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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08화 (108/248)

# 108

#108.

찬영이 이규복을 쳐다봤다.

“또 누가 오기로 되어 있습니까?”

“아뇨.”

이규복의 대답에 찬영의 시선이 김지수에게 향했다.

“지수 씨는?”

그녀가 손사래 쳤다.

“아뇨, 그럴 리가요!”

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괜한 질문인가?’

그도 그럴 게 이규복은 그녀의 상관이 될 사람이다.

업무상 그녀가 이규복도 모르는 사람을 부를 리 없다.

그럼 대체 누굴까?

“직접 물어봐야겠네요.”

찬영이 일어나려던 그때, 그녀가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테이블 바깥으로 나갔다.

‘어?’

일어나려던 찬영도, 이규복도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사이 칸막이 밖으로 나선 그녀가 외국인에게 물었다.

“누구시죠?”

“알 바 아니야. 난, 찬영을 찾아. 양찬영.”

‘옐로 몽키’라는 글귀가 쓰인 티셔츠를 입은 남자는 입고 있던 갈색 가죽 재킷을 벗으며 말했다. 김지수는 할 말을 잃고 그를 쳐다봤다.

“무례하군요.”

그녀의 단호한 태도에 2m에 육박하는 신장을 가진 남자가 씩 웃기만 했다.

저벅.

곧 한 걸음 다가오는 남자. 마주 선 간격이 한층 가까워지자 지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럴 만도 했다. 그에게는 땀 냄새와 뒤섞인 고약한 향수 냄새가 났다. 인상을 쓴 그녀에게 금발 남자가 대놓고 혀를 날름거렸다.

“귀엽게 생겼네. 처녀인가? 오빠가 잘해 줄 수 있는데.”

뒤따라 웃으며 맞장구치는 나머지 두 명의 일행. 갱스터라도 되는지 옷차림새가 폭주족 저리가라다.

“Oh, shit!”

“What the f××k!”

김지수는 그들을 계속 지켜봤다. 그냥 지켜보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그들에 대해 면밀히 파악하고 있었다.

‘링온?’

그러던 중, 놈들 귀에 꽂은 이어링이 보였다. 현재 시제품 상태인 우올로의 이전 버전으로 우올로 기능의 50% 수준을 가진다.

하지만 적은 가격은 아니다. 지원받아야 구입할 수 있는 수준. 그럼 이들이 어디 소속되어 있단 얘기인데.

그녀는 그래서 물었다.

“어디 펌에서 나오신 거죠?”

일단은 끝까지 예의를 지켜 줬다.

“그년, 참 말 많네.”

마주 선 금발 남자가 히죽거리면서 그녀를 힘으로 밀고 나가려 했다.

이를 칸막이 틈으로 바라보던 찬영이 더는 안 되겠던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왜 저를 찾는지 직접 물어봐야겠네요.”

그런데 이규복의 반응이 의외였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엉거주춤 멈춘 찬영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부탁이요?”

“예, 잠깐 동안 전권을 저 친구에게 잠깐 맡겨볼까 해서요.”

그의 뜻이 의외였기에 찬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밀히 따지면 이 일은 찬영 본인과 관련된 일이다.

그녀가 괜히 나서서 저런 저급한 얘기들을 들을 필요가 없는 거다. 솔직히 화도 좀 났다.

“저분을 좀 지켜보고 싶습니다.”

이규복의 나직한 대답에 찬영의 눈동자에 이채가 흘렀다. 그가 무슨 뜻으로 이런 얘기를 했는지 일부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자리를 고쳐 앉고 물었다.

“테스트인 건가요?”

“엄밀히 말씀드리면, 예, 맞습니다. 의외의 면접이라고 해 두죠.”

“어떤 테스트죠?”

“위기 대처겠죠. 솔직히 지수 씨는 서류상으로 봤을 때 완벽에 가깝습니다. 첫 입사했을 때의 저보다 훨씬 낫죠. 심지어 선천적인 ‘마나’ 보유량은 거늘을 거쳐 간 각성자들 중 톱 수준이더군요. 아마 저런 분은 쉽게 찾기 힘들 겁니다.”

“그런데요?”

“겉이 완벽하다고 해서.”

이규복이 자기의 가슴을 가리켰다.

“여기도 견고하다고 장담할 순 없죠. 단단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는 것…….”

말이 이어질수록 그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 일은 다반사가 될 겁니다. 더군다나 그녀는 이번이 첫 실전이죠. 그런 모습을 좀 더 면밀히 볼 수 있을 겁니다.”

이규복은 유독 냉정했다. 그도 이러는 게 썩 내키진 않았으나 분명 필요한 일이었다. 찬영의 지원을 해야 한다는 건 낯선 이국땅과 낯선 종족들을 상대한다는 말이니까.

그렇기에 보고 싶었다. 그녀가 업무적 어려움에 몰렸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를.

