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자동보상-151화 (151/248)

# 151

151화

보테는 곧바로 비행 마법을 펼쳤다.

‘플라이.’

점점 위로 뜨는 몸과 함께 아래를 내려다봤다.

놈들이 방금 서 있던 자리를 향해 접근해가는 게 보인다.

‘한참, 찾아도 없을 게다. 제대로 헛짚은 것이니.’

보테는 비행을 유지하며 우선 그들의 포위망을 빠르게 벗어났다.

그때, 흑발 남자가 소리쳤다.

마나 스캔으로 보테를 잡을 수 없단 걸 직감한 것이다.

“아직 벗어나지 않은 걸 안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나 네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가 양손을 다른 마차에 겨눴다.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다. 저들이 죽는 건 네가 나타나지 않아서겠지.”

보테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고도 남을 자들이다.’

보테의 시야엔 아직도 화염에 휩싸여 있는 마차가 보였다.

‘이런…….’

다른 마차에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어느 쪽이던 선택해야 했다.

‘내 목숨이냐, 아님 저들의 목숨이냐…….’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 * *

“크흡!”

얼음 창이 검은 로브 마법사 중 세 명의 심장을 꿰뚫었다.

순식간에 이뤄진 기습.

동료들이 죽는 걸 본 흑발 남자가 인상을 쓰며 외쳤다.

“내 말을 허투루 들은 모양이구나.”

마차를 겨누고 있던 그는 지체 없이 파이어 볼을 날렸다.

화르륵!

집채만 한 불덩이가 날아갔다.

불덩이는 곧 마차를 아까와 같이 태워 버릴 게 분명했다.

‘실드.’

그때 얇은 마나 방패가 생겨나며 불덩이를 막아 냈다.

치치치칙!

실드가 불덩이에 타는 소리가 들리며 투명화되어 있던 보테의 몸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투명화가 풀릴 걸 각오한 것이다.

‘강하구나.’

평범한 파이어 볼이었다면 2서클 실드로 막아 내기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일반적인 파이어 볼이 아니다.

실드에 균열이 일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곧 깨지겠구나.’

이미 투명화가 풀린 몸이다. 마차에 있는 이들이라도 살려 내야 했다.

보테는 다음 마법을 사용할 여유 따위 두지 않고 모든 마나를 실드에 쏟아부었다.

1겹, 2겹, 3겹…….

닥치는 대로 주문을 외워 실드의 실드를 겹쳤다.

치치칙!

그제야 조금씩 불길이 소멸되어 가는 게 느껴졌다.

‘됐구나.’

보테는 정말 기뻤다.

투명화가 풀리든 말든 그건 나중의 문제고, 지금은 마차를 구했다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파이어 볼이 소멸됐다. 하지만 보테가 상대하는 건 하나가 아니었다.

푸욱!

미소 짓고 있는 보테의 등 뒤로 윈드 스피어가 튀어나왔다.

또 다른 검은 로브 마법사가 등을 노린 것이다.

“커헙!”

헛바람을 들이 삼킨 보테.

그는 천천히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봤다.

가슴에 삐죽 솟은 윈드 스피어가 보였다.

“이 정도론 이 늙은이를 못 죽인다!”

밀려드는 통증으로 인해 눈앞이 아찔했으나 보테는 쓰러지지 않고 소리쳤다.

‘네놈들한텐 절대로.’

무릎 꿇지 않을 것이다.

보테는 억지로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뻣뻣이 세웠다.

쐐액! 푸욱!

하지만 또 하나의 아이스 스피어가 그의 허리를 꿰뚫고 삐죽 솟아올랐다.

“쿨럭.”

보테는 참고 있던 피를 토해 냈다.

꺾이지 않은 마음과 달리 몸이 버티지 못하고 한쪽 무릎이 풀렸다.

“하아, 하아.”

흑발 남자가 겨우 숨만 쉬고 있는 보테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헐떡이는 보테를 내려다보며 가볍게 눈썹을 찡그렸다.

“어리석은 것, 넌 그냥 도망쳤어야 했다.”

“너야말로.”

보테는 흑발 남자를 올려다보며 비웃었다.

“유언치곤 짧군.”

흑발 남자가 윈드 스피어의 주문을 외웠다.

쐐애액!

주문을 외는 시간이 흐른 후 윈드 스피어가 보테의 목 위에 내리꽂히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보테조차도 더는 살아남길 포기했다.

한 줄기 목소리를 듣기 전까진.

“유언 같은 소리 하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얀 안개가 보테를 뒤덮었다.

아니, 그만 뒤덮은 게 아니라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가 주위를 뒤덮었다.

방관하던 해적들이 당황했다.

“뭐, 뭐야!”

“경계해라! 갑자기 안개가 끼고 있다!”

“마, 마법인가?”

그러나 당혹스러워 한 건 해적들뿐만이 아니었다.

나머지 검은 로브 마법사들도 전혀 대처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렸다.

츠츠츠!

