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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19화 (119/248)

# 119

#119.

타닥.

찬영은 바닥에 착지했다. 울던 아이는 너무 놀랐는지 축 늘어져 있었다.

끌어안은 아이를 이리 저리 살펴봤다. 다친 데는 없다.

‘다행이야.’

그사이 아이의 엄마가 달려왔다.

“감사합니다, 갓피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하는 아이 엄마를 보며 찬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녀도 아이를 살리기 위해 해적들이 있는 장소로 뛰어왔다. 이런 용기는 아무나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엄마니까 가능한 것이다.

찬영이 기절한 아이의 머리를 쓸었다.

‘좋은 꿈꾸길 바란다.’

“어서 가세요, 이곳은 저한테 맡기시고.”

찬영이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아이 엄마는 돌아선 갓피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탄탄한 등은 큰 산처럼 느껴졌다.

‘갓피스는 정말 존재했어.’

갓피스.

사실 소문만 무성할 뿐, 갓피스가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의문을 나타냈다.

그럴 만했다.

종말의 순간까지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모두가 고통스러워하는 전란 속에서 그들은 자취를 감춰 버렸다.

그들에 관한 소문은 무성했다.

누군가는 그들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을 막기 위해 사라졌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들이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려 도망쳐 버렸다고 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단 하나.

이 작은 마을엔 갓피스는커녕 누구도 구원의 손을 내밀어주지 못했다.

종말이 끝나고 시계바늘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복원 이후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희망은 없다고 생각했다. 여신을 원망했다.

그런데 그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는 오늘부터 믿기로 했다.

희망을, 그리고…….

“갓피스여, 무사하세요.”

그녀가 속삭였다.

갓피스를 위한 첫 기도였다.

* * *

그 후 찬영은 해적들을 향해 걸어갔다.

싸움이 끝난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크르르…….

역시나 놈들은 다시 재생되고 있다.

심장에 박혀 있는 차원의 돌 때문일 것이다.

‘차원의 돌을 뽑지 않으면 계속 재생된다는 건가?’

틀림없다.

해적들은 차원의 돌 덕택에 불사의 몸을 지니고 있다.

단, 그 조건은 첫 죽음인 것 같다.

확신에 찬 찬영이 중력을 더 가중시켰다.

쿠쿵!

재생하려 꿈틀댄 해적이 압살되며 살이 터지고 뼈가 부스러졌다.

하지만 놈들의 재생은 차원의 돌이 있는 이상,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차원의 돌을 뽑아주지.’

찬영이 그들을 향해 걸음을 떼던 그 찰나.

-크르르!

쿵쿵!

커다란 형체가 다가왔다. 그림자만으로 그늘이 일 정도로 거대했다.

힐끗 고개를 돌려 위를 쳐다봤다. 몸이 두 배는 커진 요하임의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아무리 봐도 사람의 눈이 아니다. 이성을 잃은 짐승의 것이다.

‘차원의 돌에 기댄 대가겠지.’

중력을 벗어난 것도 그 힘에 기댄 덕분일 게 뻔하다.

놈이 중력에 의해 얼굴이 반쯤 터진 흉측한 얼굴로 턱을 움직였다.

-왜, 이제 겁이 나나?

하나 질문만 던졌을 뿐이다. 요하임은 찬영의 대답도 듣지 않고 움직였다.

쐐액!

암흑 마력이 깃든 요하임의 낫이 날아갔다.

‘아슬란.’

찬영의 대응은 신속하고 정확했다.

쿵!

아슬란이 낫과 부딪치자 서로의 마력이 부딪쳐 일어난 파장이 반경 2m를 휩쓸었다.

치치칙!

낫이 아슬란을 밀었다.

하지만 아슬란은 돌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손으로만 놈의 낫을 지탱하는 찬영.

그의 서늘한 눈동자가 아슬란 사이로 요하임을 향했다.

“간과하고 있는 게 하나 있군.”

-크르르…….

“달라진 건 너희뿐만이 아니야.”

찬영이 남아 있던 한 손까지 아슬란에 보태며 덧붙였다.

“나 역시, 지킬 게 사라졌지. 그게 뭘 의미하는지…….”

찬영의 눈동자에 살의가 맺혔다.

“지금부터 보여 주마.”

이성을 잃은 요하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짐승이 위험을 감지하고 도망치는 직감이 있는 것처럼, 대적할 수 없는 살의와 지배력이 주위를 뒤덮기 시작했다는 것을.

파짓!

더 이상 힘을 제어할 필요가 없다.

‘광화.’

공진이 아슬란을 쥔 손을 타고 몸을 뒤덮었다. 순식간에 내부에서 용솟음치는 강력한 마나.

