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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54화 (154/248)

# 154

154화

“완성됐다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군다 바오트가 물었다.

“그, 그렇습니다.”

무기 제작을 몰두해 온 공학자와 한 명의 드워프.

그들은 해적들에 의해 강제로 무릎이 꿇려 있었다.

바오트는 그중 유일한 드워프를 내려다봤다.

무기 제작의 성과를 낸 주축이다.

드워프…….

그들은 모루와 망치만 있다면 뭐든 제작해 내는 창조적인 종족이며, 워낙 소수 종족이라 대륙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희귀 종족이기도 했다.

그들을 찾느라 바오트는 꽤나 고생을 했다.

“아주 잘했다. 크루 일족의 드워프, 카멜로여.”

바오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카멜로가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형형히 눈을 빛냈다.

“바오트…….”

뿌득.

이가 갈리는 소리를 내며, 그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발이 인간의 다섯 배 이상 컸기 때문에 카멜로는 주먹을 그냥 움켜쥐기만 했는데도 무척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얼핏 보기에도 완력이 강해보이는 카멜로는 반항 한 번 없이 침묵했다.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이제 내 딸을 풀어 줘라.”

“그래야지. 자존심 강한 드워프 일족 중에서도 가장 콧대가 하늘을 찌른다는 크루 일족의 족장과 약속한 것이니…….”

바오트가 손끝을 까딱였다. 그러자 그의 부하들이 꽁꽁 묶여 있는 기절해 있는 여성 드워프를 끌고 왔다. 카멜로의 딸이었다.

“키썬!”

거친 쇳소리를 닮은 카멜로가 쩌렁쩌렁한 목소릴 내며 키썬을 해적들의 손에서 빼앗았다.

“정신 차려 보아라. 애비다!”

그러자 바오트가 대신 대답했다.

“독초를 사용했으니 쉽게 깨어나진 못할 것이다.”

“뭐라고?”

카멜로가 인상을 구겼다.

바오트가 서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틀마다 내가 주는 약초를 먹지 않으면 죽게 될 것이다. 무기도 완성했으니 한동안은 그냥 주지. 하나 너는 앞으로 나, 군다 바오트를 위해 일해야 한다.”

“일이 끝나면 그냥 풀어 주기로 하지 않았나!”

“풀어 주고 함께 있게 해 줄 것이다. 단, 날 벗어날 순 없다. 그건 다른 차원의 약속이지.”

참지 못한 카멜로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나, 완력만으로 집채만 한 돌도 깬다는 드워프도 바오트에겐 어림없었다.

부웅!

바오트가 카멜로를 낚아채 바닥에 메다꽂았다.

“커헉!”

바닥을 나뒹군 카멜로의 목을 다시 낚아채 집어 든 바오트가 그를 집어 들었다.

콰악!

점점 조여 가는 악력.

“케에엑…….”

카멜로가 피를 흘리며 바동거렸다.

그럼에도 바오트는 쥐고 있는 손의 힘을 풀지 않았다.

그저 미소 띤 채 죽어가는 걸 보고 있을 뿐.

그의 눈동자에 살의가 흘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손익을 구분할 줄 이성은 아직 남아 있었다.

“흐음.”

흥미 없어졌다는 표정을 지은 바오트가 카멜로를 다시 바닥에 던져 버렸다.

쿠당탕탕!

바오트는 몇 바퀴를 구르며 쓰러진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느긋하게 돌아섰다.

무기도 완성됐으니 유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개전하라.”

바오트가 돌아서며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때가 됐다.

로일 성을 장악할 시간이다.

* * *

찬영이 떠난 지 한 달이 넘었다.

매일 우올로를 통해 교신을 시도해 봤지만 아직 소식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기다릴 시간이 없다.

영주군은 그동안 블롱 협곡을 장악했고, 그 직후 진을 치고 있는 비행 몬스터들과 싸우며 그들의 요새로 진격했다.

하나 그곳엔…….

예상과는 다르게 군다 바오트가 없었다.

대부분의 병력과 함께 로일 성으로 향한 지 오래였던 것이다.

