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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09화 (109/248)

# 109

#109.

“이익!”

당황한 녀석 중 한 명이 쥐고 있던 핼버드를 흔들었다.

놈은 3m에 이르는 핼버드로 콱 옥죄고 있는 신성력 쇠사슬을 끊으려 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될 리 없다.

2등급의 신성 마법이라 할지라도 6등급 신성 마법까지 구사할 만큼 신성력이 진일보한 찬영이다. 가치 측정 ‘6,200’대에 불과한 그들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

뜻대로 되지 않자 놈이 황급히 동료를 쳐다봤다.

“당장 끊으라고!”

“닥쳐! 하고 있으니까!”

옆에 서서 핼버드 만큼 기다란 3m의 거대 낫을 쥔 남자 역시, 끙끙 앓고 있었다.

‘안 돼!’

돌이라도 된 양 꿈쩍도 않는다.

‘견디는 게 전부야!’

놈들은 끌려가지 않으려 단단히 힘을 줬다.

찬영 역시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다 쥐고 있던 쇠사슬을 순간 가볍게 풀었다.

모든 힘을 쏟아 부으며 버티던 놈들이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게 보였다.

‘지금이다.’

갑작스레 힘의 불균형이 찾아오면 균형을 유지하던 시소게임이 끝나기 마련. 균형이 흐트러진 그들의 하체가 들어왔다.

한 때 배웠던 시스테마를 통해 익힌 것들이다. 놈들이 다시 균형을 찾기 전에 태클에 들어갔다.

파밧!

한 발로 좌측 흑인 남자의 무릎을 걷어찬 뒤 고개 숙인 남자의 목을 한 팔로 감싸 안았다.

촤륵!

그 뒤 당황해하는 우측 백인 남자의 목을 향해 신성력 사슬을 날렸다.

쿠당탕!

숨통이 막힌 놈들이 쥐고 있던 무기를 놓치며 발버둥 쳤다. 당장은 이네이트를 쓸 생각도 못할 거다. 서서히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려 가는 눈동자들.

마음 같아서는…….

‘목이라도 콱 꺾어 버리고 싶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시드 대륙에 머물면서 누군가를 죽이고 난 후의 감정을 겪을 만큼 겪어 본 직후이기에 더욱 그랬다.

살인은 정말 최후의 선택이다. 그들의 눈이 반쯤 뒤집어질 때쯤. 찬영이 그들에게서 손을 뗐다.

풀썩!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는 두 서양인.

게거품을 물고 있는 놈들에게선 김지수를 대놓고 성희롱하던 의기양양함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그사이 이규복이 짐승으로 돌변했던 금발 남자에게서 떨어져 찬영에게 다가왔다.

“안 죽었더라고요. 운 좋게.”

서늘한 이규복의 시선이 찬영 곁에 누워 있는 서양인들에게 향했다.

“여기도 그러네요. 근데…….”

이규복이 찬영을 보며 감탄했다. 블링크를 본 탓이다.

“그거 뭡니까? 분명히 여기 서 계셨었는데.”

“마법이요.”

“예?”

당황하는 이규복.

솔직히 찬영의 실력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는 건 예상했지만, 마법까지 손을 댔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거기다 아까 그 쇠사슬 같은 건 그건…….

“마나가 안 느껴졌는데?”

신성력을 말했다는 걸 알기에 찬영은 잠시 이규복을 쳐다보다 말했다.

여긴 지구. 굳이 숨길 필요는 없다.

“마나와 다른 힘이죠. 신관들이 사용하는 힘과 같은 거예요.”

“설마…….”

“네, 신성력이요.”

기어코 혀를 내두르는 이규복.

‘이 사람 이젠 신성력까지?’

괴물이 따로 없게 된 것 같다.

찬영은 경악하는 그를 보며 가볍게 미소 지은 뒤, 오른손에 착용하고 있는 반지를 힐끗 내려다봤다.

‘키란의 반지.’

슬롯이 10이나 추가되는 말도 안 되는 피지컬의 반지다.

그럴 만하다. 고생해서 획득한 다이아 10급 박스를 통해 획득한 장비니까.

제이나에 의하면 4서클 마법사는 4개, 5서클 마법사 6개의 슬롯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자신은 이제 이것으로…….

‘열네 개의 슬롯을 사용할 수 있게 됐지.’

한 번 써보니 얼마나 어마어마한 보상을 받은 건지 알 것 같다. 블링크만 열네 번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니까.

특히 이것으로 인해 받게 된 업적 보상은 정말 지금 생각해도 솜털이 곤두서는 결과였다.

하지만 이규복이 다시 말을 걸어온 덕분에 그때의 일을 계속 떠올리진 못했다.

“어쨌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됐네요.”

“네, 굳이 복잡해질 건 없죠.”

찬영의 대답에 이규복이 고개를 까딱였다.

“잘하셨어요. 아마 저들 둘 모두 살인미수에 준하는 법적 조치를 받을 겁니다. 블루 게이트 이후 각성자들에게 대대적으로 적용된 법적 조치가 굉장히 강화됐거든요.”

