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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01화 (101/248)

# 101

#101.

“후아.”

소파에 앉자 오랜만에 폭신한 질감이 느껴졌다.

낯설기도 했다.

하긴, 많은 일을 겪어 오는 동안 계속 해 온 게 노숙이었으니…….

딱딱한 흙바닥이 더 친숙해져 버린 모양이다.

딩동!

마침 들려오는 벨소리에 찬영은 인터폰 화면을 확인할 것도 없이 문을 열었다.

“오셨어요?”

이규복이 웃으며 양 손에 든 스시 포장을 들어 올렸다.

“식사하시죠!”

* * *

우물우물.

식탁 위에 있는 스시를 한 입 가득 씹은 이규복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면서 서류를 꺼냈다.

찬영과 헤어진 후, 잠시 본사에 들러 가져온 서류다. 군 측의 파기 동의서 외 몇 가지 절차상 서류가 있다. 이제 찬영의 사인만 거치면 완벽히 효력을 발휘하게 될 서류들.

찬영이 보관하게 될 거다.

“확인해 보세요.”

찬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들추는 동안 이규복은 다시 스시를 집어 들었다.

“본사 근처에 스시집이 새로 생겼는데, 기가 막히네요.”

“그러게요.”

스시를 씹고 있던 찬영도 그 맛에 감탄했다.

사람 입맛 어디 안 간다고.

시드 대륙의 먹거리도 먹을 만 했지만 오랫동안 먹어 온 음식들에 대한 향수는 모르는 사이에 쌓여 있었나 보다.

둘은 게 눈 감추듯 스시를 먹어치우며 오늘 있었던 미팅 얘기를 꺼냈다.

“본사에서 오는 길에 군 측의 공식적인 항의가 있었어요.”

“V.O.에요?”

“네, 많은 프로젝트들을 함께 하는 동반자가 뒤통수를 때린 것 아니냐는 등의 항의들이었다고 본사 측에서 연락 왔어요.”

“그래요? 흐음, 우스운 일이네요.”

“네, 저도 동의해요. 오히려 저희를 향한 경계심을 드러낸 건 군 측이었으니까요.”

이규복의 말대로 그들은 분명 V.O.뿐 아니라 많은 펌을 경계했고 껍데기나 다름없었던 계약을 여러모로 득을 보려 활용하려 했다.

쉽게 말해.

“기선 제압이 실패하니 괜한 심통을 부려 보는 것 같네요.”

찬영의 말에 이규복이 으쓱였다.

“네, 맞아요. 구슬리면 적당한 선에서 무마되겠죠. 원래 사공이 많을수록 상생한다는 게 쉽진 않으니까요. 본사에서도 이 정도면 적당히 방어했다고 얘기한다고 하네요. 잘하셨어요. 마지막 말씀 빼고는요.”

짧게 한숨 쉬는 이규복을 보며 찬영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계산 없이 한 행동은 아니었다.

도인준이 내뱉은 말들. 그 말들이 군 측 항의에 반박할 명분으로 쓰기에 충분하다고 고려한 뒤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재수 없어는 좀 심했나.’

찬영이 쓰게 웃던 그때.

이규복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도 개인적으론 아주 시원했습니다. 제가 비즈니스 파트너는 제대로 둔 것 같네요.”

“당연하죠.”

칭찬을 사양하지 않은 찬영의 대답에 이규복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오랜만에 갖는 작은 일상.

찬영은 이 평화가 잠깐이지만, 무척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이규복과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날도 금방 어둑어둑해졌다.

주차장으로 내려온 이규복이 차에 올라타기 전에 물었다.

“직접 뛰어가시겠다고요?”

“예.”

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후드티를 입고 나온 찬영은 이규복을 마중 나올 겸 계속 방치해 두었던 보안 창고를 들러 보고자 나왔다.

단, 뛰어갈 생각이다.

이를 알게 된 이규복이 혀를 내둘렀다.

“부시맨이란 영화 알아요?”

“네, 알죠.”

“그 영화처럼 오늘 도시에 부시맨이 출몰했다는 기사가 뜨겠어요.”

원시 부족의 일원이 도시에 나온다는 내용의 영화인 부시맨.

이규복은 그 부시맨을 찬영과 동일시 한 셈.

그 농담에 찬영이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그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신문 일 면에 나오지 않게 조심해야겠네요.”

“꼭, 그러세요. 유명인이 되고 싶지 않으면.”

이규복이 웃으면서 차에 올라탔다.

곧 출발하는 차.

찬영은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이규복의 차를 보며 입고 있던 후드티를 머리에 뒤집어썼다.

슬슬, 출발해 볼까?

지잉!

몸 안의 마나가 용틀임했다.

* * *

치익!

꽤나 오랫동안 닫혀 있던 냉동 창고 문이 찬영의 지문 인식과 함께 자동으로 열렸다.

문은 지문인식 및 비밀번호를 통해 열리게 되어 있는데, 창고 안에 부산물을 쌓아 줘야 하는 군 측을 위해 비밀번호를 이규복을 통해 전달했었다.

