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156화
로버트가 영주에게 달려가기 위해 급히 말머리를 돌린 때였다.
“영주님!”
고함친 로버트의 시야에 솟구치는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그 그림자는 순식간에 샨타크 머리 위로 낙하하고 있었다.
‘영주님?’
일체의 머뭇거림도 없이 말에서 튀어 오른 영주가 샨타크의 이마 위로 검을 내리 찍은 거였다.
영주는 건재해 있었다.
“상대를 잘못 골랐느니라!”
검을 움켜쥔 영주가 검에 더 많은 오라를 실었다.
콰직!
샨타크의 비늘이 오라에 의해 종이 짝처럼 베어 나가며 뇌수가 터져 버렸다.
“끝이다!”
영주가 외쳤다.
쐐애액!
영주가 타고 있던 말을 간발의 차이로 스쳐 가는 샨타크.
날아오르지 못하고 날개가 뒤집혔다.
죽어 가는 것이었다.
‘벗어나야겠군!’
영주가 놈의 몸을 타고 달려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추락하는 영주의 시야에 천막이 덮여 있는 건물 외벽이 보였다.
‘저기다!’
허리를 비튼 영주가 순간적으로 건물 외벽에 검을 내리꽂았다.
퍽!
하지만 추락 속도가 워낙 빨랐던 탓에 검이 건물 외벽을 일자로 부수며 떨어졌다.
두두두두!
돌가루가 영주의 안면 위로 비산했다.
하지만 도리가 없었다.
‘참을 수밖에.’
영주는 그렇게 한참을 덜커덩거리며 건물 외벽에 붙은 채 떨어져 내렸다.
‘끝났군.’
영주가 검의 움직임이 멈춘 걸 확인했다.
물론,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샨타크의 피부터 돌가루와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나니 더욱 그랬다.
콰쾅!
그때 상황이 끝났다는 걸 알리기라도 하듯 추락한 샨타크가 건물 세 채를 부수며 처박혔다.
* * *
지상에 착지한 영주를 향해 로버트가 빠르게 달려왔다.
“영주님! 괜찮으십니까?”
“오, 로버트. 난 괜찮네!”
“저희에게 맡기지 그러셨습니까!”
“별것도 아닌 녀석이 까불기에 좀 혼내 준 것인데 뭘 그리 호들갑인가? 그나저나 크루거 경 말이 맞았군.”
“예?”
“크루거 경이 그러더군. 자네 담력은 꼭 겁 많은 다람쥐 같아서 분명히 전투 중에 유난을 떨 게 뻔하다고 했는데……. 그게 맞았군 그래. 껄껄! 아니 그런가?”
영주의 농담에 모여든 기사와 기공사 일부가 키득거렸다.
때 아닌 영주의 농담에 로버트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사이 공기 가르는 소리가 허공 위에서 들렸다.
“엇, 저기!”
기공사 중 한 사람이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하늘을 빼곡히 채운 수많은 마법들이 유성처럼 허공을 가로 질러 나아가고 있었다.
마법들의 목표물은 비행하고 있는 샨타크들.
키에엑!
마법에 적중당한 잔여 샨타크들이 마치 운석처럼 지상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영주가 빙긋 미소 지었다.
‘시작됐군.’
제이나와 마법 병단이 준비를 갖추고 본격적으로 공성 마법진의 가동을 시작한 게 틀림없다.
“자, 다시 진격하자! 놈들은 이제 독 안의 든 쥐다!”
다시 자신의 백마에 올라탄 영주가 말머리를 돌리며 외쳤다.
한데 그때였다.
갑자기 그들이 디디고 선 땅의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영주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지진?’
느낌이 묘했다. 그냥 지진은 아니다.
주변을 타고 흐르는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풍향이 한 쪽으로 쏠리고 있질 않나!’
방향은 로일시 내부.
‘혹은 로일 성의 성벽.’
영주가 그 생각에 이르렀을 때.
쿠쿠쿠쿵!
일직선상으로 뻗친 보랏빛 광선 기둥이 보였다.
콰콰콰!
광선 기둥은 높게 세워진 로일 성 성벽의 한 귀퉁이 전부를 집어삼키며 뻗어 나갔다.
그 빛이 너무 강렬해서 보고 있던 모두가 눈을 가렸다.
동시에 영주가 디디고 서 있는 땅거죽까지 들썩이며 균열이 일었다.
쩌저적!
영주는 반사적으로 발밑을 내려다봤다.
‘지진은 아니다. 그런데 제법 떨어진 여기까지 균열이 날 만큼 강한 여파가 났다. 설마 성벽이……?’
마침 사위를 밝게 비췄던 빛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영주가 들고 있던 팔을 내리며 다시 시야를 확보했다.
“이런…….”
예상은 맞았다.
보랏빛 광선이 덮쳤던 성벽은 와르르 무너진 채 방금 전의 견고했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폐허가 되어 버렸다.
“괴물이 따로 없군.”
