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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55화 (155/248)

# 155

155화

* * *

쾅! 쾅!

저 멀리 폭발음이 들리고 불길이 보였다.

항구 요새에 세워진 망루에도 불길의 뜨거움이 느껴질 만큼 강한 폭발이었다.

망루 위에 서 있는 수석 행정관 오르테즈는 그 광경을 보고 깊게 탄식했다.

“이렇게…… 그분을 잃는가?”

오르테즈는 슬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병사들이 있었고 해안가는 머지않아 해적 떼에 장악될 것이다.

그 전에 뭐든 해야 했다.

‘당신의 죽음은 충분히 명예로웠습니다. 루호 제독님.’

오랜 교분을 쌓아 왔던 그는 진정한 뱃사람이었고 스스로의 자리에 깊은 자부심을 느껴 왔던 참된 군인이었었다.

그러니 그의 죽음을 조금이라도 헛되지 않게 보내려면 영주의 뜻을 따라야 했다.

“프람, 영주님의 하명대로 이행하여라.”

슬픔을 마음속으로 꾹 눌러 삼킨 오르테즈가 곁에 있는 프람에게 말했다.

프람.

그는 로일가 1대대 출신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오르테즈의 호위대 대장을 맡았다.

“하면……?”

등에 고풍스러운 검집의 바스타드 소드를 착용하고 있는 프람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래, 더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수송선에 태운 백성들이라도 어서 항구에서 빠져나가게 해.”

오르테즈는 불타고 있는 갤리선들을 보며 이를 꽉 다물었다.

이젠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제독은 백성들이 탄 수송선을 빠져나가도록 하기 위해 마나 탱크와 함께 배를 폭발시켰다.

시간을 벌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한 명의 백성이라도 살려서 내보내야 했다.

그때, 프람이 물었다.

“그럼, 형님은?”

“프람 나는 수석 행정관이다.”

“나 역시 어디에도 안 갈 것이오.”

둘은 형제였다.

서먼 프람. 서먼 오르테즈.

어릴 땐 죽기 살기로 싸우며 투닥거렸으나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엔 모든 게 바뀌었다.

둘은 늘 서로를 위했고, 생전 영주를 따랐던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영지에 봉사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지났다.

이젠 정확히 반백이 된 나이의 오르테즈는 동생을 보며 미소 지었다.

“영지가 함락되면 영지의 최고 지휘관은 폐하께서 명령을 내리시기 전까진 생존한 지휘관 중 지위가 높은 자로 결정된다. 프람, 영주님과 내가 죽은 뒤의 영지민을 보살필 사람은 너란 얘기다.”

노장이었던 로일가의 기사단장은 이미 최근 전투로 목숨을 잃었다.

나머지 대대장 출신 기사들 중에서 프람이 가장 연장자였으며 기수도 빨랐다.

프람이 기사단장직을 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뿌득!

프람이 이를 갈았다.

“그럴 거라면…… 형님이 가시오.”

“프람, 너랑 이런 소모전 할 겨를이 없다.”

“그럼 하지 마시고!”

“프람!”

“형님!”

프람이 눈을 부릅떴다.

결연해진 동생의 눈빛에 오르테즈는 할 말을 잃었다.

“늘 형님의 선택을 존중해서 많은 걸 형님에게 양보했소. 하지만 이번엔 아니오. 내 나이도 곧 반백이외다. 한 번쯤은 그놈의 고집 좀 꺾어 주시오!”

“대체 왜 이러느냐?”

오르테즈는 프람에게 담담한 눈길을 보내며 물었다.

“솔직히 난 형님을 두고 갔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자신이 없소. 그래서 여기 남겠다는 거요. 차라리 기사로서 죽는 것이 편한 길이니까!”

“……!”

“형 노릇 한 번 하는 셈 치시오.”

프람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씩 웃었다.

오르테즈는 프람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껏 프람과는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왔다.

착한 프람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늘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행정관의 업무를 보좌한다는 건, 그만큼 감정적인 부분을 내려놔야 한다는 얘기였을 테니까…….

하지만 잘 따라 줬고 부탁하는 모든 걸 다 잘 해내 줬다.

“고마웠다.”

그렇기에 이번엔 동생의 뜻을 따라 줘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오냐, 내가 가마.’

두고 갔다는 죄책감, 아픔 등이 어깨를 눌러도 가는 것이다.

“고맙긴, 어릴 때부터 부모 노릇을 해 준 건 형님이었소. 고마워할 거면 내가 그래야지. 암, 끝까지 떼쓰는 동생 받아 주는 형님에게 고마워해야지.”

프람은 그러면서 자신의 검을 뽑아 땅에 박고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자, 어서 다시 하명하시오.”

검 앞에 자신을 낮추고 새로운 하명을 기다리는 프람.

