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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27화 (127/248)

# 127

127화

* * *

“으음?”

김지수는 새벽 냄새에 순간적으로 눈을 떴다.

불침번 교대는커녕 너무 오래 잤다는 걸 자각한 순간.

“……아!”

자동반사적으로 나온 탄식.

‘왜 그랬을까? 눈치 없이…….’

지수는 보필하겠다고 말해 놓고 잠만 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찬영이 쉬라고 했다고 하더라도 적당히 잤어야 했다.

‘당장 잘려도 할 말이 없네, 정말.’

벌떡 일어난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근데 어디 계시지?’

비가 그친 밖을 내다봐도 찬영의 모습은커녕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자는 사이에 사라져 버린 것 같다.

푸스슥.

그때, 동굴 앞에 놓인 커다란 덤불이 얼어붙으며 반으로 베였다.

저벅저벅.

그 틈을 뚫고 나온 찬영은 푸른 점액 같은 것에 반쯤 젖어 있었다.

한바탕 전투라도 치르고 온 것 같다.

‘설마?’

그녀가 벌떡 일어나 한 달음에 그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물론이죠. 기척 소리 때문에 깼나 보네요.”

“아닙니다! 근데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간밤에 몬스터가 이 근방을 둘러싸고 있더군요. 습격당하기 전에 먼저 습격했어요.”

별것 아닌 일상처럼 얘기한 찬영은 간밤에 이뤄진 전투를 잠깐 떠올렸다.

‘개체 수가 많았어.’

이번에 상대한 몬스터는 한 마리당 가치 측정, 6,200에 이르는 녀석들이었다.

-케이브에서 태어난 젤럿

생긴 건 뾰족한 피뢰침 같은 1m 길이의 더듬이 세 개가 머리에 두 개, 등에 한 개 달려 있는 네 발 달린 몬스터다.

톱니처럼 자잘하게 나 있는 독니와 강하고 견고한 발톱이 주 무기였다.

하지만 놈이 위험한 이유는 집단성과 스피드다.

다수가 덤비고, 후퇴하고, 다시 기습하는 게 마치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군대 같았다.

‘만만치 않은 것들이야.’

찬영은 앞으로도 만나게 될 녀석들에 대해 그녀에게 말해 주기로 했다.

‘대비하는 편이 낫겠어.’

당연한 일이다.

그녀의 가치 측정 결과는 7,200선.

최근 그녀가 싸울 때가 기억났다. 지수는 브라이트 소드를 들면 8,400 이상까지 올라간다.

한두 마리 정도까지는 버틸 수 있는 수준이다.

그래도 놈들의 특성을 알아두면 세 마리의 합공까진 어떻게든 버티리라 싶다.

“알아야 할 게 있어요.”

“어떤 겁니까?”

“이 근방에 집단성을 가진 몬스터가 있어요. 열 마리에서 스무 마리 정도가 무리를 지어 다니더군요.”

“개미랑 비슷하단 말씀이십니까?”

“네, 하지만 당연히 개미보단 커요. 한…… 이 정도?”

찬영이 간밤에 본 녀석들의 크기를 어림잡아 설명했다.

“아무래도 저보다 큰 것 같네요.”

“아뇨, 그 정도는 아니에요. 비슷한 크리라고 보면 됩니다.”

찬영의 대답에 그녀의 눈빛에 결연함이 실렸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개체 수가 많다면 당장 조우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네, 그렇겠죠. 단언컨대 갈수록 더 많이 나올 겁니다. 잠깐 줘 볼래요?”

“예?”

무슨 소리인지 잠시 이해가 안 된 그녀가 다시 물었다.

“그거요.”

찬영의 시선이 향한 건 그녀의 가죽 허리띠에 채워져 있는 브라이트 소드였다.

조금, 도움을 줄 참이었다.

“아, 네.”

그녀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검을 내주었다.

동료라도 검을 내어주지 않는 게 훈련받을 때 배운 철칙이긴 하다.

그럼에도 검을 내놓았다. 찬영을 동료 이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 있습니다.”

탁!

하지만 그런 훈련을 받아 본 적 없는 찬영은 자신의 행동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그녀가 건넨 검만 신중히 들여다보았다.

‘홈이 한 개군.’

가치도 2천을 넘지 못하는 브라이트 소드는 썩 그녀에게 좋은 검이 아닌 거 같다.

하지만 쭉, 이 검을 써 온 그녀로서는 다른 어떤 명검보다 지금의 검이 손에 더 익었을 거다.

‘그럼, 모두 쓰게 하면 되겠지.’

찬영은 남아 있던 10급 보석 열 개 중 세 개를 집어 들었다.

우선 한 개는 브라이트 소드에 있는 홈 한 개에 공격속도 1.2%인 10급 보석을 박았다.

지잉!

그러자 손에 잡힌 브라이트 소드가 보석을 박자마자 막대에서 백열등 같은 빛이 곧 고체로 변하며 일렁였다.

