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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37화 (137/248)

# 137

137화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그대가 마주한 현실이네.”

찬영의 눈빛이 흔들렸다.

또다시 차원의 돌이 낸 시험 같은 기분이었다.

“의심하지 마세요. 더 이상 올드 원의 주문은 당신을 시험하지 못해요.”

찬영의 생각을 읽은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제 생각을 읽은 겁니까?”

“우린 공존하고 있으니까요.”

“차원의 돌도 그건 마찬가지였죠. 방금 전까지…….”

찬영은 침묵했다.

의심을 지우려면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고민하던 찬영은 자연스레 베아트리체가 해 준 얘기를 되짚어 갔다.

하긴, 그녀 말대로 이게 시험이란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제껏 경험한 건 계속 포기와 안주를 강요하는 시험들이었다.

그런 와중에 현실을 보여주는 건…….

오히려 현실로 돌아가게 만드는 계기가 될 뿐이다.

‘그래, 이게 또다른 시험이라면 앞뒤가 맞지 않아.’

그녀의 말을 믿기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베아트리체에게서 모래 같은 것들이 흩어지는 게 보였다.

‘모래가 아니야.’

앉아 있는 베아트리체의 몸 일부가 흩어져가고 있는 거였다.

‘조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당혹스러웠다.

그 마음을 아는 베아트리체가 찬영을 위로했다.

“걱정 말아요. 우린 또 보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 시간마저도 그대와 우리의 영혼 교류가 많아진 덕분에 짧게나마 이뤄 낼 수 있는 성과였어요. 이 시간을 무의미하게 버리지 말아요.”

찬영은 비춰진 현실을 바라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다.

하지만 그녀 말대로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게 있다.

“모두를 살려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현명하군요.”

베아트리체가 비로소 웃었다.

“……사명이여, 올드 원의 주문이 실린 차원의 돌은 그 힘이 극대화되어 있습니다. 나눠서 흡수해야 해요.”

“나눈다?”

찬영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꿀꺽.’

뭔가 짚이는 바가 있었다.

“……‘아이템 분해’.”

그게 정답이라는 건 베아트리체의 환한 미소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안 돼!”

답을 알아낸 찬영이 손끝으로 흩어지는 베아트리체를 잡아보려 했으나 허사였다.

베아트리체가 흩어지기 직전, 그녀가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당신은 모든 근원의 열쇠가 될 겁니다. 계속 나아가세요.”

“언제까지 말입니까?”

“자각하게 될 겁니다.”

곧이어 짙은 황금빛이 순식간에 찬영의 시야를 뒤덮으며 바닷가로 퍼져나갔다.

* * *

찬영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주위엔 모래도, 햇살도, 바다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찬영은 몸을 둘러싼 보랏빛 기류를 내려다봤다.

둘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어서…… 분해해야 해.’

찬영은 호흡을 가다듬고 차원의 돌을 향해 분해를 시도했다.

‘느려진다!’

베아트리체가 해 줬던 얘기처럼 회전하던 차원의 돌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났다.

그녀의 말대로 분해가 해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 느낌은?’

차원의 돌이 가진 힘을 흡수하던 양손에 갑자기 불에 휩싸인 것같이 화끈하고 살이 짓물러 가는 고통이 몰려온 것이다.

‘방어 체계인 건가?’

차원의 돌을 노려봤다.

‘버틸 수 있어!’

이미 올드 원의 주문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

물러설 생각은 없다.

“절대…….”

찬영의 눈빛이 결연해졌다.

“원하는 대로 되진 않을 거다!”

결연한 의지와 함께 본격적인 분해가 시작됐다.

쩌저적!

‘됐다!’

눈 깜짝할 새 사분오열된 돌들이 자잘하게 쪼개졌다.

츠츠츠!

흩어진 돌들은 물결처럼 너울거리는 보랏빛 기운 사이로 운석처럼 떠다녔다.

찬영의 손은 빠르게 그 돌을 흡수했다.

그러자 메시지가 보였다.

-분해가 완료되었습니다.

하지만 차원의 돌이 분해된 후에도 통증은 그대로였다.

찬영은 물결 형태의 보라색 기운이 두 팔을 덮은 걸 보며 호흡을 다스렸다.

‘진정되지 않아.’

가쁜 호흡이 평온해지지 않는다.

온몸의 핏줄이 불거지고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속삭임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두려움이 일었다.

‘이겨 내야 해!’

