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118.
쐐애액!
이를 목격한 해적들이 모두 얼어붙었다. 놀람, 두려움, 낯섬 다양한 감정이 섞인 그들의 시선. 하지만 하나 같이 느낀 감정은 단 하나.
‘경악’이다.
그럴 만도 했다. 그 대단한 기사들마저 베어 버린 요하임이다. 그런데, 그런 요하임이 갑자기 나타 난 적에게 당황한데다 어떤 기척도 못 느끼고 등을 내준 거다.
“미, 미친……!”
해적 중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 순간 찬영의 등에 붙어 있던 공진이 펄럭였다.
‘그래비티 필드 3회 중첩重疊’
공진 사이로 언뜻 보인 디푸스 갑옷. 그 주변에 구현됐던 프리징 스킨이 푸른빛을 일으키며 흩어졌다. 그리고 시작된 중력 구현.
“크헉!”
중력은 적아를 가리지 않는다.
반경에 포함된 마을 사람, 해적들 가릴 거 없이 모두가 일제히 속박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중력 중첩을 강하게 가하지 않은 이유다.
대신 3초 속박의 구현이 목적이다. 특별한 능력 없는 일개 해적은 필드를 이겨 낼 수 없을 거다.
그 시간 동안 녀석들은…….
‘마을 사람들 해할 수 없어.’
거기다 필드에 따라오는 옵션인 속박 3초는 적은 시간이 아니다. 오라를 사용하는 요하임마저 반항 못한 채 발이 묶였다.
‘젠장!’
낫을 휘두르지 못할 만큼 밀려드는 중압감. 옴짝달싹 못할 것 같다.
‘대체 이 힘은 뭐지?’
놈이 당황해하는 동안 렌즈를 착용한 찬영의 눈동자가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시야 안에 들어온 해적들의 머리 위로 표적지 형태의 붉은 원이 보인다.
적아를 구분하는 표시다. 그 외에 시야 밖에 있는 타깃은 붉은 글씨로 타깃이 있는 방위와 돌아봐야 할 각도가 적혀 있었다.
‘확실히 보인다.’
실전에서 사용하고 나자 렌즈가 어떻게 쓰이는지 확실히 알 것 같다.
다만 마정석과 몬스터에만 반응을 해야 할 렌즈가 왜 해적 놈들에게도 반응하는지가 의아했다.
‘일단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긴 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되는 바는 있다.
해적들은 마정석과 관련 있는 물건을 품에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렌즈가 반응할 리 없다.
‘추후에 알게 되겠지.’
더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생각을 마친 찬영의 손 안에서 표창이 벗어났다.
지잉!
중력에 속박된 해적은 고정 표적이다. 추가로 붉은 표적지까지 새겨져 있는 렌즈의 보조를 받는다. 단언컨대 조금의 흔들림 없이 적중시킬 수 있다.
쐐액!
서걱! 서걱! 서걱!
소음 없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날아가는 아쿤다의 표창. 곧, 작고 검은 물체가 표적으로 놓인 해적들을 빠르게 꿰뚫고 지나갔다.
“윽!”
“흡!”
큰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헛바람 들이 삼키는 소리 혹은 거친 호흡 소리가 사라졌다.
결과는 해적들의 전멸.
수십이 넘는 해적 떼의 목숨이 끊겼다. 살아남은 건 요하임뿐이다. 힐끗 시선을 돌린 찬영이 손을 뻗었다.
‘리턴 블레이드.’
완벽히 임무를 수행한 표창이 손 안으로 돌아오며 찬영의 곁에 있는 요하임을 노렸다.
‘이 개새끼가!’
요하임은 다급해졌다.
마침내, 표창이 그의 정수리를 꿰뚫으려던 그 순간.
쐐액!
요하임의 낫이 움직였다.
표창과 낫이 부딪쳤다.
“크윽!”
요하임은 손이 찢어질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낫을 고쳐 쥔 요하임이 ‘꿀꺽’ 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그사이 표창이 살아 있는 것처럼 놈에게 돌아갔다.
요하임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웬 괴물 같은 새끼지?’
희번덕거리며 거친 숨을 내뱉는 요하임. 그가 계속 찬영과의 거리를 좁혔다. 적정 범위에 찬영이 들어오자, 연달아 낫을 휘둘렀다.
두터운 팔 근육에 핏줄이 돋을 만큼 전력을 다한 연격.
쐐액!
파공음이 남달랐다. 강한 근력 때문만이 아니다.
낫에 흐르는 미약한 오라 덕분이다.
요하임은 조그만 해적단 두목이라는 명함으로 바오트의 눈에 든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강한 실력 덕분이다..
‘어디 이것도 막아 봐라!’
쐐액!
강하게 휘둘린 낫이 찬영을 베었다.
하지만 요하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베지 못했다!’
