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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52화 (152/248)

# 152

152화

* * *

“저기야.”

로레인이 턱짓을 했다.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엔 커다란 요새가 있었다.

넓은 평야 부지 위에 세워진 요새는 마치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성곽 같았다.

갈색 나무로 견고히 세워진 요새엔 총 일곱 개의 망루가 있었다.

“정면으로 들어가면 망루에 들키는 건 시간문제야.”

로레인이 말했다.

찬영도 동의하는 바였다. 여긴 숫자가 적은 데다가 저 안엔 얼마나 많은 포로가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분명 저 안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겠죠. 장담컨대 포로들까지 인질로 잡혀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여러모로 좋지 않네.”

로레인의 대답에 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실망하진 않는다.

상황은 언제나 불리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런 선택이 필요하다.

“그럴 바엔 정면으로 움직이시죠.”

“정면?”

“예.”

“그러자.”

어차피 저들도 자신들이 올 걸 알았을 것이다.

결국, 기습의 의미는 진작 사라졌단 얘기.

힘 대 힘으로 우열을 가리는 정면 승부가 나올 것이다.

“병력이 얼마나 있을까요?”

듣고 있던 지수가 물었다.

“글쎄요.”

찬영은 고개를 저었다.

적의 전력을 탐색할 수 있는 아티팩트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건 없다.

이전에 사용하던 D급 옵저버가 있긴 하다. 그러나 전력이 상승된 적들을 상대하다 보니 오래 전부터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됐다.

D급 옵저버는 16만mp까지만 감지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적의 전력이 어느 정돈지는 직접 상대해 봐야 안단 얘기다.

“부딪쳐 봐야 알겠죠.”

찬영이 숲 너머로 보이는 요새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 * *

츠츠츠!

안개가 망루 일대에 펼쳐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 망루에 있던 해적들이 당황했다.

“저, 적이다!”

“경계 태세를 유지해! 숫자는 우리가 더 많다!”

망루에 자리 잡은 인원은 최대 열 명.

총 일곱 개 망루에 자리 잡은 인원만 일흔 명 정도였다.

그때 망루를 뒤덮은 안개 사이로 푸른 눈동자가 나타났다.

이를 발견한 해적들이 안개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래비티 필드.”

주위 공기가 달라졌다.

“흡!”

열 명의 해적이 순식간에 쏟아지는 강한 중력에 덜덜 떨며 납작 엎드리며 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저벅저벅.

그 순간 망루 안에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죽음의 소리였다.

“컥.”

“크흑.”

함께 쓰러진 동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흐으으…….”

마지막 남은 해적은 옴짝달싹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가까워져 오는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절로, 두려움이 밀려왔다.

“제기랄…….”

억울했다. 죽기 싫었다.

그가 입을 벙긋거렸다.

“살려 줘. 살려 달라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 흐으으!”

어차피 힘이 있는 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그냥 그 법칙을 따른 것뿐인데.

그 순간 해적이 보고 있던 발자국이 걸음을 멈춰 세웠다.

“후회할 거였으면…….”

찬영이 해적을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말았어야지.”

서걱!

그는 해적의 목을 베어 버린 후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 * *

요새는 광산과 이어져 있는 구조였다. 광산을 중심으로 벽을 둘러 요새를 세운 구조였던 것이다.

“방금 한 놈이 얘길 털어 놨어.”

“어떤 겁니까?”

“광산은 다른 정박지로 통하는 다른 길과 이어져 있다고 해.”

말을 마친 로레인이 주위를 둘러봤다.

요새는 함락됐다.

찬영이 망루를 장악했고, 그사이 글로리가 요새 입구를 정면으로 부숴 버렸다. 그 다음엔 백 명이 넘는 해적을 섬멸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래서 쉬웠군요.”

찬영이 그녀의 곁에 서며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게 5층 높이의 요새는 텅텅 비어 있었다.

내부의 모든 곳을 이 잡듯 뒤졌으나 포로는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찬영은 요새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광산 안을 내려다봤다.

요새에 감춰져 있던 커다란 분지가 보였다.

그 규모가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거 같다.

“저기가 입구군요.”

분지 안에 유일하게 뚫려 있는 원통형의 굴엔 기다란 여섯 개의 철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행은 거침없이 그곳으로 내려갔다.

그 후 굴 앞에 선 찬영이 비어 있는 철길을 쳐다봤다.

“여섯 개의 철길 위에 광차鑛車가 한 개도 없다는 건…….”

“……그들이 광차들을 활용해 어딘가에 수송을 시작했단 얘기겠지.”

