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
153화
우랄은 자신의 발치에 굴러온 후딘의 머리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눈을 빛냈다.
방금 전만 해도 여유 있게 미소 지으며 동굴 밖으로 나갔던 후딘은 눈을 부릅뜬 채 발치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설마했건만…….
“어떻게 그곳에서 살아 돌아왔지?”
흥분할 법도 했으나 우랄은 오히려 더 차분한 태도로 일관했다.
우랄과 정면으로 마주 선 찬영이 대답했다.
“이미 대비하고 있었던 위기였어.”
“제법 거짓말에 능하구나. 그럴 리 없다.”
“믿지 않는군. 거짓말입니까?”
찬영이 로레인을 쳐다봤다.
입고 있는 옷이 먼지와 피로 범벅이 된 로레인이 고개를 저었다.
“방금 되돌려 준 걸로는 현실을 믿기 어려웠나 보지.”
로레인은 자신이 굴린 마법사의 머리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정박한 배부터 탈취한다!”
이미 마법사를 정리한 마당에 더 두고 볼 필요는 없었다.
“제가 선봉으로 갈게요!”
지수가 로레인을 지나쳐 뛰어갔다.
그 뒤로 글로리가 크투가를 활용했다.
“함께 하리다! 내 주변에 있으시오!”
동시에 크투가에서 환한 빛이 새어 나온 순간.
반경 15m 안에 있던 동료들이 반짝이는 빛에 휩싸였다.
크투가의 버프는 그들이 지치지 않고 계속 싸워 온 원동력 중 하나였다.
“갓피스가 우릴 돕는다!”
합류해 온 제리가 소리쳤다.
“전부 베어 버려! 영감의 복수다!”
소수에 불과한 그들은 이미 한 명 한 명이 일당백이 되어 적진을 향해 땅을 박찼다. 로레인도 이에 질세라 그 뒤를 쫓으려다 문득 찬영을 힐끗 쳐다봤다.
“혼자, 괜찮겠어?”
그녀의 시선 끝엔 우랄이 있었다.
“예.”
찬영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에 로레인도 더 묻지 않았다. 찬영의 능력을 신뢰 못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니, 이미 그의 능력을 볼 만큼 보았다.
갓피스에 소드 마스터까지…….
화려한 수식어를 가진 그를 걱정하는 것만큼 바보가 어디 있을까?
로레인은 굳은 표정으로 찬영의 곁을 떠났다.
그녀까지 떠나고 난 후 찬영이 우랄에게 다가갔다.
더 시간 끌 생각은 없었다.
그때 우랄이 말했다.
“어차피 내게 불리한 상황이다. 몇 가지 물어볼 시간은 내줄 수 있겠지.”
“왜 그래야 하지?”
찬영이 멈춰 서서 물었다.
“그럼 너희들이 궁금한 걸 대답해 주마.”
“네 입에서 나오는 얘길 내가 믿을까 봐?”
“믿지 않는다면 별수 없겠지.”
찬영은 제자리에 선 채 한동안 우랄을 노려봤다.
솔직히 뜻밖의 제안이고 쓸모 있는 제안이다.
“묻는 건 내가 먼저.”
“좋다. 단, 번갈아 묻지.”
찬영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가 진실을 말할지, 말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질문을 하는 기회가 생겼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찬영은 그간 궁금했던 걸 물었다.
“내게 누군가 그러더군. 멸망 후 신이 될 거라고……. 그게 무슨 뜻이지? 올드 원이 너희에게 힘을 주는 건가?”
“나 또한 최근에 알게 된 것을 이미 알고 있었구나. 무척 깊이 발을 들인 건 인정하마.”
“대답이나 해.”
“우린 이 돌을 통해 얻는 힘을 증거로 삼는다. 무궁무진한 이 돌의 힘을 활용해서 멸망이 달성되면, 우린 모두가 신이 될 거라고 약속하셨다.”
“누가?”
“애석하지만 첫 번째 질문이 끝났구나. 이번엔 내 차례다.”
“좋아.”
“너희들은 내 계획을 어떻게 알고 대처했느냐?”
그의 눈동자엔 의문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게 가진 바 모든 걸 쏟아 부었다.
그리고 그 계획에 적의 생존은 없었다.
그런데 그 믿기지 않는 일을 직면한 지금…….
우랄은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강렬하다 못해 미칠 듯이 궁금했다.
하지만 찬영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두 개 들어 보였다.
“질문은 한 개인 걸로 아는데. 넌 ‘어떻게 대처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까지 두 개를 묻고 있어.”
“좋아, 질문을 바꾸마. 어떻게 알았느냐? 이러면 한 개가 되겠지?”
찬영이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이 눈 덕에 네 매복은 금방 간파할 수 있었지. 차원의 돌을 파악하는 렌즈 덕분이야.”
찬영이 직접 손에서 렌즈를 빼서 그를 보여 준 후 다시 착용했다.
우랄이 그 틈에 찬영의 눈을 확인하며 말했다.
“네놈도 갓피스구나. 대체, 아까 그년부터 시작해서 몇 놈이나 더 있는 것이지?”