베어 버렸다면 손에 찌르르하는 감각이 오기 마련이다. 생각이 맞은 걸 증명하듯 눈앞에 서 있던 찬영의 형체가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어디?’
요하임의 눈동자가 갈 길을 잃어버린 순간, 사라졌던 찬영이 요하임과 휘두른 낫 사이에 나타났다. 시야에 아예 사라져 버렸다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벌써 두 번이나 시야에서 놓쳤다.
‘마법사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당장엔 반항할 겨를이 없다는 사실이다.
“젠장!”
낫을 놓는 게 최선이다.
탁!
낫을 놓은 요하임이 두 팔을 ×자로 교차했다.
만약 놈이 마법사라면 휘두르는 주먹 정도야 충분히 막아 낼 수…….
“크헉!”
상황은 요하임의 예상을 훌쩍 벗어났다.
콰직! 빠각!
날아간 찬영의 오른손이 요하임의 두 팔을 부러트리며 가드를 풀어 버린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에어펀치.’
가속도를 일으켜 요하임의 명치에 박혔다.
단 한 방.
그 한 방의 주먹에 요하임의 어깨가 들썩였다.
부웅!
들썩이다 못해 요하임의 거구가 강력한 괴력에 떠밀려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쐐액!
찬영의 냉정한 눈동자가 날아가는 요하임을 쳐다봤다.
쿵!
다시 땅을 박찼다.
지반이 내려앉으며 사라진 찬영.
찬영이 박찬 자리는 지반이 내려앉아 있었다.
어느새 찬영은 날아가는 요하임의 가슴 위에 도달했다.
이어서 헬레와 스툼 주위로 염왕초혼심법을 통해 끌어낸 마나를 둘렀다.
화르륵!
나선형의 마찰과 함께 피어오른 불꽃의 오라.
그리고 펼쳐진 선붕파.
1m 안의 모든 걸 빨아들인다.
강한 나선형의 인력이 그의 배를 끌어당긴 순간, 허리가 거꾸로 꺾인 요하임.
뿌드득!
놈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악!”
그 위로 찬영이 무릎을 구부려 놈의 가슴 위로 떨어졌다.
콰드득!
가격당한 가슴뼈가 으스러졌다.
더 이상 요하임의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기절한 것이다.
쿠드드득!
놈의 몸을 받침대 삼아 땅을 미끄러지듯 착지한 찬영이 가볍게 ‘툭’ 하고 땅을 박차서 놈의 옆에 착지했다.
완벽한 힘의 차이.
그동안 해제된 그래비티 필드와 함께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며 몸을 벌벌 떨었다.
‘두려운 존재들이던 해적들을 반항도 못하고 짓눌러 버리는 사람이라니…….’
하나 마을 사람들은 영웅이 나타났다며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살아남은 것에 안도하면서도 잔혹한 광경에 몸서리쳤다. 그러면서 의심의 빛을 보였다.
그건 찬영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이 만들어 낸 거였다.
“대, 대체 누구십니까?”
누군가 용기 내어 물어왔다.
찬영은 이 순간 그들에게 무슨 대답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갓피스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의 눈동자를 쳐다봤다. 나뭇잎 형태의 동공, 그것만으로도 자질구레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마을 사람들의 눈빛에 경외가 실렸다.
질문했던 마을 사람의 나직한 중얼거림.
“가, 갓피스가 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누구는 안도감에 울음을 터트리고 누군가는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원망했다. 누군가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지 넋을 잃은 눈빛으로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조용히 서서 그들의 시선을 모두 받아 냈다.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위로가 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무슨 말로 위로가 되겠어.’
그저 지금의 결과들로 조금 더 나은 미래가 될 거라고 약속해 줄 뿐.
한데 그때.
-크르르.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게 들렸다.
‘뭐지?’
찬영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그러자.
“꺄아악!”
“뭐, 뭐야!”
마을 사람들이 다시 겁에 질렸다.
당연했다.
목이 반쯤 잘린 채 죽어 있던 해적들이 전부 눈에 붉은 안광을 일으키며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쿠르륵.
놈들은 반쯤 이성을 잃은 눈동자였다.
그리고 심장 부근에 보랏빛의 뭔가가 번쩍이고 있었다.
‘마정석?’
분명 마정석 혹은 그것과 관련된 무언가다. 그게 놈들의 심장에 박혀 있는 게 틀림없다.
‘설마?’
만약 지금 생각이 맞다면 저건 차원의 돌이 분명하다. 일전의 차원의 돌이 박혀 있는 몬스터들을 겪어 봤기에 금세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하나둘 일어나는 해적들이 낮게 웃었다.
적의와 분노만이 일렁이는 눈동자. 놈들의 눈엔 공포가 사라졌다.
-크르르.
되살아난 해적들의 목 주변이 마치 끊어진 진흙이 다시 붙는 것처럼 서로 들러붙었다.
