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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14화 (114/248)

# 114

#114.

와트 마을을 지난 후 며칠이 흘렀다.

찬영이 로그인 3회 차 19회가 됐을 때, 사절단은 본격적인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당연하다.

빅토르 지방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마틴 숲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숲은 몬스터를 완전히 토벌한 알폰 지방이 아닌 빅토르 지방에 속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즉, 아직 토벌되지 않은 구획에 들어간다는 건 언제 어떤 몬스터의 습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덩달아 4백의 병력도 더욱 바빠졌다.

진군 속도는 줄어들었고 대신 사주 경계가 강화됐다.

그동안 마법 병단은 마차를 중심으로 반경 3km를 탐지하는 마법들을 구현했다.

물론 탐지 마법은 옵저버처럼 반경 안의 총 마나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진 못한다. 대신 접근하는 마나를 감지하는 데 쓰인다.

그렇게 영지 병력이 각자 맡은 바대로 움직이는 사이 W.A.L.의 각성자 편대도 이를 도왔다.

정찰에 능한 각성자들이 탐지 범위 밖, 길목을 미리 확인하는 정찰대에 합류한 것이다. 이들의 지휘는 영주의 하명에 따라 찬영이 맡게 되었다.

* * *

찬영은 아홉 명의 정찰대 대원들과 두 번째 인사를 나누었다. 정찰대를 이루고 있는 W.A.L. 소속 각성자들과 통성명을 나눴기 때문이다.

이들 중 의장의 직함을 맡고 있는 찰스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뭘 도우면 되겠습니까?”

찬영이 목소리가 나온 곳을 쳐다봤다.

찰스는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50대의 중후한 신사였다. 그는 모두에게 예의가 있었으며 자기 직함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누구도 만만히 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가진 특유의 기품 때문일 것이다.

“우린 마차가 지나갈 곳을 점검하고 그 주위에 다른 변수가 있을지 예상하는 역할을 한 후, 본대에 다시 합류할 겁니다.”

영주에게 들은 임무는 딱 여기까지였다.

어차피 토벌을 하는 게 아니라 무사히 수도까지 도착하는 게 이번 사절단의 목적이었기에 찬영도 이 작전에 동의하였다.

“여길 봐 주시겠습니까?”

영주에게 전해 받은 양피지 지도를 펼쳐 그들에게 임무를 분담해 주었다.

“의장님께서는 여기 표시되어 있는 자리부터 2km 지점까지만 확인해 주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 위치를 고수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러죠.”

W.A.L.에 소속된 인원들은 합리적인 상황에서는 곧잘 순응하는 태도를 보였다. 흥분을 하거나 돋보이려는 식의 두드러진 행동을 하는 이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찬영은 내심 감탄했다. 차분하고 사려가 깊으나 필요한 상황에서는 냉철하다. 현재까지 찬영이 본 W.A.L.의 이미지가 그러했다.

“움직이죠.”

찬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W.A.L.의 일원들이 각자 자기 임무대로 움직였다.

뒤따라 찬영 역시 이규복과 김지수를 대동한 채 지도상에 표기된 동굴로 향했다.

4km 밖에 있는 동굴 입구는 한때, 마틴 숲의 지름길 역할을 하는 동굴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몬스터의 등장으로 동굴 길이 대부분 무너졌고, 이젠 뭐가 남아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거기다가 동굴의 입구는 고지대였다. 영주는 마차가 지나갈 때까지 이곳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협곡처럼 마차가 지나는 길이 보이네요.”

이규복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숲의 아랫길이 훤히 보였다. 찬영도 영주가 어째서 이곳을 반드시 점령하고 있어야 된다고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됐다.

만약, 이곳을 적들이 점거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행렬 대열이 한 눈에 보이는 고지대를 점한 적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될 거다.

영주는 이를 염려한 것이다.

찬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로부터 이십 분 정도 걸은 뒤, 김지수가 입을 열었다.

“다 온 것 같습니다.”

스륵!

그녀의 말이 끝나자 세 사람이 수풀을 헤치고 넘어갔다.

곧이어 넓은 부지가 나타났다.

부지 오른쪽에는 커다란 동굴이 보였고 가운데에는 건물 3층 높이의 목조 망루가 세워져 있었다.

“영주님께서 망루가 있었다고 하셨나요?”

이를 본 이규복이 먼저 물었다.

동굴 초입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망루의 유무에 대해 언급 받은 건 없기에 이규복의 질문은 당연했다.

하지만 의아한 건 찬영도 마찬가지였다. 영주가 알고도 말을 하지 않을 리는 없다.

‘그도 몰랐어.’

