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106.
찬영이 글로리와 함께 붉은 지붕이 있는 글로리의 벽돌집 근처로 돌아온 직후, 젖어 있던 옷도 말릴 겸 그와 함께 모닥불을 쬐고 앉았다.
나란히 앉아 있던 글로리가 찬영에게 물었다.
“크투가의 성장은 생각도 못했소. 남겨진 유산이 크투가를 성장시키는 열쇠였을 줄이야.”
“많이 놀라셨군요.”
“처음엔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글로리가 활짝 웃었다.
“아주 기쁘다오.”
찬영은 그의 웃음을 이해했다.
하긴. 크투가 +2로 인해 그는 정말 강한 장비를 갖추게 됐다.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
특히 그는 선조의 흔적을 찾았다.
“업그레이드도 업그레이드지만, 선조의 유산을 찾으셨다는 게 더 기쁘신 것 같습니다.”
“들켰군!”
넉살까지 떠는 글로리를 보며 찬영은 그가 살펴보라 넘겨 준 크투가를 내려다봤다.
장비를 손끝으로 쓸어내린 후, 귀환하며 그에게 장착시켜 준 보석을 매만졌다.
공격 속도를 상승시켜 주는 10급 보석 2개와 신성력 0.5% 증가 옵션이 붙은 1개의 10급 보석 등이다.
유산을 획득해 좋아하는 그를 위한 선물로 건네준 거다.
이것마저도 안 받으려 하는 그에게 우겨서야 겨우 건네줬다. 적당한 명분이 없으면 그에게 선물 같은 건 티끌 하나 못 줄 것 같다.
아무튼…….
‘끝내주네.’
보석을 제외하고서라도 대단한 녀석이다.
-불타는 돌로 제작한 박격포 ‘크투가.’+2
-‘자유’ 전용 : ‘자유’가 착용하지 않을 시 효과 사용 불가
-가치 : 7,920
효과 A : 신성력 4,500 증가.
효과 B : 자유의 바람 (이동속도 및 공격 속도 180% 증가, 신성력 1,200 소모, 반경 15m 지정 아군에게는 이동속도 및 공격 속도 80% 증가, 30분 제한, 2시간 대기 시간 후 재사용 가능)
효과 C : 신성력 1,500 소모 시 1초당 10발의 홀리 샤우트 연사 발동 (무반동)
효과 D : 신성력 1,300 소모 시 목표 지점 반경 3m 안의 리무브커스 발동(저주 해제)
헛웃음이 나왔다. 버프 수치들이 상승한 건 둘째치더라도 이젠 무반동의 연사 가능한 기관총과 광범위 포격이 가능한 박격포를 모두 갖춘 장비가 됐다.
거기다가…….
‘저주 해제?’
마나 디스펠을 직접 경험해 봐서 안다. 이건, 일종의 저주 디스펠이겠지만.
‘요긴하게 사용될 거야.’
아직 저주를 일으키는 적과 싸워 본 적은 없으나 대륙이 복원된 만큼, 다양한 적이 많아질 건 불 보듯 뻔하다.
‘그가 있다면 든든하겠어.’
그 생각을 하는 중 글로리가 찬영을 따라 웃었다.
“놀랍지 않소?”
“예, 정말 그렇습니다. 전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굉장해졌네요.”
대답하며 글로리에게 장비를 넘겨 준 찬영.
탁.
글로리가 이를 받아들며 말했다.
“그럼, 복덩이지. 거기다 녀석이 내게 준 힘은…….”
한 손을 쥐었다 피며 몸 안에 충만해진 힘을 느끼는 글로리의 눈동자. 마주한 찬영은 그의 눈을 보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뭐랄까? 그에게서 전보다 조금 더 강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신성력이 늘어났기 때문일까?
“놀랍게도 신성력이죠.”
찬영의 대답에 글로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력이라……. 시드 대륙이란 곳에서는 그것을 ‘여신’의 힘이라고 부른다지.”
이미 글로리는 제이나와 찬영을 통해 시드대륙에 관한 많은 얘기를 들은 뒤다. 신성력과 여신 등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가 있어 물은 거다. 그의 얘기에 찬영이 답했다.
“네, 그들은 그걸 신성하게 여기죠.”
그로 인해 제이나는 자신에게 충고까지 했었다. 함부로 신성력을 내보이지 말라고 했던 이유도 그에 관련한 이유였다. 그건 글로리도 마찬가지. 굳이 해 줄 필요 없는 얘기다.
하지만 언젠가 글로리도 부딪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후일…….
‘그가 시드 대륙에 모습을 드러내야 할 일들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글로리가 현명히 대처할 수 있게끔 찬영은 간략이 그들의 상황과 ‘신성력’이 의미하는 바를 들려줬다.
곧 깊어지는 글로리의 눈빛.
“참, 어렵소. 그쪽도…….”
“괜찮습니다. 삶이란 게 원래 복잡해질 수밖에 없죠. 수많은 이들이 얽혀 살아야 하는 거니까…….”
태연한 찬영을 보면서 글로리가 쓰게 웃었다.