그 덕에 각 칸마다 잘 정리되어 있는 수많은 몬스터 부산물들. 자리를 비운 동안 군 측에서 잘 쌓아 준 것이다.

이젠 그럴 일이 없겠지만, 어쨌든.

“분해로 쓰면 되겠어.”

한 때 제작도를 완성시키고자 모아 놨던 몬스터 부산물.

애당초 생각했던 대로 쓰이진 않지만 그래도…….

‘효율적으로 쓰게 됐네.’

생각지도 못한 효과를 본 거다.

찬영은 만족스러워하며 냉동 창고를 돌며 몬스터를 하나하나 분해하기 시작했다.

-……분해하였습니다.

한 때 처절하게 싸워 왔던 몬스터들이 하나 둘씩 미완성 정수로 화해갔다.

하지만 가치가 1천에서 2천 사이의 몬스터가 대부분이라 미완성 정수가 많이 나오진 않았다.

한 개 혹은 꽝이 대부분.

그 덕에 창고 가득 쌓인 몬스터 부산물을 전부 분해하고 난 뒤 결과물은 총 1백 30개.

솔직히 창고 가득 쌓인 부산물 양에 비해 미완성 정수가 많이 나온 편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일이천 가치의 부산물이라고 봤을 땐…….

‘생각보다 많이 나왔어.’

예상치를 훌쩍 넘은 셈.

찬영은 흡족한 마음으로 냉동 창고를 빠져나왔다.

그 후 옆에 붙어 있는 일반 창고에도 들어갔다. 스텟 성장을 위해 마련해 두었던 운동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젠…….

‘여기 있는 운동 기구로는 스텟을 상승시키기 힘들 것 같은데.’

그만큼 많은 성장이 이뤄졌다.

여길 떠날 때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거다.

잠시 땀으로 얼룩졌던 공간을 둘러보던 찬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르리에로 향하는 나무 문을 소환했다. 이곳에서 해야 할 급한 일들을 전부 마쳤으니…….

‘이젠 르리에로 가야지.’

자유를 어려움 끝에 스스로 쟁취해 낸 트레이드족.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했다.

* * *

터벅.

문이 열리고 르리에 땅을 밟은 그때쯤 좋은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퀘스트 완료 조건

-목책 재건 : 100%를 100% 로 완성하세요. (완료)

-망루 재축조 : 5개를 다섯 개 늘리세요. (완료)

-생존자 43명, 부상자 0명을 회복시킨 후 다양한 방법을 택해 성장시키세요. 가치 측정 시 평균 5,000이 되어야 합니다.

-현황 평균 : 5,340(완성)

-보상

-오렌의 화로火爐 : 획득 완료

-인라의 퍼즐조각(3) : 획득 완료

-저주 받은 하수구로 통하는 열쇠 : 획득 완료

‘토벌과 재건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나 보구나.’

뉴 빌드의 본거지를 타격할 당시, 카일은 재건과 헤일로 골짜기 토벌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퀘스트 결과를 보니 그 모든 게 원활히 이뤄지고 있는 게 틀림없다.

찬영은 인벤토리에 들어와 있는 세 가지 종류의 보상들을 보며 알폰 지방이 성공적으로 제자리를 찾아감을 확신했다.

기뻤다.

함께 싸워 온 동료와 다름없는 사람들의 염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거기다 보상까지 얻었으니 일석이조다.

찬영은 인벤토리에 들어와 있는 아이템 중, 인라의 조각을 살폈다.

현재 인라의 조각은 총 3개가 모인 상태.

(1) 과 (4) 그리고 이번에 획득하게 된 (3)까지. 얼마나 더 모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쭉 모으고 나면 분명 어떤 보상이 나올 것이다. 그게 히든 퀘스트가 될지, 완성형 아이템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다려 보자고.’

찬영은 왼쪽 발목과 골반이 나온 인라의 조각 (3)의 그림을 마지막으로 창에서 눈을 뗐다.

더 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오렌의 화로야 이미 좋은 제작 도구를 최근에 획득했기에 아직 갖고 있는 여타 제작도구들과 합쳐 분해를 돌려 버렸다.

그동안 잘 활용해 온 제작 도구라 아쉽기도 했지만 높은 가치의 장비를 쓰고 있는 이젠 쓸모가 없어진 게 사실.

빌이 빚은 항아리를 제외하고 분해를 돌리자, 두 개 정도의 미완성 정수가 나왔다.

그 외에 저주받은 하수구의 열쇠는 전혀 사용 방법을 찾지 못 했다.

어떤 상황이 찾아올지 모르니 우선 갖고 있긴 하겠지만 당장은 보관만 하면 될 뿐, 크게 눈여겨 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딱, 딱. 오셨습니까, 주인님?”

그새 찬영의 곁으로 도타가 찾아왔다. 현재 장소는 글로리의 구획. 제이나와 떠날 때의 장소로 돌아온 거다.

“네, 잘 있었어요?”

웃으면서 도타와 인사를 나눈 찬영은 새삼 그의 변화가 놀라웠다.

