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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23화 (123/248)

# 123

#123.

고모라는 의자 위에 결박되어 앉아 있었다.

“이번엔 또 뭐지? 무슨 짓을 하려고 나를 이 자리 위에 묶은 거지?”

고모라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로우지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감을 가졌다.

‘모든 상황이 내게 유리하게 흐르고 있어. 내 식대로 풀어나가면 돼.’

찬영의 조언을 들은 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이 일을 맡기로 결정했다.

이런 좋은 기회를 절대로 날리고 싶지 않다.

“내 안전을 위해 묶은 거야.”

“왜? 마나를 잃은 내가 두려운가 보지?”

“난 남자인 네 완력을 이겨 낼 만큼 육체적으로 강하지 못하거든.”

고모라가 비아냥거렸다.

“그래? 쓸모없는 년이군.”

“정말 그랬다면 이 자리에 혼자 서 있지는 않았겠지.”

말을 마친 그녀가 자신의 관자놀이 옆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난 이걸 잘 써.”

고모라는 그 뜻을 금방 눈치 챘다.

“정신 마법을?”

로우지는 그의 반문에 제이나의 이야기를 문득 떠올렸다.

-모든 게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기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질문을 계속 던질 겁니다.

그러면서 제이나는 충고했다.

-흔들림 없이 여유 있는 태도로 대화하세요. 단, 상황을 주도해야 해요. 주도하지 못하면 놈이 느끼는 심적 압박감이 줄어들 겁니다. 그건…….

실패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안도감을 느낀 그의 방어 기제가 더 단단해질 거라는 충고.

로우지는 그 조언을 새기면서 차분히 입을 열었다.

“당장 시작해도 되지만 그 전에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

“더러운 년. 혓바닥 놀리지 말고 돌아가라. 명예로운 자인 나, 고모라가 네년 따위에게 굴복할 줄 알고!”

“가진 것 없이 용감하네. 그건 칭찬하지. 어쨌든 간에 하던 얘기는 계속할게.”

로우지가 팽팽한 흐름 속에서 막힘없이 말을 이었다.

“제이나 경에게 들어 알겠지만 너는 뉴 빌드 내에 불명예스러운 일원이 될 거야. 그건 시간문제지.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할까 해.”

“무슨?”

고모라는 더 발악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를 확인한 로우지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자포자기인 걸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얌전한 척하는 걸까?

‘물론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이제부터 할 제안이 그를 더욱 궁지로 내몰 것이다.

“이 일이 끝나면 넌 네 의지든 그게 아니던 내게 모든 기억을 속속들이 읽히게 될 거야.”

“크큭, 웃기는군. 네가 고서클 마법사라도 되더냐? 마나를 잃은 내가 두려워서 이깟 결속까지 해 둔 네가?”

로우지는 짧게 대답했다.

“지금 확인하게 될 거다.”

확신으로 가득 찬 그녀의 자신감에 고모라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실인가?’

그러는 중에도 로우지는 점점 다가왔다.

“시작하겠습니다.”

밖을 향해 외치는 그녀.

서서히 다가오는 손을 보며 고모라가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놈이 나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고? 말도 안 돼! 난, 그분의 제자이며 멸망을 가져올 일족이다. 그런데…… 왜 두렵지?’

기어코 고모라가 소리쳤다.

“멈춰! 멈추란 말이다!”

로우지는 그 외침을 들으면서 속으로 확신했다.

‘시작됐어.’

가장 원하던 것.

놈 스스로의 마음속에 ‘의심’이 시작된 거다.

자신의 이네이트는 그럴수록 더욱 효력을 발휘한다. 고모라가 해온 제이나와 자신으로 이어진 대화는 바로 그 감정을 끌어내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할 수 있어.’

로우지는 불안해하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양손을 소리치는 그의 정수리 위에 얹었다.

마음이 점점 고요해진다.

그리고 보인다.

그의 혼란과 걱정, 두려움, 마지막으로.

‘……의심이.’

로우지의 입가에 씩, 하고 미소가 서렸다.

* * *

“우엑!”

기어코 고모라가 피를 토했다.

하나, 고통스러워하는 건 고모라뿐만이 아니었다. 로우지 도 핏기 없는 얼굴로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우에엑!”

연거푸 피를 토해 내고 난 뒤, 독기 서린 눈동자를 쳐든 고모라.

로우지의 상태를 살핀 그의 눈동자가 의기양양해졌다.

“큭큭, 실패한 모양이구나.”

표정을 보니 썩 결과가 좋은 것 같지 않다.

