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자동보상-139화 (139/248)

# 139

139화

노인이 검은 로브를 벗었다.

그러자 화상이라도 입은 듯 눈, 코, 입이 일그러져 있는 얼굴이 드러났다.

다듬어지지 않은 장발로 생김새를 가리고 었으나 머리칼 사이로 드러나는 흉측한 얼굴을 완벽히 가릴 순 없었다.

“희한한 일이로군.”

키가 2m는 훌쩍 넘는 장신의 노인은 허리를 뻣뻣하게 세운 채 저 멀리 언덕 너머를 내려다봤다.

안개가 가득 드리워졌던 소프 마을은 동이 터 오자 안개가 밀려나며 마을 전경을 훤히 드러냈다.

노인의 예상과는 확연히 다른 결말이었다.

“어째서?”

노인은 비틀린 입술을 잘근 잘근 씹었다.

이해가 안 된다.

계획대로라면 유혹의 돌 폭발로 마을을 단숨에 집어삼켰어야 했다.

이렇게 되면…….

‘연구 결과를 알 수가 없어!’

유혹의 돌을 대량으로 하사받을 수 있었던 건 돌이 소멸되더라도 그 뒤에 얻을 연구 실적의 가치가 높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상되는 폭발 반경 밖에서 기다렸건만.

결과는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할 실패였다.

‘6인의 선지자들께서 노여워하실 텐데…….’

노인은 두려웠다.

하지만 폭발하지 않은 돌을 회수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돌의 폭발을 막은 존재들이다.

정체가 뭔지 정확히 알 순 없으나 괜히 접근했다간 오히려 당할 가능성이 높다.

‘물러난다.’

두렵긴 하나 성과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릇’이 가능하다는 이론이 현실적으로도 완벽히 구현됐다.

직접 보았고 실험까지 마쳤다.

이를 알리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계획을 방해하는 무리가 생겼다는 것 또한 알려야 한다.

‘그런데, 대체 누굴까? 어느 누가 유혹의 돌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 어떤 존재가…….’

서늘한 눈빛을 보이던 노인이 인상을 와락 썼다.

‘설마, 갓피스?’

노인의 눈동자에 경악이 차올랐다.

“그럴 리가……?”

나직이 중얼거린 노인, 말론이 다시 머리 위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언덕을 벗어났다.

* * *

-네 번째 차원 다리까지 개방도 : 23.4%

찬영은 떨리는 눈을 들어 앞에 떠 있는 창을 쳐다봤다.

‘끝난 건가?’

‘그래, 고통이 사라진 것만 봐도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손가락 하나 떼기조차 곤혹스러울 만큼 혼신을 다했다.

찬영은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던 안개들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방금 전 있었던 폭발을 떠올렸다.

‘폭발 여파까지 있을 줄이야!’

만약 폭발의 여파가 몸에 쏟아질 때마다 몸 주위를 뒤덮어 방어벽 역할을 대신해 준 로레인의 안개가 없었다면 폭발 여파를 최소화시키는 건 물론, 차원의 돌을 완벽히 흡수할 때까지 버티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신기한 노릇이다.

안개가 그 어떤 방패보다 강한 철벽처럼 주위에 자리 잡다니…….

츠츠츠!

곧이어 안개의 중심에 있던 로레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의 망토를 펄럭이고 있는 그녀는 공중에 멈춰 선 채 눈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찬영은 로레인을 쳐다봤다.

당장 지상으로 추락하지 않고 있는 건 그녀가 각성한 또 하나의 능력일 것이다. 폭발 여파를 최소화시킨 안개도, 비행 능력도, 모두 말이다.

찬영은 마지막 힘을 짜내 그녀를 향해 날아갔다.

“로레인.”

그녀를 부르며 막 손을 뻗으려던 그때.

“쿨럭!”

로레인이 기침을 토했다. 그냥 헛기침이 아니었다.

‘피!’

순식간에 앞섶이 피로 흠뻑 젖은 그녀가 몽롱한 시선을 보였다.

찬영은 그 눈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떨어진다.’

팔 하나 움직이는 것도 죽을 지경이었지만 움직여야 했다.

‘에어 펀치!’

속도를 일으켜 기절하는 그녀를 낚아챈 찬영이 다시 이를 악물었다.

‘진공나찰보.’

빠르게 방향을 전환한 찬영의 시야에 힘없이 추락하고 있는 글로리가 보였다. 기절해 있는 그는 깨어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점점 시야가 흐려졌다.

‘어?’

몸이 의지를 벗어났다.

그리고 눈을 한 번 깜빡일 때마다 의식이 덩달아 흐려졌다.