그건 온전히 아슬란으로 향한다.

펑!

아슬란에 휘몰아친 마나량에 의해 붙어 있던 낫이 튕겨져 나갔다.

방향 잃은 낫 위로 숨 쉴 틈 없이 휘둘리는 아슬란.

콰직!

다시 부딪친 낫과 아슬란.

찬영은 튕겨 나간 요하임의 낫에 다시 아슬란을 휘둘렀다.

이성 따위 더는 존재하지 않는 요하임마저 강한 마나량을 느끼며 신음성을 흘렸다.

-큭!

그 순간.

쿠드득!

균열이 낫의 날부터 시작해 손잡이까지 뻗어 나갔다.

암흑마력과 함께 단숨에 부서져 내리는 요하임의 낫.

아슬란이 무기 잃은 요하임을 휩쓸고 지나갔다.

쐐액!

흩어지는 핏물마저 얼려 버리는 아슬란의 검 끝. 그 검은 어느 때보다 냉엄하고 잔혹했다.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조금의 자비심조차 없이 찬영은 아슬란을 휘둘렀다.

아슬란을 통해 구현되는 북평검법.

그 검법은 반항도 못하고 선 요하임의 허리를 찌르고, 다리를 가르며, 등을 파고들었다.

찬영은 놈이 쓰러지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휘둘리는 검격 앞에 요하임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이 순간 아슬란이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빛났다.

함께 하는 북풍의 한설은 그의 분노를 대변했다.

아슬란은 악을 증오했고, 악인에게 엄정한 심판을 내리는 무기였다.

악을 증오하는 아슬란의 웅크렸던 분노가 찬영을 통해 다시 시드 대륙에 재현됐다.

찬영은 몰랐으나 그는 프라이를 닮아갔다.

일전에, 프라이가 말했었다.

푸른 별의 냉혹함을 이어받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지난날의 찬영은 준비되지 않았다.

스스로 준비가 된 것조차 몰랐다. 그러나 이제 찬영은 확실히 느꼈다.

‘준비는…….’

푸욱! 푸욱! 푸욱!

수백 번의 검격이 요하임의 전신을 꿰뚫고, 베고, 얼렸을 때, 비로소 아슬란이 움직임을 멈췄다.

쿠쿠쿵!

요하임은 완벽하게 해체되었다.

수백 개의 상처가 전신에 자리 잡았고 그 상처가 전부 얼어붙었다. 피조차 흘릴 수 없다. 놈이 기댄 차원의 돌마저 구원해 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젠 놈을 향한 구원보다 아슬란의 심판이 더 빠를 것이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얼어붙어 버린 요하임의 시체가 좌우로 흔들렸다.

쿠쿠쿵.

서서히 뒤로 넘어가며 끝을 고하는 요하임.

그러나 아슬란의 주인으로서 완벽히 각성한 찬영은 그 마지막 안식마저 증오했다.

쐐액! 퍼퍽!

요하임의 전신에 자리 잡은 얼음.

그걸 부순 찬영의 손이 거침없이 놈의 몸을 헤집고 들어가 심장 역할을 하던 차원의 돌을 움켜쥐었다.

‘……끝났다!’

지잉!

부르르!

아슬란이 진동했다.

찬영 또한 북풍한설의 주인을 맞이한 아슬란의 기쁨을 검명을 통해 온 몸으로 느꼈다.

-아슬란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아슬란이 당신을 새로운 주인으로 완벽하게 인정하였습니다.

-아슬란의 소유자가 성장합니다.

* * *

저벅저벅.

찬영이 걸음을 옮겼다.

사라진 그래비티 필드 아래 놓인 해적들의 시신.

솔직히 시신이라고 할 것도 없다. 차원의 돌에 기댔기 때문일까?

해적들은 하나 같이 뼈만 남고 전부, 몸이 보랏빛 불꽃으로 타올라 버렸다.

마치 불사의 힘과 영혼을 교환한 것 같았다.

‘대체 얼마나 많은 악행을 일으킬 수 있는 물건인 거지?’

찬영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해적들의 심장에 박혀 있던 차원의 돌은 전부 손 안에 흡수했다.

그러나 이번엔 전과 달라진 게 하나 있다.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차원의 돌을 획득하였습니다.

-네 번째 차원 다리까지 개방도 : 1.3%

-세 번째 차원 다리가 르리에에 개방되었습니다.

-차원의 돌을 수집하세요.

-차원의 돌을 수집하여 개방 100% 조건 달성 시, 네 번째 차원 다리 이동 가능

-세 번째 차원 다리는 네 번째 차원 다리 수복과 연관이 있습니다. 네 번째 차원 다리 수복 시 보상으로 세 번째 대륙 복원이 시작됩니다.