‘가치가 3,600이 넘었어…….’

3,600.

첫 만남 당시 1,200 이었던 도타를 떠올리면 믿기 힘든 가치의 성장이다.

‘경계 포탑 공사 이후 성장한 거야.’

그것 말고 가치 측정이 이렇게 급성장했을 리 없다.

포탑 설치 이전이 3,000이었으니 포탑 여덟 개를 설치하며 6백 정도의 수치가 오른 거다.

초급 경계 포탑의 1개 완성이 75 정도의 가치 성장을 유도한 셈이었다. 즉, 도타의 성장은 단순히 재배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란 얘기다.

‘농사, 공사 등 르리에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성이 도타를 성장시킨다는 얘기겠지.’

그 생각에 이른 찬영은 궁금한 게 몇 개 생겼다.

“도타, 이번 포탑 공사를 통해 달라진 변화가 있나요?”

“딱, 딱. 많습니다.”

“어떤 게 있죠?”

“딱. 숙련도 수치가 생겼습니다.”

“숙련도?”

“예. 딱.”

“그럼 숙련도를 상승시키면 도타도 성장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딱. 초급 포탑 숙련도는 현재 14.30 %입니다. 딱. 하지만 숙련도가 100%에 이르면 더 이상 초급 포탑으로 인한 성장은 없습니다. 딱. 딱.”

“아…….”

도타의 말을 듣고 나니 찬영은 궁금했던 것들이 명쾌하게 해결됐다.

‘숙련도 100%에 이르면 더는 성장 효과에 영향이 없다는 거지?’

그럼 그때는 중급 경계 포탑 제작도를 구해 줘야 한단 뜻이 된다.

‘그래야 다시 포탑 공사가 도타에게 성장치를 가져다줄 테니까.’

찬영이 도타에게 어떤 도움을 줘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음모오오.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야, 야…….”

순간 몸에 힘을 준 찬영의 몸에 찰싹 달라붙은 타우린.

하지만 찬영이 온힘을 다해도 쭉 밀려나고 말았다.

점점 힘이 세지는 녀석이다.

큰 혓바닥으로 찬영의 얼굴을 핥으며 몸을 비벼대는 타우린.

순식간에 타우린의 침으로 흠뻑 젖은 찬영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래. 잘 지냈어?”

토닥여 주며 흥분한 녀석을 진정시켰다.

찬영이 한 손으로 타우린의 검은 털을 쓸어내리며 다시 도타를 쳐다봤다. 아직 도타와 할 얘기가 남았다.

“그간 푹 쉬었어요?”

“예, 딱. 주인님께서 오시길 기다렸습니다.”

“재배 때문이죠?”

“예, 그렇습니다. 심어야 할 품종이 많습니다. 딱. 딱.”

그 밖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열거하며 말하는 도타.

찬영은 알았다며 그가 말하는 걸 멈추게 한 뒤 주위를 둘러봤다.

‘뭔가 달라.’

다시 돌아온 글로리의 구획에는 이제 쓸쓸함이 없었다.

첨탑처럼 높이 솟은 포탑들이 장승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 안에는 농장과 여타 작물들이 자라는 게 보였다.

풍경이 크게 달라지진 없었으나 확실히 달라진 게 하나 있었다.

‘활력.’

그게 느껴졌다.

“그동안은 뭘 하고 지냈어요?”

도타에게 묻자.

“갓피스를 도왔습니다. 딱.”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는 도타. 글로리를 얘기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찬영의 눈에 이채를 띄었다.

“그랬군요. 그럼 글로리는 지금 어디 있죠?”

도타가 딱, 딱 소리를 내며 앞장섰다.

* * *

도타가 안내한 곳은 글로리의 구획이 있는 남쪽 구획이었다.

지하굴을 파고 있는 글로리는 얼굴이 새까매진 채 찬영을 맞이했다.

“오셨구려.”

먼지를 툭툭 털며 다가온 글로리의 눈빛엔 이제 활력이 가득했다.

“몸은 좀 어떠시오?”

걱정 가득한 그의 눈빛.

찬영은 그에게 손을 저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놀랍군. 그 힘겨운 싸움을 하고도 벌써 이렇게 몸이 나을 줄은…….”

찬영이 미소로 화답한 후 다른 트레이드족의 근황을 물었다.

“다른 분들은?”

“다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소. 글라투의 부하들은 자취를 감춘 덕이지. 덩달아 무역로도 다시 개방되었고, 르리에 안의 모든 트레이드족은 부족한 것을 서로 교역하고 있지. 우린 금방 재건될 거요. 다만…….”

말을 잇던 글로리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그 눈빛이 뭘 뜻하는 건지 모르는 찬영에 눈동자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혹시나 하는 물음. 하지만 그 예상이 맞은 것 같다.

글로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소. 격변 후…….”

그가 자신이 나온 지하 땅굴을 들여다봤다.

“누군가 내 귀에 속삭이고 있소. 이 안을 들여다보라고.”

찬영의 눈빛도 날카로워졌다.

느낌이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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