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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13화 (113/248)

# 113

#113.

행렬은 신성 왕국 깃발을 흔드는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북동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빅토르 지방.

해안과 인접한 빅토르 지방에서 배를 빌려 수도로 갈 생각이었다. 물길을 빌리면 수도로 훨씬 빨리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 * *

진군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특히 말이 아닌 마나 탱크를 원동력으로 움직이는 마차의 공이 컸다.

“보면 볼수록 놀랍네요.”

찬영 옆에서 말을 몰고 있는 이규복이 말했다. 힐끗 고개를 돌린 찬영이 대답했다.

“그러게요.”

당연했다.

봉고차 다섯 대 정도를 합쳐놓은 규모의 마차가 스스로 움직이는 걸 보고 있자니.

기차의 한 량을 떼 놓은 거 같다.

‘대단하네.’

이쯤 되면 말이 필요 없으니 마차馬車가 아니라 마차魔車다.

이규복이 다시 말했다.

“마법만으로도 이렇게 발전한 시대인데 여기에 지구의 과학력이 꾸준히 도입된다면…….”

“솔직히 아직은 상상이 안 가네요.”

마법과 과학의 기술력이 결집된 초고층의 빌딩을 상상해 봤다. 고도로 발전된 시대겠지만 아직 쉽게 상상하기도 힘들다.

두 세계는 이제 막 서로가 이룩한 문명을 교류하기 시작한 까닭이다.

“제 세대는 지나고 나야 가능할 것 같네요.”

찬영이 말하자 이규복이 어깨를 으쓱였다.

“모르죠, 더 빨리 찾아올지도.”

“그럴 수도 있겠죠.”

시대는 참 빠르게 바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몬스터라는 존재가 나타날 줄 누가 알았을까? 누가 마법이나 마나에 대해 공부하고 있을 줄 예상했을까?

변화는 늘 예상을 벗어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걸 알기에 앞으로의 일이 더욱 걱정된다.

앞으로의 변화를 일궈 내는 건.

‘나를 포함해 여기 모인 사람들의 행동에 달려 있어.’

찬영은 뒤에 있는 마흔 명 가량의 W.A.L.(World Awaken Lead)관계자들을 돌아봤다.

이규복에 의하면 W.A.L.은 일종의 의견 총괄 및 조정 단체다.

수많은 세계의 정부, 펌 등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그들은, 시드 대륙의 고위층과 협약을 맺는 교각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설립됐다.

그렇기에 저들의 역할은 첫 단추를 꿰게 되는 사절단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수백의 국가 및 대형 펌의 대표자들이 모여 결정된 협약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저들은 요구 조건에 관련된 조항을 상황에 따라 일부 변경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받았다. 각국에서 투입된 최고의 엘리트 각성자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다.

즉, 일전에 이규복이 얘기했던 협약 관련 실무자들은 엄밀히 말하면 V.O.의 의견까지 수용해 조정한 W.A.L.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최대한 도와 봐야겠지.’

가능하다면 두 세계에 도움이 되고 싶다.

물론 각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이 커다란 거래는 좋은 결실을 맺을 거다.

하지만 그 부분은…….

‘내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러면 어떻게 그들의 합의를 도울 수 있을까?

찬영은 그게 가장 고민스러웠다.

그때였다.

“찬영 씨?”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규복의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예?”

“그새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음…….”

찬영은 방금 했던 고민을 들려줬다.

이규복이 말고삐를 고쳐 쥐며 대답했다.

“어려운 문제네요.”

“예, 그렇게 되어 버렸죠, 언젠가부터.”

그도 그럴 게 이제 자신은 식당에 일하던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다.

찬영의 다음 행보를 지구의 수많은 펌과 정부가 주목하게 되었다. 거기다가 찬영은 시드 대륙과 르리에에선 갓피스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그로 인해 많은 걸 얻었고, 얻은 만큼 책임을 져야 할 위치가 됐다. 그리고 그만한 책임을 지기 위해, 스스로의 삶을 지키기 위해 찬영은 사력을 다하고 있다.

‘내가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어떻게 노력할지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하나 이 사절단의 행보는 자신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제가 뭘 해야 할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제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에요.”

“맞아요.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세계의 균형 조정이 달려 있죠. 그래서 저분들이 함께 왔죠.”

이규복이 W.A.L.의 일원들을 쳐다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찬영 씨.”

