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107.
보상 창은 정말 많이 떠 있었다.
유산에 해당하는 보상은 둘째 치고 히든 퀘스트에 해당하는 몬스터를 잡아가며 인벤토리를 가득 채운 거다.
이럴 땐 직접 손댈 필요 없이 이뤄지는 자동 획득이야말로 최고의 이네이트인 것 같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찬영은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들을 보고 고민했다. 그도 그럴게 이젠 방향성이 꽤나 많았다.
‘우선 도타에게 넘겨서 코인을 벌거나. 혹은 선택 분해를 택하는 방법이 있어. 하지만…….’
미완성 정수를 택하는 ‘분해’는 이번에 건너뛰기로 했다.
‘최근 보석에 너무 주력했어.’
여러 방면의 발전이 중요하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모든 옵션들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게 주목적이지만 골고루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자면 둘 중 하나다.
‘코인을 만들어 도타의 재배를 독려하거나, 앞으로의 영약 재료 도안서가 나올 경우를 대비해 재료들을 구비해 놓아야겠지.’
그럼 결국, 둘 중의 택일을 해야 한다는 건데…….
‘도타에게 넘기자.’
잠깐 고민해 봤지만 역시, 그게 낫겠다.
‘도안서가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판국에 영약 재료만 쌓아 두는 건 썩 좋은 생각 같지 않아.’
앞으로 만날 변수, 적, 등을 고려해 봤을 땐 당장 능력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여러모로 스텟 농장을 성장시키는 쪽이 낫다.
영약 재료는 도안서가 나온 이후에 대비해도 늦지 않고.
‘그래, 그렇게 하자.’
결정을 마친 찬영의 시선이 이번에는 4,000 이상의 아이템으로 향했다.
-역행의 시계
-가치 : 4,130
-설명 : 5회 사용 시. 자동 소멸됨. 어떤 제약 없이 2분 전의 상태로 회복된다. 단, 소유자 본인에게만 해당됨.
‘뭐든 회복된다 이거지.’
문구대로라면 최고의 효율성을 낼 수 있는 물건이 틀림없다. 특히 전투는 매번 1초 사이에도 생사가 갈린다. 이 때 이 아이템을 쓴다면?
‘내 목숨을 건질 수도 있는 물건이 되겠어.’
이정도면 4천대 이상이 아니라 더 큰 가치를 부여해도 충분히 납득할 것 같다.
그만큼 손안에 한 번에 잡히는 이 작은 갈색 빛의 회중시계가 가진 옵션은 무척 놀랍다. 더 없이 마음에 드는 보상. 그러나 고무적인 건 이번 보상이 이 회중시계뿐이 아니라는 거다.
찬영이 회중시계를 인벤토리에 넣어두며 새로운 아이템을 꺼냈다.
-지잉.
손목 정도 길이를 가진 지팡이가 생성되자 나타나는 새로운 창.
-라일라의 완드
-가치 : 4,400
-설명 : 반경 5m 안, 원하는 목표물에게 ‘석화’ 저주가 가능하다. 저주 해제가 가능한 건 소유자뿐이며 1분 후 즉시 석화 해제. 단, 석화 상태가 된 적에게 1분간 ‘절대의 시간’이 부여됨. 절대의 시간 사용 시 상대는 어떤 공격도 무효화시킬 수 있다.
뒤에 따라붙는 문구를 읽자마자 혀를 내둘렀다.
방금 전 회중시계만 해도 쓰임에 따라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수준인데, 이 작은 완드는 회중시계 못지않게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
머릿속에서 이 작은 완드를 어떻게 활용해갈지 벌써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단순히 적을 향한 것뿐 아니라, 아군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사용할 수 있을 거다.
‘언젠가 사용하게 될 거다.’
근 시일 내에 사용할 수도 있고, 혹은 후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어딘가에는 크게 쓰일 거란 예감이 든다.
그렇게 마지막 완드까지 인벤토리에 보관한 후, 다음엔 업적으로 인해 획득하게 된 추가 보상들을 들여다봤다.
‘플래티넘 1급에다 플래티넘 10급에서 플래티넘 1급 중의 택일이 되는 랜덤 박스라…….’
업적 추가 보상은 총 두 개.
그것도 둘 모두 플래티넘 박스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골드 1급, 플래티넘 7급, 플래티넘 1급 등을 합쳤을 때.
‘박스는 총 5개가 된다.’
이 시간을 기대한 이유였다.
‘조합을 돌린다.’
더 지체할 게 없다.
단, 이를 위해 수반되어야 할 게 하나 있다.
찬영이 인벤토리에서 주섬주섬 아이템을 하나 꺼냈다.
이제껏 묵혀뒀던…….
‘행운의 동전.’
-행운의 동전
가치 : 4,000
설명 : 겜블러가 절제력이 높은 손님에게 주는 한정판 동전 고정 등급 박스가 아닌 ‘? 급 ~ ?급 랜덤 박스’ 사용 시 동전을 개봉할 수 있다. 랜덤 박스에 한해, 최고 등급 박스가 나올 확률이 30% 상승한다.
