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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50화 (150/248)

# 150

150화

* * *

솨아아!

빠른 속도로 나아가던 배가 조금씩 속도를 줄였다.

갑판 위에 서 있던 찬영도 느낄 정도의 차이였다.

‘가까워지고 있는 건가?’

분명 그런 것 같다.

저벅저벅.

그 생각을 하던 중에 로레인이 옆에 다가왔다.

“흔적이 없었으면 찾기 힘들 뻔했어.”

“로라 씨가 그랬습니까?”

그녀는 찬영 일행을 돕겠다고 나선 국경 수비대 소속 센터스 함대의 한 항해장이었다.

광산으로 끌려가지 않은 그년 여자로서 모진 일을 당했으나 굴하지 않고 이 일에 자원해 줬다. 다행히 도시엔 광산에 끌려가지 않은 그녀 같은 군인들이 많았던 것이다.

“응, 이 일대는 좁은 해협이 미로처럼 되어 있대. 그래서 난파되기도 쉽고, 섬 깊은 곳에 숨어든 배를 찾기도 쉽지 않대.”

“그럼, 우리가 운이 좋았네요. 흔적은 보테 씨가 남겨 줬고 해협을 잘 아는 로라 씨를 배에 태웠으니까요.”

그녀는 항해장이란 자리에 있던 사람답게 센터스 시 일대의 섬과 바다는 줄줄 꿰고 있는 해군이었다.

로레인이 고개를 저었다.

“난 운이라고 생각 안 해. 놈들이 뿌린 대로 거두는 거지. 뉴 빌드였던 해적은 알게 될 거야. 앞으로 대륙에 사는 전부와 싸우게 될 거라는 걸.”

“동의합니다.”

그녀 말대로 뉴 빌드는 지나는 곳마다 눈 뜨고 힘든 악행을 저질렀다.

그건 언젠가 그들의 폐부를 찌를 비수로 작용할 것이다.

‘머지않았어.’

찬영은 그 속에서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갈 생각이었다.

“보인다!”

그때 다른 갑판 위에 있던 제리가 소리쳤다.

찬영도 제리의 외침과 함께 저 멀리 섬 외곽에 정박되어 있는 수십 척의 해적선을 발견했다.

……찾았다.

지잉!

찬영은 조용히 아슬란을 꺼냈다.

* * *

‘효력이 다해간다.’

보테는 투명했던 손의 색이 진해지는 걸 확인한 뒤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시간이 없겠어.’

하지만 남은 소스를 쓸 순 없다.

이건 정말 위급할 때 써야 한다.

‘녀석들 깊숙이도 숨겨 놨군.’

소스의 효력이 다해 갈 때까지 이동했는데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만 것을 보면 섬에 꽤 깊숙이 들어간 곳에 요새를 지은 것이 확실했다.

‘하긴……. 이렇게 우거진 숲이 가득한 섬이라면 요새를 지어도 감쪽같이 숨겨지겠지.’

우거진 숲이 많은 섬을 놈들이 근거지로 택한 데에는 그런 이점들 때문일 게 확실했다.

‘그건 그렇고…….’

아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투명화는 서서히 풀려 가고 있고 자신은 마차 뒤에 매달려 있다.

보테는 힐끗 뒤를 쳐다봤다. 달리고 있는 마차 뒤로 보이는 오솔길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이다.

행렬의 끝에 있는 마차를 고른 덕분에 저만치 앞서가는 마차들이 투명화가 풀린 자신을 볼 일은 없을 테니.

‘내려야겠군.’

여러 갈래의 숲길 중 어디로 방향을 잡고 이동해야 할지 안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그 후엔 마차들이 지나며 생긴 흔적을 따라 이동하면 된다.

‘그럼 되거늘…….’

아주 쉬운 일인데 보테는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머릿속에 해적에게 학대당하던 모자가 떠올랐다.

‘두고 간 사이에 그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불안함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하지만 이런 불리한 전황을 혼자서 극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나이를 헛먹진 않았다. 가끔은 감정 대신 이성에 따라야 하는 선택도 있다는 걸 잘 안다.

펑!

그런 생각에 잠겨 있던 중, 갑자기 돌부리에 걸린 바퀴 때문에 갑자기 마차가 좌우로 크게 흔들거렸다.

예상 못한 일이었다.

그로 인해 포로와 화물을 적재해 둔 원통형 마차의 후미가 덜컹였고 그 충격으로 뒷문이 벌컥 열렸다.

‘이런!’

뒷문에 매달려 있던 보테가 반사적으로 땅으로 뛰어내렸다.

‘플라이.’

추락하면서 슬롯에 준비해 둔 마법을 즉시 사용한 보테는 땅을 나뒹굴기 직전, 가까스로 날아올랐다. 혹시 모를 충격이나 낙하에 대비해 늘 슬롯에 담아뒀기에 망정이지…….

‘크, 큰일 날 뻔했군!’

그대로 떨어졌다면 이 나이에 어디 하나 부러졌을 것이다.