“예.”

“우린 모두 서로 다른 삶을 살아요. 모습도 생각도 다르죠. 그래서 잘하는 것도 제각각이에요.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린 저분들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죠.”

가만히 듣고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냥 지켜만 보라는 얘기로 들린다.

하지만 찬영은 알고 있다. 이규복이 다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지금과 같은 말의 운을 뗐다는 것을.

마침, 이규복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 말은 반대로 저분들은 찬영 씨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거죠. 찬영 씨는 갓피스잖아요. 저분들도 갓피스인가요?”

“아뇨, 아니죠.”

“그럼, 갓피스가 수도에서 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전 갓피스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찬영 씨는 잘 아시겠죠.”

이규복이 말을 마쳤을 때, 찬영은 그가 무슨 의미로 이런 이야기를 꺼냈는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방관하라는 게 아니야.’

돕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저 역할을 혼란스러워 하는 자신에게 이규복은 이렇게 조언해 주고 있는 거다.

-당신은 당신대로 하면 됩니다. 혼란스러워 하지 마세요.

‘맞아.’

그의 말대로 애초에 고민 할 필요도 없었다.

부담에 짓눌려 눈앞이 흐릿해진 거 같다. 스스로의 삶을 지키는 길이든, 수많은 이해 조정을 돕는 길이든,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는 거다. 그게 내가 저들을 돕는 길이 되겠지.’

단순한 걸 복잡하게 생각하려고 했으니, 제대로 된 답이 안 나오는 게 당연했다.

그러니 이규복의 말처럼 하면 되는 거다.

‘갓피스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중 제일 먼저 생각난 건 앞으로 수도에서 받게 될 주목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였다.

‘나에 대한 왕국 사람들의 호기심을 호감으로 돌리게 된다면……?’

그리 되면 앞으로 지구와 신성왕국 사이의 협약도 훨씬 원만하게 성사될 것이다.

‘그 부분은 제이나와 얘기를 해 봐야겠어.’

머릿속이 정리되니 찬영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이를 본 이규복도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답을 찾는 모양이네.’

그라면 금방 자기 갈 길을 찾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워낙 적응이 빠르고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는 능력이 뛰어난 남자다.

이번에도 그럴 거다.

‘그나저나…….’

쥐죽은 듯 조용히 있는 김지수를 돌아봤다.

“……아이고.”

새파랗게 질린 김지수가 말 위에서 멀미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마나고 뭐고, 멀미에는 소용없나 보다.

“멀미약이라도 드릴까요?”

이규복이 말을 몰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 * *

그 이후에도 수도로 향하는 사절단 행렬은 꽤나 평화로웠다.

알폰 지방을 벗어나기 전까진 쭉 그럴 거 같았다.

그도 그럴 게 뉴 빌드 잔당은 물론이거니와, 각성자, 베이콥 영지 소속의 수많은 병력들이 발 벗고 나선 덕분에 모든 던젼과 몬스터가 정리된 지 오래였던 거다.

알폰 지방의 남은 숙제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재건뿐이었다.

그새 밤이 찾아왔다.

영주는 계획해 둔 대로 북동쪽에 자리 잡은 와트 마을로 향했다. 세 시간 정도 눈을 붙인 뒤 이동하자는 계획이었다.

영주는 와트 마을에 자리 잡은 영주민들의 자발적인 도움을 받았고, 그 덕에 모든 병력은 따뜻한 잠자리를 지원받았다.

그 틈에 찬영도 이규복의 조언에 따라 제이나를 찾아갔다. 3개 소대를 이끄는 바쁜 그녀. 이런 시간에 잠깐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또 하루 종일 대화를 할 만한 타이밍은 찾기 힘들 것 같았다.

끼익!

마법 병단에게 배정된 여관으로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기사단 혹은 병사들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독서실 같네.’

대부분 방에 들어가 있는 건 둘째 치고, 몇몇은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모두 남에게는 관심 없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분위기.

그때, 자리에서 일어나던 한 마법사의 눈이 여관 내부로 들어온 찬영과 마주쳤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단주님을 찾으시는지요?”

“예, 그건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아셨습니까?”

“두 분께서 단독으로 많은 작전을 진행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그런 게 아닌가 하고 지레짐작해 봤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찬영은 내심 안도했다.

