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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03화 (103/248)

# 103

#103.

글로리는 무릎을 꿇은 채 울음을 쉽게 멈추지 못했다.

찬영도 그를 보며 무척 울컥했다.

“크흐흐윽…….”

어렵사리 얻은 자유. 그리고 그로 인해 비로소 마주하게 된 선조들의 유산.

지금 그가 흘리는 눈물은 어쩌면 그간 쌓인 ‘한’일 것이다.

찬영은 그에게 공감했다.

‘그래요. 전부 쏟아 내요.’

한동안 그가 우는 걸 지켜봐 주는 게 도리일 거라 생각하고는 바닥에 자리 잡은 거대한 문을 내려다봤다.

유산이 트레이드족에게 다시 돌아가려면 어찌됐건 문을 열어야 할 테니까.

찬영은 방금 발견했던 열쇠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계속 보고 있자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

머릿속에 어떤 물건과 동일한 형태의 열쇠다.

조각과 조각이 들어맞듯, 머릿속에서 하나의 물건과 저 열쇠 구멍의 아귀가 묘하게 겹쳤다.

‘어?’

순간 눈을 번쩍 든 찬영이 인벤토리를 뒤졌다.

언젠가 쓰임새가 있으리라 믿었던 ‘열쇠.’

-저주받은 하수구로 통하는 열쇠

찬영이 곧 인벤토리에서 열쇠를 꺼내 쥐자 갑자기 열쇠가 부르르, 진동을 일으켰다.

-연관 장소 도착 달성, 그로 인해 저주받은 열쇠의 저주가 풀렸습니다. 열쇠가 본래의 크기로 전환됩니다.

자줏빛이 열쇠 끝에 일렁이더니 형태는 동일하지만 크기가 10배 이상 커진 열쇠가 찬영의 한 손을 가득 채웠다.

이제야 알겠다.

‘열쇠의 봉인이 풀릴 수 있는 조건은 이곳을 찾아내는 거였어.’

찬영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모든 게 딱딱 맞아떨어진다.

글라투의 죽음과 그의 죽음 이후 글로리가 ‘여신’ 이라 추정되는 이의 목소리를 들은 것까지.

‘모든 흔적들이 이곳을 가리키고 있었던 건가?’

아마 그런 게 확실하다.

그럼 적어도 이 안에…….

‘기대했던 진실에 대한 대답 혹은 그 이상의 물건이 있을 거다.’

설사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앞으로 남은 대륙 복원과 관련 있는 물건이 있을 거다.

이제껏 경험했던 상황들로 미루어 보아 트레이드족 선조들의 유산들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 과 크게 관련 있다.

“확실해.”

나직이 중얼거리는 찬영.

그사이 마음을 가라앉힌 글로리가 찬영의 목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돌렸다.

“뭐라 하셨소?”

“아, 혼잣말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찬영이 열쇠를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제가 이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습니다.”

글로리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 * *

끼긱.

열쇠가 정확히 열쇠 구멍에 들어가자 디디고 있던 땅이 흔들렸다.

구궁!

아니, 문이 흔들렸다.

이어서 천장에 자리 잡은 암벽들에서 돌가루가 나풀나풀 떨어지기 시작했고 공동 안이 당장 무너질 것 같았다.

하지만 둘 모두 걱정하지 않았다.

내진에 잘 견디게 설계된 공간이다.

이정도 흔들림 따위야…….

점차 바닥에 떨어지는 돌가루의 양이 적어지기 시작했다.

‘열린다!’

열쇠가 꽂혀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쩍 갈라지며 분리되는 땅바닥.

그것만도 놀라운데, 일정 부분까지 열린 직후 멈춘 문틈으로 ‘기기긱’ 하는 굉음이 들렸다.

“분명, 도르래가 가동되는 소리요.”

어떤 소리인지 정확히 판별해 낸 글로리.

그의 말을 들은 찬영이 눈을 빛냈다.

“그럼 이 안에 도르래가……?”

신속히 틈 사이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본 찬영.

7m 정도의 넓적하고 기다란 암석이 올라오는 게 시야 한 편에 들어왔다.

도르래와 연결된 암석 판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비석.

아까의 그 소리들은 글로리 말대로 비석과 암석 판을 위로 상승시키기 위한 도르래의 가동 소리가 확실했다.

“대체 저게 뭐기에?”

찬영의 눈에 의아함이 실렸다.

구궁.

곧 갈라진 문 틈 사이를 정확히 맞추며 자리 잡은 암석 판.

그 위에 세워진 비석 표면이 파란 글씨들로 빛나기 시작했다.

옆에 선 글로리가 그 글씨들을 반사적으로 읽어 갔다.

“봉인을 풀려는 자. 쉽게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

글로리가 천천히 찬영을 돌아보면서 눈을 크게 떴다.

“……무덤에 온 걸 환영한……다?”

글로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찬영의 앞에 ‘창’이 하나 떴다.

-글라투의 죽음으로 인해 저주받은 하수구의 결계가 소멸되었습니다.

진입한 침입자들에게 해당되는 ‘세 가지 저주’가 사라집니다.