보테는 소매로 식은땀을 닦으며 바닥에 착지했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남았다. 뒷문이 열린 걸 느낀 마차가 갑자기 정지한 것이다.

‘숨어야겠군.’

보테는 해적이 내리기 전에 모습을 숨기기 위해 빠르게 숲 속으로 달렸다.

그때, 길 양 옆으로 보이는 나무 사이로 로브를 쓴 자들이 나타났다.

보테가 그들을 먼저 발견하곤 깜짝 놀라 돌아섰다.

‘다른 길로 가야 해!’

마음이 다급해졌다.

얼른 방향을 선회해 다른 쪽으로 달렸다.

그러나 달리고 있던 방향의 숲에서도 검은 로브 무리들이 나타났다.

도망칠 데가 없다.

보테는 어쩔 수 없이 해적이 있던 마차를 돌아봤다.

‘늦었군.’

그사이 열 대가 넘는 짐마차가 전부 정차된 채 해적들이 내리고 있는 게 보였다.

더 도망치는 건 의미가 없었다.

물론 도망칠 만한 곳도 없었고…….

“웬 쥐새끼냐!”

마차에서 내린 해적들이 보테를 빽빽이 포위했다.

‘어쩔 수 없군.’

보테는 주위를 둘러싼 검은 로브의 괴인들을 힐끗 쳐다봤다.

느낌상 놈들은 마법사다.

아마 뉴 빌드에 소속된 것들일 것이다.

그때 해적 한 명이 소리쳤다.

“우릴 허술하게 봤구나.”

“허허, 이미 허술하게 뚫린 주제에 입으로 떠들어대긴…….”

“뭐라고? 늙은이, 주제도 모르는 걸 보니 노망이라도 난 모양이구나!”

“네놈보단 아주 멀쩡하다.”

보테는 지지 않고 대답한 후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래도 놈들 근거지가 이 근처인가 보구나.’

그게 아니라면 꼬리가 붙었는지 확인하는 정찰대가 굳이 이곳에 나타날 리 없다.

보테가 검은 로브의 무리들을 힐끗 쳐다봤다.

‘운이 안 좋았어.’

아마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마차에서 내렸다면, 발각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정이라는 게 뭔지…….

쉽게 내릴 수가 없었다.

“그 노망난 입부터 찢어주지. 쳐라!”

해적들이 전투에 임했다.

“침묵은 긍정이라…….”

보테가 주름진 눈을 만들며 씩 웃었다.

“죽여!”

“목을 가져오면 상을 받는다!”

보테의 눈에 주위를 포위한 채 달려오는 해적들이 보였다.

그는 주춤거리며 뒤를 쳐다봤다.

“후우, 빠져나갈 수 있으려나……?”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빠져나갈 수 없다면 시간이라도 벌어야 했다.

‘어느 쪽이 나을까?’

검은 로브의 마법사들? 아니면, 해적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잠깐!”

보테가 달려오는 해적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 순간 달려오던 해적들이 달려오던 걸 멈추고 눈살을 찌푸렸다.

덤벼들 줄 알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힘없는 노인네한테 몇이나 덤비려고? 그냥 가까이 와서 포박이나 해 가라. 어차피 난 혼자이니, 의미 없는 반항은 접어 두마.”

그러자 대답은 해적이 아닌 검은 로브 쪽에서 들려왔다.

“놈은 플라이를 사용하는 마법사다. 간사한 수를 쓸지 모르니 물러나라. 내가 하겠다.”

그중 하나가 머리를 쓰고 있던 두건을 벗으며 말했다.

“쯧.”

보테는 혀를 찼다.

‘읽혔나?’

방심하며 다가온 해적에게 공격을 가하고 그들의 포위망을 뚫어 볼 생각이었다.

마법사보단 별 볼 일 없는 해적이 상대하기 나으니까.

‘글렀군.’

해적들이 슬금슬금 물러나는 게 보인다. 보테와 얘길 나눴던 해적이 다른 해적들을 통솔했다.

“칼립토 학파 마법사들이 알아서 하게 다들 물러나!”

보테는 죄어 오는 긴장감에 점점 목이 탔다.

이렇게 되면…….

‘너희들이냐.’

보테가 뚜벅뚜벅 걸어오는 검은 로브의 흑발 남자를 쳐다봤다.

“네가 투항할 생각이라면 지금부터 네 몸에 침투할 마법을 거스르지 말라.”

‘슬립.’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보테는 눈을 빛냈다.

놈의 말대로 몸 주변에 따끔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직감상 기절시키거나 정신을 타격하는 마법일 것이다.

“거절하마.”

보테가 몸에 침투하려는 마나 흐름을 자신의 의지로 차단시킨 후 마지막 슬롯을 개방했다. 그는 3서클, 슬롯은 두 개가 최선이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게다. 짐승보다 못한 것들.”

“벌주를 마시겠다?”

검은 로브 마법사가 비웃었다.

“……파이어 볼!”

화르륵!

그 순간 마법사의 손아귀에서 불덩어리가 솟아올랐다.