“어쨌든 내가 시드 대륙에 나타나는 건 일부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을 가져올 수도 있겠군. 아니 그렇소?”
“지금 당장은요. 하지만…….”
잠시 말끝을 흐렸다가 다시 입을 여는 찬영.
“그들이 놀라지 않게 적당히 발맞춰 준다면 괜찮을 겁니다.”
자신을 위해서도 그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신성력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말이다.
그러자면 적당한 타이밍이 필요하다. 종교적 갈등이 생기지 않을 절호의 타이밍.
그때쯤이면…….
‘그와 시드 대륙에 함께 설 수 있겠지.’
현재 생각하고 있는 바를 글로리에게 전달해 준 찬영은 자신의 뜻을 이해한다며 동조해 주는 그가 무척 고마웠다.
그때 글로리가 장작을 불길에 넣으며 말했다.
“어쨌든 우리 종족이 시드 대륙의 여신과 관련이 있는 게 점점, 확실해지는 것 같소.”
“예. 여러모로요.”
그 부분은 찬영도 정말 동의하는 바였다. 글로리가 신성력을 특별한 능력으로 부여받은 것만 봐도 그렇고 크투가가 신성력을 근간으로 발동되는 점도 그런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조금 얘기가 간결해진다.
‘트레이드족의 힘의 근간이 연결된 게 여신이었고 그 여신이 별들의 속삭임을 통해 들었던 목소리 중 하나라면?’
나무 타는 소리 속에 생각이 깊어진다.
‘남은 건 올드 원과 여신이 어떤 관계인지야. 그게 풀리면 지구와 시드대륙, 르리에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그 진실이 아마 이 모든 일들을 가로지르는 핵심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는 글라투 같은 녀석들을 상대하며 알아 갈 수 있을 거다.
물론 글라투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지만…….
‘앞으로는 다를 수 있어.’
글라투와 잠시 나눴던 대화만 떠올려 봐도 그걸 확신할 수 있다.
‘놈이 그랬지. 자신 같은 하위 종은 높은 자들의 뜻을 알 수 없다고.’
그건 글라투를 통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는 걸 뜻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놈보다 높은 종족은 올드 원과 관련 있는 진실에 대해 알 수도 있다는 얘기다.
즉, 프롤과 브루로 나뉘었던 르리에처럼 놈들 사이에도 계급이 있는 게 틀림없다.
‘글라투는 그걸 말한 것일 테고.’
대부분의 생각들이 확실해질 때, 글로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앞으로가 조금 겁나기도 하오. 이젠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그래요? 전혀 두려워 보이지 않으시는 걸요.”
찬영은 진심이었다.
글로리에게는 처음 글라투 때와 이젠 비교도 할 수 없는 의연함이 느껴진다, 든든할 만큼.
“그런가. 이런 일을 견디는 게 익숙해져 가나 보오.”
“저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렇소? 그나마 위안이 되는군.”
가볍게 미소 지은 글로리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제 좀 쉬어야겠소. 계속 계실 거요?”
“아뇨. 저도 슬슬 돌아가 봐야죠.”
그에게 대답해 준 뒤 힐끗, 창을 올려다봤다.
타우린과 도타와 함께 오두막으로 귀환하며 잠시 미뤄둔 보상들을 확인해야겠다 싶었다.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글로리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야겠지. 이제 한동안 적적하겠군. 녀석들이 없으면…….”
도타와 타우린을 말하는 거다.
찬영이 웃었다.
“녀석들도 그럴 겁니다. 그래도 종종 오두막에 놀러 오시죠. 이젠 교류에 방해될 만한 몬스터도 없으니까요.”
“그러리다. 그러다보면 그대와도 다시금 볼 수 있겠지. 그렇지 않소?”
“예, 그럼요. 아마 조속한 시일 내로 보시게 될 겁니다.”
“오, 기대하겠소! 그렇담 이젠 녀석들과 작별 인사를 해야겠군.”
그 말을 끝으로 도타와 타우린에게 다가가는 글로리.
찬영은 그의 뒷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다 마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달그닥. 달그닥.
마차 문을 연 찬영이 창가를 내다보자, 멀리서 손을 흔드는 글로리가 보였다. 찬영도 함께 손을 흔들어 준 뒤 다시 마차에 바로 앉았다.
그 후 맞은편에 앉아 있는 도타에게 말했다.
“오두막에 도착하면 새 품종을 심고 재배해요. 필요한 보조 아이템들은 가지고 있는 코인으로 쓰고요.”
“딱. 코인이 없습니다.”
도타의 대답에 찬영은 혀를 내둘렀다.
이 해골, 은근히 촌철살인이다.
“벌어다 줄게요.”
그러다가 기억을 떠올린 찬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잠깐, 10브론즈 코인 정도가 남았잖습니까?”
적긴 해도 10브론즈 코인이 남아있었는데?
의아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것도 썼어요?”
“딱. 떠돌이 상인이 찾아왔기에 남은 코인으로 경계 포탑 재건에 사용하였습니다. 딱. 딱.”
