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자동보상-112화 (112/248)

# 112

#112.

‘단 두 번의 시연으로 나이프 샷이 된다고?’

일명 ‘나이프 샷’, 이를 펼치기 위해선 활시위를 놓는 타이밍과 놓기 직전의 자세가 완벽히 맞아떨어져야 한다.

‘분명 나이프 샷이다!’

로버트는 과녁 바깥쪽에 박혀 있는 화살을 보며 확신했다.

물론 힘의 조절, 풍향 고려 등 부족한 게 많은 실력이다.

하지만 생전 한 번도 활을 잡아 본 적 없는 초급자가 방금, 선보인 샷을 구사한다는 건…….

‘들어 본 적도 없다.’

선천적으로 활에 뛰어나다는 어린 엘프조차도 한 달은 꼬박 필요할 거다.

한데 방금 전의 샷은 찬영이 처음 선보인 샷과는 확연히 달랐다.

‘화살이 날아가는 궤적의 각을 줄이고 동작과 호흡을 거기에 맞췄어.’

이를 통해 낙하하는 화살은 표적지로 향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시간이 줄어든 만큼 공기와 맞닿는 마찰이 줄어들었다. 쉽게 말해…….

‘파괴력이 늘어나는 거지.’

찬영이 이를 정확히 알고 샷을 쏜 건지 아닌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아무리 궁술에 재능 있는 인물도 이런 샷이 가능하려면 적어도 보름은 걸린다는 것이다.

이런 게 쫓아갈 수 없는 갓피스의 역량이라는 건가?

글쎄. 아직은 확신하기 힘들다.

“갓피스님.”

“예.”

“활을 잡은 게 정말 처음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직접 보시지 않았습니까?”

찬영은 손가락으로 과녁 바깥쪽에 겨우 적중한 화살을 가리켰다. 방금 전 보여 준 로버트의 샷과 비교해 봐도 자신의 샷은 형편없다.

역시 연습뿐일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이런 허접한 샷들이면 충분히 대답이 되었을 거다.

그럼에도 똑같은 질문을 반복 하는 게 의아하다.

그 와중에 로버트가 말했다.

“방금 전 그 샷이 믿기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자, 이걸로 다시 한 번 쏴 보시겠습니까?”

로버트는 찬영이 나호스의 활이 아닌 자신의 활을 들고 화살을 쏴보기를 권했다.

“아, 네.”

지잉!

찬영도 두말하지 않고 그의 활을 들어 올렸다. 로버트의 의중이 궁금하긴 했으나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쏘고 난 후에 알게 되겠지.’

뭔가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일 거라 짐작한 찬영은 다시금 호흡을 유지하며 방금 전과 동일한 템포로 시위를 당겼다.

쐐액!

다시 날아간 화살.

지켜보던 로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찬영은 나이프 샷을 선보였다.

방금 전의 그 나이프 샷은 장비의 덕을 본 것도, 그에게 찾아온 우연도 아니다.

몸이 반사적으로 나이프 샷을 쏘기 위해 반응한 거다. 타고난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시…….”

로버트가 활을 거둔 찬영에게 헛웃음을 흘렸다.

“처음 활을 잡고 나이프 샷을 구사하는 건 웬만큼 재능 있는 궁수도 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 방금 제가 한 게?”

“예. 나이프 샷을 정확히 구사하셨습니다. 혹시 장비 덕분인가 싶어 시험해 봤으나 결과는 동일하군요. 솔직한 말로 직접 보고도 믿기 힘들 지경입니다.”

“아…….”

찬영은 그제야 깨달았다. 로버트가 방금 다시 한 번 활을 쏘라고 한 이유를. 확인해 볼 작정이었던 거다.

‘나를.’

들고 있던 로버트의 활을 내려다봤다.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굉장히 놀랍다.

‘내게 재능이 있다?’

그가 말하는 재능은 아마 그간 쌓아 온 스텟이나 이네이트 덕분일 거다. 그런 모든 게 궁술이라는 분야의 영향을 준 거겠지.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주할 순 없다. 오히려 직접 해 보고 나니 더욱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특히 그가 말하는 나이프 샷.

‘스스로 터득하고 사용해야 해.’

지금처럼 썼는지 안 썼는지도 인지하지 못할 수준을 원하지 않는다. 그 이상을 원한다. 찬영은 쥐고 있던 활을 꽉 고쳐 쥐었다.

“다시 쏴 보겠습니다.”

“그러시죠.”

로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는 감탄했다.

보통 재능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면 방금 보인 샷 이상의 샷을 배우길 원한다. 쉽게 펼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찬영은 과욕을 부리지 않고 자기가 하고 있는 샷부터 갈고 닦길 원하고 있었다.

좀 더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찬영에게서 느껴졌다.

‘대단한 사람이군.’

남들과 비교될 수 없는 수준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도 자만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범한 이들보다 더욱 꾸준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려 한다.

로버트는 영주가 왜 그를 그토록 아끼는지 이제야 새삼 피부에 와 닿았다.