‘만약 견디지 못한다면 이 일을 시작 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찬영도 그 의견에 절반 정도 동의했다. 하나 나머지 절반은 부단히 노력했을 때의 여지를 위한 거다. 두려워도 한계를 이겨 내려는 마음을 가진다면 언젠가는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절반 정도 동의한 거다. 물론 이번 기회에 그녀의 의지를 엿보고 싶다는 이규복의 마음도 이해가 되긴 했다.

‘그녀가 저자와 힘의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동의한 거기도 하지만…….’

가치 측정 결과 두 사람의 힘의 우열은 크지 않았다.

즉, 승패를 가르는 건 집중력 등이 될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위험을 고려해 언제든 나갈 준비를 했다. 충분하다. 저들 정도는.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금발 남자가 힘으로 밀고 나가려던 걸 김지수가 막아선 까닭이다. 그로 인해 금발 남자는 당황했는지 얼굴까지 붉어졌다.

남자가 툭 밀치려는 힘을 김지수가 가볍게 받아 내며 오히려 두어 걸음 밀려난 거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김지수는 베이콥 기사단의 정식 수련생 과정을 최단기간에 졸업했다. 그 와중에 정식 기사들이 그녀에게 감탄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릴 정도였으니 그녀의 힘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놀아 주는 건 끝났어.”

금발 남자의 양 팔이 굵어졌다. 그냥 굵어진 게 아니다. 잔털이 생겨나고 손톱이 사람이 아닌 짐승의 것이 되어 갔다. 지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기공사였나?’

이네이트는 1세대, 2세대로 나눠진다.

1세대는 서먼 홀, 뉴 게이트를 겪으면서 성장한 각성자를 일컫고 2세대는 ‘거늘’ 등의 마나 탐지기를 통해 발견되어 성장한 각성자들이다.

2세대는 마나를 사용할 순 있으나 특별한 이네이트가 없다.

블루 게이트 전환 직후, 1세대와 같은 ‘각인’ 상태의 각성자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자는 1세대야.’

1세대는 극악의 생존율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며 초인들이다. 당연히 그만한 대우를 받고 대형 펌에 속해 있다.

그녀도 이를 잘 알기에 쉽게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펌 매뉴얼대로라면 이들의 의도부터 파악하는 게 먼저다.

그때 금발 남자가 자기 본래 팔에 비해 세 배는 굵어진 두터운 팔을 위협적으로 뻗었다.

스릉!

이를 보고 반사적으로 손을 뻗은 그녀.

웃옷에 가려져 있던 허리춤에서 은색 빛의 작은 막대가 나왔다.

지잉!

막대에서는 백열등과 흡사한 빛이 터져 나왔다.

아니, 빛이 아니다.

V.O.에서 개발한 대 몬스터용 블레이드.

브라이트 소드다.

손잡이부터 검날까지 일체형으로 ‘마정석’과 궁합이 잘 맞는다는 ‘슈퍼 티타늄’을 통해 제작한 각성자용 검이다. 소모되는 마나에 비해 50% 이상 마나 응축도가 더 강해진다고 한다. 이로 인해 예기가 강화되는 건 당연하다.

챙!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어!’

그녀는 맞닿은 금발 남자의 손톱을 그대로 밀쳐 내며 뒤로 물러났다.

타닥.

그녀의 힘에 밀려 또 한 발 물러나는 금발 남자.

뒤에 있던 그의 동료들이 낄낄거렸다.

“뭐해? 스티븐. 고작 키 작은 원숭이 년 하나 못 이겨서 쩔쩔매는 거야? 이러다 밤새겠어!”

“놔둬, 저년 집 강아지라도 되려나 보지. 왈왈.”

스티븐이 이를 갈며 말했다.

“들었지? 네년이 자꾸 앞을 막으니까 내가 놀림거리가 되잖아.”

하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현재 양찬영 각성자님은 저희 V.O. 와 비공식 미팅에 참석 중이십니다.”

“그래서?”

“공식적인 방문이나 미팅은 소속되어 계신 펌을 통해 저희 펌에 공식 요청해 주시길 바랍니다. 착용하고 계신 링온으로 보아하니 외국 펌에 속해 계신 것 같은데요…….”

“미친년.”

계속 되는 욕설의 그녀가 이마를 찌푸렸다. 선공도 당한데다가 이젠 좌시할 수 없다. 솔직히 오늘은 찬영과 이규복의 앞이라, 큰 소란을 원치 않았다.

그렇기에 매뉴얼 이상의 매너를 지켰던 거다.

‘그래도 이젠 안 되겠어.’

마침 금발 남자가 낄낄거렸다.

“그런 거 없어. 어차피 그 새끼 잡으면 내 몸 값이 오를 거 아냐. 재계약 때 제법 돈이 되는 거지. 그르릉…….”

그가 낮게 울었다. 양팔만 짐승처럼 변한 게 아니라 목소리와 눈 또한 변한 것 같다.

놈이 팔 만큼 커지고 칼처럼 날카로워진 손톱을 보이며 말했다.

“질질 울며 내 가랑이 사이를 기어 다니게 해 줄게. 잘 봐! 양찬영!”