찬영은 그가 하자는 대로 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런 일을 잘 마무리 짓는 건 이규복이다.

남은 법적 조치야 그에게 맡기면 될 거다.

단,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누굴까요? 이 사람들…….”

기절시켜 버린 통에 놈들이 뭘 하는 것들인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아낼 여유 같은 게 없었다.

그 질문에 대답한 건 몸을 떨고 있는 김지수였다.

“추정뿐이긴 하지만 양찬영 각성자님의 명성을 노린 게 아닌가 합니다.”

첫 실전의 여파로 인한 건지 사시나무처럼 떠는 그녀를 보며 이규복이 어디선가 담요를 가져와 그녀의 어깨 위에 덮어 주었다.

“예, 우리도 아까 들어서 알고 있어요. 나머지는 제가 처리할게요. 저기 가서 조금 쉬어요.”

“아, 아닙니다.”

고개를 젓는 그녀에게 이규복이 나직이 말했다.

“말 들어요. 솔직히 말하면 죄책감도 좀 있으니까.”

“예?”

“지수 씨의 허락 없이 제 임의대로 테스트를 했거든요.”

이어진 이규복의 설명에 기분이 나쁠 법 했음에도 김지수는 오히려 그를 이해해 줬다.

“이해합니다. 제가 여러모로 부족하니까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지수 씨는 너무 완벽한 게 흠이라면 흠이거든요.”

“감사합니다.”

“칭찬 아니라 진짜입니다. 그렇죠?”

순식간에 시선이 쏠린 찬영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인정합니다.”

그럴 만도 한 게 그녀의 전투는 정말 인상 깊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의 두려움을 제어할 수 있다는 건 재능이다.

그건 힘의 우열과 관계가 없다. 약하든 강하든 실전을 여러 번 겪은 사람과 겪지 못한 사람의 여유 차이는 굉장히 크다. 힘의 우열마저 뒤집을 만큼.

하지만 그녀는 동등한 상대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버텨 냈다.

솔직히 말하면.

‘나보다 나았어.’

처음 서먼 홀에 진입했을 때의 자신보다 실전을 처음 겪는 그녀가 더 나았던 거 같다.

그의 칭찬에 김지수는 그제야 화사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럼, 합격인가요?”

찬영이 말했다.

“물론입니다. 이규복 대리님이 허락하신다면…….”

덩달아 이규복이 덧붙였다.

“그럼요, 합격 맞습니다. 단, 언제든 관두고 싶을 땐 말씀해 주세요. 버티기 힘들면 언제든 관두셔도 좋아요.”

“그럴 일 없을 거예요. 후우…….”

깊은 한숨과 함께 김지수가 풀썩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린 거다. 이규복이 쓰러지려는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얼른 쉬어야겠네요.”

“예.”

그제야 그녀가 웃었다.

* * *

상황은 금방 정리됐다. 아예 손님도 없었고 예전 레스토랑과 동일한 V.O. 소관의 카페라 합의 같은 게 필요 없었다.

현장 보존을 유지하기 위한 도움까지 받았다.

김지수를 자기 SUV에 쉬고 있으라며 차에 태워 놓은 이규복은, 현장에 돌아와 찬영에게 손수건으로 덮어 가져온 링온을 보여 줬다.

“CCTV와 함께 증거로 채택될 거라 직접 만지진 않았어요.”

“일전에 주셨던 우올로와 비슷하네요.”

“네, 이게 그 이전 버전이거든요.”

찬영의 눈동자에 이채가 흘렀다.

“가격은 적지 않다고 들었는데요?”

“예, 적지 않죠. 특히 이런 양아치들이 직접 구하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제품 바코드를 통해 어디 회사 출처인지부터 확인해 보려고요. 훔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규복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손수건에 감싸놓은 링온을 접어둔 뒤 주위를 둘러봤다.

“엉망이네요.”

“그러게요.”

대답하는 찬영의 시야 한 편에 널브러져 있는 세 명의 외국인들이 보였다. 눈을 뒤집고 있는 게, 웃기기까지 했다.

* * *

그 후 이번 사건을 정리하러 군과 V.O.에서 각자 사람이 나왔다. 보통 같으면 경찰이 나서야 할 일이나 각성자가 관련된 사안의 경우에는 군이 나선다.

V.O. 전담 연락책은 일전에 봤던 오 중령.

그는 군에서 꽤나 하는 일이 굉장히 많았다. 조만간 진급할 게 뻔해보였다.

아무튼 그는 CCTV를 모두 회수하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이 일은 세드나와 관련있는 각성자들의 소행이었습니다. 아, 물론 세드나의 소행이었던 건 아니고, 그들과 계약 되어 있던 각성자들의 소행이었던 모양입니다. 세드나 측에선 자기들의 입김이 조금도 없었다고 주장하네요.”