‘세 번째 차원 다리가 그냥 열렸다고?’

문구에 따르면 그렇다.

‘달라졌어.’

글라투를 만났던 것처럼 이번에도 차원의 돌을 모아 세 번째 차원 다리를 수복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이번에도 만만한 길은 아니라는 거겠지.’

세 번째 차원 다리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도 확실한 건 차원다리 수복 과정에 변화가 생겼다는 거다.

그 변화가 어떤 상황을 몰고 올지는 직접 겪어 봐야겠지만…….

‘하겠어, 무엇이든!’

오늘 일을 겪고 나니 더 그렇다.

뉴 빌드, 해적, 모두 다 멸망의 존재, 올드 원의 힘에 기대어 혼란을 일으킨 자들이다.

이 모든 것의 마침표를 찍는 건 이 일의 원흉을 찾는 것뿐.

‘차원 다리 끝에 누가 기다리든 반드시 찾아내 줄게.’

누구든.

스륵!

그때, 등 뒤에서 기척 소리가 들렸다.

“찬영 씨!”

로우지였다.

다가온 그녀를 본 후, 공진을 망토 상태로 되돌렸다.

펄럭!

아슬란을 땅 위에 박아 넣은 뒤 찬영이 말했다.

“다친 데는요?”

“헉, 헉. 있을 리가요.”

“마을 주민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마을 진입로에서 신전으로, 헉, 방향을 돌리게 했어요.”

“왜요?”

로우지가 뛰어온 탓에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마을 진입로로 모여든 해적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았어요. 괜히 그들과 마을 주민들이 마주치지 않게 하려면 그게 최선이었고요…….”

“예상보다 많은가요?”

“네, 잠깐 본대와, 연락을 했는데, 헉, 몬스터와 해적들의 숫자가 상당하고, 반격도 거세다고……. 헉”

겨우 숨을 가다듬은 그녀는 착용한 우울로를 톡톡 두드린 후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전장 근처에 있는 것보단 다른 도피처에 숨어 있게 하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로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 같다.

‘나였어도…….’

그랬을 거다.

“그럼 어디로?”

찬영이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요하임이 잡혔다면 신전이 가장 안전할 거라고. 특히…….”

그녀가 이를 갈았다.

“그곳에 소녀들이 잡혀 있어서 가야 한다고요.”

“소녀요?”

“네, 성범죄자였던 모양이에요.”

그 말에 찬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단언컨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 줘야 할 자격이 조금도 없는 자였다. 아마 놈이 살면서 유일하게 잘한 게 있다면 프라이가 남긴 유산에 새로운 발전을 열어 준 것 말고는 없을 거다.

“그럼 그곳으로 가 계세요. 혹시나 해적들이 그곳에 나타난다면…….”

찬영이 귀에 착용한 우올로를 가리켰다.

“……언제든 연락 주시고요.”

“네, 그럴게요.”

자리를 비웠던 동안, 찬영을 걱정했던 로우지는 그 생각들이 그저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다.

당연했다.

‘……이 상황만 봐도 그렇지.’

잔혹한 광경이다.

찬영은 놈들을 살점 하나 없이 뼈만 남겼다.

거기다 그 뼈조차 으스러져서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얼마나 강한 걸까?’

하긴, 이런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웃긴 일이다.

기절한 자신을 안은 채, 절벽을 기어오는 것만 봐도 그는 이미 초인이니까.

“가 볼게요.”

“예, 이따 뵙죠.”

찬영이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진입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쾅! 화르륵!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커다란 화염 장벽이 저 멀리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찬영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제이나?’

그녀가 틀림없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건 그녀가 이렇게 강한 마법을 사용할 이유가 있는가였다.

그녀가 이렇게 강력한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히나 지금 그녀의 곁엔 사백 명의 정예 기사와 병사들이 있으며, 베이콥 영지 내의 인재들도 함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마법을 사용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면?

그건 그만한 적이 나타났기 때문일 거다.

‘느낌이 좋지 않아!’

찬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반면 곁에 있던 로우지도 말했다.

“전황이 아직도 정리되지 않는 모양이네요.”

“예, 그런 것 같군요.”

굳어 있는 찬영의 표정을 살핀 로우지도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이상한 일이네요. 해적들의 병력이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았는데…….”

설마 아직까지 진입로를 뚫고 진입 못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분명 아직까지 싸우고 있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타난 걸까요?”

로우지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찬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직접 가보는 것 말고 어떤 것도 단언할 수가 없다.

혹시 몰라, 우올로도 켜 봤지만…….

“대리님?”

우울로 너머의 이규복에게서는 아무 응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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