고모라는 로우지의 핏기 없는 얼굴만 봐도 대강 상황이 짐작된다는 듯이 말하였다.

자신 역시 피를 제법 토했고 머리가 지끈거리긴 했지만 정신적인 타격을 입은 것이라고 볼 순 없다.

분명 일을 망친 거다.

“그렇지?”

다 안다는 양 묻는 고모라의 반응에 말없이 소매를 피를 훔친 로우지가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칼립토 학파 소속 스무 번째 제자. 고모라여.”

“뭐?”

로우지는 하얗게 질린 고모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반갑다.”

* * *

털썩!

감옥을 벗어난 로우지가 픽 옆으로 쓰러지려 하자 찬영이 누구보다 빨리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괜찮아요?”

걱정스럽게 내려다보는 찬영의 눈길에 로우지가 그의 어깨를 툭, 툭 두드리며 말했다.

“결과보다 괜찮냐고 먼저 물어보는군요.”

“로우지 씨 위험하라고 시작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서른 중반의 로우지는 만약 자신이 결혼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찬영은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찬영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며 말했다.

“괜찮으니 걱정 말아요.”

“다행이네요.”

“네, 그런데 모든 기억을 읽진 못했어요. 한꺼번에 받아들이기엔 반항이 너무 거센데다가 기억의 총량이 너무 많아요.”

그러는 사이 모여든 수뇌부가 모두들 로우지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괜찮은가?”

로우지가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예, 영주님.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고모라의 모든 기억을 다 읽지는 못 했습니다.”

“그렇군. 어쨌든 무사해서 다행일세.”

영주는 전부 알아내지 못했음에도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별 탈 없이 무사한 것에 안도했다. 그의 따뜻한 마음을 알 수 있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소득은 제법 있었습니다.”

순간 영주의 눈이 맹수가 먹이를 본 것처럼 번뜩였다.

“그런가?”

“예.”

반문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 로우지.

그녀가 찬영을 다시 돌아보며 말했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그런데, 계속 부축 좀 해 줄래요?”

“얼마든지요.”

“고마워요.”

조금 지친 얼굴로 웃어 보인 그녀가 영주에게 다시 말했다.

“영주님, 신성왕국의 지도가 있나요?”

“있지. 있고말고. 제이나 경.”

“예, 영주님.”

제이나가 기다렸다는 듯 마법 병단 소속 마법사에게 지시하자, 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두껍게 둘둘 말린 지도를 가져왔다.

툭!

탁자 한가운데 지도를 펼치자 멸망 직전 신성 왕국의 지도가 큰 구획들로 나뉘어져 있었다.

열 개의 지방, 수도, 산맥, 강, 바다, 심지어 마을까지도 세부적으로 그려져 있는 지도였다.

“제 머릿속에 떠다니는 저자의 기억이 지도를 보니까 좀 더 명확히 살아나는 것 같네요.”

로우지가 고모라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우선 저 마법사의 이름은 그가 스스로 밝혔다시피, 고모라이며 그는 칼립토 학파에 속해 있습니다.”

영주가 제이나를 쳐다봤다.

마법사는 학파가 굉장히 많다.

방어 계열, 정신 계열, 뇌전 계열 등 주력으로 사용하는 마법을 필두로 학파를 세우기 때문이다.

특히 자존심과 호기심을 모두 가지고 있는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배움을 서로 비교하며 연구하고 토론하기를 좋아한다. 그 탓에 영주가 제이나를 쳐다본 것이었다.

제이나는 이 중 유일하게 수도 아카데미 학파까지 교류가 있는 마법사다.

그에 관한 정보가 가장 많다.

하나 그런 제이나도 고개를 저었다.

“처음 듣는 학파로군요. 설마 그의 학파인가요?”

“네. 맞아요. 그리고 누구로부터 세워졌는지도 확실히 알게 됐죠.”

“누구죠?”

“저자가 마음속 깊이 신봉하는 자였어요. 후크. 분명, 후크라는 이름이었어요. 하지만 그가 누구며 어디 있는지는 읽지 못했어요. 하지만 칼립토 학파를 세운 사람인 건 분명해요.”

그러자 정적이 감돌았다.

후크라는 얘기를 들은 영주와 제이나를 비롯해 영주의 가신들이 전부 얼어붙은 거다.

찬영 또한 그런 분위기를 느꼈다.

‘왜지?’

등골이 서늘하다.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모두 후크라는 이름을 알고 있어.’

그 때 침묵하던 영주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확실한가?”

그 질문에 로우지가 말했다.

“그의 기억이 조작된 것 없이 확실하다면 조금의 거짓도 없을 겁니다.”