‘단순히 그가 갓피스로서 강한 무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었어. 이제야 알겠다.’

그는 현명하다. 상상한 것 이상으로.

* * *

그 날부터 찬영과 로버트의 일대일 개인 교습은 급물살을 탔다.

로버트는 화살 하나하나에 혼신을 담는 찬영을 보며 열성을 다해 가르쳤다. 찬영도 그의 가르침에 보답하기 위해 그의 가르침을 묵묵히 따라갔다.

그 덕에 찬영은 겨우 이틀 만에 나이프 샷의 자세와 호흡을 완벽히 구사하게 되었고, 풍향에 따라 각도를 어떻게 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체득할 수 있었다.

* * *

왕국 수도로 떠나게 된 D-DAY.

목욕재계를 끝낸 찬영은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뻐근하네.’

단 이틀인데도 얼마나 많은 화살을 쐈는지 모르겠다. 높은 근력 수치가 되었는데도 팔이 뻐근해질 만큼 정말 사력을 다해 궁술을 배웠다. 그 덕분인지 겨우 이틀 만인데도 로버트는 이렇게 말해 줬다.

- 인정하긴 힘들지만 이제 나이프 샷은 저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단순히 그의 겸양이거나 아님 쉬지 않고 노력한 시간들을 격려해 주는 거라고 본다.

하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네.’

맹훈련을 인정받은 것 같아 무척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실제 훈련 성과 또한 눈에 띄게 성장한 터라 더욱 그렇다. 목표했던 것 이상으로 나이프 샷을 쏘는 게 익숙해졌을 뿐 아니라, 풍향과 풍속을 계산해 표적지를 맞힐 줄도  알게 되었다.

고정 표적지만이 아닌 변칙적으로 움직이는 이동 표적지까지 맞힐 정도가 되었으니, 적어도 이제 자신의 샷은 눈 먼 화살이 되진 않을 것 같다.

‘이것까지 있다면 더더욱 그렇겠지.’

찬영은 그저께 3회 차 10회 보상받기로 획득한 가치 ‘4,500’의 물건을 손바닥 위에 올려놨다.

-브뤼셀의 렌즈

-가치 : 4,500

-설명 : 브뤼셀의 렌즈는 반경 15m의 몬스터 와 마정석을 감지합니다.

효과 A : 브뤼셀의 낙인(마나 150 소모, 사용 시 반경 15m 안에 있는 표적 1개가 반경을 벗어나기 전까지 위치 확인이 가능, 중첩 가능)

지체 없이 손바닥 위에 있던 반투명한 얇은 막을 동공 위에 덮어씌웠다.

두 개의 막이 각각 동공 위에 내려앉았다. 마치 안경집에 파는 렌즈와 동일한 형태다.

그러나 확실한 차이가 있다. 어떤 이물감도 없다는 거다.

‘착용한 것도 깜빡 잊어버리겠어.’

놀라운 착용감이다. 첫 획득 후 이번이 두 번째 착용인데도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 말고 특별할 건 없이 저번과 동일하다. 몬스터나 마정석이 등장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렌즈의 변화가 생기려나 보다.

‘하지만 효율성을 의심하진 않아.’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머릿속에 브뤼셀의 낙인을 어떻게 사용할지 각인 된 것만 봐도 그렇지.’

브뤼셀의 낙인은 하나의 마법 주문과 같다. 그러니 효과 A 역시 몬스터나 마정석의 등장과 함께 빛을 발할 거다.

‘확실히, 표적들의 위치 파악이 손쉬워지겠어.’

적어도 반경 15m 안의 신의 눈을 가지게 된 셈.

아무리 봐도 4,500 가치 이상의 물건이다.

‘여기에 지속적으로 이뤄 낸 성장에 의해 더 예민해진 감각들까지 더해진다면……!’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반응 속도를 통해 매 전투 시마다 더 빠른 대응이 가능해진다. 찬영의 노력이 다방면에서 소기의 성과를 이뤄 낸 것이다.

그렇게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니 그새 시간이 꽤나 지났다.

‘슬슬, 준비해야겠어.’

동이 터오고 있었다. 수도로 향하는 마차들이 영주성에 집결하기 시작했을 거다.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 찬영은 편안한 복장 위에 다이아 박스, 획득 업적 보상으로 부여받은 ‘오렌의 디푸스’를 소환했다.

얼핏 보기에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색 바랜 은색 경갑주. 하지만 평범한 갑옷과는 전혀 다르다.

-소유자가 인식되었습니다.

그래, 디푸스는 주인을 알아본다.

둥둥 떠 있는 디푸스에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자 실이라도 연결된 듯 서서히 다가오는 디푸스.

-소유자의 체형에 맞춰집니다.

눈앞에 나타난 문구와 함께 곧 쇄골부터 어깨 위까지 덮인 견갑이 푸르스름한 실선을 일으켰다.

