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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36화 (136/248)

# 136

136화

“그러니까…… 결계가 있었는데, 갓피스가 진입하고 나서부턴 저게 비정상적으로 작동했다는 말이죠?”

로레인이 물었다.

“맞소.”

글로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그때였다.

“끄아아아!”

찬영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돌이 초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광경이었다.

“뭔가, 뭔가 잘못됐소!”

글로리가 소리치자 로레인도 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요, 그런 것 같네. 확실히…….”

그러면서 로레인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뭔가 도울 수 있는 게 없을까?’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그저 그가 남긴 말이 떠오를 뿐.

“영감, 저 친구가 나더러 갓피스라고 했지. 그렇지?”

“그랬었지.”

“그리고 저 친구도 갓피스고.”

“그런데?”

로레인이 글로리를 돌아봤다.

“이봐요.”

“말씀하시오.”

“당신도 혹시, 갓피스라고 하던가요?”

“그랬지. 그는 내가 갓피스로가 될 수 있을지 의심할 때, 갓피스가 맞다며 확신을 갖게 도와주었소. 그 덕에 그에게 아주 중요한 걸 배웠지.”

“배워요? 뭘?”

“갓피스로 정해진 후부터 그 자격에 걸맞은 존재가 되는 건 스스로의 역량이라고 말이요.”

“자격이라…….”

로레인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그럼 우리라고 못하리란 법은 없겠네요.”

“우리……?”

“그래요, 우리. 당신과 나.”

로레인이 손가락으로 글로리와 자신을 가리켰다. 글로리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당신도 갓피스였소?”

“네.”

“놀랍군. 무엇으로 선택받았소?”

“선택이요?”

글로리가 착용하고 있는 크투가를 가리켰다.

“이런 것 말이오.”

로레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없이 그냥, 갓피스가 될 거라고 예언하던데?”

“그럼 아직 갓피스가 되지 않았다는 얘기요?”

“네, 그냥 그가 제게 언젠가 갓피스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줬을 뿐이죠.”

로레인의 대답에 글로리는 조금 당혹스러워했다.

갓피스가 될 거라며 예언을 했다니…….

‘그가 어떻게 알고?’

글로리는 찬영이 거짓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경악했다.

‘이젠 누가 갓피스가 될지 예언까지 가능해졌단 말인가?’

갈수록 찬영의 능력은 상상 이상이 되어가는 거 같다.

글로리는 새삼, 찬영의 능력에 놀라며 말했다.

“그가 그렇다면 분명, 그런 것일 거요.”

“신뢰감이 대단하네요?”

“나의 신뢰를 접어 두더라도 그가 당신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조금이라도 있다고 생각하오?”

“아뇨.”

“그럼?”

“그래서 썩 신뢰가 가지 않는 말이지만 믿고 있는 거죠. 아무튼…….”

잠시 말끝을 흐린 로레인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찬영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의 말대로 내가 정말 갓피스가 맞다면 나와 당신이 저 친구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말이요?”

“우리도 저 돌에 접근하는 겁니다.”

“결계가 있다고 하지 않았소?”

“결계가 있다고 못 가란 법은 없죠. 더구나 결계가 있음에도 저 친구는 이미 돌에 묶여 있잖아요?”

“이미 시도해 본 일이요.”

글로리는 결계에서 튕겨 나갔던 얘기를 들려줬다.

그럼에도 로레인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건 저 친구가 나서기 전이잖아요? 이번엔 다를 수도 있어요.”

“고집스럽군. 좋소! 당신 말대로 접근한다고 칩시다. 그 뒤엔?”

“아마, 저 돌의 힘이 우리까지 묶어 버리겠죠.”

“그럼 상황이 더 안 좋아지는 것 아니요?”

“그건 모를 일이죠. 어쨌든 저 친구를 묶고 있는 돌의 힘이 우리에게 분산될 수도 있으니까.”

글로리가 깜짝 놀랐다.

솔직히 그것까진 생각해 보지 못했다.

기상천외한 발상이었다.

“흐음.”

글로리가 고민하고 있을 때, 지수가 로레인에게 물었다.

“아까 말한 대로 그게 오히려 방해가 된다면요?”

로레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닐 거야.”

“어떻게 장담하죠?”

“차원의 돌을 흡수하는 게 저 친구만 가능한 일이라면서?”

“네.”

“그런데 그는 갓피스잖아.”

“그래서요?”

“우리 또한 그렇지.”