남자가 늑대처럼 울며 칸막이 뒤에 있는 찬영을 도발했다. 이미 아는 거다. 양찬영이 여기 있다는 걸. 하지만 놈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쐐액!

기습적으로 날아든 검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챙!

“제기랄!”

손톱을 X 자로 맞물려 검을 막아 낸 놈의 시야 한 편에 검을 쥐고 있는 김지수가 들어왔다.

“이년이!”

이를 가는 금발 남자에게 김지수가 무표정한 눈길로 대답했다.

“너부터 기어. Asshole.”

그게 시작이었다.

쐐액!

그녀는 민첩하게 또 다시 검을 휘둘렀다.

채채챙!

연달아 수직으로 휘둘린 그녀의 검.

얼핏 연약하고 얇은 팔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드러난 그녀 팔과 손의 근육과 굳은살은 그녀가 해 온 그동안의 노력을 의미했다.

지잉!

‘태청수류심법太淸水流心法..

하나 그녀는 노력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블루 게이트 전환 직전, 최후의 각성자이자 1세대.

짧은 시간에도 급속도의 성장을 가져온 건 그녀의 재능뿐 아니라 ‘각인’의 도움 또한 컸다.

쐐액!

그녀는 베이콥 심법을 익히지 않았다. 익힐 수 있는 심법은 사람마다 1개뿐. 하지만 검법은 심법과 상관없이 익힐 수 있었기에 사력을 다해 베이콥 검법만 연구했다.

지금 그게 이 결과다.

쿠당탕!

금발 남자는 그녀는 얕봤고 검압에 떠밀려 넓은 카페 한가운데에 쓰러졌다.

“보자보자 하니까, 이년이……!”

애초부터 죽일 생각은 없었다. 양찬영이 서울로 귀환했다는 얘기는 모든 펌에 파다하게 흘러들어 간 터라 모르는 각성자가 없다.

그래서 그냥 양찬영만 쓰러트리고 나면 다음 계약 때 몸값이 치솟을 거라고 확신하고 여길 왔다.

하지만 이건…….

“죽일 생각이 들게 하잖아!”

금발 남자의 눈동자에 광기가 섞였다.

뒷감당 같은 건 잊었다. 여기에 있는 것들을 다 죽여 버리면, 누군가는 법을 무시하고 나를 채용하겠지.

뿌드득.

그의 양팔뿐만 아니라, 몸의 형태가 변해갔다.

몸까지 세 배나 커진 그는 4m는 되어 보이는 카페 천장에 닿을 듯 커져갔다.

완전한 진화. 정확히 늑대의 모습이다.

쾅!

동시에 땅을 박차는 남자.

쐐액!

그가 네 발로 달리기 시작했다.

쾅! 쾅!

발자국을 남기며 단숨에 뛰어오른 늑대.

김지수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사실 제대로 된 실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훈련 준비만 해도 빠듯해 기회가 있어도 실전에 가담해 본 적이 없다.

제대로 된 스펙이 있어야 그와 함께 일할 기회를 얻는다고 들었던 터라 더 그랬다.

‘꿀꺽.’

두려웠다.

스릉.

하지만 반드시 해내야 한다. 손이 떨리고 흥분감에 눈앞이 어지러웠지만…….

“할 수 있어!”

스스로 되뇌었다.

그녀는 자신을 믿었다. 아니, 그동안의 노력을 믿고 있었다. 그래서 두려워도 한 발도 물러나지 않고 버텼다. 그러고 나자.

‘보인다.’

검이 가야 할 검로가 보였다. 그리고 집중했다.

‘급소!’

순간.

서걱!

‘베었어!’

검 끝에 느껴지는 감촉과 함께 커다란 늑대가 옆을 빠르게 지나쳤다.

‘지나친 게 아냐!’

급소를 베인 남자가 가슴팍에 피를 흘리면서 벽에 부딪쳐 바닥을 구르고 있는 게 보였다.

‘완벽히 베었어.’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한 일에 잠깐 멍해진 그녀.

한데 그때 그녀의 등 뒤로 두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방관하던 금발 남자의 동료들이 나선 것이다.

하지만 금발 남자에 시선이 팔려 있는 그녀는 꿈에도 모른 채 자신의 손과 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놈들은 조금의 자비도 없었다. 각자 가진 무기로 그녀를 기습했다. 노리고 있는 건 그녀의 목. 죽이겠다는 뜻이 명확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이뤄지지 못했다.

‘블링크’

지켜보던 찬영이 나섰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양 불쑥 나타난 찬영의 양손에서 황금빛 칼날이 불쑥 솟아올랐다.

‘홀리 웨폰.’

신성력을 통해 구현 된 쇠사슬 달린 갈고리.

쐐액!

쇠사슬이 뱀처럼 단번에 그들의 무기를 옥죄자마자 찬영의 서늘한 눈동자가 그들을 훑었다.

그때 그들의 등 뒤에서 이규복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 셋이지?”

이어서 그가 탁 소리를 내며 카페 문을 잠갔다.

“우리도 셋인데 말이야.”

무기를 빼고 싶어도 힘에 눌려 옴짝달싹 못하게 된 그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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