‘글……로리!’

찬영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글로리를 향해 손을 뻗으며 그렇게 의식을 잃었다.

세상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 * *

찬영은 눈을 떴다. 주변은 깜깜했다.

눈을 몇 번 깜빡인 찬영은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있다는 걸 확인한 후 옆을 쳐다봤다.

침대 맡엔 지수가 고개를 숙인 채 잠들어 있었다.

‘다행이야.’

지수는 달리 다친 데가 없어 보인다.

찬영은 그녀의 얼굴을 살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1. 그러자 어쩔 수 없이 이불이 흔들렸다. 기척을 느낀 지수가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

찬영의 상태를 살핀 지수가 안도했다.

“각성자님.”

“깼어요? 미안합니다. 안 깨우려고 했는데.”

“아닙니다. 정말…….”

지수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이를 본 찬영이 놀랐다.

“왜 그래요?”

“아, 그냥, 다행이다 싶어서……. 죄송합니다.”

얼른 눈물을 훔치는 그녀를 보며 찬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죄송할 건 없죠. 그나저나, 다른 사람들은?”

“경상자들만 있고 모두 크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글로리와 로레인 씨도?”

“예, 기억…… 안 나십니까?”

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추락하기 직전 의식을 잃어버렸고 그대로 기절했다.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 이상으로 움직이려 했기 때문일 거다.

‘아직도 한참 멀었어.’

찬영은 올드 원의 주문을 쉽게 이겨 내지 못한 순간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시 채찍질했다.

정신력, 체력, 근력, 마나 등 많은 부분 더 높은 성장이 있어야 할 듯싶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강한 적이라도 등장했다면?

‘모두 전멸했을 거야.’

거기다 이번 일로 인해 차원의 돌과 연결되어 있는 순간엔 아이템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그럼에도 상황은 잘 정리됐다.

모두가 사력을 다한 덕분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일이 긍정적으로 끝날 거란 보장은 없지.’

다른 변수가 등장했다면 일이 이쯤에서 마무리 되진 않았을 것이다.

‘말론이 나타났다면 피해는 더욱 컸을 거야. 아무튼…….’

이 정도 선에서 정리된 건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다.

“각성자님?”

찬영은 들려온 지수의 목소리에 빠져 있던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아, 네.”

“그럼, 계속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지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저도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제리 씨한테 뒷일을 들었죠.”

“쓰러졌어요?”

“아, 네. 그게…….”

지수는 자기가 경험했던 일을 찬영에게 솔직히 털어놨다.

열세 번째 별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지만 이네이트의 새로운 각성 전환점이 시작된 것 같다고 설명한 것이다.

찬영은 깜짝 놀랐다.

“열세 번째 별이라고 했습니까?”

“예. 혹시 아시는 거라도?”

“있죠, 아주 많이.”

찬영은 지수를 조용히 바라봤다.

또 다른 열세 번째 별을 만날 거라고 생각은 했다.

박스 혹은 여러 가지 경로로 얻게 되는 아이템을 통해 배울지 모른단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별의 유산 중 하나가 지수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아무래도 얘기가 길어지겠네요. 쓰러진 뒷얘기도 그렇고.”

찬영이 붉은 별과 푸른 별의 주인이라는 걸 모르는 지수는 그저 눈만 끔뻑일 뿐이었다.

* * *

이후, 두 사람은 서로 많은 얘길 나눴다.

시작은 찬영이 쓰러졌을 때의 이야기였다.

“그럼, 다른 분들은 무사한 거네요.”

“예, 제리 씨에 의하면요.”

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면 됐다.

“걱정 많이 하셨나 봅니다.”

“그래 보였나요.”

“예…….”

쓰게 웃은 찬영이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사실 늘 그렇죠.”

어느 누구도 주변 사람들이 죽는 것에 담담하진 않다.

언젠가 겪을지도 모르지만 직면한다면 아마…… 많이 힘들 것 같다.

사람이니까.

찬영은 괜히 기분이 침잠하는 거 같아서 화제를 돌렸다.

“마을 사람들은요?”

“모두 무사합니다. 아, 그리고…….”

지수가 손톱 끝 크기 정도 되는 거무튀튀한 광석이 달린 얇은 끈 목걸이를 건넸다.

“이건 뭡니까?”

“니유 씨가 건네 달라며 주셨습니다. 오랫동안 가문에 내려온 가보인데 꼭 드리고 싶다고.”

“니유 씨가?”

“네.”

찬영은 니유가 줬다는 목걸이를 받아 들어 그걸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고마운 일이다.

찬영은 곧바로 목걸이를 목에 차며 말했다.