휙휙!

몇 번 검을 휘두른 찬영이 그녀에게 브라이트 소드를 되돌려 줬다.

“음? 이건?”

김지수가 깜짝 놀랐다. 은백색 막대 한가운데에 붉은 보석이 박힌 것을 확인한 것이다.

“놀랄 거 없어요. 갓피스가 되면서 생긴 능력으로 주입한 보석이에요.”

“아…… 그럼 이것 때문에 혹시 사용법이 바뀌기라도 하는 겁니까?”

“아뇨, 원래 하던 대로 똑같이 사용하시면 돼요. 보석 하나가 손잡이에 박힌 것뿐이니까요. 그래도 장착시켜 놓는 게 훨씬 나을 겁니다.”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여러 말보다 직접 써 보는 게 나아요. 한 번 휘둘러 봐요.”

“예!”

브라이트 소드를 몇 차례 휘두르던 그녀가 곧이어 짙은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달라진 것 같습니다! 정말로요!”

소녀처럼 신난 그녀를 보며 찬영이 인벤토리에서 또 다른 장비를 꺼내 들었다. 이번 사냥 수확물은 따로 있다.

지잉!

곧이어 찬영의 손에 잡힌 건 회색빛의 검신을 가진 60cm 정도 되는 길이의 검, 그라인더였다.

“그리고 이것도 받아 봐요.”

마치 로마 시대의 병사가 사용했던 검처럼 손잡이 끝이 직사각형으로 생긴 이 검은 그녀에게 꽤 잘 어울릴 거 같았다.

“우와…….”

매력적으로 생긴 검을 받아든 그녀는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다. 금세 브라이트 소드를 거둬들인 그녀는 찬영에게 받아든 검의 손잡이를 손끝으로 쓸다가 붉은빛 보석을 툭툭 건드렸다.

“그런데 여기엔 보석이 두 개나 박혀 있는 거 같습니다.”

“아, 그건 각 장비마다 보석을 장착할 수 있는 홈이 정해져 있어서 그래요.”

찬영의 대답에 순간 지수의 눈길이 허리춤에 있는 브라이트 소드로 향했다.

“그렇군요. 그럼 제 검은…….”

“……오해 말아요. 그 검이 안 좋다는 얘기는 아니니까요.”

“예, 압니다.”

환히 웃어 보인 그녀는 그럼에도 쥐고 있는 검을 내려다보기만 할 뿐.

휘두르는 시늉을 하지 않았다.

마치 두 개의 검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다시 돌려줍니까?”

그녀가 찬영에게 검을 내밀었다.

“감사드리지만 못 받을 것 같습니다.”

“왜요?”

“솔직히…… 탐은 나지만 더 좋은 장비에 길들여지다 보면 점점 약해질 거 같아서 걱정됩니다.”

찬영은 그제야 그녀가 뭘 고민했던 건지 깨달았다.

그녀는 단순히 장비에 기대고 싶지 않았던 거다.

한때, 그도 했던 고민이다.

물론 지금도 하지만.

“강요는 안 해요. 그래도…….”

찬영이 다시 검을 내밀었다. 이번 사냥으로 인해 획득한 가치 4,500의 그라인더는 확실히, 그녀에게 어울리는 검이었다.

자신이 써도 되겠지만 이미 아슬란이 있는 마당에 그건 과욕이다.

“이런 물건들은 쓸모 있게 써 주는 주인을 만나는 게 나아요. 사용하는 데에 거부감이 든다면 가지고만 있어요.”

“하지만……”

망설이는 그녀에게 찬영이 검의 손잡이를 더 내밀며 말했다.

“알아요, 어떤 마음인지. 저도 겪어 봤으니까.”

“설마요?”

그는 이미 각성자 사이에서 그 명성을 쫓을 수 없는 경이로운 사람이 됐다.

‘그런데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고?’

찬영이 쉽게 믿기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한순간 마나를 조금도 사용할 수 없게 된 적이 있었어요. 솔직히 두려웠죠.”

수많은 긴박한 순간 중에도 지하수로에 있는 뉴 빌드 조직과 싸웠던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덫에 걸렸을 때 타우린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 이곳에 서 있지도 못했을 거다.

찬영이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장비, 마나…… 그 모든 걸 사용할 수 없게 됐죠. 그때 알았습니다. 내가 가진 것에만 기대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요.”

“어떻게 하셨습니까?”

“친구의 도움을 받았죠. 그 덕에 여기 있을 수 있었고요. 하지만 당시엔 당혹스러웠어요. 내가 기대던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처음 경험했던 순간이라…….”

“그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여쭤봐도 됩니까?”

“못했어요, 극복.”

의외의 대답이라 그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당황해하는 그녀를 보며 찬영이 웃었다. 찬영은 지수가 가면 갈수록 놀리는 맛이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하고 있는 중이죠.”

“그렇구나…….”

