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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34화 (134/248)

# 134

134화

까악! 까악!

퍼덕이며 날아가는 까마귀를 보며 찬영은 커다란 첨탑의 대문을 두 손으로 밀어냈다.

구구궁!

그러자 커다란 홀이 시야에 들어왔다. 둥근 샹들리에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고, 상층부로 뻗어 올라가는 매끄러운 계단이 곡선 커브를 그리며 자리 잡은 게 보였다.

찬영은 계단을 오르며 주위를 둘러봤다.

불만 밝게 켜지면 당장 파티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장소다. 찬영은 보테가 해 줬던 얘기들 중 하나가 떠올랐다.

-갈색 첨탑이 하나 있는데……. 거긴 말론의 실험실로 쓰이고 있다네. 한때 마을 관청에 속해 있던 저택을 첨탑으로 증축했지. 여신의 탄신일이 되면 행정관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서 파티를 열었다고 하더군. 모두에게 그리운 한때지.

그 생각이 끝날 때쯤 상층부에서 메아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싸늘하고 음울한 목소리였다.

-종말이 다가왔노라. 너는 살아 있는 것이 죄악이다. 죽음으로 회개하라.

찬영이 외쳤다.

“이제 얼굴을 보여라! 처음엔 몬스터, 다음은 코란! 이번엔 누구지? 네 충성스러운 부하 루크인가? 언제까지 부하 등 뒤에 숨어 있을 거지?”

찬영의 목소리도 방금 들려왔던 목소리처럼 메아리치며 첨탑 안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그 울림이 서서히 잦아들 때였다.

쾅!

꼭대에서 낙하한 그림자가 지반을 함몰시키며 착지했다.

낙하의 충격 때문에 1층에 먼지바람이 휘몰아쳤다.

‘또 차원의 돌이 감지됐군.’

렌즈에 반응을 확인한 찬영은 놀라지 않았다. 그보다 나타난 자의 정체가 궁금했다.

‘말론인가? 루크인가?’

저벅저벅.

그때 먼지를 뚫고 함몰된 바닥에서 녹색 안광이 나타났다. 그 안광의 정체는 다름 아닌 루크였다.

하지만 금발이었던 머리색 말고는 예전의 모습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건 또 무슨…….”

보고도 믿기 힘들 만큼 루크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사람이길 포기했군.’

찬영은 할 말을 잃었다. 왼쪽 얼굴 일부만 빼고는 전부 젤럿의 머리가 이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벗겨져 있는 상체엔 마법진으로 보이는 문양들이 빈틈없이 새겨져 있고, 뒤통수엔 차원의 돌조각이 부서진 유리조각처럼 빼곡히 박혀 있다.

“뭘 그리 보느냐……?”

목소리까지 달라진 루크가 고개를 기괴하게 꺾으며 찬영에게 물었다. 아까 들려온 목소리와 동일했다.

찬영이 루크에게 되물었다.

“네 동생도 죽었어.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지? 괴물이 되어가면서까지, 왜?”

“자유다.”

“뭐?”

“난 평생 싸웠고, 모든 싸움에서 이겨야만 했다. 그리하여 스승이라 떠들던 위선자마저 짓밟고 일어섰다. 난 그 어떤 규칙, 규율 따위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그래서 파괴한다?”

“그래, 약한 것이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소멸되는 건 그저 운명일 뿐. 우린 더 발전하기 위해 멸망을 기다린다.”

“그래 봤자 뭐가 남지? 멸망이 찾아오면 너희들도 사라지게 되는 건 마찬가지일 텐데?”

“크큭,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선택받은 자들에겐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우린…… 신이 된다.”

녹색 침을 흘리며 웃는 루크를 보면서 찬영은 할 말을 잃었다. 해적과 뉴 빌드가 손을 잡았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

‘뉴 빌드가 원하는 게 단순히 멸망뿐이 아니라고?’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놈들의 목표가 멸망에 국한된 게 아니라 시드 대륙의 모든 종족이 멸망한 후, 자신들의 부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설마 자신들만 부활할 거라고 믿는 건가? 그걸 어떻게 알고?’

찬영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그들이 막연하게 멸망을 맹신하는 게 아니라 저 너머, 자신이 찾고 있는 올드 원에 대한 단서를 가지고 있다면?

‘그럼 그들이 내가 찾고 있는 차원의 돌을 마구 잡이로 쓰고 있는 게…… 단순한 우연이 아닌 거겠지. 뉴 빌드의 높은 곳에 있는 자가 올드 원을 따르고 있는 거야.’

찬영은 큰 실마리가 나타났다는 걸 직감했다.

“신이 된다고? 그걸 어떻게 알지? 너희와 올드 원은 무슨 관계야?”

“하찮은 우리가 입에 담기에는 너무나도 고귀한 분들이다. 그 입을 다물어라.”

분노한 루크의 눈빛에 순간 의문이 실렸다.

“그런데…… 너 따위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설마, 네놈이 갓피스?”

찬영은 침묵했다.