둘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링온만 봐도 대형 펌과 어떤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 놀라시는군요. 두 분 모두?”

오 중령이 묻자 이규복이 대답했다.

“예. 링온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죠.”

“하긴. 그나저나 세드나에서도 조금 곤란한 입장을 전하더군요. 지금 달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세드나라면 일전의 찬영과 청문회에서도 만났던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펌이다.

찬영도 한 번 일면식이 있는 그들이기에 더 자세한 건 묻지 않았다.

대신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 겁니까?”

그 질문에 오 중령이 담배 한 개비를 꺼내며 정중히 물었다.

“한 개비만 펴도 되겠습니까?”

둘 모두 고개를 끄덕이자, 오 중령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욕심 때문이죠. 사실 요즘 이런 일이 조금 많이 생겼습니다. 후우…….”

오 중령이 뭉게뭉게 피어오른 연기를 손으로 걷어내며 말을 이었다.

“거의 모든 케이스가 각성자가 가진 명성을 빼앗으려는 의도 하에 생깁니다. 명성을 빼앗고 나면 범죄를 저질러도 다른 펌에서 자신을 스카웃해 갈 거라는 자신감 때문이죠.”

“이상하네요. 소속 각성자가 귀찮은 일을 만들어 봐야 수습하는 건 펌이 될 텐데요?”

찬영이 묻자 오 중령이 맞장구쳤다.

“그러니 멍청한 생각인 겁니다. 범죄 이력이 있는 자는 대형 펌에선 거들떠보지도 않거든요.”

이규복은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던 건지 오 중령에게 나직이 물었다.

“그래서 각 정부에서도 대부분 강력한 제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 그런데도 안 통합니다. 이런 자들 대부분은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자들이거든요.”

이규복이 혀를 찼다.

그런 흐름이 생기는 건 좋지 못하다는 걸 아니까.

“쯧…….”

오 중령이 다 펴 가는 담배를 앞에 있는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했다.

“우리가 아는 매너란 것들이 통용되지 않는 사람들이란 거죠. 법이 통할 리 없습니다.”

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사태가 한 두 케이스가 아니라면,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변화하는 시대를 이용하려는 협잡꾼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는 거다.

“어디에 계시든, 앞으로는 찬영 씨의 명성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자들이 하나둘씩 생겨날 겁니다. 지구는 각 펌들이 교통정리를 하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시드 대륙은…….”

오 중령이 무슨 뜻으로 말끝을 흐리는지 찬영이 모를 리 없었다.

그가 하려 했던 얘기를 찬영이 마저 했다.

“신성 왕국의 관할이죠.”

그때부터는 신성 왕국의 법이 가해진다. 아마 시드 대륙에 파견된 각성자들 중에는 신성 왕국의 법을 무시하고 날뛰려는 자들도 있을 거다.

‘이번처럼.’

찬영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 * *

“결과에 만족하세요?”

이규복이 방금까지 앉아 있던 카페에서 찬영과 나오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오 중령과 이규복, 그리고 찬영과 세드나에서 나온 비상 대처 팀 팀장이라는 ‘로스’라는 인물은 이번 사고로 인한 합의를 적당한 선에서 봤다.

서로 자존심 상하지 않고 존중하는 선이었다.

물론 이렇게 원활한 합의가 이뤄진 건 찬영이 조금의 감정도 섞지 않은 일처리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런 게 세드나 측에서 사주한 게 아니라면 이번 일을 벌인 세 명에게 강력한 처벌을 하는 조건 하에서 일을 마무리하면 그만이라 생각한 까닭이었다.

찬영은 그 외에 어떤 보상도 요구하지 않았다. 로스는 그 점에 고마워하며 후일 자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 불러 달라며 찬영에게 직접 명함을 전달했다.

“네. 충분합니다.”

대답과 함께 품속에 있는 명함을 꺼낸 찬영은 로스의 이름이 쓰여 있는 명함을 훑어보더니 이규복에게 넘겨줬다.

“에? 이걸 왜 제게 주세요?”

자기 차로 다가가며 묻는 이규복.

찬영이 조수석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제가 딱히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서요. 혹시나 업무 협조가 필요하면 그때 사용하세요. 그게 여러모로 낫죠.”

정말 그게 훨씬 효율적으로 쓰일 거다.

‘나야 딱히 쓸 일이 없으니까.’

찬영의 뜻을 이해한 이규복이 명함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네, 그러죠.”

마침 뒷좌석에 쉬고 있던 김지수가 차 밖으로 나오려 했다.

이규복이 그녀의 머리를 다시 차 안으로 밀었다.

“나오던 그대로 다시 들어가세요. 어차피 출발할 겁니다.”

김지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마, 많이 쉬었습니다.”

“제가 볼 땐 덜 쉰 것 같으신데요. 말 들어요. 상관 지시니까.”

말을 마친 이규복이 찬영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블루 게이트로 오늘 출발하실 겁니까?”

찬영이 조수석 문을 열며 대답했다.

“가야죠.”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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