“네, 그래요. 사실대로 터놓고 얘기하자면 장비 없이는…… 저도 굉장히 약합니다. 그래서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제 능력이 사라질 순간이 있다는 것을요. 그거면 된다고 생각해요.”

지수의 시선이 자연히 들고 있는 그라인더를 향했다. 그녀는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몇 번을 생각해 봐도 그의 말이 맞다.

검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경계심만 유지한다면…….

‘사실 어떤 명검을 들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문제는 검이 아니라 내 마음가짐이니까.’

그녀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맡겨 주신 마음 그대로 열심히 사용해 보겠습니다. 조언 정말 감사드립니다.”

찬영이 고개를 저었다.

“별 얘기도 아니었는데 조언으로 생각해 줘서 오히려 제가 고맙네요.”

미소 지은 찬영이 그녀가 쥐고 있는 그라인더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라인더엔 검의 고유 능력이 하나 있어요.”

“능력이 따로 있단 말씀이십니까?”

“네, 그 전에 어떤 보석인지 알려 줄게요. 생긴 것만 봐도 알겠지만 브라이트 소드에 부착되어 있는 보석들과 같은 종류의 보석이에요. 훨씬 더 빠른 공격이 가능해지게 보조해 준다고 보면 돼요.”

공격속도를 증가시키는 10급 보석을 두 개나 장착시켰으니, 확실히 몸이 빨라진 느낌이 들 거다.

“그리고 이건 검의 깃든 특유의 힘이라고 보면 되는데…… 한번 마나를 흘려 봐요.”

찬영의 지시에 따라 지수가 그라인더를 쥐고 호흡을 다스렸다.

이건 찬영만 가능한 가르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찬영은 그라인더를 직접 쥐었을 때 그라인더에 관련한 세부 사항을 전부 들여다보고 시도해 봤다.

그래서 알려 줄 수 있는 거다.

그라인더의 유일한 옵션인 효과 A가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원래 하던 대로 이네이트를 펼쳐 봐요.”

“네.”

곧게 뻗은 그라인더가 이윽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야.’

찬영은 검을 움직이는 그녀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처럼 경험해 가며 성장해 갈 테고, 그건 뉴 빌드나 그에 관련된 적들에겐 좋은 소식이 아니게 될 거다.

머지않은 시간 안에.

* * *

“영주님, 아직 못 주무셨습니까?”

“음?”

마을 진입로에 세운 망루를 내려오던 영주가 올라오던 제이나와 조우했다.

“뭐, 나야 보초 서는 병사들을 좀 격려했지. 그러는 그대야말로 이 시각에 어쩐 일인가? 눈 좀 붙이지 않고.”

“저 역시 혹여 특별한 일이 없는지 직접 살펴보러 나왔습니다.”

“그럴 줄 알았네. 자, 잠시 걷지.”

“예.”

함께 걸음을 맞춰 걷던 영주가 제이나에게 물었다.

“그거 아나?”

“예?”

“그대는 전과 정말 달라졌어. 잘 웃고, 자주 웃게 되었구먼. 눈빛도 이젠 많이 부드러워졌고.”

“그렇습니까?”

“그럼! 찬영이란 남자가 그대를 많이 변화시킨 모양이야.”

말을 마친 영주가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찬영의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의 눈빛에 무게가 실렸다.

“걱정되는가?”

“아니라고 말씀드려도 안 믿으실 것 같습니다.”

“잘 아는군.”

미소 짓는 영주에게 제이나가 솔직히 말했다.

“솔직히 많이 걱정 됩니다.”

“그래, 걱정되겠지. 하지만 그라면 잘해 낼 걸세. 별의별 적을 헤쳐 나오며 이곳까지 온 사내가 아닌가?”

“예…….”

“그래, 그러니 걱정 말게. 머지않아 수많은 마을에서 낭보가 들려올 걸세. 그의 소식으로 빅토르 지방이 떠들썩하겠지.”

영주는 정말 그렇게 믿었다.

찬영이라면 각 마을을 해적들로부터 해방시키며 움직일 거다. 그가 해 온 일들이 그만한 믿음을 주고도 남았다.

다만 걱정되는 건 따로 있다.

“나는 그보다…… 로일 영주가 걱정되는군.”

하루, 하루가 지날 때마다 입이 바짝 마른다.

사실상 그의 항복이 이뤄지는 순간부터 상황이 더 악화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를 들은 제이나가 말했다.

“백성을 아끼는 그분이라면 사력을 다해 성을 지키려 하실 겁니다.”

“그래, 바로 그게 관건이지. 우리는 전쟁뿐만 아니라 재건도 생각해야 하네. 하지만 이번 전투로 인해 로일 영주를 잃게 된다면?”

영주의 눈빛이 깊어졌다.

“장담컨대 빅토르 지방은 금세 혼란스러워질 걸세. 우린 그가 절망하고 쓰러지기 전에 그를 진창에서 구해 내야만 해. 이건…….”

영주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 로일시가 있는 방향이었다.

“시간 싸움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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