‘저주가 사라진다고?’

몸을 짓누르기 시작한 마나의 흐름이 순식간에 소멸됐다.

변화한 마나의 흐름을 느꼈던 찬영의 눈빛에 이채가 흘렀다.

‘글라투의 죽음이 효과를 발휘한 거구나.’

만약 그가 죽지 않은 상태에서 이곳의 문을 열었다면 좀 더 힘든 상황에 봉착했을 거다.

글라투와의 추가적인 전투가 있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런 저주들을 피하라고 이제야 우릴 이곳으로 이끈 건가?’

아니, 그렇게 모든 게 완벽히 정해져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글로리의 각성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었어.’

글로리와 자신은 각자의 의지로 선택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 선택과 선택이 맞닿아 수많은 결과를 이뤄 냈다.

그 결과들이 글라투의 죽음일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저주가 사라질 일도 없었을 테고, 글로리가 정체 모를 부름을 통해 이곳을 발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무수히 많은 기회들이 길 위에 놓여 있었을 뿐.

‘마구 잡이로 놓여 있는 기회를 손에 쥔 건 우리의 선택들이야.’

갑자기 나타난 창을 눈에 힘을 주고 응시했다.

앞으로 더욱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봐야 한다.

어떤 기회와 위험이 다가올지 모르니까.

지금처럼.

-히든 퀘스트 조건 달성

-히든 퀘스트 발생

-히든 퀘스트 : 글라투의 잔당을 처치하라.

-저주 소멸을 시작으로 잠들어 있던 ‘망령의 군대 잔당’이 깨어납니다. 그들을 물리치고 트레이드족의 유산을 되찾으세요. 단, 지금부터 글라투의 하수구가 붕괴됩니다.

-퀘스트 완료 조건 : 잔당을 모두 처치하세요.

-히든 퀘스트 완료시 획득할 보상 목록

-트레이드족의 유산

-‘자유’ +1 업그레이드권.

-‘분해’ Lv.2 상승.

-‘?’

-탈출로 개방.

찬영은 보상 창을 빠르게 살핀 후 주위를 둘러봤다. 때마침 나타난 글라투의 잔당.

‘이런…….’

-그오오.

땅 밑에서 기어 나오기 시작한 한 떼의 리턴 데드.

숫자가 꽤나 많다.

하나, 둘, 셋…… 세다가 너무 많아 멈출 지경.

하지만 다행이다.

‘놈들의 단점을 잘 아니까.’

숫자가 많더라도 금방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글로리와 눈이 마주쳤다.

“보고 있소?”

흔들리는 글로리의 눈빛. 갑작스런 적들의 난입에 당혹스러운 거다.

그러나 당혹스러운 건 잠깐 뿐, 글로리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을 현명히 헤쳐 나가는 걸 고민했다.

“유산을 회수하면 좋겠지만 우선 탈출로부터 알아보는 게 나을 것 같소. 유산보단…….”

미래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

찬영도 그에게 동의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리 선택 사항이 없다.

“아무래도 탈출로가 놈들을 이겨 낸 후에야 개방될 것 같습니다.”

찬영이 그래야 하는 이유를 간략히 설명했다.

“허…….”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글로리의 눈빛에 강렬한 독기가 깃들었다.

“알겠소!”

막 글로리의 대답을 들으며 정면을 돌아보자, 시야 한 편에 또 다른 적이 등장했다.

-그그극!

비석 주변에 반원형의 틈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글라투와 똑 닮은 2m 정도의 체구를 가진 몬스터가 나타난 거다. 변수였다.

-망령의 군대 : 글라투의 호위대1 (가치 : 9,850)

-망령의 군대 : 글라투의 호위대2 (가치 : 9,850)

-……

-……

1, 2, 3 나란히 도열한 놈들의 숫자는 대략 서른.

놈들이 글라투와 다른 게 있다면 손이 글라투보다 4개 더 많은 8개라는 점, 그리고 그 손들이 물갈퀴가 아닌 기다란 촉수 같이 생겼다는 거였다.

직감상 글라투가 사용하던 부식 파장을 사용하진 못할 것 같다.

다만…….

‘저 촉수가 걸리는데?’

흐느적거리며 땅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는 저 팔들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부딪쳐 보면 알겠지.’

가치 측정으로 봐도 지금 모여 있는 리턴 데드와 비교할 녀석들이 아니다.

“녀석들은 제가 맡겠습니다.”

아직 놈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알고 있는 게 없으나 생긴 걸로 봐선 근접전이 확실하다.

원거리 공격에 특화되어 상대적으로 근접전에 취약한 글로리보단 자신이 저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것이 낫다.

특히 그의 포격은 다대일 전투에 능하다.

개체 수가 많은 리턴 데드들을 맡아 주는 게 낫다.

이를 아는 글로리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우웅!

강한 신성력 진동과 함께 글로리의 어깨에 크투가의 견갑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솨아!

형체를 완벽히 드러낸 크투가의 등장과 함께 글로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준비되셨소?”

찬영에게 묻는 글로리. 한 때 두려움에 가득했던 트레이드족의 후예라고 믿기지 않는다.