찬영은 정말 놀랐다. 그도 그럴 게 도타의 사고가 좀 유연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보통 도타는 자신의 정확한 지시가 없으면 행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라.’
도타가 스스로의 의지로 재건을 하는 데 코인을 사용했다.
유동적으로 선택해 결정한 뒤 움직였다는 건 분명, 잘한 일이기에 칭찬해 줬다.
“잘했어요. 스스로 선택한 거죠?”
“딱. 아닙니다. 딱. 주인님께서 포탑의 설치를 맡기셨기에 그 임무를 완수했을 뿐입니다. 딱. 딱.”
찬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너무 확대 해석했구나.’
도타는 그저 지시를 제대로 수행한 것뿐이다. 전투를 하며 일부 부서진 포탑을 수리하는 것도 포탑 설치 지시의 포함되어 있다 생각한 거다.
‘아쉽네.’
그가 좀 더 유동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으면 싶다.
‘언젠가 그럴 수 있겠지.’
후일을 기대하며 도타와 짧은 대화를 끝냈다. 앞으로의 약초 재배야 글라투가 사라진 자리에 몬스터가 난입할 일도 없을 터. 별걱정 없을 거다.
도타의 체력만 받쳐준다면야, 얼마든지 농장을 넓힐 수 있다. 그에게 직접 탐사를 지시해도 될 것 같다.
‘그건 오두막에 도착해서 해도 늦지 않고.’
찬영은 그제야 도타에게 시선을 거뒀다. 이제 바쁜 일도 얼추 끝났으니 슬슬 획득한 것들을 둘러봐야겠다.
‘드디어 보는군.’
여러모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이번 보상들.
특히 분해가 Lv. 2로 업그레이드된 건 의미가 크다. 더구나 이번 업그레이드로 더욱 확실해진 게 있다.
유산은 자신의 시스템과 깊게 관련이 있다. 그건 여신과도 이어지는 매개이고.
그런 면에서 분해의 업그레이드는.
‘유산, 즉 시스템이 한층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지.’
이것만 봐도 그렇다.
-분해 Lv. 2는 선택 재료 분해가 가능합니다.
-‘미완성 정수’ 선택 분해가 가능해집니다.
-‘영약 재료’ 선택 분해가 가능해집니다.
‘선택 분해!’
이건 자신의 구미에 맞게끔 성장이 가능해진다는 걸 의미했다.
‘아이템 수집이 만능이 된 거지.’
아이템 수집 및 분해를 통해 보석의 수집이 필요할 때마다 가능해진 거다.
특히 영약의 영역까지 건드리게 되다니…….
찬영이 자동 반사적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정말…….”
‘대박’이지.
얼마나 굉장한 일인지 알고 있는 터라, 크게 고무되는 마음으로 영약 관련 창을 들여다보았다.
-분해 Lv. 2의 달성으로 인해 ‘영약.’ 제작이 가능해집니다. 그로 인해 영약 제작이 개방되었습니다.
-영약 재료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아이템 가치에 따라 10급 최하 ~ 영혼급 최상으로 분류됩니다.
-10급부터 9급은 매직 영약 재료로, 8급부터 6급은 노멀로, 5급부터 3급은 레어로, 2급은 유니크로, 1급은 에픽으로, 영혼급은 레전드로 분류됩니다.
영약은 그녀가 전해 주었던 시드 대륙의 분류법과 전혀 다르지 않고 동일했다. 누가 이런 분류법을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시작이 어쩌면…….
‘트레이드족일지도 모르겠어.’
지금껏 일어난 일만 봐도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분명, 트레이드족의 유산 중 일부에서 이런 분류법이 뻗어져 나왔을 확률이 높다.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건.
‘이젠 영약 재료까지 선택할 수 있다는 거겠지.’
문구로 보아 분명 아이템이 가진 가치에 따라서 좋은 등급의 영약 재료가 나올 게 분명하지만 영약 재료가 필요할 때마다 ‘분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다.
제이나에 의하면…….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하는 게 영약이니까.’
하나 공짜는 아니다.
단서가 붙는다.
-단, 영약 재료 도안서를 획득해야 가능합니다.
“쉬운 게 없네.”
아직 뒤에 남은 보상 창들을 쳐다보며 찬영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되면, 결국 도안서를 구해 놔야 영약을 제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도안서를 어디서 구하냐는 거지.’
문구에서는 도안서에 대한 힌트가 전혀 없다.
이 글귀, 저 글귀를 읽어 봐도 대답은 같다.
‘그럼 어떻게 제작하라는 거지?’
추정컨대, 우선은 ‘박스’나 업적 보상들을 통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것도 아니면…….
‘몬스터겠지.’
이러나저러나 새로운 땅의 몬스터들을 찾아가라는 얘기 같다.
‘기꺼이 해내 주마!’
이제껏 이런 숙제들을 모두 풀면서 계속 나아갔다.
새로운 숙제 하나 더 얹는다고 달라질 건 없다. 설사 다음 보상들이 더 많은 숙제를 얹어 준다 할지라도 뭐든 해낼 자신이 있다.
찬영의 시선이 다음 창으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