강렬한 불길을 느낀 보테도 마지막 슬롯을 개방했다.

“에어 볼!”

쐐액!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구현된 마법을 날렸다.

쐐액!

날아간 바람의 구체.

닿는 순간 날카로운 바람이 쏟아지며 전신을 난자할 것이다.

하지만 적중되는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날아오는 파이어 볼을 피하는 것만 해도 급급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예상한 대로라면 적중을 못 면했어야 정상인데.

쿠당탕!

바닥을 나뒹군 보테가 눈을 부릅떴다.

‘내게 온 게 아니었다?’

고개를 돌린 보테의 시선에 날아간 파이어 볼이 한 마차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안 돼!”

보테의 간절한 외침에도 파이어 볼엔 자비 따위 없었다.

콰쾅! 화르륵!

파이어 볼에 적중당한 마차가 순식간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올랐다.

“악!”

“살려 줘!”

마차 안에 있던 포로들의 비명소리가 화마 사이로 터져 나왔다.

그나마 불길 속에 빠져나온 포로들마저.

“도망치려는 새끼들은 전부 죽여!”

해적들이 길을 막고 무기를 마구 찔러 넣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너희들이 그러고도 영혼을 가진 자들이라 할 수 있더냐!”

보테가 흙바닥을 움켜쥐며 흑발 남자에게 소리쳤다.

“우린 뭐든 할 수 있다. 그러니 더는 반항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네가 구하려 했던 포로들을 전부 불태워 주마.”

보테를 빤히 내려다보던 검은 로브 남자가 대답했다.

감정 따위 배제된 무심한 목소리였다.

“뉴 빌드가 그리 하라고 시키더냐?”

“어리석군, 우린 시켜서 움직이는 게 아니다.”

“미친놈들…….”

“멸망은 당연한 순리다. 우리의 뜻은 다시 관철될 것이고 그리 되면 모든 것이 공평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올 것이다. 모두가 신이 되는 세상. 우린 그것을 위해 뉴 빌드와 손잡았다.”

보테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난! 네놈들이 뭘 하던 관심도 없는 떠돌이 마법사였다. 그런데 왜 여기까지 오게 된 줄 아느냐?”

“…….”

“니들이 말하는 그 교리가 하도 엿 같아서였다. 그래, 니들 중 누군가는 환경이 불우했을 수도 있겠지. 달콤한 말을 떠들어 대니 넘어갔고 수련했을 게야. 하지만.”

보테의 눈이 시뻘개졌다.

그는 정말 슬펐다.

아직도 아이와 엄마가 흐느끼는 걸, 잊지 못한다.

잡혀가던 엘프의 얼굴이 기억난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그건 니들 인생이잖냐! 운명이 지랄 같았으면 버텨 냈어야지! 이겨 냈어야지! 도움을 청했어야지! 왜, 타인에게 화살을 돌리고 그들의 삶을 무너트려? 대체 무슨 권리로?”

“대의를 위한 일이다.”

“대의? 닥쳐! 니들이 믿는 신은……!”

보테의 로브가 그가 일으키는 마나로 인해 펄럭였다.

눈동자에도 푸르스름한 빛이 났다.

“진짜 신이 아니다.”

“신을 부정하는 대가는 참혹할 것이다.”

“그래, 참혹해도 나는 부정해야겠다. 누군가의 죽음을 강요하는 쓰레기 같은 신 따위…….”

보테가 구현한 주문을 발동시켰다.

“원해 본 적 없다.”

“죽음으로 사죄하라.”

마법사들이 일제히 보테의 마법에 맞서 주문을 발동하려던 순간, 보테의 눈동자에 이채가 흘렀다.

‘지금이다!’

주문을 펼치는 척 시간을 끈 보테는 지체 없이 마지막 유령 소스를 마셨다.

지잉!

그러자 반투명해진 그의 몸이 순식간에 검은 로브 마법사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투명화?”

흑발 남자가 인상을 썼다.

이곳까지 몰래 따라붙은 게 이상하긴 했었다.

그런데 이젠 알겠다.

‘놈이 마신 게 마법 효과가 있나 보군.’

하지만 투명 마법은 어마어마한 마나량을 소비한다고 알려져 있다.

3서클 마법사라면 끽해 봐야 30초도 못 버틴다.

“당황하지 마라! 어차피 놈은 늙은 마법사일 뿐이다! 최대한 틈을 좁히고 일제히 마나 스캔을 발동하라!”

마나 스캔은 일직선상의 3m 정도의 지상 범위를 파악하는 마법이었다.

협소한 공간을 둘러싸고 십수 명의 마법사가 일제히 마나 스캔을 사용한다면?

‘곧 드러날 것이다.’

흑발 남자가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런…….’

달리던 보테가 주춤거리며 멈췄다.

‘공간을 좁혀 올 줄이야.’

사실 그들이 당황할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른 대처는 예상 외였다.

‘그냥 물러나진 않겠다 이거냐?’

보테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놈들은 정말 영리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게 하나 있다.

‘난 아직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유령 소스는 마법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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