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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24화 (124/248)

# 124

#124.

로우지가 2개의 돌을 올려놨다.

2개의 돌이 각각 위치한 곳은 로일 영주가 있는 로일시市 외곽과 블롱 협곡이었다.

“지도만 봐도 아시겠지만, 블롱 협곡을 지나면 로일시에 가장 빨리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를 들은 제이나가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말했다.

“그들이 협곡에 포진되어 있나 보군요.”

“네, 그의 기억을 통해 읽은 바로는 그래요.”

대답을 들은 제이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게, 블롱 협곡은 로일시로 가는 최단 거리다.

블롱 협곡까지는 꼬박 열흘을 가야 하지만 협곡을 통과하는 건 겨우 삼 일이면 된다. 즉, 보름도 안 돼서 항구를 갖고 있는 로일시에 당도하게 되는 셈.

한데……. 지금 로우지의 말에 의하면 그곳에 적들이 있는 것이다.

제이나가 물었다.

“뉴 빌드인가요?”

“해적이에요. 주위 군소 해적들을 통합시킨…….”

대답을 대신한 건 영주였다.

“군다 바오트로군.”

로우지가 지도 위 협곡에 놔둔 돌을 바라봤다.

“네, 맞습니다.”

“얼마나 포진되어 있는지도 보았는가?”

“이천 명 정도에 더욱 모여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함께 모인 수뇌부가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해적만 이천이 넘는다니…….

이건 사절단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알폰 지방의 전 병력을 소집해 와도 모자랄 일이었다.

하나 영주는 신중했다.

아직 가타부타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로일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는 나머지 돌을 건드렸다.

“그럼, 이 돌은 뭘 뜻하나?”

“칼립토 학파에 속한 플로딘이라는 마법사가 몬스터를 지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플로딘……!”

꽤나 놀란 영주가 제이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제이나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흔들리고 있구나.’

당연한 일이다.

부친과 그 가신들이 죽는 것을 똑똑히 본 어린 시절의 그 광경이 잊힐 리 없다.

그렇기에 영주는 찬영을 쳐다보았다. 찬영의 시선이 자연히, 제이나를 걱정하는 게 보였다.

‘그래, 그가 있어 조금은 기댈 수 있겠지. 다행이로군.’

찬영은 그녀가 흔들릴 때마다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그럴 만한 남자라는 걸 자신도 인정한다.

안심하며 다시 지도로 시선을 돌린 영주가 로우지에게 다시 말했다.

“그럼 로일시 근방의 구획이 전부 몬스터 떼와 해적, 그리고 플로딘을 필두로 한 뉴 빌드 집단에게 둘러싸여 있단 얘기로군.”

“예, 그의 기억을 통해서는 분명 그랬습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그것까지 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읽었습니다.”

“그게 뭔가?”

“마을을 점거하고 누구도 접근할 수 없게 하라. 그들을 스스로 뛰쳐나오게 할 것이다. 신성왕국은 우리의 기반이 되리라.”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모두가 할 말을 잃었을 때 로우지가 영주에게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고모라가 라쿤 마을로 향할 때 플로딘에게 지시받은 내용입니다.”

시종일관 차분히 대응하던 영주의 눈동자에게 기어코 분노가 스며들었다.

“감히…… 성역을 침범한 것도 모자라 이 일대에 멸망의 뿌리를 내리겠다고?”

이를 간 영주가 주위를 둘러봤다.

“이를 가만히 지켜볼 텐가?”

크루거 경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에야말로 선봉에 서겠습니다. 신을 선봉에 세워 주시옵소서!”

“그리 하라!”

영주가 고개를 끄덕인 후 제이나에게 말했다.

“제이나 경!”

“예, 영주님.”

“마법 통신구로 이곳의 상황을 알리고 모든 병력을 끌어 모으라 이르게! 모이면 라쿤 마을로 출정하라 이르고.”

“따르겠습니다.”

그 뒤 영주의 시선이 향한 곳은 찰스였다.

“찰스 의장!”

“예, 영주님!”

“그대들은 나의 우방으로써 계속 이 자리에 남겠다고 하였다. 아직도 그 마음이 변치 않았는가?”

“로일시를 돕겠다는 뜻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대가 가용할 수 있는 각성자가 몇이나 되는가?”

영주는 각성자 편대까지 합류시키겠다고 선포한 셈이었다.

찰스의 표정이 굳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협약 상 영주는 작전 지휘와 통제권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가지지만, 미리 협조되지 않은 각성자 편대는 전장에 내보낼 수 없다.