영주는 그 사실을 알고 빠르게 재정비를 했고 수뇌부들과 함께 논의했다.

협곡 앞을 지키던 군다 바오트가 갑자기 로일시로 진격했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란 의견이 주를 이뤘다.

하여 오래 지체하지 않고 진격을 하명했다.

그때부터 협곡을 벗어나 로일시까지 이르는 데는 꼬박 하루가 걸렸다.

이젠…….

“보이는구나.”

저 멀리 구름 떼 같이 몰려든 적들이 보인다.

영주가 말을 몰아 대열을 정비했다.

“제이나!”

그녀가 말을 몰아 영주에게 다가왔다.

“공성 마법진은 언제쯤 준비되는가?”

“곧 마무리될 것입니다. 가져온 마나 탱크를 전부 활용하여 6서클 마법진을 사용할 것입니다.”

영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큰 성장을 이룬 제이나는 이제 6서클 마법을 다룰 수 있는 대마법사의 반열에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중심으로 이뤄질 공성 마법은 단언컨대…….

‘적의 중심부를 휘저을 것이다.’

영주는 확신하며 제이나를 가장 최후방으로 돌려보냈다.

그 뒤 그가 나란히 선 대열에서 찾은 건 우익에 자리 잡은 A.U. 편대였다.

“찰스.”

“네, 영주님.”

말을 탄 채 인사를 나눈 영주가 그의 뒤에 자리 잡은 열 개 편대를 보며 말했다.

비행 몬스터와 격돌 당시, 그들의 활약이 굉장히 컸다.

로일시에서 벌어질 전투에서도 그들의 활약은 클 것이다.

“첫 전투보다 많은 희생이 따를 것일세.”

“알고 있습니다.”

영주는 고개를 끄덕인 후 그의 곁에 있는 편대장들을 쳐다봤다.

그중에 찬영과 가장 가까운 이규복이 있었다.

“너무 걱정 말게. 그는 그의 일을 하고 있을 것이야.”

영주의 위로에 이규복이 고개를 저었다.

“걱정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찬영 씨는 약속한 대로 곧 도착할 겁니다.”

그건 확신이었다.

“하긴, 그는 우리가 진격할 시기를 예상해 움직였겠지. 워낙 꼼꼼하고 까다로운 친구 아닌가?”

“느끼셨습니까?”

“그럼.”

영주가 너털웃음을 터트린 후 다시 찰스를 쳐다봤다.

“A.U.의 지원대는 마법사 곁에 있어 주게. 돌격대는 크루거 경과 함께 가면 될 것이야. 잘 부탁하네.”

“함께 싸울 수 있어 영광입니다.”

찰스가 대답했다.

“그리 생각해 주어 고맙네.”

대답과 함께 영주는 말을 몰았다. 이번에 향한 곳은 좌익에 선 카일.

그의 곁엔 고베이, 도레인, 벡이 있었다.

아니, 그들뿐이 아니었다.

이젠 블롱 경비대의 살아남은 일부 병력들과 대장 두 명이 합류했다.

마르코와 라잔까지 포함된 이 대열은 레인저 편대.

돌격대의 돌진 후 본격적인 시가전이 시작될 때, 이들은 백성들을 도시 밖으로 안내하고, 적의 대열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

“나의 우방이여. 합류해 주어 고맙소.”

영주는 카일을 보자마자 미소 지었다.

“자유를 위해 함께 싸우는 것은 우리의 오래된 약속이지요. 함께하는 것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었습니다.”

카일은 늘 그렇듯, 무표정으로 담담히 입을 열었다.

이심전심. 영주도 그를 보며 빙긋 미소 지었다.

대화는 더 없었다.

서로의 미소만으로 충분했다.

영주가 다시 말을 몰았다.

이번엔 어느 한 쪽으로 간 게 아니었다.

나란히 선 대열의 한 가운데 멈춰 서서 로일시를 등진 채 자신을 바라보는 아군을 향해 외쳤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나, 베이콥은 신성 왕국을 수호하고 로일가의 우방으로써 간악한 해적과 뉴 빌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쿵! 쿵!