오연한 그의 눈빛에 찬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크투가를 착용한 글로리를 중심으로 반경 15m 에 얇고 가느다란 실선 들이 번쩍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 실선이 찬영의 팔, 다리, 전신 곳곳을 부드럽게 안착했다. 순식간에 차오르기 시작한 신성력의 힘. 크투가의 지정아군에게만 해당되는 이동속도 및 공격 속도 50% 증가가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시원하네요.”

감상평과 함께 찬영이 발걸음을 내딛으려던 그때.

쿠쿵!

또 다시 지반이 흔들렸다. 잇달아 암석 벽면 곳곳에서 둥근 원의 형태를 가진 ‘홈’이 개방 됐다.

“저길 보시오!”

글로리의 외침에 고개를 돌린 찬영.

그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뒤따라 그 안에서 용솟음치기 시작한 물줄기.

솨아!

개방된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었기에 발끝에 금방 물이 고였다.

‘이정도면 십 분 안에 여길 채우고도 남아!’

문구에 나온 ‘붕괴’라는 뜻이 뭘 뜻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물이 여길 가득 채우고 모든 지반이 하중을 받아 밑으로 무너져 내릴 게 뻔하다.

이대로 물귀신이 되고 싶지 않으니 열린 수도꼭지처럼 물을 쏟아 내고 있는 수구를 보며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다.

황급히 주위를 살피는 찬영의 눈동자. 오랜 전투 경험으로 그도 모르게 축적된 본능적 위험 대비 능력은 그의 전투 센스를 한층 끌어올리는 부차적인 능력이 됐다.

이를 테면…….

지잉!

이어서 한 손에 쥔 아쿤다의 표창.

스륵.

찬영은 거침없이 표창을 일부 벽을 향해 날렸다. 강한 마나가 실린 표창은 닿는 리턴 데드뿐만 아니라 암석까지 잘라낸다. 그건…….

‘아딘 암석이라고 다를 바 없지!’

아딘 암석은 충격을 분산시키는 뛰어난 암석이나, 완벽한 절대 방어력을 갖춘 암석은 아니다.

‘리턴 블레이드.’

여러 번 반복해서 같은 자리를 베어 가면 암석도 절단되고 만다.

특히 이제는 ‘강도 4% 상승’이란 옵션을 가진 10급 보석 2개를 장착한 아쿤다의 표창이다.

아딘 암석이라 할지라도 녀석에게 버티지 못한다.

‘됐다!’

쿠쿵!

일부 잘려나간 암석 벽면이 와르르 무너지며 수구 구멍을 일부 틀어막았다.

시범을 보여 준 찬영을 글로리를 향해 외쳤다.

“부탁합니다!”

포격으로 최대한 수구에서 새어나오는 수량을 최소화시키고 그사이 몬스터들을 정리할 요량.

찬영의 뜻을 파악한 글로리가 어깨 위에 장착된 박격포의 포문을 개방시켰다.

콰쾅!

* * *

연달아 땅을 박찬 찬영.

최근 이동 속도는 정말 많은 변화를 거쳤다.

방금 전 증가된 50%의 이속 버프를 접어두더라도, 스툼의 이동속도 증가 3%, 민첩성 증가 4%는 기본이다.

거기다 최근 미완성정수로 제작한 9급 보석 1개의 옵션은 이동 속도 증가 3%. 추가로 공격 속도 증가 1.2% 10급 보석까지 헬레에 부착되어 반짝인다. 이동 속도 증가만 해도 6%에, 민첩성 상승효과로 추가 이동 속도가 늘어나는 거다.

쐐액!

리턴 데드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찬영을 스쳐가는 게 눈에 선히 보였다.

놈들의 이동속도로는 자신을 잡지 못한다.

파밧!

리턴 데드들의 어깨까지 밟아 가며 쏘아진 찬영.

최근 조합하게 된 각종 이동 연계기를 발휘해가며 나아가는 그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적어도…… 이 안에는 없었다.

‘저기 있다!’

순식간에 목표했던 놈들의 앞에 당도한 찬영.

하는 그를 발견한 글라투의 호위대 1, 3, 5, 10이 일제히 땅을 박찼다.

쾅!

리턴 데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움직임. 유연한데다가 폭발적인 운동 능력을 갖고 있다. 아니, 그뿐이 아니다.

쐐애애액!

어느새 놈들 신체 주변에 빼곡히 세워진 방어벽.

그건…….

‘글라투?’

놈을 연상시키는 가시 방어벽이다.

그 생각이 스쳐간 그때.

쐐액!

흐느적거리던 놈들의 손들이 어떤 칼날보다 날카롭게 쇄도했다.

허공에 떠 있던 찬영에게 쏟아지는 수십 개의 촉수 손.

하나 그의 눈빛은 고요했다.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자신감이 없다면 불가능한 차분함.

사실이다. 이제 준비 운동을 끝냈을 뿐.

본격적인 건…….

‘지금부터.’

지잉!

전보다 훨씬 강한 능력치가 보유된 아슬란과 공진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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