성벽을 단숨에 무너트리는 광선 따위 평생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성벽을 무너트리는 건 오로지 공성 전차와 마법사 다수의 대 공성 마법들뿐.
그런데 이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무기였다.
“막아야 한다!”
상황에 직면한 영주의 머릿속엔 오로지, 그 생각 하나만이 스쳐 지나갔다.
저 무기를 그대로 나뒀다간 성벽 위에 있던 모든 병력이 죽게 될 것이다.
놈이 두 번째 무기 가동을 시작하기 전에 무기를 파괴해야 했다.
“무기를 빼앗아야 한다!”
영주가 거칠게 백마를 몰았다.
* * *
그 시각 군다 바오트는 완성한 무기 옆에 서 있었다.
오랜 숙원이 담긴 결과물…….
‘검은 별.’
바오트가 옆에 서 있는 말론을 쳐다봤다.
어떤 말도 없었다.
그저 비틀린 미소와 함께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말론이 그의 시선을 느끼고 흠칫거렸다.
“인상적이구려.”
마지못해 얘기하긴 했으나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말론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일을 플로딘이 도왔소?”
“그래, 날 도운 뒤 진작 이곳을 벗어났지.”
“어디로?”
“신성 왕국의 본산으로 갔다. 그곳의 저항이 거세다고 하더군. 하나 이제 모든 전쟁이 손쉽게 종결될 것이다.”
위압감을 풍기는 회색 거구가 손을 뻗어 무기의 표면을 쓰다듬었다.
“드워프의 언어를 아나?”
“잘 모르오.”
“드워프는 이 거포의 주재료가 된 이룬 광석을 검은 별이라고 부르더군.”
“검은 별…….”
“그래. 지상에 있는 광석 중 그 강도가 ‘응축’의 주문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광석이지. 이제야 제 역할과 이름을 찾은 것 같구나. 모든 것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지 않는가?”
말론은 대답하지 않고 마른침만 삼켰다.
‘그럼 내가 응축의 주문을 연구했던 모든 것이 이 무기를 위해서였단 말인가?’
그 생각에 이른 말론이 눈을 부릅떴다.
그런 게 확실하다.
폭발의 범위 등의 기록들을 통해 앞으로 이 거포는 좀 더 개량되고 효율적으로 변해 갈 것이다.
자신의 연구 중 하나인 유혹의 돌 관련 연구는 이 거포의 일부에 불과했던 것이다.
“내가 연구한 것들이?”
바오트는 대답 대신 짙게 미소 지었다. 긍정이었다.
어느 정도 예견한 말론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지자들께서는 바오트를 크게 쓰고 있으셨군. 하긴…….’
독선적이긴 하나 바오트는 그를 밑바탕으로 강한 무력과 통솔력, 끊임없는 투쟁심, 담력까지 보유한 괴물이다.
무기를 완성해 낸 추진력만 봐도 그랬다.
‘어마어마하군.’
말론은 검은 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거포는 칠흑 같이 어둡고 매끈했다.
포구의 너비만 30m에 포신의 길이는 180m에 이르렀다.
내부엔 응축 주문이 새겨진 집채만 한 유혹의 돌만 네 개가 장착되어 있었다.
응축 주문의 폭발 충전량이 채워질 때까지는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긴 했으나, 워낙 위력이 강해 그런 단점을 상쇄시켰다.
‘아니, 전투의 척도를 바꿀 것이야.’
사실상 단점을 찾아보기 힘든 무기다.
완성에 이르렀으니 어느 국면이든 이 거포의 위력은 크게 쓰일 것이다.
“말론.”
문득, 들려온 바오트의 목소리에 말론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시오?”
“선지자들께서는 너에게 다른 임무를 맡기셨다.”
“내가 모르는 임무가 또 있단 말이오?”
바오트가 고개를 끄덕인 후 거포 하단에 자리 잡은 바퀴를 가리켰다.
열두 개의 검은 쇠 바퀴는 마나 탱크를 통해 추진력을 받아 이동했다.
거기에다가 앞에 있는 여섯 개의 바퀴를 통해 전후좌우로 유연하게 방향 전환도 가능했다.
“자체적으로 이동 수단이 있어 움직이게 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네가 해야 할 일은…….”
바오트가 저 멀리 바다가 있는 방향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검은 별과 무기 제작자들을 데리고 수도로 가는 것이다.”
“당신은 가지 않소?”
말론이 뚫려 버린 성벽 사이로 진입하는 해적들을 쳐다보면서 그에게 물었다.
“내가 생존을 위해 이곳에 머무른 것 같나?”
“......”
“난 싸우기 위해 이곳에 왔다. 원하던 적들이 모든 희망을 다해 몰려오고 있지. 난, 그 희망을 밟고 짓이길 것이다.”
바오트가 씨익 웃은 뒤 말했다.
“이제 검은 별의 완성으로 인해 신성 왕국의 수도는 함락되겠지. 교황이 돌아서고 왕까지 잃게 되면 그들이 분열되고 비명을 지를 게 눈에 선하구나.”