‘재생되고 있어. 차원의 돌 덕분인가 보군. 젠장.’
이 순간 찬영이 든 생각은 하나.
바로 마을 주민의 안전이었다.
그들이 전부 도망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했다.
‘홀리 웨폰.’
결속할 게 필요했다. 빠르게 생성되는 수십 미터 자리 쇠사슬이 손아귀 안에서 철렁거리며 생성됐다.
더 기다릴 것도 없었다.
“마을 진입로로 도망쳐요! 그곳에 지원 병력이 있습니다!”
찬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해적들이 있는 방향과 반대로 뛰기 시작한 마을 사람들.
-쫓아라. 크륵!
되살아난 해적 떼가 일제히 흩어지며 도망치는 주민들을 쫓으려 움직였다.
타닥!
하지만 찬영이 한 발 빨랐다.
쐐액!
신성력 쇠사슬을 휘두른 찬영이 제일 먼저 보이는 해적의 몸을 빠르게 결속시킨 뒤 재차 쇠사슬을 흔들었다.
철컹!
그러자 또 다시 날아간 쇠사슬.
순식간에 쇄도한 쇠사슬이 해적들의 발밑을 먹이를 옥죄는 뱀처럼 옭아맸다.
콱! 쿠당!
찬영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대여섯 명을 단번에 옭아매면서 빠른 속도로 해적들의 하체를 공략했다.
수십 명의 해적들이 하나의 쇠사슬에 발이 묶여 버린 건 눈 깜짝할 새였다.
촤지직!
그러나 홀리 웨폰은 높은 등급의 신성 마법이 아니다.
그저 잠깐, 시간을 버는 거였다.
모든 면에서 신체적 진화가 이뤄진 수십 명의 해적들을 막아 낼 수 있는 게 기술이 아니다.
그러니.
‘얼마 못 버틴다.’
그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기다린 쇠사슬이 끊어질 조짐을 보였다.
찬영의 눈에 서서히, 해적들과 멀어지고 있는 주민들이 보였다.
‘어서 가요.’
찬영은 그들이 한시라도 빨리 그래비티 필드 범위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츠츠츠!
그사이에도 신성력 쇠사슬이 옅어져 갔다.
반항하는 힘에 의해 소멸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좀만 더 버틴다!’
찬영은 쇠사슬의 재생력을 위해 신성력을 더욱 쏟아 부었다.
하지만 견딜 수 없는 힘이 한순간에 일제히 가해지면, 재생 속도를 넘어 서게 된다.
지금처럼.
촤륵! 탁!
끊어짐과 동시에 소멸되는 신성력 쇠사슬.
그런데 그 다음 순간 발이 묶여 있던 해적들 사이로 넘어져 있는 소년이 보였다.
“으앙, 엄마!”
“안 돼! 루이야!”
등 뒤에서 들려오는 한 엄마의 애타는 목소리.
도망치다, 아이를 놓친 게 틀림없다.
‘어떻게 해야 하지?’
순간 수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줄이 끊어진 놈들을 일제히 멈추게 할 수 있는 건 그래비티 필드뿐이다.
지금을 놓치면 놈들이 흩어진다.
하나라도 놓쳤다간…….
‘마을 사람들이 위험해져.’
그렇다고 그래비티 필드를 중첩시켜 버리면…….
‘아이가 죽어.’
선택의 기로에 선 지금, 찬영이 이를 악물었다.
‘그래비티 필드 50회 중첩.’
고민은 끝났다.
지잉!
순식간에 놈들의 몸으로 내려앉는 중력.
‘블링크.’
그 사이로 찬영이 나타났다.
“제발……!”
단숨에 아이의 팔을 콱 잡은 찬영이 있는 힘껏 아이를 들어 올려 필드의 반경 밖으로 날려 버렸다.
쐐액!
찰나간 필드가 생성되는 시간과 아이가 날아갈 속도를 고려한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건 타이밍 싸움이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아이가 필드 밖을 벗어나는 속도가 필드가 생성되는 시간보다 늦으면 아이가 위험해질 거다.
‘제발!’
찬영은 사력을 다했다.
콰쾅!
그리고 중력이 해적들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동시에 찬영의 몸이 사라졌다.
-블링크.
지잉!
찬영의 몸이 사라졌다가 아이가 날아갈 곳을 예상해 번쩍, 나타났다.
퍽퍽!
멀찍이 해적의 머리가 내려앉은 중력에 의해 일제히 터져가는 게 보였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건 그게 아니다.
탁!
마음을 졸이던 그쯤 때를 맞춰 가슴 안에 강하게 짓쳐들어오는 단단한 느낌. 아이와 함께 날아가고 있는 찬영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안도감이다.
“잡았다.”
마음속에 있는 말이 ‘툭’ 나와 버렸다.
‘괜찮아 질 거다, 이젠.’
찬영이 아이를 더 꽉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