괜히 자신과 제이나의 관계가 소문이 난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딱히 소문이 나도, 상관없긴 했지만 그리 됐을 때 찾아올 낯 뜨거움은 부정하지 못하겠다. 아무튼 먼저 말을 걸어 준 마법사 덕분에 쉽게 제이나의 방을 물을 수 있었다.

“어느 방으로 가면 됩니까?”

“직접,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볼일 보세요.”

“예, 알겠습니다.”

두 번 물어보지 않고 딱 잘라 대답하는 마법사를 보며 찬영은 혀를 내둘렀다. 단호한 성품은 제이나나 제이나의 소대원들이나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사 층 오른쪽 끝 방입니다.”

그사이 마법사가 제이나의 방을 무뚝뚝하게 알려 주다.

“네, 고맙습니다.”

곧 자리를 벗어난 찬영.

마침내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제껏 각자 책을 보거나 차를 마시던 마법사들이 그와 대화를 나눈 마법사들에게 우르르 몰렸다.

“와…… 웃음 참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저도 책이 눈에 안 들어오던데요?”

“아, 언제까지 모른 척 해야 합니까?”

투덜거리는 동료들을 보며 부단주가 깊게 한숨 쉬었다.

그 뒤 찬영이 사라진 계단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모른 척 하는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네.”

둘 사이가 공공연히 퍼지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건 제이나와 찬영밖에 없었다.

* * *

“들어오셔도 돼요. 찬영 씨.”

찬영의 노크와 함께 제이나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찬영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곧 문을 열고 들어간 찬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크 소리만으로 저인지 알고 있었어요?”

“네.”

“어떻게요?”

“이젠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알거든요. 툴챠가 성장한 이후로 전보다 모든 감각이 더 날카로워진 거 같아요.”

“그래요?”

“네.”

“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에요.”

찬영은 그녀의 성장이 툴챠와 관련이 있다는 것에 한 표 던졌다.

그도 그런 게 툴챠는 그녀만의 전용 장비다. 장비는 갓피스의 성장에 같은 길을 걸어간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제이나도 찬영의 말에 동의하며 한참, 갓피스의 장비에 대해 대화하던 두 사람.

그 덕에 제이나는 한참이 지나고서야 찬영이 밤중에 찾아온 이유를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조언을 좀 들을까 했어요.”

제이나가 눈을 빛냈다.

“뭐든 말해 봐요.”

찬영의 질문은 단순했다.

“수도에 있는 분들에게 호감을 얻고 싶습니다.”

“네?”

조금 놀랐던 제이나가 갑자기 웃음을 작게 터트렸다. 질문이 평소 찬영이 하지 않을 법 했기 때문이다. 눈물까지 맺혔던 그녀가 심호흡을 하며 웃음을 힘겹게 멈췄다.

“후, 죄송해요. 너무 의외라…….”

그 모습에 찬영이 덩달아 웃었다.

“그런가요? 그것도 그러네요. 다짜고짜 호감을 얻고 싶다고 물어봤으니까. 그런데 정말이에요. 신성 왕국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호감을 얻을 수 있죠?”

“협약 때문인가요?”

조금씩 웃음기를 없앤 그녀가 찬영이 뭘 위해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 요지를 금방 파악했다.

“네. 맞아요.”

찬영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녀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다.

갓피스로서 명분이 아닌 호감을 원한다?

“그런데 왜 이런 생각을 하시게 됐나요?”

“수많은 회의와 합의를 위한 토론, 그리고 당면한 정책적인 문제들을 고민하는 건 제가 잘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원만한 합의가 될 분위기를 조성하시겠단 말씀이죠?”

“예.”

“그럼……. 신뢰를 쌓아 가는 건 어떨까요?”

“신뢰요?”

그녀는 평소 그녀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기상천외한 얘기를 전달해 줬다. 찬영이 당황할 만큼.

한참 그녀의 얘기를 듣고 난 찬영이 잠깐 생각에 잠기다 입을 열었다.

“정말, 이런 게 통할까요?”

“글쎄요. 우린 아무것도 단언할 수 없죠. 하지만…….”

제이나가 미소 지었다.

“제가 도울게요. 그건 확실할 수 있으니까.”

찬영은 그녀의 말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이런 게 내조인 건가?

괜히, 웃음이 났다.

그렇게 사절단으로서의 첫날도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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