지켜보는 오르테즈가 울렁이는 마음을 꾹 눌렀다.

“나, 수석 행정관 서먼 오르테즈가 그대 서먼 프람에게 하명하노니, 그대는 해안가에 상륙하는 적을 일체 남기지 않고 섬멸하라! 로일 성이 건재하다는 걸 적들에게 보여라!”

깊게 숨을 들이 내쉰 후 하명하는 오르테즈.

“서먼 일가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그러겠나이다.”

프람이 결의 깃든 대답과 함께 검을 회수하며 돌아섰다.

“몸조심하시오, 형님.”

프람이 다음 말을 뱉었을 때였다.

로일가 1대대의 기사 한 명이 망루로 뛰어들었다.

기사의 얼굴을 익히 아는 프람이 눈살을 찌푸렸다.

상황이 좋지 않은 시점에 갑자기 나타난 전령이다.

그들이 영주님과 함께 있을 성벽에 변고가 생긴 게 틀림없다.

“무슨 일이냐?”

오르테즈가 빠르게 물었다.

그러자 기사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외쳤다.

“베이콥 영주님이 적진의 후방과 충돌하였단 낭보입니다! 엄청난 숫자의 지원 병력입니다.”

“베이콥가?”

오르테즈는 순간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베이콥가는 신성 왕국을 떠받드는 스무 번째 검 중 한 사람인 베이콥 영주다.

본래 스무 명이었어야 할 스무 번째 검은 왕국에 멸망 직전, 고작 열 명도 채 남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나타나다니?

“형님! 원군입니다!”

프람도 깜짝 놀라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 안다! 모든 마법구 통신이 두절된 상황에 그들이 우리의 상황을 어떻게 알고……?”

너무 기적 같은 일이었으나 오르테즈는 흥분하기보다는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럼, 영주님이 그대를 보낸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영주님이 무사하시다니 다행이군.”

마음이 조금 놓인 오르테즈가 현재 성벽의 동태를 물었다.

“그럼, 추정되는 병력에 대해선 아는 바가 있나?”

“공성전이 이뤄지는 사이 멀리서 확인한 낭보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없습니다. 하지만 눈대중으로는…….”

“눈대중으로는?”

“3삼천입니다!”

기사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힘 있게 말했다.

‘여신이시여!’

자신도 모르게 신을 부르짖은 오르테즈가 프람을 쳐다봤다.

“프람, 신이 아직 우릴 버리지 않으셨다.”

“예, 형님!”

“하나 방심할 순 없다. 전황이 뒤집힐지는 확신할 수 없으니 본래 계획은 계속 진행한다.”

“알겠습니다.”

프람이 고개를 숙였다.

“백성을 태운 수송선에 소수의 병력만 태워 해적선의 시야에서 벗어나게 하라. 그 일이 끝나면…….”

오르테즈가 저 멀리 해안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와 함께 해안가를 지킨다.”

* * *

삼천의 병력 중 이천의 돌격대의 돌진은 무시무시했다.

기마만 팔백에 이르렀으니 그럴 만했다.

순식간에 로일시 초입을 점거하고 있던 해적 떼가 휩쓸렸고, 적들은 베이콥 영주의 병력에 대처하지 못해 후퇴했다.

그리고 시가전이 시작됐다.

베이콥 영주는 도심 안으로 진입하며 대열을 바꿨다.

좁은 통로가 많은 도심 지역에 평야 지대처럼 넓은 대열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두 대대로 나뉘어 도심 안으로 진격했다.

그 후 레인저들과 A.U. 요원들이 소속된 아홉 편대로 이루어진 좌익이 드넓게 흩어져 기마 부대의 후방을 엄호했다.

지상의 기마 부대를 노릴 비행 몬스터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 * *

베이콥 영주가 말을 몰아 로일시를 가로질러 달렸다.

반쯤 부서지고 불에 타고 있는 로일시의 풍경을 스치듯 지나친 베이콥 영주가 힐끗 위를 쳐다봤다.

-키에엑!

허공에선 비행 몬스터가 날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영주는 당황하지 않았다.

침착했고 익숙한 것들을 다루는 모습이었다.

“산개!”

마나를 실은 영주의 고함이 울려 퍼졌다.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 명령에 영주를 따르는 기마 떼가 간격을 넓히며 흩어졌다.

두두두!

그 순간 영주의 위로 몬스터가 거의 근접했다.

“영주님!”

이를 본 로버트가 소리쳤다.

“알고 있다!”

순식간에 영주 위를 덮은 검은 그림자.

몸체는 말의 세 배 정도 되고, 날개는 몸체를 뒤덮을 만큼 크고 길다.