“질문인가?”
“아니다. 지금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럼 다시 내 차례군.”
찬영은 두 번째 질문을 아까, 질문과 연관 지어 했다.
“6인의 선지자는 지금 어디 있지?”
“모른다. 안다면 대답해 줬겠지.”
우랄의 대답에 찬영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가 대답을 회피했는지, 아님 진실을 말한 건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더 묻지 않았다.
어차피 그런 질문엔 확실한 대답을 얻을 수 없을 테니.
무엇보다 이번엔 우랄이 물을 차례였다.
“그럼 모든 걸 알면서 들어갔다는 것인데…….”
“그래. 그랬지.”
“왜지? 지금 너희들의 전력이라면 매복한 우릴 상대했다면 훨씬 손쉬웠을 텐데?”
“질문인가?”
“그렇다.”
우랄의 대답에 찬영은 일전의 순간을 되새겼다.
알고도 들어간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 배 안에 너희들이 이곳에서 해 온 모든 게 담겨 있겠지. 무슨 의도를 품었던 간에…… 그걸 알고 싶어 그랬다. 우리가 당했다고 생각하면 너흰 가지고 있는 모든 패를 드러낼 테니까.”
“그랬군. 하지만 설사 모든 걸 알았다 해도 광산 안에서의 생존은 말이 안 된다.”
투시로 가능한 반경 40m 안까지 살펴보았지만, 그들의 흔적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었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우랄은 의아했다. 찬영은 정식 질문이 아닌데도 대답해 줬다.
“그래, 들어갔었지. 너희들이 그 근방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안에서 기다렸을 뿐이고.”
찬영이 그러면서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네 덕분이다.’
그들이 매복을 하고 있을 때부터 찬영은 광산이 매몰될 거라는 걸 짐작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굳이 매복한 채 자신들이 광산 안에 걸어 들어가길 기다릴 바보가 어디 있을까?
그 생각이 들자마자 곧바로 르리에의 문을 통해 타우린을 소환했다.
그 후 지반이 흔들렸다.
‘예상이 맞은 거지.’
타우린은 당연히 자신의 몫을 다해 줬다.
무너지는 반경 15m의 모든 암석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흔들림 없는 커다란 돌의 구체를 지은 것이다.
지반이 무너질 때도 그 구체는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켜 줬고 그 덕분에 안에 있던 인원 모두 무사히 광산에 매몰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타우린은 그 일이 끝나자마자 지쳐서 잠들어 버렸지만, 어떤 피해도 없이 막아 낸 성공적인 방어였다.
‘그다음 추적은 쉬웠고…….’
그때부턴 마차들이 지나간 흔적을 따라왔기에 전혀 어려운 건 없었다.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한 우랄이 점점 흥분했다.
“어서 질문해라.”
“그만 하지.”
“안 돼, 더 하란 말이다!”
아직 중요한 게 남았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들어야 했다.
“말해, 어서 말하란 말이다. 그 매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심비가 살아 있는 게 느껴지는데도 어째서 너희들이 살아있는지 그 모두 말이다!”
찬영은 그의 이야기 중 ‘심비’ 라는 낯선 단어에 주목했다.
‘심비? 그게 뭐지?’
찬영이 대답 없이 조용히 눈살을 찌푸리고 있자 그 순간 우랄의 눈동자에 이채가 흘렀다.
“역시나 그랬군. 너희들 심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구나. 마주친 적이 없었던 거야.”
확신하는 우랄을 향해 찬영은 더 입을 열지 않았다.
우랄이 처음으로 섬뜩한 미소를 보였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럼 너희들이 운이 좋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겠구나. 매몰은 피했으나 심비는 못 마주쳤다? 하지만 더는 운이 따라 주진 않을 것이다.”
그 말과 함께 우랄은 난전이 된 배 위를 쳐다봤다.
비명이 나오고 쓰러지는 자들은 온통 자신의 부하들뿐이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가장 최정예였던 칼립토 학파의 5서클 마법사인 후딘과 그 제자들까지 무너트린 작자들이니까.
뿌드득!
이를 간 우랄은 잔뜩 화가 났다.
자신의 계획 때문에 하나둘 목숨을 잃고 있는 부하들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 그 따위 감정 때문이 아니다.
온몸의 솜털 위에 개미 떼처럼 기어 다니고 있는 이 빌어먹을 패배감 때문이었다.
“난 방심하지 않았고 전력을 다했다. 그저 조금의 운이 안 따라 줬을 뿐.”
파르르 치를 떨던 우랄이 찬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정말 그랬다.
그런데 처음으로 모든 계획을 저지당했다.
그건 모욕과 같았다.
“그랬나?”
찬영이 반문하자 우랄이 대답 대신 쓰고 있던 관을 집어 던졌다.
그러자 머리에 불룩 솟아 있는 차원의 돌과 이마에 달린 그의 세 번째 눈이 찬영의 눈에 들어왔다.
‘저건…….’
세 번째 눈이다. 아마, 그의 능력과 관계있을 것이다.
‘이번엔 어떤 능력이지?’
이제껏 차원의 돌이 이식된 적들은 하나 같이 생소한 능력을 선보였다.