긍정의 대답으로 알아들은 루크가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랬구나, 그랬어! 큭큭, 그렇다면 차차 알게 될 것이다. 말론 님은 대업을 이루게 되실 것이다. 그 첫 번째 피조물이 나다. 그리고…… 나의 첫 번째 업적은 네놈, 갓피스의 처치가 되겠군!”

루크의 몸이 녹색으로 물들었다.

그 변화를 지켜보던 찬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데 말론은…… 뭘 하고 있지?”

루크가 서늘하게 웃었다.

순간, 찬영은 등골이 섬뜩했다.

침묵이 불길하다.

‘만약 놈이 뭔가를 연구했고, 그 연구 과정의 결과물이 루크라면……? 연구를 완성한 말론은 더 이상 여기에 머무를 일도 없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챙겨 둔 연구 일지를 챙겨 달아났겠지.’

찰나 간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이 순식간에 결론에 이르렀을 때, 찬영이 루크에게 나직이 말했다.

“이미 말론은…… 없구나.”

그럼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

‘놈이 흔적을 남겼을까?’

단언컨대 그렇지는 않을 거다.

힘들게 쌓은 연구 기록을 누군가 보고 그대로 가져간다면 자신의 성취를 통째로 넘기는 꼴이다.

찬영은 조금 전 자신의 몸을 덮쳤던 강한 폭발을 떠올렸다.

코란의 신체 폭발만으로도 주위 반경이 휩쓸렸다.

더 큰 폭발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설마…….’

찬영은 첨탑 상층부를 올려다봤다.

‘이 탑이 폭발의 매개체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 영향력이 얼마나 퍼질지 모르겠다.

찬영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범위가 첨탑뿐일까? 아니면 그 이상? 혹시…… 마을까지도?’

찬영의 눈빛이 흔들렸다.

확신할 수 없는 상황, 반드시 막아야 한다.

찬영이 소리쳤다.

“탑을 폭발시킬 생각이구나!”

“영리했다만…….”

그사이 루크가 등 뒤에 웅크리고 있던 검은색 날개를 활짝 펼쳤다.

“늦었다!”

쐐액!

말을 마친 루크가 찬영을 향해 쇄도했다.

인간의 인지를 벗어난 가속이었다.

하지만 찬영의 민첩성도 진작 인간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쾅!

방금 전까지 찬영이 서 있던 계단이 쇄도한 루크에 의해 통째로 박살이 났다.

‘빠르다!’

허공에 몸을 띄운 찬영은 체공 상태로 무너지는 계단을 내려다봤다. 피하긴 했으나 방금 전 놈의 스피드는 글라투가 떠오를 정도였다.

만만치 않은 상대다.

‘빨리 끝내야 해.’

왜 당장 터지지 않는지는 알 수 없다.

‘시간 끌기든, 준비 과정이든……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폭발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상황인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놈과의 전투를 빨리 끝낼수록 폭발을 막을 확률이 높아진다.

‘폭렬을 써야 하나?’

아니, 폭렬은 폭발의 범위가 넓다. 잘못하면 첨탑 전체가 폭발 범위 안에 들어갈 수도 있다. 만약, 폭렬의 대미지가 혹시 있을지도 모를 첨탑 안의 폭발 매개체를 자극한다면?

‘……끝장이야.’

불을 끄겠다고 기름을 붓는 격이다.

좋은 선택이 아니다.

당장은 어떤 방법으로 여길 폭발시킬 것인지부터 알아내야 한다.

루크와 싸우는 시간도 아깝다.

‘안 되겠어. 이젠.’

도움이 필요하다.

타닥!

“쥐새끼가 따로 없구나!”

무너진 계단을 헤집으며 나온 루크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만으로 건물이 흔들렸다.

찬영도 귀가 먹먹해졌다.

하지만 찬영은 불온한 기운을 감지했다. 그는 마나 심법을 통해 흐르고 있는 마나로 빠르게 음파를 차단했다.

오연한 찬영을 보며 루크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 그 정도는 돼야지.”

루크가 다시 쇄도했다.

그 순간 찬영이 옆으로 비켜섰다.

“너희들만 친구가 있는 건 아니야.”

철컥!

어느새 등 뒤에서 나타난 글로리가 포탄을 쐈다.

크투가의 ‘홀리 샤우트’였다.

두두두두두!

신성력이 깃든 연발 포탄이 기관총처럼 날아오는 루크를 갈겨 댔다.

“크허헉!”

루크가 황급히 녹색 손을 뻗었으나 한 손으로 수십 발의 포탄을 막을 순 없는 노릇이다.

연발 포탄은 단숨에 그를 종이처럼 너덜거리게 만들었다.

콰쾅!

탄환의 저지력으로 인해 기세 좋게 쇄도하던 루크가 날아오던 반대편 벽으로 나뒹굴었다. 탑이 통째로 흔들릴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그가 벽과 함께 무너지자 그제야 찬영에게 여유가 생겼다.

“차원의 돌을 찾아야 합니다! 언제 폭발할지 모릅니다.”

“그러겠소.”