“하지만…….”

“그래, 실패할 수도 있겠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을 거고, 이 일을 시도할 근거가 빈약하기도 해. 하지만 그가 지금 비명을 지르고 있고 마을의 운명은 저 친구에게만 걸려 있어. 이런데도 보고만 있어?”

로레인이 지수를 뜨거운 눈빛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두렵고 걱정되고 불안해하는 건 여기까지면 족해. 그가 비명까지 지르고 있는 이상, 이제는 불안해하기보다는…….”

로레인이 글로리를 쳐다봤다.

“움직여야 할 때 같아.”

글로리도 그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해 봅시다!”

물론 이번에도 결계 때문에 튕겨져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엔 아까와 상황이 다르다.

이미 찬영이 결계 속에 진입해 있는 데다가 여전히 결계가 유지되고 있는지는 직접 겪어 보지 않고는 모른다.

“가죠.”

로레인이 앞장섰다.

글로리가 그 뒤를 쫓으며 말했다.

“막무가내군.”

“그쪽도 그렇잖아요?”

지수가 걸음을 떼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검을 으스러지도록 쥐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더욱 참기 힘들었다.

‘나도…… 돕고 싶어!’

이 순간 지수는 자신의 눈동자에 푸른빛 형상이 일렁이고 있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 * *

무성히 자란 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고 찬영은 그 가운데 서서 거품이 올라오는 늪지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음습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방금 전까지 늪지대에서 튀어나온 칼날 넝쿨들로 인해 온 몸을 난자당했다.

‘이번엔 뭐지?’

찬영이 경계 섞인 눈빛을 보였다.

물론 현실이 아니라 올드 원의 주문이 가져온 환상이라는 것쯤은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감각을 통해 느낀 고통은 현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현실 그 자체였다.

‘그래도 견뎌야만 해.’

이런 고통이 왜 계속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베아트리체와 라인쉐리어의 이야기로 짐작되는 바는 있었다.

‘굴복하면……. 그걸로 끝이야.’

엄습해 오는 고통을 이겨 내지 못하면 그러고도 남을 거다.

찬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힘겹게 이곳까지 왔다.

여기서 내려놓을 생각은 조금도 없다.

츠츠츠!

그 생각에 이르렀을 때 보글거리면서 올라오던 거품이 어떤 형상을 띄기 시작했다. 그 형체는 늪 밖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

찬영은 할 말을 잃은 채 눈을 부릅떴다.

한마디도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유년 시절을 지켜 줬던 삼촌이 서 있었던 것이다.

“찬영아.”

그리웠던 삼촌의 목소리에 환영인 줄 알면서도 찬영은 왈칵 눈물이 나올 뻔했다.

찬영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되뇌듯 말했다.

“저건 삼촌이 아니다. 삼촌이 아니야.”

“나 좀 봐 봐라. 찬영아.”

“넌, 삼촌이 아니야.”

찬영은 삼촌의 손길을 뿌리치며 다시 눈을 떴다.

어느새 늪지대는 삼촌과 살던 아파트의 안방으로 바뀌어 있었다.

삼촌의 탈을 쓴 존재가 웃는 게 보였다.

“뭐해?”

찬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계속 생각했다.

삼촌이 아니라고, 차원의 돌이 만들어 낸 환영일 뿐이라고……. 하지만 눈을 감아도 감각들이 삼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여기가 현실이라고 모든 게 진짜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찬영아, 삼촌 라면 한 그릇만 끓여 달라니까? 속 쓰려 죽겠다.”

한때의 기억 중 하나, 그날은 삼촌이 과음을 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찬영은 자기도 모르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서서히 환영 속에 이입되고 있었다.

올드 원, 몬스터, 갓피스 , 달라진 생활…… 모든 것들이 하나씩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일상에 접어드니 찬영은 마치 그때의 자신이라도 된 것처럼 익숙하게 라면을 끓이러 갔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라면을 식탁에 가져다 놓던 찬영은 문득 표정이 굳었다.

‘내가 이걸 왜 끓이고 있지?’

여긴 시드 대륙이고 자신은 지난날의 찬영이 아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과거의 기억들이 그 생각들을 밀어 버렸다. 그건 찬영의 자의가 아니었다.

어떤 힘이 찬영의 기억을 자꾸 밀어내고 있었다.

의지를 약화시키고 평화로웠던 한때에 머물게 하려 했다.