“관련 수장들의 허가가 있어야 합니다. 한데……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그래? 의장이 가지는 권한이 있다고 들었네만? 난 그것을 말하는 것일세.”

“물론 W.A.L.의 의장으로서 언제든지 각성자 연합 편대 A.U의 10개 편대 증원 요청이 가능하긴 합니다. 하나…….”

말끝을 흐린 찰스가 고개를 저었다.

“관련 수장들이 쉽게 허락할 것 같지 않습니다. 아니면, 그에 따른…….”

영주는 뒷말을 미리 예상하며 말했다.

“새로운 개정 협약을 제시하겠지.”

“그렇게 될 겁니다.”

“각성자 편대의 추가 동원은 포기해야겠군.”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폐하의 허락도 없이 작전 통제권을 이방인들에게 넘길 수만은 없다.

영주는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한데 찰스로부터 의외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럼, 제가 직접 가서 설득해 보겠습니다.”

“그대가?”

“예, 저는 이번 전투가 단순히 득과 실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양찬영 각성자의 이야기처럼 우방 간의 신뢰를 다지기 위한 초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찰스의 주름진 눈이 유독 깊이 가라앉았다.

“이번 전투가 향후 신성 왕국의 명운과 새로운 시장으로의 개척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때론 득을 취하려들지 않는 게 더 큰 득을 가져올 때가 있지요.”

“그대는 의장이 아니라 상인의 눈을 가졌군.”

“허헛, 그리 보입니까?”

“적어도 지금은.”

찰스의 결정에 로우지가 말했다.

“저 역시 의장님을 따라 가겠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의장님의 뜻을 함께 전달해 볼게요.”

찰스가 시선을 옮겨 로우지와 눈을 맞췄다.

“큰 힘이 되겠군.”

두 사람의 가세에 지켜보고만 있던 이규복이 나섰다.

김지수를 뒤에 둔 그가 영주에게 말했다.

“그럼 저 역시 찰스 의장님과 함께 베이콥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 말을 하며 슬쩍, 찬영을 돌아보는 이규복.

이미 찬영은 고개를 까딱였다.

뜻대로 하라는 눈빛.

다시 돌아선 이규복에게 영주가 물어왔다.

“그대도?”

“예, 미력할 테지만 조금은 힘이 될 겁니다.”

이규복의 도움에 찰스가 고마워했다.

“암, 되고말고요. V.O.가 뜻을 함께 해 준다면 훨씬 수월해질 겁니다.”

각성자 편대 증원에 관한 협상 팀이 이뤄지기 시작할 때, 찬영이 말을 꺼냈다.

“그럼 저도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선언에 모두의 시선이 찬영에게 쏠렸다.

영주마저도 믿기지 않았는지 다시 물었다.

“뭐라고 했나?”

“떠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꽤나 담담한 어조로 대답한 찬영은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

찬영이 예상한 결과다.

그들이 놀랄 거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건…….

“적진에 잠입하겠습니다.”

대대적인 전쟁의 시작이 되리라 생각한 게 들어맞은 이상, 가만히 뒷짐이나 지고 방관할 순 없다.

“미쳤군! 제정신인가?”

영주가 찬영을 보며 처음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아끼는 사람이기에 더욱 그랬다.

갓피스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 특히 찬영은 복원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존재이니 더욱 안 된다.

“허락할 수 없네!”

“우리의 기습은 성공했습니다, 영주님.”

“그래서?”

“하지만 군다를 비롯한 해적들은 조만간 라쿤 마을만 소식이 오지 않는 것에 의아해할 겁니다. 먼저 연락을 취해 올 수도 있죠.”

“그렇겠지.”

“원군 증원은 아무리 서둘러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병사들을 소집하는 시간과 이곳까지 당도해야 하는 시간을 합치면 더욱 오래 걸릴 겁니다.”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완벽한 기습을 통해 적진까지 침투한 이 이점을 되살려 볼 생각입니다.”

“혼자 침투하는 것으로?”

“예.”

“그게 무슨 도움이 될까? 물론 나 역시 자네의 힘을 인정하네. 하나 우리의 증원 병력이 당도할 때까진 자네에게 어떤 지원도 이뤄지지 못할 걸세!”

찬영을 노려보는 영주의 눈빛이 엄중해졌다.

그는 말하고 있는 거다, 이번엔 물러서라고.

하지만 찬영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압니다, 영주님.”

“헛된 죽음이 될 수도 있네!”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자네는 내게 그만큼 합당한 연유를 대야 할 것일세.”