글로리는 이미 일전의 이야기를 통해 언제든 돕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찬영은 그에 응했다.

그 후부터 글로리는 계속 찬영의 오두막에 상주 중이었던 것이다. 그 덕에 찬영은 첨탑으로 오며 글로리에게 손쉽게 사전 정보를 알려 주었다. 그가 문을 소환하자마자 나타날 수 있었던 이유다.

“부탁합니다! 우리가 못 막으면 마을이 전부 폭발에 휩쓸릴 수도 있어요!”

“……좋지 않군.”

“네, 많이요.”

고개를 끄덕인 찬영이 루크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가세요, 전 그를 끝내고 뒤따라가겠습니다.”

“알겠네!”

글로리가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민첩한 몸놀림으로 부서진 계단을 점프하며 상층부로 향했다.

‘이제 녀석만 제거하면 돼.’

찬영은 숨통을 끊을 생각으로 돌아섰다. 한데, 루크가 다시 멀쩡해진 몸이 되어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아까 그놈은 어디 있지?”

루크가 찬영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고는 짐작 가는 게 있다는 듯 웃었다.

“폭발을 막으려는 것이냐? 애달프군, 희생이라니……. 크하하하핫!”

이어서 그의 양손에서 붉은 화염이 일어나 찬영을 덮쳤다.

쐐액!

찬영이 아슬란으로 날아온 화염을 반으로 베어 버렸다. 날아오던 화염이 얼어붙으며 산산조각 났다.

아니,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화르륵!

하지만 얼음을 뚫고 다시 일어난 화염이 원을 그리며 찬영을 둘러쌌다.

‘이건!’

먼저 눈치채고 빠르게 원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완성된 원에서 불기둥이 솟아오른 속도가 더 빨랐다.

‘주문 속도보다 빨라!’

단순히 슬롯 수준이 아니었다.

슬롯의 세 배는 되는 스피드였다.

마치……글라투와 싸웠던 날이 떠올랐다.

콰쾅!

대비할 새도 없이 6m의 불기둥이 찬영을 집어삼켰다.

불기둥은 그 기세를 몰아 첨탑 절반을 불태우며 솟아올랐다.

그로 인해 기우뚱거리며 무너지기 시작하는 첨탑!

루크는 무너지는 천장을 보며 환호했다.

“종말은 곧 신의 탄생이다! 그 어떤 희생으로도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순 없으리라!”

자신의 머리 위로 무너지는 천장을 불덩어리로 부숴 버린 루크가 꼭대기에 숨겨져 있던 보랏빛 돌을 노려봤다.

이글거리는 화염 사이로 선명히 보이는 보랏빛 돌.

집채만 한 크기의 그 돌은 무너지는 건물과는 상관없이 둥실 떠오른 채 회전하고 있었다.

“사라져라…… 구시대의 잔재들이여!”

루크가 불길 속에서 돌아섰다.

자신이 더 여기 남을 필요는 없었다. 말론을 따라갈 것이다. 어차피 놈들은 폭발을 막을 수 없으니까.

푸스스.

그때 루크가 천천히 돌아섰다. 기척을 느낀 것이다.

“살아……남았구나?”

제법이라는 표정으로 돌아선 루크의 시야에 불길을 걸어 나오는 찬영이 보였다. 이 때 찬영의 시선은 보랏빛 돌을 향해 있었다.

‘저것이었어!’

드디어 드러난 폭발의 매개체.

다행히 탑은 매개체가 아니었다.

그럼 탑이 무너지는 것을 걱정하며 싸울 필요가 없다.

쐐액!

찬영이 매섭게 달려 루크의 앞에 나타났다.

“어림없다!”

루크가 소리치며 녹색 빛으로 물든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아슬란의 마나가 일부 소멸되어 오라가 약해졌다.

‘디스펠?’

아니, 디스펠이 아니다. 디스펠은 마나를 차단한다.

디스펠이었다면 단숨에 오라가 소멸됐을 거다.

이건 마치…….

글라투의 부식 파장 같다.

마나마저 서서히 소멸시키는 그 힘.

위력은 글라투와 천지차이지만 분명히 부식 파장이 틀림없다.

“크큭!”

그 틈에 루크가 물러났다.

뒤를 쫓는 찬영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놈에게 직접 듣는 수밖에 없겠지.’

그러려면 놈을 쓰러트리고 생포해야 한다.

‘그러나 불가능해, 지금은.’

솔직히, 가능할 것 같지 않다.

모든 마나를 전부 쏟아부어 그래비티 필드를 일으켜도 그 중력이 놈을 붙잡아 둘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놈에게 부식 능력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하나만 생각하자.’

반드시 밝혀야 하는 진실이긴 하지만 찬영은 가뿐히 접어 두기로 했다.

찬영이 루크를 노려봤다. 눈에 독기가 일렁였다.

“나는 너를…….”

그 어떤 진실도 수많은 이들의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다. 찬영이 아슬란을 으스러지도록 콱 쥐었다.

“……반드시 죽여 주마.”

찬영의 전신이 검붉은 슈트로 둘러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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