말론은 등골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이곳을 나갈 생각이 없었던 것인가.’
바오트는 그랬던 게 틀림없다.
아니, 그를 보낸 6인의 선지자는 처음부터 그의 투쟁심을 알고 큰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적들이 몇이나 되건 얼마나 쫓아오건 그건 계획에서 중요한 것들이 아니었다. 목적은 오로지 수도에 머물고 있는 왕의 목숨.’
그 목숨을 걷어 가기 위한 검은 별의 제작이 끝난 지금, 무기를 가지고 이송하는 게 그들의 목표였다.
어쩌면 그가 적이 나타났단 보고들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건 지금의 때를 위해서였던 것 같다.
그게 확실하다.
“먼저 진입한 나의 사냥개들이 검은 별을 위해 해상로를 열 것이다. 너는 그 길을 따라 수도로 가면 된다.”
말론은 더 입을 떼지 않았다.
바오트가 어디로 향하는지, 뭘 원하고 있는지 전부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시작됐다.’
바오트는 원하던 성과를 이뤘고, 남은 건 그의 살의와 투쟁심을 채워 줄 적의 목숨이다.
“가겠소.”
말론은 지팡이를 짚고 그와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오트도 먼저 돌아선 말론을 돌아보지 않고 소드 메이스를 집어 들고 움직였다.
저벅저벅.
그때 바오트의 곁으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온몸과 얼굴을 검은색 두건과 망토로 두르고 있는 자였다.
“바오트 님.”
‘7인의 친위대’ 중 한 명인 야솝이었다.
“듣고 있다.”
“로일시가 대부분 함락되었다고 합니다. 적들의 병력이 시를 벗어나 한곳에 모이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이곳에 당도하겠군.”
“예.”
싸늘한 눈동자의 야솝이 대답했다.
“성벽 안으로 진입한 것들을 제외하고 남은 것들을 전부 집결시켜라. 성 안으로 통하는 모든 길을 봉쇄할 것이다.”
바오트의 명령엔 적의 병력이 몇인지, 아군이 얼마나 살아남았는지 그따위 것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 하겠습니다.”
야솝 또한 그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감정이 없는 듯 대화를 나눈 뒤 그저 사라질 뿐이었다.
* * *
시가전이 시작된 후 베이콥 영주의 돌격대는 빠른 속도로 도시를 질주했다.
기마 떼를 선두로 레인저 대대, 기사 대대 등이 빠르게 빠져 나왔다.
그러나 그중, 가장 먼저 길을 트며 나온 건 A.U. 소속의 열한 편대 중, 아홉 편대를 제외한 나머지 두 편대였다.
이 두 편대는 찰스의 지시로 이뤄진 편대로써 정찰과 예상 위험 상황을 다른 편대로 전달해 주는 최전방 선발대였다.
편대장은 이규복과 크리스라는 각성자였다.
각각 10, 11 편대를 맡은 둘은 광선이 터져 나온 지점에 가까이 접근해 가고 있었다.
-규복 씨 전방 7km 앞에 적들이 집결합니다.
곱슬머리 흑발을 가진 남미와 영국인의 혼혈인인 크리스는 무척 유쾌한 타입이었다.
“그래요?”
-네, 뚫어 놓은 성벽을 막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우리가 진입하려는 걸 막으려는 것 같네요.
우올로를 통해 통신한 그는 7km 밖에 있는 것도 완벽히 분별이 가능하고,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는 능력의 각성자였다.
이름하야 ‘사이트 크로스’라는 이네이트다.
하지만 1세대 각성자인 그에겐 멀리 내다보는 능력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정신력과 신체가 버틸 수 있는 한, 시야에 닿는 500m 내의 어디든 순간 이동이 가능했다.
이를 활용해 사용하는 무기는 활.
그로 인해 그는 누구보다 기습적인 공격이 가능했다.
-완전히 결집되기 전에 정리할 수 있는 녀석들은 정리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이규복이 흔쾌히 대답했다.
“그러죠.”
그의 말대로 결집하는 숫자가 늘어나는 걸 미리 차단하는 쪽이 더 나은 선택이다.
-그럼 움직일게요.
* * *
한데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통신이 될 줄은 몰랐다.
이규복은 붉은 대검을 들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이 데리고 온 10, 11 편대 모두가 쓰러져 있다.
이규복의 대검마저도 균열이 일어 있었다.
놈은 그야말로 괴물이다.
‘지원 병력이 도착할 시간은 대략 삼 분 정도.’
그때까지 버텨야 한다.
하지만…….
“끄아아악!”
거대한 회색 손에 다리가 잡혀 있던 크리스가 비명을 질렀다.
“도, 도망쳐! 끄악!”
이규복은 부름에 답하는 대신 검을 고쳐 쥐었다.
“못 갑니다……!”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왔어!’
이규복이 웃고 있는 회색 거인, 바오트를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