“조작됐을 수도 있겠군.”

영주가 훨씬 심각해진 눈빛으로 입을 뗐다. 듣고 있던 제이나가 그 얘기에 반박했다.

“그러나 영주님, 그들이 충성심 가득한 4서클 마법사의 정신 조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너무 없습니다.”

“우리가 올 줄 알았다면 충분히 얻은 것이겠지. 내부의 배신자가 있다는 의심이란 걸 던지지 않았나?”

영주의 대답에 듣고 있던 찬영의 눈빛에 놀람이 서렸다.

“내부라면…… 후크라는 자가 신성왕국 소속의 귀족입니까?”

찬영의 추측성 질문에 대답한 건 크루거였다.

“그는 왕국의 일곱 번째 검이며, 고서클의 마법사요. 수도가 있는 트리븐 지방 남쪽에 인접한 칼룬 지방의 영주이시기도 하지.”

“그럼…….”

“그렇소. 그의 기억을 모두 믿는다면 칼룬 지방의 영주께서 반란을 획책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

크루거는 말을 마치고서도 쉽게 믿기 힘든 눈치였고, 그건 찬영도 마찬가지였다.

‘영주가 반란을 일으킨다?’

세상만사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분명한 건 베이콥 영주의 예상 시나리오와는 점점 달라져가는 게 확실해 보인다. 영주도 점점, 생각이 복잡해지는지 손가락 끝으로 골을 지그시 누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 모든 게 누명이라고 생각하나?”

영주가 질문을 던진 건 제이나였다.

“영주님…… 외람되오나 저는 누명이 아닐 것 같습니다.”

제이나가 무척 단호히 대답했다.

“왜지?”

“모든 정황이 어느 정도 들어맞습니다.”

“어떤?”

“수도의 폐하께서는 각 영지의 상황을 파악한다는 등의 어떤 움직임도 취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단순히 몬스터 떼가 출몰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봅니다.”

“후크 백작에 의해 견제되고 있다는 뜻인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무엇보다…….”

제이나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충성스러운 4서클 마법사가 저희에게 생포될 거라고 예상하고 그의 기억을 조작했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긴, 그 정도로 모든 경우의 수를 완벽히 대비하는 건 신이어야 가능하겠지.”

“예, 심지어 저희 알폰 지방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은 복원이 뒤늦게 이뤄졌습니다.”

“그랬지.”

“뉴 빌드 내에서도 기존의 정보망을 다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랄 시간입니다. 그들은 저희의 움직임조차 모르고 있을 겁니다.”

로우지도 제이나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예, 저 역시 그의 기억을 통해서 그 부분은 확실히 읽었습니다. 저들은 아직 우리가 움직였다는 걸 모릅니다. 고모라는 이를 알리기 위해 끝까지 애썼지만…….”

잠시 말끝을 흐린 로우지가 찬영을 쳐다보며 나머지 말을 덧붙였다.

“양찬영 각성자에 의해 저지됐죠.”

모든 이야기를 종합해 듣게 된 영주는 깊게 탄식했다.

“허면, 그가 뉴 빌드로 돌아섰다는 얘기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제이나의 대답에 모든 가신의 표정이 굳어졌다. 몇몇은 탄식하는 이도 있었다.

특히, 의장인 찰스의 표정도 복잡해졌다.

“이런……. 일이 점점 어렵게 흘러가는군요. 전 이렇게 된 이상 빅토르 지방을 도운 후 영지로 다시 돌아가시는 걸 재고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절단의 책임을 맡고 있는 찰스는 자신이 이끄는 W.A.L.의 안위까지 생각해야 했다.

우방을 위해 빅토르 지방에서 싸우는 건 충분히 납득이 간다.

하나 지금의 병력으로 수도까지 계속 움직이는 건 분명 위험한 일이었다.

찰스는 그 말을 하고 있는 거였다.

“흐음…….”

깊게 숨을 들이쉬는 영주도 그 마음을 이해 못하지 않았다.

아니,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현재 나의 병력으로 수도로 진입하기엔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수도의 어려움이 처했다면 신하된 입장으로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다.

‘어려운 일이로다.’

고민으로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영주의 귓가로 찬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로우지 씨. 그것 외에 빅토르 지방에 관련된 기억은 더 없었습니까?”

“있었어요.”

“어떤 겁니까?”

“그건…….”

로우지의 시선이 다시 지도로 향했다.

찬영 또한 그녀의 시선을 쫓아 지도로 눈을 돌렸다.

그녀에게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예상할 순 없으나 단언컨대 그 얘기가 긴 싸움의 불씨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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