방패를 들고 있는 병사들이 방패와 무기를 부딪치며 소릴 냈고, 창을 든 자들은 발과 창으로 땅을 내리 찍으며 땅을 굴렀다.

“두려워하지 마라! 우린 여신의 뜻을 받들며, 은총의 검으로 적들 앞에 설 것이다. 두려워할 것은 우리가 아니라 저들이다! 두 번의 멸망은 없다. 두 번의 패배는 없다! 우린 늘 이 자리에 있었고, 여전히 이 땅을 지키고 서 있다. 이젠 누가 이 땅의 주인인지 알려 줄 때가 되었다!”

영주가 검을 뽑았다.

우아아!

도합 3천에 달하는 병력의 고함이 로일시 평야에 울려 퍼졌다.

스릉!

영주가 햇살에 반사되는 검을 들어 저 멀리 로일시로 말머리를 돌렸다.

“멸망의 시대가 오늘 끝날 거라 전하라!”

마지막 외침과 함께 영주가 말을 달렸다.

그 뒤로 3천의 병력이 엄청난 속도로 영주의 등 뒤로 쏟아지듯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로일항 부근.

철썩!

오늘따라 갑판 위에 우뚝 서 있던 루호 제독은 입고 있는 경갑옷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제독님! 해적선이 대오를 갖춰 오고 있습니다.”

“상주한 군도에 해적들이 충분히 결집됐나 보군.”

위험을 무릅쓰고 희생해 준 부하들 덕분에 제독은 해적들이 어떻게 이동하고 합류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고개 숙인 부하를 보며 제독이 말했다.

“고개를 들게. 아직 전투는 시작도 안 했네.”

“옙!”

제1 항해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나자 제독은 갑판에 서서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정찰을 통해 알아본 바.

‘놈들은 백병전을 노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이번 전투는 좁은 해협에서 싸우는 게 아닌 드넓은 바다에서 전면전을 펼쳐야 한다.

‘수적 우세를 가지려 하겠지.’

당연히 그럴 것이다.

샤이닝 해에서 로일 항 부근의 바다는 물살이 거세지 않고 무척 평화롭다.

수적 우세에, 바다까지 평화롭다면…….

뻔한 전략이야말로 최상의 전략이다.

특히 해적선의 선박은 대개 개조되지 않은 선체가 길고 속도가 빠른 롱십이란 배를 사용했다.

롱십은 범선이 아니기에 무거운 포를 싣기 힘든 배다.

‘하나, 충각을 쓰기엔 최상의 배지.’

충각은 배를 돌진시켜 적의 선체에 구멍을 내기 위해 뱃머리에 단 뾰족한 쇠붙이이다.

제독이 걱정하는 건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의 주력인 갤리선은 그들의 배에 금세 따라잡힐 테지.’

그때부턴 곧바로 백병전이다. 그리되면 수적으로 불리한 탓에 더욱 더 힘들어질 것이다.

분명 롱십은 수백 척이 넘을 테니…….

‘물론 한 척이라도 줄이긴 할 테지만.’

포격으로 많이 줄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게 현재, 함선에 달린 포는 마포魔砲다.

마나 탱크를 통해 마나를 주입 받는 마법 대포로 쇠구슬을 가속시켜 날리는 무기다.

‘좀 더 정밀했다면 좋았으련만…….’

만약 그랬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강한 무기가 됐을 것이다.

하나 기술력 부족으로 정밀한 조준이 갖춰지진 않았다.

그 말은 스피드를 가진 롱십 수백 척이 포격 따윈 가뿐히 피하며 접근할 수 있단 얘기.

눈 깜짝할 새 해적들은 하이에나처럼 달려들 것이다.

‘하지만 모든 열세를 극복하는 것 또한 전쟁이다.’

평생 바다만 보며 살아온 인생이다.

검사가 검에 삶을 걸듯이, 자신은 배와 바다에 모든 걸 걸어왔다.

마지막 싸움이 될지도 모르는 오늘의 전투.

힘없이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전투 돌입 전, 항해장들과의 수많은 논의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의 결정을 신중히 내렸다.