아니, 실선이 아니다. 체형에 맞춰 디푸스의 남은 부분이 유동적으로 변형되어 겉에 씌워지는 거다.

힐끗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깨 위를 중심으로 목과 가슴, 그리고 등이 마치 은색 비늘처럼 촘촘히 덮여져 있는 게 보인다. 하지만 놀라운 건.

‘거의 무게가 느껴지질 않아.’

바로 그거다.

이 때문에 디푸스를 획득했을 때부터 무조건 주력 방어구로 착용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럴 만했다.

디푸스가 가진 효과들을 보면, 충격 50% 분산에 낙하 시 무게 0 고정.

더불어 민첩성 20% 상승이라는 효과들을 갖고 있다.

몸에 충격이 가하는 일이 생길 시 상대의 위력을 50%나 분산시켜 받아 내게 해 주는 거다.

특히 민첩성과 함께 붙어 있는 낙하 시 무게 0으로의 고정은 갑옷을 입고 이동 계열 이네이트를 발동했을 때 짊어지게 될 갑옷 무게를 완벽히 지워버린 거나 다름없다.

‘당장 내게는 최고의 갑옷이야.’

그건 장담한다. 특히 이 갑옷 위에 가치 1만 이상의 업적 달성으로 획득하게 된 5서클 마법.

‘프리징 스킨.’

그 주문을 덧입히면.

‘빙결 장막이 디푸스 위에 덮이겠지.’

그리되면 방어력 및 빙결 관련 저항력이 상승하는 건 당연한 일일 거다.

그뿐이 아니다.

‘마법뿐 아니라 신성 마법도 고려해 봐야겠어.’

글라투와의 전투를 겪으며 확실히 느낀 건 공격 패턴만 다양해선 안 된다는 거다. 공수의 균형이 골고루 맞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획득한 디푸스와 빙결 장막 마법은 좀 더 다양한 길을 제시해 줄 것 같다.

‘마음에 든단 말이지.’

찬영은 거울에 비친 갑옷을 주의 깊게 보다가 곧, 시선을 옮겼다. 이젠 정말 가야 할 시간이다.

* * *

영주성의 정문.

부웅!

사방에서 뿔피리가 울려 퍼졌다.

도열해 있는 기사와 정예 병사, 그리고 결연한 눈빛의 마법사들. 대형 마차 열 대를 이끌기 위해 도열한 도합 사백의 정병은 출정 직전 영주의 연설을 듣기 위해 잔뜩 긴장된 기색으로 도열해 있었다.

그 대열의 선두, 가운데 자리 잡은 단상에서 베이콥 영주가 수행원들을 이끌며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완전 무장을 갖춘 베이콥 영주는 평소 찬영에게 보이는 털털한 모습과는 달리, 엄중하고 근엄한 눈빛이었다.

필립 베이콥이 곁에 따라오는 제이나 경에게 물었다.

“마법 병단은?”

“세 개 소대를 소집했습니다.”

“기사단은?”

영주가 이번엔 기사단의 단장, 크루거를 쳐다봤다. 키가 영주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크루거 경이 입을 열었다.

“네 개 대대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차질은?”

크루거와 제이나가 동시에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영주의 눈빛이 수석 행정관인 말티스에게 향했다.

그가 맡은 건 정예 병력이 챙겨 갈 보급품과 마차 행렬에 필요한 사전준비였다.

“말티스.”

“예, 영주님.”

“보고된 대로겠지.”

이미 말티스 수석 행정관에게 진즉 보고를 전해 받은 영주의 말에 말티스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전력을 다해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영주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단상을 향해 올라섰다.

그가 계단을 한 걸음씩 올라서기 시작하자, 모든 병사, 기사, 마법사가 발을 굴렀다.

쿵! 쿵!

수백에 이르는 장병들이 발을 구르기 시작하자 땅 위에 은은한 진동이 흘렀다. 이를 오연히 내려다보던 영주가 입을 뗐다.

“오래 기다렸다.”

그가 입을 열자마자 순식간에 멎어 버리는 발 구름.

고요해진 좌중을 바라보며 영주의 눈빛에 격동이 넘쳤다.

“나는 베이콥의 영주다. 하나, 그뿐이었다. 그대들 또한 그저 알폰 지방의 사람이었다. 그래, 그뿐이었다. 하지만 내일도 그러길 원하는가?”

“아닙니다!”

베이콥이 원하던 대답이었다.

그의 연설은 길지 않았다. 연설은 그의 성격처럼 간단명료하며 확실히 모두에게 각인 됐다.

“나 역시 그렇다. 증명할 때가 됐다. 그대들과 내가 속한 곳이…….”

스릉!

검을 뽑은 영주, 필립의 시선이 도열한 정병을 지나쳐 그 뒤에 자리 잡은 찬영을 향해 슬쩍 미소 지었다.

“신성 왕국이라는 것을!”

와아아!

쏟아지는 우렁찬 고함 속에 찬영의 걸음도 도열해 있는 병력 틈으로 다가갔다. 수도를 향한 대장정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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