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생각도 안하고 결정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병력이 부족해 증원을 하는 것처럼 저들 역시 같다고 봅니다.”

“어떤 면에서?”

“협곡과 로일시가 있는 방면에 적들의 병력이 집결하고 있다면, 그 외의 다른 마을은 어떻겠습니까?”

“최소한의 수비 병력만 남겨 놓을 테지.”

“예, 이곳처럼요. 저는 그 수비 병력을 소탕할 겁니다.”

“그 후엔?”

“제가 다른 마을들을 헤집고 다닌다면 적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저에게로 쏠릴 겁니다. 그럼 은밀히 움직이시는 게 수월해지실 겁니다.”

“시선을 분산하고 라쿤 마을을 교두보로 두겠다는 건가?”

“예, 큰 병력이 오려면 거점 지대가 있어야 할 테고 저는 영주님께서 이곳을 교두보로 사용하시리라 예상합니다.”

“맞네.”

“그럼 더더욱 시선 분산이 필요한 일입니다. 더욱이 제가 이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다면 그 때부터는 그들의 보급이 전부 끊기게 될 겁니다.”

보급이 끊긴다는 건 그들이 병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이 줄어든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게 된다면 협곡과 로일시 주위에 집결한 그들은 점점 마음이 조급해 질 것이다.

“결국 놈들은 하루라도 빨리 로일 영주님의 성을 수복하려 안간힘을 쓸 겁니다. 하지만 그 때쯤 되면…….”

찬영은 뒷말을 잇지 않았다.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영주는 알고 있다.

그의 예상처럼 영주가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리의 원군이 온다.”

“네, 꼭 오셔야 합니다.”

영주는 찬영을 지그시 보며 고민했다.

이건 찬영이나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이곳에서 누가 저 위험천만한 적진으로 들어가 단신으로 수많은 마을의 수비 병력을 몰아내 보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을까?

분명 무모한 일이며 누구라도 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 찬영이기에 영주는 또 다시 깊은 근심에 빠졌다.

그간 그가 보여 준 성과들만 봐도 그렇다.

찬영은 매번 놀라움을 가져왔다.

솔직히 이젠 그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원은 없네. 그래도 갈 건가?”

재차 묻는 영주에게 찬영은 늘 그렇듯,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가겠습니다.”

영주는 또 한 번 설득당했다.

“그럼, 가게.”

그 때 제이나가 말했다.

“영주님, 제가 함께 합류하겠습니다.”

“그건 안 되네. 자네가 자리를 비운다면 마법 병단의 수많은 마법사들은 누가 이끌어가겠는가?”

제이나는 할 말을 잃었다. 영주의 말엔 틀린 게 없었다.

“알겠습니다.”

더 고집부리지 않고 물러나는 제이나를 보며 영주가 찬영에게 또 다시 말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적진으로 진입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지원은 끊길 걸세. 우린 라쿤 마을을 진입로로 삼아야 하기에, 이곳을 수비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야.”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원은 없네.”

“그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단!”

영주가 눈을 빛냈다.

“난 내 자리에 맞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네. 그것 또한 알고 있겠지?”

“설마…….”

찬영이 웃었다.

“모르겠습니까?”

* * *

라쿤 마을에 밤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로운 적막.

마을 주민들은 그 평화에 감사해하며, 베이콥 사절단을 향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따뜻한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 받게 된 사백의 병력은 앞으로의 전투를 위해 라쿤 마을 주위의 경계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찬영은 인적 없이 비어 있는 한 집에 들어가 이것저것, 장비들을 점검했다.

긴 여정이 될 것이다.

툭툭.

장비들을 하나 두 개씩 꺼내며 점검하던 그때.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자연스럽게 눈을 돌렸다. 새옷을 가져온 제이나가 보였다.

“아, 왔어요?”

평화로운 일상처럼 묻는 그에게 제이나가 들고 있는 옷가지를 탁자 위에 올려뒀다.

“옷을 좀 가져왔어요.”

“고마워요.”

“그리고…….”

그녀가 조용히 걸어와 그의 품에 안겼다.

“어?”

그녀치고 꽤나 의외였기에 잠깐 멈칫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당황했을 뿐이다.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걱정 말아요.”

곧이어 두 팔을 벌려 그녀의 등을 살포시 끌어안는 찬영.

“걱정 안 해요.”

“그럼?”

“당신이라면 별일 없을 테니까.”

“장담해요?”

“네. 당신은?”

제이나는 이 순간 찬영의 대답이 듣고 싶었다.

“장담할게.”

대답을 마친 찬영의 입술이 제이나의 입술 위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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