함께 금빛 웨이브가 주위에 넘실거리며 일제히 퍼져나간다.
여파에 닿은 땅이 일제히 함몰하며 터졌다.
“크하하!”
오히려 바오트는 웃었다.
이때를 기다렸다.
더 강한 전사, 더 강한 상대가 오기를 원했다.
“이제야 왔구나!”
바오트가 홀리 스트라이크에 ‘쿵’ 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소드 메이스의 암흑 오라가 산산조각 나고, 해머의 힘을 직격으로 받아 낸 회색 어깨가 균열이 일고 피가 흘렀다.
“으아아!”
하지만 버텨 냈다.
소멸된 홀리 스트라이크와 함께 바오트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다음은 없었다.
찬영 역시 홀리 스트라이크에 막대한 신성력을 썼다.
2회는 불가능하다.
그사이 안개는 사라졌고 셋은 바오트를 둘러싸고 서 있었다.
로레인은 애써 지친 기색을 누르고 있었다. 글로리는 그녀 곁을 지켰다.
“……오늘 뛰어난 전사를 많이 만나는구나. 네놈은 아까 그놈처럼 반드시 삼켜 주지.”
글로리가 대답도 듣지 않고 포격을 준비하려 했다.
“잠깐!”
찬영이 글로리를 말리며 바오트에게 물었다.
“누굴…… 죽였지?”
괜히 위화감이 든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런 불안감이 문득 들었다.
늘 갖고 있는 두려움을 그가 자극시켰는지도 모르고.
“누굴 죽였느냐고 물었다.”
“모른다.”
찬영은 평소답지 않게 흥분하고 있었다. 글로리가 다시 외쳤다.
“포격하겠소!”
“대답을 듣기 전까진 안 됩니다!”
단호히 외친 찬영을 향해 바오트가 고개를 삐딱이 저으며 물었다.
“왜, 네가 아끼는 자가 죽었을까 두려운가?”
“대답이나 해.”
“그리 원한다면 말해 주지. 붉은 갑주를 입은 자였다.”
뿌드득!
찬영의 눈빛이 변했다. 담담하던 눈길이 아니었다. 차분함은 광포함으로 돌변했고, 그의 온몸에서 살기가 뿜어졌다.
아니길 빈다. 정말 아니길 빌지만 만약 그라면…….
찬영의 눈가에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넌…… 내게 제발 죽여 달라고 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