찬영은 이 상황을 넘어서고 견뎌 내기를 원했다. 삶을 더 유지하길, 택한 선택대로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길 간절히 원했다. 그 바람이 찬영을 죽음의 공포에서도 의연히 버틸 수 있게 도와주었다.

“끄으으으!”

혼신을 다하고 있는 찬영의 눈동자에서 황금빛 광휘가 새어 나왔다.

-네 번째 차원 다리까지 개방도 : 3.5%

-네 번째 차원 다리까지 개방도 : 4.6%

-……

* * *

그 시각.

로레인도 깊은 꿈을 꾸는 중이었다.

그리고 평생, 다시는 보지 못 할 줄 알았던 사람과 만났다.

“아버지.”

로레인이 그와 마주 앉았다.

흰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있던 건장한 노인이 환한 웃음을 머금었다.

“로레인, 내 딸아. 오랜만이로구나.”

로레인은 용병단을 포함한 기억들이 하나둘씩 흐려져 가고, 오로지 아버지의 얼굴만이 들어왔다.

너무나 그리웠던 얼굴이다.

“보고 싶었어요. 대체, 왜…… 왜 그러신 거예요.”

그녀가 아버지를 끌어안았다.

“허허, 다 큰 녀석이 왜 이래?”

“편지만 남겨 두고 그런 선택을 하셨으면 안 됐어요. 절 기다리셨어야 했어요. 그러셨어야……!”

로레인은 차마 뒷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자살하셨잖아요.’

그 얘길 어떻게 꺼낼까?

당시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로레인은 반사적으로 당시 편지 내용이 떠올랐다.

-아비는 중독되어 죽어 가고 있다. 해독제가 있다면 진작 찾았겠으나 애석하게도 제 시간 안에 못 찾을 것 같구나. 실로 오랜만에 자식에게 연락을 준 것이 유언장이라니……. 죽음이 목전에 다가오니 미안함만 가득하다.

그 편지를 받고 모든 걸 버리고 말을 달려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한 로그 길드의 수장이라는 건 늘 알고 있었기에 곁에 계시지 않은 걸 단 한 번도 원망한 적 없다.

고아로 죽어 가던 자신을 살리고 거둬 주신 데다가 기사가 되게끔 훈련도 시켜 주신 것만으로도 늘, 감사하며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통보는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잖아요. 적어도 뭐든 할 수 있게 살아 계셨어야죠! 일찍 말씀해 주셨어야죠!”

로레인이 울먹였다.

아버지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매번 잠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물론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글이 아버지의 편지에 있긴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죄책감이 사라지진 않았다.

늘 함께 있었다면 그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음? 뭐가 말이냐?”

“제가 기사가 되지 않고 아버지의 일을 함께했다면 아버지가 그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실 일은 없었을 거예요. 아버지처럼 로그가 됐더라면…….”

“그래그래, 네 마음 안다. 그래서 이렇게 내가 왔잖니. 이젠 되돌릴 수 있다. 전부…….”

이미 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온 것부터 전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나 로레인의 죄책감은 이성이 제대로 인지될 수 없는 지경까지 그녀를 몰아붙였다.

로레인은 오열했다.

그러면서도 다행이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뉴 빌드에 독살을 당해 고향으로 피신했던 아버지가 살아계신다…….

언젠가 유산이 제대로 쓰일 ‘기회’가 올 때까지 마을을 지켜 달라 했던 아버지가……!

“아버지가 남긴 유언을 지키려고 할 수 있는 걸 다 했어요. 용병단을 일으켜서 마을을 지켜 왔고요.”

“안다. 알고말고.”

“마을을 빼앗길 때도 아버지의 유산을 보호하고 마을 사람들을 지키려고 투항했어요. 그렇게 살았어요. 정말……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장하다, 장해. 이젠 쉬어도 된단다.”

로레인의 아버지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아버지의 품에 안긴 로레인은 그동안 쌓여 있던 슬픔을 울음으로 토해 냈다.

“흐끅, 흐끅…….”

로레인은 할 일을 다 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현재의 기억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지금은 오로지 아버지만 보였다.

이젠 아버지의 곁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털어 버릴 것이다.

“함께 있자.”

로레인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그 앞에 무릎 꿇었다. 그리곤 아버지의 무릎 위에 머리를 두고 누웠다.

따뜻하다.

정말 아버지의 말처럼 이렇게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

-그게 정말, 아버지가 원했던 걸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낯선 목소리라서가 아니다.

익숙한 목소리여서이다.

‘내 목소리?’