그다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보테의 목 위로 떨어진 윈드 스피어가 일제히 소멸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소멸된 게 아니라 보테를 둘러싼 안개가 윈드 스피어를 막아 낸 것이었다.

‘대장이군.’

보테는 이 안개의 주인공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왜 모르겠나, 마을의 폭발을 막은 게 바로 이 안개였는데…….

보테는 자랑스럽게 웃었다.

“누구 마음대로 죽으래?”

로레인이 안개를 뚫고 나타났다.

예상대로였다.

“영감.”

눈시울이 붉어진 로레인과 함께 보테가 힘겹게 미소 지었다. 그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피 묻은 손으로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로레인, 울지 마라.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흔들리면 안 되는 게야.”

“알았어. 알았으니까, 의식 잃지 마.”

“난 늘 네가 자랑스러웠다……. 언젠가부터 내 자식처럼 생각했어.”

말끝을 흐리는 보테는 서서히 의식이 흐려졌다. 로레인이 그를 더욱 세게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유언처럼 말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그 대신 로레인의 볼을 쓰다듬던 손이 바닥을 향해 느리게 떨어졌다.

이제 할 일을 끝낸 사람처럼 그렇게.

“안 돼. 일어나! 일어나라고!”

로레인은 울음을 참으려 꽉 다문 잇새 사이로 소리쳤다.

바로 그때 그녀의 등 뒤로 흑발 남자가 나타났다.

외침 소리를 쫓아 또 다시 두 사람을 찾아온 거였다.

“놓칠 거라 생각했더냐?”

흑발 남자는 적의 가득한 눈으로 로레인을 보았다.

누군지는 모르나 노인을 구하기 위해 이 안개를 일으킨 장본인일 것이다.

“전부 죽여 주마.”

울고 있는 로레인을 향해 흑발 남자가 주문을 일으켰다.

쐐액!

하지만 주문을 통한 캐스팅은 완벽히 이뤄지지 않았다.

캐스팅이 완료되기 직전 또 다른 손이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워낙 강력한 완력이라 흑발 남자는 반항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크흡!”

순식간에 뒷목을 잡힌 흑발 남자는 눈 깜짝할 새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헉!”

그 손은 흑발 남자의 안면을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이가 모조리 깨진 흑발 남자가 피를 뱉으며 눈을 들었다.

“누구, 대체 누구냐! 쿨럭!”

안간힘을 써서 누군지 확인하려는 그의 시야에 보인 건 검붉은 망토였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날아온 건 푸른 검날뿐.

서걱!

단숨에 아슬란으로 검은 로브 마법사를 베어 버린 찬영은 울고 있는 로레인을 바라봤다.

안쓰러웠다.

하지만 이 순간,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

그는 피를 다 털어 내기도 전에 안개 속을 달렸다.

로레인이 일으킨 안개의 지속력은 삼 분.

찬영은 그 삼 분 사이에 모든 적들을 정리할 참이었다.

‘느껴진다.’

렌즈로 확인하는 게 아니었다.

호흡, 발자국……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찬영은 안개 속의 맹수가 됐다.

터벅.

아슬란은 조금의 실수도 없었다.

서걱!

모여 있는 해적 다섯 명 사이로 돌진한 찬영이 한 번 검을 휘두르자 그 끝에 서린 오라가 주위를 바람처럼 휩쓸었다.

신음도 없었다.

다섯 명이 호흡 한 번 되새기던 순간에, 그들의 목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투두둑.

그건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해적과 같은 신세였다.

작정하고 안개 속에 기척을 숨긴 찬영의 움직임을 마법사들이 잡을 리 없었다.

슥, 슥.

비명도 없이 하나둘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살아남은 해적들이 마차 앞으로 모였다.

“포, 포로들을 끌어내 와!”

해적들이 우르르 마차로 들어가 포로들의 목 위에 무기를 들이밀었다.

그 후 한 해적이 소리쳤다.

“인질을 잡고 있다! 우, 우릴 살려 주지 않으면 인질의 목숨은 없다!”

그 외침에도 안개 속은 고요했다.

조용한 정적이 흐른 채 시간이 갔다.

겨우 몇 초 흐르지 않은 순간이지만 해적들은 진땀을 뚝뚝 흘렸다.

“으으어…….”

그때 안개 속에서 그림자가 일렁였다.

“찔러!”

극도로 두려움에 휩싸인 해적들은 그림자가 보이자마자 그곳을 향해 무기를 쑤셔 넣었다.

“크헉……!”

그러나 안개 틈을 뚫고 등장한 건 팔이 하나 잘린 그들의 동료였다.

“그, 그놈이 아니야.”

졸지에 동료를 죽인 해적들이 황급히 물러났다.

그때 싸늘한 목소리가 마차 위에서 들렸다.

“살려 달라는 건 잘난 너희 신에게나 빌어. 난…….”

“어, 언제?”

해적들이 눈을 부릅뜨며 마차 위로 고개를 돌렸다.

공진을 흩날리며 서 있는 찬영이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럴 생각 없으니까.”

동시에 그들의 시야로 뭔가가 번쩍이며 날아왔다.