날개부터 몸체 모두 은색 비늘로 덮여 있는 놈이 날개를 펼치며 독수리를 닮은 거대한 발톱을 쫙 펼쳐 보였다.

해적들은 저 몬스터들을 샨타크라고 불렀다.

“어림없다!”

영주는 더욱 가속했다.

콰직!

추락하며 베이콥 영주와 말을 한꺼번에 낚아채려던 놈이 스스로의 속력을 감당하지 못해 영주를 놓쳤다.

“크하하! 어림없다 하지 않았느냐!”

베이콥 영주가 다시 허공으로 솟아오른 샨타크를 향해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뒤따르던 로버트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혀를 내둘렀다.

‘담력 하난 알아주셔야 한다니까?’

그 생각이 끝날 때쯤 영주를 놓친 샨타크 두 마리가 더 다가와 허공을 선회했다.

-키에에엑!

아까보다 울부짖는 소리가 더 커졌다.

베이콥 영주의 웃음소리에 열 받은 게 틀림없었다.

‘몬스터까지 도발하실 줄이야!’

로버트가 헛웃음을 흘렸다.

“호오! 열 받았다 이것이냐!”

반면 베이콥 영주는 더욱 기세를 몰아 말을 달렸다.

쐐애액!

세 마리의 샨타크가 부리를 내밀고 일직선으로 하강하는 중이었다.

다음 순간 베이콥 영주의 머리 위로 푸른빛 세 개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아니, 그건 시작이었다.

그 뒤로 수백 개의 화살이 날았다.

쐐액!

그러자 세 마리의 샨타크 중 두 마리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날개를 푸덕거렸다.

화살들이 둘의 비늘을 뚫고 정수리에 박힌 것이다.

빠르게 대열에서 이탈해 추락한 샨타크 두 마리.

그 틈에 땅 밑에서 회전하며 솟아오른 집채만 한 돌 세 개가 균형을 잃은 샨타크들을 향해 날아갔다.

놈들은 피하지 못하고 돌에 부딪쳤다.

쾅!

충돌 직후에도 샨타크들은 끈질겼다. 돌에 부딪친 샨티크들은 추락할 것 같다고 생각되었는지 입에서 불을 뿜었다. 화력의 힘으로 다시 4m 정도를 솟구쳤다.

하지만 두 마리 모두 다 날개에 이상이 생겼는지 시가를 벗어나진 못하고 고도를 낮춰 건물 사이를 날기 시작했다.

그때 또 다른 건물 외벽에서 갑자기 사람 손의 형태를 띤 돌 세 개가 솟아오르더니 날고 있는 샨타크의 정면으로 날아왔다.

콰쾅!

* * *

“A.U 각성자들과 함께 샨티크 두 마리 격추 완료됐습니다.”

베이콥 영주는 귀에 착용하고 있는 우올로를 통해 카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가 보고하고 있는 것은 처음 화살이 날아온 건물 옥상.

활을 거둔 카일이 비틀거리는 각성자의 팔을 낚아챘다.

“괜찮으시오?”

방금 전 이네이트를 사용하여 암석 마법을 사용한 각성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쉬시겠소?”

“아뇨.”

카일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자신이 서 있는 건물을 지나친 영주를 내려다봤다.

처음 나타났던 샨타크가 끝까지 영주를 따라가는 게 보였다.

하지만 카일은 곧 비행 몬스터가 출몰한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마리 정도는 걱정하지 않는다.

이미 베이콥 영주는 완성된 검사라고 불릴 만큼 강인한 스무 번째 검이다.

* * *

마지막 샨타크는 허공에서 영주를 지나쳐 방향을 선회해 정면으로 그를 향해 하강했다.

정면으로 마주 달리는 둘.

웅! 웅!

마나가 응축된 영주의 검이 달려가며 샨타크를 겨눴다. 베이콥 심법을 익혀 온 가문의 수장들 중, 현 베이콥 영주는 수양의 깊이가 역대급이라고 일컬어지는 검사였다.

하지만 그 평가는 틀렸다.

모자라서가 아니다.

그는 이제껏 전력으로 싸워 본 적이 없었다.

화르륵!

샨타크가 날아오며 불을 뿜었다.

일직선상으로 날아오는 불을 피하기 위해 모든 기마병들이 흩어졌음에도 영주는 계속 앞으로 치달렸다.

곧바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베이콥 영주가 검에 의지해 불길을 뚫고 나온 것이다.

갑옷이 조금 그을린 것 빼고 전혀 화상 하나 없는 얼굴이었고, 그의 앞엔 검 전부를 둘러싼 짙은 오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불길을 뚫고 나오자마자 영주의 앞엔 샨타크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영주님!”

지켜보던 로버트가 눈을 부릅떴다.

영주와 영주가 탄 말이 샨타크의 입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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