찬영도 그걸 느끼고 있었으나 쉽게 헤어날 수가 없었다.

아니, 어떻게 헤어날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정말 늪에 빠진 것 같았다.

“후, 후. 우리 조카, 맛있게도 끓였네.”

찬영은 그사이 라면을 먹기 시작한 삼촌을 멍하니 쳐다봤다.

“삼촌.”

“응, 왜?”

“보고 싶었어요.”

“얘가 왜 이래?”

“진짜요.”

찬영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건 그동안 쌓여 있던 삼촌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삼촌이 웃었다.

“어허? 왜 울어? 자, 여기 휴지.”

휴지를 받아든 찬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얼른 코 풀어. 삼촌 어디 안 가. 너랑 같이 있잖아. 너 장가가기 전까진 여기서 쭉 같이 살 거다.”

찬영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은 뒤 손에 쥔 휴지를 으스러지도록 꽉 쥐었다.

정말 그리웠던 한때다.

다시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삼촌.”

“왜?”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뭐가?”

“삼촌이 말씀하셨죠? 기회가 보이면 스스로를 위해 잡으라고.”

“갑자기 케케묵은 그 얘긴 왜 해?”

“전 제 인생의 기회를 만났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제가 잘할 수 있고, 잘해 내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어요. 늘 위험하지만…… 돌아가야 해요.”

삼촌이 젓가락을 놓고 말했다.

“무슨 소리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위험하면 하지 마라.”

“네?”

“정말 널 위한 건 위험한 일이 아니다. 난 네가 위험한 일을 택하라고 기회에 관한 얘기를 한 게 아니야. 어떤 기회든, 네 안위가 제일 중요한 거야. 네가 아니어도 누군가 하겠지.”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던 찬영이 눈을 부릅떴다.

“아니, 삼촌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을 거다.”

“조카야, 너 약 먹어야겠다. 무슨 소릴 하는지, 원.”

고갤 절레절레 흔드는 삼촌을 보면서 찬영의 눈빛에 분노가 실렸다.

“네가 모르는 게 있어. 삼촌은…… 내가 한 그 어떤 선택이든.”

찬영이 외쳤다.

“그 결정을 존중해 주셨고 스스로 생각하길 원하셨어! 삼촌이라면 더 듣고 싶어 하셨을 거야,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삼촌의 얼굴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찬영은 그 얼굴을 마주 보며 소리쳤다.

“아무리 과거가 그립다고 해도 이제까지 해 온 내 선택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 난, 돌아가지 않는다! 과거에 얽매여 지금 쥐고 있는 소중한 걸 포기하지 않겠어. 지치더라도 계속…….”

붉어진 찬영의 눈동자가 지그시 감겼다.

“현재를 걷겠어. 그러니까……!”

그 말이 끝났을 때 찬영의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안녕, 삼촌.’

* * *

찬영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한적한 바닷가 모래사장에 누워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어째서 현실로 돌아가지 않았는지 의아해할 때, 그의 옆에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앉았다.

“사명이여.”

찬영이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가진 얼굴이 선명히 들어왔다.

하얀 면사포를 쓰고 있는 그녀는 은발을 가진 미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더 돋보이게 하는 건 은은한 황금빛이 감도는 눈동자였다.

찬영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그녀가 누군지 알 것 같아서였다.

“베아……트리체?”

“맞아요.”

처음 제대로 대면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찬영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이날을 기다려왔는지 모르겠다.

“드디어 만나네요.”

“네, 그러네요.”

“얼마나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는지 압니까?”

“잘, 알아요. 저는 사명 안에 있답니다. 그리고 그 역시도.”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편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를 느낀 찬영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찬영은 갈색 머리를 반듯하게 빗어 올린 중년 기사를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베아트리체가 나타났다.

그라고 나타나지 않을 리 없었다.

“라인쉐리어.”

찬영은 너무 놀랐다.

그토록 만나 보고 싶던 전대의 갓피스들이 등장한 것이다.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고민 끝에 찬영이 막 질문을 던지려던 그때, 라인쉐리어가 입을 열었다.

“……사명이여. 그대에겐 시간이 없다. 서두르지 않으면 그대를 위해 몸을 던진 갓피스들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라인쉐리어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하늘엔…….

자신의 어깨와 팔을 꽉 잡은 채 고통스러워하는 로레인과 글로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자신처럼 차원의 돌이 일으킨 보랏빛 기류에 묶여 있었다.

“맙소사……!”

찬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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