바로 자신의 목소리였다. 꿀꺽하고 마른침을 삼킨 로레인은 다시 눈을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자 방금 들은 목소리가 금방 사라져가는 것 같다.

‘환청일 거야, 그래.’

다시 눈을 감으려는 그녀의 귓가로 선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로레인, 넌 뭘 위해 살았지?

“유산을 지키기 위해 살았어. 하지만 이젠 아버지가 돌아왔지.”

-아니, 넌 유산만을 위해 살아온 게 아니야.

“그럼?”

그 질문 후 더 이상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답까지 해 줄 순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로레인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내가 살아온 이유라고?”

* * *

‘혼미해진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차원의 돌을 흡수했기 때문일까?

계속되는 고통과 함께, 설상가상으로 눈앞까지 흐려지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의식을 잃을 것 같은 불안감이 싹텄다.

‘이젠, 써야겠어!’

“역행의 시계.”

찬영은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제약 없이 2분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는 최상의 아이템.

그러나 기대했던 효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창이 떴다.

-현재 차원의 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로 인해 아이템 효력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젠장!

복잡한 얘기는 접어 두고 결국, 창이 뜻하는 건 아이템 사용이 불가능하단 거였다.

“힘을…… 힘을 내시오!”

절망하고도 남을 상황 속에서 낯익은 손이 찬영의 몸을 꽉 붙잡았다.

올드 원의 주문을 이겨 내고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이다.

‘글로리!’

찬영의 눈빛에 희망이 실렸다.

“끄아아아!”

동시에 글로리도 찬영과 같은 고통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도움으로 인해 찬영은 흐려지던 의식을 잠시나마 늦출 수 있었다.

찬영은 힘겹게 눈을 뜬 채 돌을 노려봤다.

‘조금만 더!’

집채만 했던 차원의 돌은 찬영의 ‘아이템 분해’ 능력으로 대부분이 찬영에게 흡수되어 이제는 사람 정도 크기로 줄어 있었다.

하나, 다시 한계점이 찾아왔다.

‘다시 눈앞이 흐려진……다.’

글로리 덕분에 겨우 힘을 낼 수 있었던 의식이 다시 흔들렸다.

찬영은 눈을 부릅떴다.

그럼에도 혼미해진 의식은 다시 좋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흔들릴수록 차원의 돌을 흡수하는 양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찬영도 느끼는 변화였다.

하지만 눈이 감겨가는 걸 막기는 힘들었다.

‘안 돼!’

찬영이 입을 벙긋거렸다. 이제 저기 남은 돌만 흡수하면 폭발을 막을 수 있는데…….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혼신의 혼신을 다한 찬영과 글로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폭발까지 30초 남았습니다. 29초 남았습니다. 28초…….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 시간.

찬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폭발력을 대부분 줄였다지만 어느 정도 파괴력이 주변을 뒤덮을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그저 기절 직전까지 최대한 돌을 흡수하는 게 최선이었다.

-10초 남았습니다.

그때, 또 다른 손이 두 사람 사이로 튀어나왔다.

“아직…… 안 끝났어!”

황금빛 광채를 일으킨 로레인의 등장과 함께 찬영과 글로리 주변에 서늘한 기운이 흘러 나왔다.

-갓피스 조건 달성으로 보유한 앨범에서 ‘희생’이 각성합니다.

-앨범에 ‘희생’ 로레인 마셰로프가 합류합니다.

-대상에게 ‘이타콰의 망토’가 주어집니다.

찬영은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합류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합류로 인해 찬영과 글로리가 감당해야 하는 힘이 한 번 더 분산됐다. 그 덕에 돌을 흡수하는 주체인 찬영의 의식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반드시 이 기회를 잡아야 해!’

찬영이 로레인을 향해 소리쳤다.

“폭발을 막아!”

찬영은 마지막 기력을 흡수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되든 안 되든 해야만 한다.

그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츠츠츠!

남은 차원의 돌이 찬영에게 들어가는 동안, 로레인은 보랏빛 기류를 뚫고 날아 자신의 망토를 부채꼴 형태로 펼쳤다.

휘르르륵!

그러자 망토에서 서늘한 휘파람 소리가 흘러나오며 망토에서 생성된 안개들이 찬영과 차원의 돌 주위를 감싸 안았다.

콰콰쾅!

그다음 순간 구름 안에 치는 벼락처럼 강한 폭발이 안개 속에서 번쩍거렸다.

츠츠!

순식간에 폭발의 여파로 일어난 폭풍이 주위를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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