로레인이 뒷말을 대신 이었다.

이제 뭘 해야 할진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로레인이 입을 열었다.

“광산은 길이 한 개 밖에 없어. 그대로 따라 들어가면 될 것 같아. 제리!”

“예!”

“끈으로 몸을 전부 이어서 선발대와 후발대로 나누자. 후발대를 맡도록 해.”

“이유가 있습니까?”

“혹시나 무너질 걸 대비하는 게 나으니까.”

그때 찬영이 말했다.

“그럼 전 선발대에 서겠습니다. 제게 케어 라이트가 있어요. 여러모로 그게 가장 낫겠습니다.”

“이의 없어. 그렇게 해.”

로레인의 대답과 함께 찬영을 필두로 한 선발대가 광산 안으로 진입했다.

입구의 빛이 닿지 않는 곳까지 진입했을 때쯤 친양은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후발대를 보는 건지 다른 곳을 보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어딘가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건 확실했다.

* * *

찬영 일행이 떠난 뒤, 철길 주위에서 땅거죽이 들썩였다.

처음엔 땅에 작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보였다.

하지만 알고 보니 지진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사람 열 명 정도 들어갈 만한 수백 개의 작은 굴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가장 먼저 굴을 빠져나온 건 우랄이었고 그 뒤로 후딘이 흙을 털며 빠져나왔다.

“적당한 미끼를 주고 큰 이득을 취한다? 마음에 드는 계책이군요.”

후딘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러자 우랄이 웃으면서 관을 벗었다. 그러자 그의 머리에 이식된 차원의 돌과 함께 이마에 자리 잡은 세 번째 눈이 모습을 드러냈다.

올드 원의 주문 중 하나인 ‘투시’로 인한 외형 변화였다.

투시를 사용하면 두 가지 능력이 가능했다.

반경 40m의 상대 움직임을 어떤 벽이 있던 감지할 수 있는 게 그 첫 번째였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걸 참을 수 없었겠지요. 그러니 별 의심 없이 들어간 것이겠지만……. 크큭!”

우랄이 음침한 미소를 보이며 키득거렸다.

이번처럼 짜 놓은 계획이 들어맞을 때 그는 희열을 느꼈다.

백 명 좀 넘는 것들을 죽여야 하긴 했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제 욕심 채우느라 바쁜 개미만도 못한 것들이니.

‘그래도 적당히 잘해 주었다.’

사실 남아 있는 부하들에겐 정말로 저 광산을 통해 빠져나갈 것처럼 얘기해 뒀다. 충성심 없는 부하들이 저들 살겠다고 모든 걸 떠벌릴 거라 예상한 탓이다. 그 예상은 늘 그렇듯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덕분에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놈들이 한치의 의심도 없이 저 광산으로 들어가질 않았나? 크큭…….’

본래 승리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적을 죽여야 비로소 진정한 승리라고 생각하는 바. 우랄은 이번 승리에 굉장히 만족했다.

장담컨대…….

‘저 안에선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미라처럼 비쩍 마른 몸에 왜소함을 가리기 위해 걸친 화려한 장신구들은 그가 웃느라 어깨를 들썩일 때마다 번쩍였다.

“자, 이제 물자들을 가지고 정박한 배로 가시지요.”

우랄이 말했다.

“그러시지요. 가자, 제자들아.”

열 명의 검은 로브 마법사들이 후딘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흐음…… 터질 때가 됐거늘?”

돌아선 후딘을 따라나서지 않고 광산을 바라보던 그가 부하를 한 명 불렀다.

“얘야.”

“예, 우랄님.”

“저 안에 가 봐라.”

“하, 하지만 저긴 곧 터진다고…….”

부하가 머뭇거리자 우랄이 넌지시 반문했다.

“그래서 가기 싫다고? 그럼, 여기서 죽어야지.”

눈썹 없는 대머리인 우랄이 슬며시 미소 짓자, 그 분위기가 무척 괴이했다.

“가, 가겠습니다!”

세 개의 눈동자가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자 해적이 부리나케 광산 안으로 달려갔다.

그러길 얼마 지나지 않아…….

콰콰콰쾅!

갑자기 지반의 균열이 일며 어마어마한 폭발이 광산을 통째로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들어간 지 얼마 안 됐는데……. 뭐, 상관없겠지.”

우랄은 자신이 죽인 거나 다름없는 부하 따윈 머릿속에서 금방 잊어버렸다.

* * *

우랄에 의해 강제로 들어간 해적은 미친 듯이 달렸다.