랜덤 중 최고 등급 박스가 나올 확률을 30%나 올려 주는 녀석.
‘이걸 사용해서 랜덤 박스에서 나올 고정 박스의 등급을 최대한 높여 올린 후…….’
박스 조합을 돌리는 거다. 그렇게 되면 박스 등급과 개수 등이 영향을 주는 조합에서 좋은 박스를 획득할 수 있는 이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즉, 플래티넘 상위 등급의 박스를 노리는 거다.’
이를 위해 기꺼이 행운의 동전을 쓰기로 했다.
후일을 본다면 아까운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높은 등급의 박스를 모으기 힘들다는 걸 감안한다면…….
‘당장 이보다 좋은 기회를 찾긴 힘들다.’
무려 플래티넘 등급 이상의 박스를 획득해야 하는 도박이다.
‘엄밀히 말하면 상위 등급 박스를 획득하기 위한 사전 밑 작업들인 거지.’
다음 단계 박스를 얻고 말겠다.
반드시!
* * *
‘긴장되네.’
방금 전 행운의 동전을 통해 플래티넘 2급 보상이 나왔다. 물론 기대했던 1급 보상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계획이 들어맞은 것 같다.
단언컨대 플래티넘 2급 보상이 나오기까진 최고 보상 확률을 30%나 높여 주는 동전의 영향이 있었을 테니까.
즉, 동전이 아니었다면 2급 보상은 꿈도 못 꿨을 거다.
하지만 결국 플래티넘 2급을 획득했고 이젠 플래티넘 등급의 최상위등급인 1급 2개와 2급 1개, 7급 1개를 보유하게 됐다.
‘골드 1급이 좀 아쉽긴 하지만 이 정도면 할 만해.’
이마저도 낮은 등급은 아니다. 플래티넘 10급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박스니까. 결국 조합을 통해 나올 수 있는 박스 경우의 수는…….
‘골드 1급에서 플래티넘 등급을 뛰어넘는 8급 박스까지다.’
당연하다. 박스 조합은 조합하는 박스의 등급보다 세 단계 이상의 박스까지 내주니까.
무엇보다 플래티넘 2급 보상의 획득으로 이젠 플래티넘 이상의 박스를 기대 할 수 있다.
그도 그런 게 박스 조합 시, 상위 박스 획득 확률을 높이는 건 박스 조합 때 사용되는 박스 개수와 조합을 차지하는 박스의 등급들이다.
그렇기에 더욱 더, 플래티넘 2급 박스란 결과가 기쁘다.
플래티넘 1급 박스 2개로 플래티넘 7급과 골드 1급 박스와의 평균을 상승시키고, 플래티넘 2급 박스로 상위 등급 박스의 확률을 전체적으로 올리는 계획.
‘이게 통한다면…….’
이제껏 꿈도 꾸지 못했던 플래티넘 수준 이상의 박스나 나올 거다.
꿀꺽.
목이 탔다.
-5개 박스를 조합하시겠습니까?
‘그래.’
준비는 끝났다.
* * *
고요한 창고 안.
지잉!
르리에를 통한 나무 문이 열리고 현실로 걸어 나왔다.
주위를 돌아보니 본래 있던 창고의 정경이 들어왔다.
-로그인 3회 차 7회
창가 사이로 노을이 지는 게 보였다. 다음 날 저녁이 될 동안 르리에에 머물러 있었나 보다.
‘그래도 10회가 머지않았네.’
워낙 10회 보상받기에서 좋은 결과가 많았기에 캘린더 결과가 기대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어떤 보상이 나오든 그 보상을 활용하기 위해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할 거다.
늘 그렇듯 말이지.
철컥!
창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인벤토리에서 검문소를 떠나자마자 이규복이 손에 쥐어 준 통신기를 꺼냈다.
‘우올로’라는 통신기란다. 그동안 마법 통신구를 연구하며 얻은 수확이라고 했다. 귀에 꽂는 이어링인데, 정말 초소형이라 착용한 것도 모를 만큼 편안했다.
이규복에 의하면 시제품이긴 하지만 장소를 시드대륙으로 옮겨도 100km 안까지는 서로 통신이 가능하단다. 통신망이 완벽히 설비되어 있는 지구에서는 어디든 연락이 가능한 수준이고.
어쨌든…….
-어디 계십니까? 연락 안 받으셔서 음성 메시지 남깁니다. 창고에 가 봐도 안 계시더라고요. 돌아오시면 연락주세요.
이규복의 목소리는 옆에 있는 것처럼 명료히 잘 들렸다.
‘급한 목소리는 아닌데?’
일단 무슨 일인지는 물어봐야 했기에 곧장, 그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한참 기다렸습니다. 하루 종일 어디 계셨어요?
“개인적인 일을 좀 봤어요.”
그 말을 시작으로 찬영은 ‘르리에’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줬다. 설명이 어렵지는 않았다.
갓피스와 갓피스가 아닌 사람의 차이는 비공식 소환 당시 이규복에게 어느 정도 얘기해 준 바가 있다. 이규복 역시도 르리에를 드나드는 걸 그것과 연관 지어 아주 쉽게 이해했다.