반쯤 붕괴된 것도 모자라 15도 정도 기울어져 있는 망루를 빠르게 살폈다. 그러다 망루에 붙어 있는 반쯤 찢어진 국기가 보였다.

익숙한 국기다.

“저 깃발, 신성왕국의 것이네요.”

찬영의 시선을 따라 김지수와 이규복이 눈을 돌렸다.

그러자 김지수가 의아해했다.

“망루가 신성 왕국의 소유라면 영주님도 알고 계시는 게 아닐까요?”

찬영이 대답했다.

“그랬다면 말씀해 주셨을 겁니다.”

당연한 얘기다. 영주가 망루의 존재를 잊었을 리 없다.

확실히 영주가 모르는 사이 생겼을 거다.

혹은…….

“다른 지방의 소유라면 그럴 수 있겠죠. 여긴 알폰 지방이 아니니까요.”

말을 마친 찬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대리님. 지수 씨와 함께 주변을 탐색해 주세요. 동굴은 깊숙이 들어가지 마시고.”

이규복이 물었다.

“찬영 씨는요?”

“저는…….”

찬영이 조용히 망루를 올려다봤다.

저 안에 뭐가 있을지 좀 들여다봐야겠다.

* * *

툭, 부드득!

불쑥 손을 뻗은 찬영이 앞에 놓인 나무판자를 잡아 뜯었다.

망루를 둘러봤으나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 문은 없었다.

문이야 예전엔 있었을 거다. 하지만 망루가 기울면서 문처럼 생긴 건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사람이 진입할 수 있는 틈을 찾아 들어왔다.

‘안은 제법…….’

걸어 다닐 수 있는 정도의 높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개를 움츠려야 할 때도 있었으나, 발끝에 걸리는 일부 무너진 자재들을 치우자 앞으로 나아갈 여유가 생겼다.

‘위로 가야할 것 같은데…….’

천장을 보고 있던 그 즈음.

뚝뚝.

돌, 나무 등이 부서져 한가득 쌓여 있는 천장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찬영이 보고 있던 곳은 아니었다.

‘이 근처다.’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기자, 고여 있는 웅덩이 위에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는 물이 보였다.

아니, 처음엔 물인 줄 알았다. 그러나 가까이 접근하자 비릿한 냄새와 함께 확연히 알 수 있었다.

“피?”

반사적으로 중얼거린 찬영이 피가 떨어지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여기도 상황은 동일하다. 붕괴 되서 무너진 망루 자재들이 한가득 쌓여 위를 메우고 있다.

‘위로 올라가야 해.’

이 피가 어디서 흐르는 건지 알아봐야 했다. 찬영은 비릿한 냄새가 안내하는 데로 따라갔다. 자칫 큰 균열을 줬다간 망루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어서 신중히 움직였다.

낭떠러지 위를 오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덜컹!

자재와 자재 사이에 걸쳐 있던 돌을 가볍게 밟고 반대편에 보이는 기둥 일부를 잡았다.

그 순간.

쿠쿵!

서늘한 느낌과 함께 방금 밟았던 돌이 걸쳐 있던 자재와 함께 우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 연결되어 있는 모든 자재들의 균열이 일어났다.

‘이런!’

이미 붕괴되어 있던 망루다.

남은 붕괴 역시 순식간일 것이다.

무너지는 것들에 깔리기 전에 최상층을 밟아야 한다.

파밧!

진공나찰보를 펼치며 몸을 날린 찬영의 앞으로 돌과 자재가 한꺼번에 낙하했다.

쿠쿵! 타닥!

이어서 허리를 틀었다.

쐐앵!

낙하하는 돌이 코 끝으로 스쳐 지나가는 게 보였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삽시간에 주변이 어두워졌다.

‘위!’

아까 떨어진 돌보다 세 배나 큰 돌이 자재들을 부수며 떨어졌다.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슬롯 개방.’

‘프리징 스킨.’

눈앞에 푸른빛이 스쳐 지나갔다. 이어서 거미줄처럼 빈틈없이 메워진 얼음 그물망 같은 게 전신에 씌워진 것이다. 거기에 추가된 디푸스의 방어력으로 인해.

쾅!

낙하하는 돌 따위에 더는 눈도 깜빡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오히려 찬영과 부딪친 자재와 돌들이 잔 부스러기가 되어 주위에 우수수 떨어졌다.

쾅! 쾅! 쾅!

찬영이 붕괴되는 망루를 뚫고 솟아올랐다. 시야 한편에 시신들이 돌과 함께 떨어지는 게 보였다.

고여 있던 피 웅덩이의 원인이었을 거다.

하지만 추락하는 시신이 너무 많아 세기가 힘들 지경이다.