‘이젠 그대로 행하기만 하면 된다.’

루호 해적의 눈동자가 사납게 빛났다.

* * *

정확히 삼백이십일 척의 해적선이 마치 수면 위로 올라오듯 저 멀리 수평선에 나타났다.

“기다려라. 아직 포격 사정거리가 아니다.”

제독선은 최후방이 아닌 최선두에서 모든 배를 통솔했다.

백병전이 무조건 일어나는 상황에서 선두에 섰다는 건 목숨을 도외시하겠단 뜻이기도 했다.

“좌현으로 돌려라!”

흔들림 없이 해상을 노려보던 루호 제독의 고함과 함께 제독선의 신호를 받은 마흔두 척의 갤리선이 일제히 좌현을 돌렸다.

“쏴라! 모든 포를 퍼부어라!”

줄지어 나란히 다가오는 배들을 향해 루호 제독이 2차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갤리선마다 6문의 포가 마나 충전을 완료했다.

“쏴라!”

펑! 펑!

배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포격 세례가 시작됐다.

철썩!

나란히 선 마흔 척 넘는 배 옆으로 파도가 크게 철썩일 만큼 강한 반탄력을 가져오는 포격이었다.

순식간에 허공을 가득 메운 포격.

하나, 바오트의 7인의 친위대는 세 명이나 이곳에 있었다.

“오호라, 저게 마나 포탄이구나.”

세 명 중 가장 맏이인 네오가 허공을 가득 메운 포탄을 흥미롭게 올려다봤다.

하지만 그의 눈빛엔 두려움은 없었다.

“시작하자.”

네오가 마치 거울에 비춰진 듯 그와 똑같이 생긴 두 명의 남자를 쳐다봤다.

세 쌍둥이였던 것이다.

눈동자에 흰자 밖에 없는 형제 네빌과 네다는 네오의 지시에 따라 함께 모였다.

“기도해라.”

네오는 벙어리인 두 형제를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며 함께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그들의 가슴 위로 보랏빛이 새어 나왔다.

퍼펑!

그 순간 그들이 기도하고 있는 선박 위로 포탄이 떨어졌다.

한데, 그다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세 형제를 중심으로 얇은 보랏빛 막이 생성된 것이다. 그 막은 그들이 탄 배를 중심으로 다른 배까지 광범위하게 퍼졌다. 형제의 가슴에 이식된 차원의 돌에 새겨진 올드 원의 주문 덕분이었다.

‘방사放射.’

말 그대로 막에 닿는 적의 공격을 일제히 흩트려 약화시킨다.

단, 생명을 담보로 범위가 정해지는 기술이다.

그런데, 형제는 무려 300척이 넘는 배를 덮는 막을 시도할 범위에 모든 막을 덮었다.

결과는 당연했다.

“쿨럭.”

형제가 울컥 피를 토했다.

네오를 시작으로 네다, 네빌이 모로 쓰러졌다.

하지만 그들은 광기에 차서 웃고 있었다.

“크큭…….”

네오가 가장 크게 웃었다.

어차피 자신들은 죽은 뒤에 신이 될 것이다.

분명 선지자께서 그리 약속했다.

“우린 쓸모없는 자들이 아니다. 세상의 한 획을 그은 자들이 될 것이다.”

오늘 죽더라도…….

그렇게 오늘만을 위해 살아온 세 명의 형제가 갑판 위에서 숨을 거뒀다.

그러자 해적들의 사기가 더욱 올랐다.

“죽여라! 우린 무적 함선이 되었다!”

해적들이 고함치며 배를 몰았다.

저 멀리, 그 모든 걸 지켜보던 루호 제독은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는 잠자코 바다를 바라봤다.

‘포탄이 의미가 없어졌구나.’

이젠 한 척이라도 운 좋게 침몰시키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 같았다.

“백병전을 준비하라!”

루호 제독은 마지막을 준비하고자 검을 뽑았다.

이제 더 물러날 데는 없다.

“이제 돛을 펴라. 최고 속도로 적진을 향해 진입할 것이다. 우리가 먼저 그들을 기습하는 것이다.”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 부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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