“으으으어어!”

어차피 들어온 입구로는 돌아갈 수도 없었다. 마나 탱크 오십여 개분의 마나를 일제히 화염 마법진으로 터트린 폭발이다.

거기에다가 가장 약한 지반에 터트렸으니…….

‘이젠 꼼짝 없이 죽었다!’

쾅! 쾅!

달리는 그의 머리 위로 돌들이 추락했다.

그는 살기 위해 그 돌들을 사력을 다해 피해 가며 광산 철길을 따라 깊숙한 곳으로 달렸다. 하지만 그런 바람은 허무하게 날아갔다.

-치에엑!

스무 개의 발을 가진 거대한 몬스터가 무너지는 굴을 부수며 그의 앞을 뚫고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놈은 몸통, 머리, 꼬리가 일체형으로 되어 있었다.

몸에 난 구멍에서 독 안개를 일으키는 수백 개의 촉수들은 살아 있는 것처럼 길게 뻗어 나와 몸통에 추락하는 돌을 사정없이 산산조각 냈다.

콰콰쾅!

지반이 무너지는 것 따윈 상관없다는 듯 3m 정도는 되는 거대한 꼬리를 흔들며 길을 뚫고 나아가는 검붉은 몬스터를 코앞에서 본 해적은 비명이 나올 것 같은 자신의 입을 급히 두 손으로 막았다.

‘아, 안 돼…….’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이제야 우랄의 계획을 알겠다.

우랄은 단순히 폭발을 원한 게 아니었다.

그는 요새를 구축하며 봉인해 두었던 가장 끔찍한 몬스터를 깨운 것이었다.

그 순간 해적의 앞을 지나치던 몬스터의 꼬리 부근에서 녹색 촉수가 튀어나와 그의 발목을 순식간에 낚아채 버렸다.

“으, 으아악! 살려 줘!”

해적의 비명 소리가 무너지는 동굴 속에 파묻히는 건 순식간이었다.

* * *

우랄은 본래 정박되어 있을 해적선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침입한 적들이 해적선을 그대로 남겨 두지 않고 노획해 갔거나 혹은 태워 버렸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맞았다.

그 근처를 정찰하고 돌아온 부하가 해적선이 이미 전부 노획되어 사라졌다고 알려 왔다.

그러나 이런 일쯤 예상 못한 게 아니었다.

우랄은 늘 최악을 준비했다.

지금처럼.

그래서 물이 깊숙이 들어와 있는 굴에 숨겨 둔 다섯 척의 수송선으로 향했다. 이곳은 광산과 통하는 길 근처에 있는 굴로써, 본래라면 광산 길을 빠져나와 이곳으로 오는 게 가장 빠른 길이었다.

“크큭…….”

우랄은 평화롭게 정박된 채, 포로부터 모든 물자를 하나둘씩 담고 있는 부하들을 보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어리석은 것들.’

늘 느끼는 거지만 인간들의 감정은 그저 약점일 뿐이다.

감정적인 동료애, 가족애…… 그런 모든 쓸데없는 것들.

결국 그따위 허상에 불과한 감정들로 인해 놈들은 죽을 길로 찾아가지 않았나.

장담컨대 모든 몬스터를 전부 삼켜 버린 ‘심비’가 놈들마저 집어삼켜 버렸을 것이다.

폭발, 무너지는 광산, 심비까지 놈들이 견뎌 내야 할 위기는 한둘이 아닐 테니 말이다.

‘제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말이지.’

그는 확신하며 슬슬 떠나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

그런데 그때, 배가 정박되어 있는 커다란 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소한 것 하나 그냥 넘기는 거 없는 우랄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 버렸다.

‘광산이 무너지는 여진은 이미 진즉에 지나갔는데? 또 다시 여진이 생겼다?’

그럴 리 없다.

후딘도 여진을 느끼고 이미 배에서 내려와 있었다. 그가 이끄는 열 명의 칼립토 학파의 마법사들이 후딘을 따라 우랄에게 다가왔다.

“느낌이 좋지 않아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글쎄요. 그래서 말인데……. 괜찮다면 동굴 밖을 경계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우랄의 부탁에 후딘이 자신의 마법사들을 데리고 동굴 밖으로 나갔다.

동굴과 이어진 암석을 밟고 지상으로 올라가는 후딘 무리를 보며 우랄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설마……. 그 지옥 같은 광산 속에서 살아서 나왔다고?’

우랄은 확신하던 방금 전과 달리 속에서 싹튼 불안감을 쉽게 없앨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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