그게 그들이 본 마지막이었다.

성난 아슬란의 궤적에 따라 목, 팔, 다리가 베인 해적들이 순식간에 핏덩이가 되어 얼어붙었다.

찬영의 발이 닿는 모든 곳이 빙판이 되어버렸을 때 더 이상 살아남은 해적들은 없었다.

서서히 안개가 걷혀 가기 시작했다.

* * *

로레인은 보테의 시신과 해적들에게 잡혀 있던 이들을 제리에게 맡겼다.

“이들을 데리고 마차를 끌고 해안으로 가.”

“예.”

제리가 평소와 다르게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로라 씨에겐 이분들이 전부 배에 올라타면 센터스 시로 출발하시라고 하고…….”

“그 후에 합류하겠습니다.”

제리가 딱딱해진 말투로 대답했다.

분노가 꾹꾹 눌러 있는 그의 목소리에 로레인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

“네.”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제리가 다섯 명의 동료와 함께 움직였다. 곧 시야에서 사라지는 마차와 함께 로레인이 찬영을 쳐다봤다.

“찬영.”

“예.”

“난 이 섬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거야. 투항하겠다고 말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란 얘기야.”

핏발 선 로레인의 눈엔 분노가 가득했다.

“날 막아설 거라면 지금 물러나.”

그녀의 고압적인 말투에 찬영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던 찬영이 들고 있던 아슬란을 고쳐 쥐면서 대답했다.

“여기까지 왔을 땐…….”

찬영의 눈동자에 푸르스름한 한기가 서렸다.

그건 아슬란의 주인이 낼 수 있는 냉혹한 살의.

“그만한 각오 정돈 되어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대답을 마친 찬영이 글로리와 지수를 쳐다봤다.

“전 로레인 씨를 따라나설 겁니다. 두 분은?”

글로리가 자신의 장비를 꽉 쥐며 대답했다.

“난 이미 그대들의 전쟁에 끼어들었네. 그건 함께 끝을 보겠다고 생각한 것이지. 그게 그대들이 말하는 각오라면…… 이미 나도 마친 지 오래라네.”

찬영의 시선이 이번엔 지수를 향했다.

지수는 주저하지 않았다.

옆에서 많은 걸 봤고 느꼈다.

“제 임무는 양찬영 각성자님을 보필하는 겁니다. 각성자님에게 위협이 되는 걸 막아서는 게…….”

그녀가 검을 고쳐 쥐면서 말을 이었다.

“제 사명입니다.”

지수의 대답까지 들은 찬영이 로레인을 다시금 쳐다봤다.

“저희의 대답입니다.”

로레인이 울컥하는 마음을 꾹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7인의 친위대 중 군다 바오트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우랄은 자신을 따르는 오십여 명의 해적과 함께 요새 입구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데…….

‘불길하군.’

마차가 올 때가 됐는데 소식이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거기에다 혹시 따라붙은 것이 없나 확인하기 위해 보낸 칼립토 학파의 마법사들 역시 어떤 교신도 보내오고 있지 않다.

이쯤 되면.

“무슨 일이 났군.”

우랄은 전혀 흥분기 없는 차분한 어조로 읊조렸다. 칼립토 학파의 수장과 깊은 친분이 있는 그는 7인의 친위대 중 가장 침착하고 영리한 존재였다. 아니, 모두가 그를 그렇게 여기며 따랐다.

“얘야.”

“예, 말씀하십시오.”

우랄의 부하가 얼른 그의 앞에 엎드렸다.

“붉은 탑에 불을 붙여라.”

“부, 붉은 탑이라면……!”

그 얘길 들은 해적은 경악했다.

붉은 탑은 요새 정중앙에 있는 탑으로써 가장 높게 지어졌다.

그곳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

‘퇴각’이다.

붉은 탑에 불을 붙인다는 것은 요새를 전부 버리고 떠나겠다는 뜻이다.

“아, 알겠습니다!”

부하가 황급히 요새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우랄의 곁에 있던 검은 로브 마법사가 다가왔다.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후딘님.”

“예.”

“굳이 따지면 안 그럴 이유도 없지요. 마법 통신구로 센터스 시가 함락됐단 소식을 들었고, 귀환한 후 더욱 자세히 보고하겠다고 했던 부하에겐 소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은으로 된 화려한 장식의 관을 쓰고 있는 우랄이 눈을 빛냈다.

“실수 한 번 없던 칼립토 학파의 마법사들에게서 소식이 끊겼습니다. 정황상 시를 장악한 자들이 여기까지 들이닥친 것 같습니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아뇨. 그보다 급한 일이 있습니다.”

“어떤?”

“우리의 임무는 보급과 채굴, 포로 관리였습니다.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지키면서 바오트 님께 돌아가는 게 최우선이란 얘기지요.”

“흐음, 알겠습니다.”

“선선히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미 계획이 있으신 것 같아 그랬습니다. 아닙니까?”

후딘이라 불린 마법사의 반문에 우랄이 빙긋 웃기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