라쿤 마을의 해적들은 1회 부활과 함께 능력 이상의 근력을 일으켰었고…….
‘그 외 수많은 능력이 있었지.’
그 능력을 상대할 때마다 꽤나 까다로운 전투를 겪었기에 찬영은 더욱 마음의 경계를 다졌다.
“너는 이제 정말로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고함친 우랄의 소매에서 작은 비수가 불쑥 솟아 나왔다.
“뭐하는 짓…….”
찬영이 나직이 중얼거리던 그때.
우랄이 자신의 목을 향해 그 비수를 지체 없이 찔러 넣었다.
쐐액! 푸욱!
“커헉…….”
우랄이 피를 토해 내며 풀썩 주저앉았다.
“크크큭…….”
그럼에도 그는 웃었다.
찬영은 우두커니 서서 그를 마주 보았다.
이해되지 않는다.
‘반항 없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자결하는 뉴 빌드 일원을 아직 본 적이 없다.
‘다른 의도가 있어.’
그게 뭐든 그의 자결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찬영은 황급히 그에게 다가갔다.
“말해 봐. 뭣 때문에 자결하는 거지?”
“……글쎄?”
우랄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즐거워하고 있어.’
찬영은 그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썼다.
“고민하고 있구나. 궁금하겠지. 쿨럭.”
또 한 번 피를 토한 우랄은 찬영의 표정을 살피며 키득거렸다.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이번엔 네가 묻지 않은 걸 말해 주마.”
“뭐지?”
“내 머릿속에 있는 이 돌은 수많은 몬스터들을 먹이감으로 삼은 포식자를 구속해 왔다. 그 말은 곧 놈이 내 죽음에 반응할 거란 얘기지. 놈은 돌을 삼키기 위해 날 찾아올 것이다.”
찬영은 그게 뭔지 정황상,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심비.”
나직한 찬영의 목소리에 우랄이 광기로 물든 눈동자를 굴렸다.
“잘 맞췄다. 애송아.”
우랄이 찬영의 앞에서 처음으로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낄낄거리며 웃어대던 그가 찬영을 향해 외쳤다.
“내가 이겼다! 너흰 아무것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내가 왜 네 질문에 대답해 주었는지 아느냐?”
“왜지?”
“너희의 무덤이 이곳이 될 테니까.”
우랄의 세 번째 눈이 번쩍였다.
차원의 돌을 이식한 그의 두 번째 힘은 ‘감응 제어’ 였다.
그리고 그 제어가 지금 깨져 버렸다.
푸스스!
우랄의 세 번째 눈동자가 돌처럼 변하며 굳어버린 건 순식간이었다.
쿠쿠쿠쿠!
동시에 동굴이 흔들렸다.
찬영은 황급히 우랄의 머리에 이식된 차원의 돌을 흡수하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올드 원의 주문 효력으로 인해 히든 퀘스트 완료까지 차원의 돌을 흡수하실 수 없습니다.
-히든 퀘스트 발생.
찬영이 눈을 부릅떴다.
히든 퀘스트는 어떤 조건을 달성했을 때 부여된다.
단언컨대 심비라는 몬스터와 관련 있을 것이다.
‘오고 있어.’
찬영이 그 생각과 함께 빠르게 퀘스트를 읽었다.
-히든 퀘스트 : 심비를 저지하라
-우랄의 죽음으로 봉인되어 있던 심비가 자유로워졌습니다. 심비는 차원의 돌을 삼키고 더 강해지려합니다. 심비를 제거하세요.
-퀘스트 완료 조건 : 심비 처치
-히든 퀘스트 완료 시 획득할 보상 목록
-심비 하트
-+1 업그레이드권
-다이아 박스 8급 박스
-심비가 삼킨 ‘우스’ 동력기
당장, 완료된 보상 목록은 보이지 않는다.
내용이 중요했다.
찬영이 빠르게 히든 퀘스트를 살피던 그때.
콰쾅!
동굴 벽을 뚫고 거대한 꼬리가 튀어나왔다. 그 꼬리는 순식간에 동굴 암벽을 무너트렸고 그사이로 머리부터 꼬리까지의 길이가 30m에 이르는 거대한 몬스터가 나타났다. 가치 측정 30,000에 이르는 몬스터였다.
동굴이 전부 무너질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배에 있는 이들이……!’
찬영은 이를 꽉 깨물며 이미 죽어 있는 우랄을 노려봤다.
엿 한 번 시원하게 먹은 기분이다.
뿌드득!
이를 악다문 찬영은 그를 콱 끌어안았다.
‘네 뜻대로 흘러가진 않을 것이다.’
찬영이 우랄을 안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어차피 놈이 노리는 건 우랄.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옮기면 그만이다.
“찬영!”
찬영을 따라 몬스터가 이동하기 시작하는 걸 본 로레인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하지만 누구도 말리지도, 쫓을 생각도 못했다.
이미 그는 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고 심비가 그 뒤를 쫓아 미끄러지듯 유영했다.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로레인이 마른침을 삼켰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하얗게 질린 로레인이 나직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