“보람 있네요.”

“제 생각엔 충분히 그럴 자격 있으십니다.”

“지수 씨도요.”

찬영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만약 그녀와 용병단이 아니었다면 해적들을 그렇게 단숨에 일망타진하지 못했을 거다.

찬영이 지수를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자 갑자기 정적이 돌며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표정을 살핀 찬영도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공치사는 이쯤 할까요?”

“예, 조금 쑥스럽습니다.”

어색하게 웃는 그녀를 보면서 찬영은 엷게 미소 지었다.

“그럼, 이제 열세 번째 별에 대해 얘기해 줘야겠네요.”

찬영이 프라이의 무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 *

“예?”

사정을 듣게 된 지수는 깜짝 놀랐다.

“그럼 제가 가지고 있는 이네이트가?”

“맞아요. 제가 가진 이네이트와 그 근본이 같은 셈이죠. 제가 알기로 열세 번째 별은 서로 유기적인 관련이 있거든요. 로이크와 프라이처럼.”

“그럼, 유타도 그들과 인연이 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글쎄요, 인연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세 사람의 뿌리가 같은 맥에서 나왔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죠.”

그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스트 마운틴.”

“그래요. 그곳이 그들의 뿌리라고 알고 있어요. 그 덕에 저는 두 개의 심법을 같이 운용하고 있죠.”

“아…….”

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엄청난 걸 얻었구나 싶었다.

세계가 주목하는 각성자, 찬영과 근본이 같은 이네이트라니?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녀가 아무 말 못하고 검만 바라보고 있을 때쯤.

찬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그 검, 잠깐 살펴봐도 될까요? 궁금해서.”

찬영이 민망한 듯 볼을 긁적였다.

사실 검을 살펴보고 싶은 건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또 다른 열세 번째 별의 등장을 고대했던 건 찬영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찬영의 반응에 지수는 픽, 웃음이 터졌다.

방금 찬영의 눈빛이 꼭 호기심 가득한 어린 아이 같았기 때문이다.

“소년 같은 면도 있으셨네요.”

“그런가요?”

찬영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인 후 그녀가 건넨 그라인더를 받아 들었다.

“음, 이건?”

검을 쥔 찬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수는 그가 왜 놀랐는지 금방 눈치챘다.

“네, 맞습니다. 각성자님께서 주신 검이.”

“그럼, 검이 변형된 거군요.”

“예, 갑자기.”

“갑자기는 아닐 겁니다. 뭔가 이유가 있었겠죠.”

찬영은 정말 확신했다.

자신 또한 열세 번째 별의 유산을 이어 받을 때 목숨을 잃을 뻔했다.

만약, 스스로 그 위기를 헤쳐 나오지 못했다면 유산은커녕 프라이 무덤 위에 자신의 시신이 쌓였을 것이다.

그러니…….

“모르는 사이에 시험을 거쳤을 거예요.”

지수는 곰곰이 그때의 일을 떠올려 봤다.

하긴, 유타일 게 분명했던 그 중후한 목소리는 자신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두려움을 베었다.’라고…….”

지수의 중얼거림에 찬영이 슬며시 미소 지었다.

“거 봐요. 지수 씨는 유산을 얻을 자격을 스스로 증명해 낸 겁니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가, 감사합니다.”

“칭찬 아니니 민망해하실 거 없어요. 사실을 얘기해 드리는 거지.”

찬영은 새삼 이규복이 사람 참 잘 봤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그녀를 뽑은 V.O. 일수도 있고.

찬영은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본격적으로 검을 들여다봤다.

- 유타의 태청중검太淸中劍

세트 형 : 유타의 태청수류심법 보유 시 유수림流囚林 발동.

-가치 : 6,300

-효과 A : 적중 시 상대방 이동속도의 8% 둔화(중첩 불가)

-효과 B : 1초당 마나 120 소모 시 태청중검의 강도 20% 상승(중첩 불가)

-효과 C : 1초당 마나 600 소모 시 민첩성 5배 증가(소유자 민첩성 기준)

“놀랍네요. 정말로…….”

찬영은 아슬란, 공진, 크투가 등 많은 장비를 봐 왔다. 그리고 그 장비들은 저마다의 특색이 있었고 연관 이네이트의 효과를 더 극대화시키는 증대 효과를 가졌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찬영은 지수가 가지게 된 새로운 검법이 궁금해졌다.

솔직히 당장 대련이라도 하면서 그녀와 검법에 관한 얘기들을 나누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은 그러기 힘들 거 같다.

‘……급한 게 있으니까.’

찬영은 개방된 30회 보상받기, 31회 카드 뽑기를 응시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