-그렇게 된 거군요.
“예.”
-참, 갓피스라는 건 여러모로 대단한 능력인가 봅니다.
“대리님도 한자리 맡으시면 좋겠네요.”
찬영의 농담에 이규복은 단호히 대답했다.
-꿈에라도 그런 얘기 마세요. 저는 그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아니니까요.
“처음부터 완벽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자격에 맞춰 가는 거죠.”
-하긴. 정말 그래 보입니다. 찬영 씨를 보고 있자면…….
잠깐 말끝을 흐리며 대답한 이규복이 화제를 돌렸다.
-아, 그나저나 제가 연락을 드린 용건이 뭐였냐면요.
그가 연락한 이유를 듣고 있던 찬영의 눈빛이 조금 묘해졌다.
* * *
찬영은 창고 근처 카페에 도착했다.
작은 주차장을 지나 걸음을 떼자…….
‘벌써 오셨네.’
이규복의 차가 보였다.
그새 도착한 모양이었다.
딸랑.
종소리가 나는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칸막이가 되어 있는 한 테이블 안으로 들어갔다.
“오셨네요.”
“예.”
인사를 하며 이규복과 나란히 앉은 찬영.
‘이 사람인가?’
찬영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여성을 응시했다. 단아하게 생긴 그녀는 긴 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는데 조금의 화장기도 없어 보였다.
‘미인이시네.’
그녀는 제이나와는 다른 매력을 갖고 있었다. 제이나가 하얀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이지적인 느낌이라면…….
앞에 앉은 그녀는 동글동글한 얼굴에 쌍꺼풀 없는 미인이었다.
무엇보다 은은히 띄고 있는 부드러운 미소와 눈길은 따뜻한 인상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했다.
“아,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김지수입니다.”
긴장했는지, 입술을 잘게 떠는 그녀를 보며 찬영도 마주 고개를 숙였다.
“네, 양찬영입니다.”
대답을 하며 이규복을 쳐다봤다. 궁금한 게 많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오면서 자초지종을 듣긴 했지만 자세한 건 여기 도착해서 듣기로 했다.
이규복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음, 그게요. 대표이사께서 저를 서포트해 주실 분이 좀 필요할 것 같다고…….”
그러면서 시작된 이규복의 설명.
잠자코 듣고 있던 찬영이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V.O.의 대표이사는 이규복의 전 장인어른. 그의 뜻을 거절하긴 쉽지 않았을 거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저 역시 이 대리님과 함께 움직여 주실 분이 필요하다고는 느꼈습니다, 전부터.”
찬영의 대답에 이규복은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그의 성격상 거절부터 하고 대화가 시작될 거라 예상한 탓이다.
“예?”
찬영이 놀라워하는 그에게 말했다.
“내색은 안하셨지만 많이 힘드셨을 거니까요.”
그간 청문회, 찬영과 군 사이의 계약 등 자잘한 일들은 모두 이규복의 소관이었다.
물론 이런 복잡한 절차를 대행해 달라 부탁하기 위해 V.O.와 계약을 한 것이긴 했으나, 분명 이런 일들은 까다로운 일들이다.
‘혼자서 하기는 힘드셨겠지.’
그랬던 그에게 팀이 생기고 동료가 생긴다는 건 좋은 일이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야.’
신성 왕국이 복원된 지금, 자신에게는 갓피스 이전에 이방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경계를 품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나 앞으로 자유로이 활동하려면 그런 이들까지 설득해나가야 한다.
‘그 말은 별 충돌 없이 평화로워지려면 현명한 대처들이 필요하단 얘기일 테고.’
그러한 대처를 할 때,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믿을 만한 ‘팀’이 있는 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거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현장의 상황들을 이분이 감당하실 수 있을까요?”
솔직히 고려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앞으로 신성 왕국으로의 탐험은 목숨을 걸어야 할 일, 그래서 걱정이 됐다.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니까.
“괜찮습니다. 잘 할 수 있어요!”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태도. 그러나 자신감만으로 해결될 문제만은 아니다.
찬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수 씨.”
“예.”
“제가 말씀드리는 건…….”
찬영은 난감했다.
다짜고짜 목숨을 걸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위험한 일이니 물러나라고?
‘내가 무슨 자격으로?’
아니, 그보단 터놓고 얘기해 주는 게 맞다.
“돌아가실 수도 있는 일입니다. 저와 다니시는 건…….”
“각오했어요.”
여전히 흔들림 없는 그녀의 눈동자. 그녀를 응시하던 찬영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본인의 선택이시라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대리님께도 서포트가 필요하니까요. 단, 선택에 따른 책임은 직접 지셔야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순순히 응하는 찬영의 반응에 오히려 이규복이 놀랄 지경.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단호히 거절하지 않는 걸까? 궁금하던 찰나.
갑자기 카페 종소리가 들리고 한 떼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여기, 양찬영이라고 있습니까?”
외국인이 억지로 한국말을 내뱉는 어색한 발음이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분명, 강한 적의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