‘한 사람이라도 잡아야 해!’

마음 같아선 모두 거둬들여 묻어주고 싶으나 그럴 만한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추락하는 시신들 중 하나의 시신을 낚아채 위로 몸을 날렸다.

부웅!

‘보인다!’

눈앞을 가리던 것들을 지나치자마자 하늘이 보였다.

쿠쿠쿵!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망루가 보였다, 그리고 붕괴 소리를 듣고 놀라 동굴 입구에서 뛰쳐나오고 있는 이규복과 김지수도.

잠깐 허공에 떠 있는 찰나 간.

예상치 못하게 발견하게 된 시신을 힐끗 쳐다보았다.

‘내려가야겠지.’

이미 죽은 그와 함께.

* * *

타탁.

착지한 후 찬영이 시신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직후 찬영은 괜찮냐는 걱정을 받았다.

그 뒤, 이규복은 가볍게 인상을 썼고 김지수는…….

“우에엑…….”

스펙은 완벽해도 아직 이런 건 예행연습이 안 되어 있었는지, 시체의 냄새를 맡자마자 멀리 떨어진 곳으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찬영은 이미 지독한 여러 냄새엔 충분히 적응되어 있는지라 무덤덤하게 시신을 내려다봤다.

‘신성 왕국 소속의 병사야.’

죽어 있는 시신은 남자. 그리고 신성 왕국의 마크가 그려진 전투복 복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알폰 지방 병사들과 모든 복장이 동일하나, 다른 게 있다면…….

‘마크.’

찬영이 알기로 이 마크는 보통 영지를 수호하는 가문의 마크가 새겨지는 걸로 알고 있다.

‘영주님에게 직접 보여 드려야겠어.’

그러지 않고서는 달리 이 마크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규복도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영주님께 이 마크를 보여 드려야겠네요. 그런데 시신은 한 구였나요?”

“더 있었지만…….”

붕괴가 너무 빨랐다.

남은 시신은 산더미같이 쌓인 저 사이에서 찾아야 한다.

붕괴를 목격한 이규복도 짐작한다는 양 고개를 끄덕인 후 시신 위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이규복이 면밀히 시신을 살피다 덧붙였다.

“크게 부패된 것 같지 않네요.”

“예,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아요.”

검시 전문가가 아니어도 외관상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럼 최근에 일어난 일일까요?”

이규복이 깜짝 놀라 물었다.

찬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대신 대륙이 멸망했던 그 즈음에서 시간이 멈췄던 게 아닌가 싶네요.”

“시드 대륙도 알폰 지방처럼 시간이 멈추었다가 다시 흐르기 시작한 모양이군요.”

“예, 그럴 가능성이 높죠.”

그럼 남은 질문은 하나다. 신성왕국의 병사로 보이는 이 남자가 망루에 죽은 채로 있어야 했던 이유가 뭘까?

“몬스터 때문일까요?”

이규복이 물었다.

“그럴 가능성도 있죠.”

찬영도 그 부분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게 가장 크다.

혹은…….

“뉴 빌드의 소행일 가능성도 있죠.”

“흐음……. 어?”

혹시나 싶어 손으로 시신의 곳곳을 더듬던 이규복이 웃옷에서 피 묻은 종이를 꺼냈다.

의사소통 등의 해결을 위해 고안된 마법 장비를 통해 글귀를 읽어가는 이규복. 그의 눈빛이 글을 읽을수록 점점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찬영은 조용히 기다렸다.

한참 글을 읽어가던 이규복이 고이 접혀 있던 종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예상대로였어요. 이분은 신성 왕국에 소속된 병사 분이 맞는 것 같네요.”

“망루는?”

“영지가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로일 영주가 세워 놓은 대피소였던 모양이에요. 이분은 대피소를 지키는 분이었고 몬스터의 침략을 받았어요.”

“그랬군요…….”

찬영은 이규복의 말을 통해 그가 죽은 이유와 망루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됐다.

멸망 직전의 상황에다 몰려드는 몬스터 떼까지 직면한 그때, 베이콥 영주가 로일 영주가 세워 놓은 망루까지 고려할 틈은 없었을 거다.

하지만 모든 걸 알아냈는데도 이규복의 눈빛이 여간 무거운 게 아니다. 무슨 이유일까?

“하지만 여기엔, 그런 내용만 있는 게 아니에요.”

이규복이 직접 읽어보라며 편지를 건넸다.

탁.

편지를 받은 찬영은 빠르게 글귀를 읽었다. 처음부터 중반까지는 이규복에게 들은 내용 그대로였다.

그러나 점차 내용이 진행될수록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안 좋네요.”

영주에게 어서 알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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