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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99화 (99/248)

# 99

#99.

복잡했던 생각들이 씻은 듯 사라졌다.

목표가 명확해진 덕분이다.

다만 문제는…….

‘정보가 부족해.’

현재 갓피스 앨범엔 처음 보는 낯선 얼굴들이 이름과 함께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정보는 그것뿐.

그들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들을 어떻게 찾을지가 고민이다.

‘이 일을 본격적으로 직면할 때가 되면 제이나 경과 상의해 봐야겠어. 그녀라면 그들을 찾을 만한 좋은 방법을 알고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평생을 지구에 살아 온 자신과 신성 왕국에 속한 한 사람인 그녀가 알고 있는 정보량은 차원이 다르다.

그녀가 지구를 모르듯.

‘나는 신성왕국을 몰라.’

찬영은 그리 생각하며 이 문제에서 잠시 벗어났다.

당장 안달한다고 해서 단숨에 해결될 일도 아니니…….

그동안은 다른 일에 시간을 투자하는 게 낫다.

찬영의 시선이 남은 보상창을 향했다.

-골드 1급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플래티넘 7급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플래티넘 1급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이번에 획득한 박스 목록.

플래티넘 박스가 2개가 있는데다가 골드 최상급 박스까지 있는 걸 보면 이제껏 받아 온 박스 보상 중 가장 최상에 속한다.

‘마음 같아선 바로 개봉하고 싶다.’

세 박스 모두 두말 할 것 없이 효율성 있는 아이템이 나올 게 확실하니 욕심이 앞선다. 하지만 조금 여유를 갖고 생각하면…….

‘시간을 두고 접근하는 게 나아.’

그럴 법도 한 게 일단 글라투의 제거로 급한 불은 꺼둔 상태다.

거기다 알폰 지방에 자리 잡은 뉴 빌드의 본거지 또한 영주와의 공조를 통해 정리했다. 추가 아이템이 시급한 상황은 아닌 거다.

‘그럼 이 박스들은 박스 조합에 사용하는 게 낫겠어.’

그래. 그편이 훨씬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 봐도 플래티넘 상위 등급의 박스를 획득할 확률을 높이는 것보다 나은 선택은 당장 생각나지 않는다.

앞으로 만날 새로운 변수들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결정을 내린 찬영의 시선이 ‘창’에서 떨어졌다.

더 볼 것도 없다.

‘……끝났다.’

글라투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수많은 보상 목록의 처분이 끝난 것이다.

새삼 굉장히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마법, 신성마법, 신성력, 마나, 이네이트, 스텟 등 정말 다채로운 성장이 이뤄졌다.

계속 드는 생각이지만 힘겹게 글라투를 처치한 후 얻어 낸 보상이기에 더욱 뿌듯했다.

하지만 가장 뿌듯한 이유 중 하나는 이 모든 것들이 새로운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될 능력들이라는 것이다.

마법, 신성력 등이 모두 그렇다.

마치 성장판이 열려 있으면 키가 계속 크듯이 스텟의 성장판은 다양한 분야로 활짝 열려 있다.

남은 건.

‘내 노력뿐.’

찬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주일을 꼬박 쉬는 건 역시…….

‘도저히 못하겠어.’

* * *

찬영은 영주를 찾아갔다. 하지만 영주는 할 일을 위해 영주성으로 떠난 지 오래였다.

대신 오는 길에 이규복과 만났다. 이규복은 찬영이 멀쩡히 걸어 다니는 것에 놀라워하며 몰랐던 사실을 전달해 줬다.

“제게 따로 언질을 해 두고 가셨어요.”

“영주님이요?”

“예.”

“어떤?”

“일주일도 안 돼서 움직이겠다며 징징댈 거라고요.”

찬영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영주에게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조금 당황스러웠다.

“참나…….”

이규복이 웃었다.

“영주님의 복안에 좀 놀라셨나 보네요.”

“네, 뭐……. 그런데 왜 저한테 직접 말씀 안하셨답니까?”

“그렇게까지 하면 기어서라도 움직일 것 같아서 직접 말씀하지 않았다고 하시더라고요. 말 안 듣는 건 징그러운 수준이시라고 펄쩍 뛰시던데요?”

“그, 그래요?”

“예.”

고개를 끄덕이는 이규복을 보며 찬영은 헛웃음을 흘렸다.

영주 말이 다 맞았으니 그럴 수밖에…….

이규복이 할 말이 없어 입맛을 다시는 찬영에게 말했다.

“어쨌든 이제 아프신 데는 없는 겁니까?”

“네, 아마도요.”

찬영이 팔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이규복이 혀를 내둘렀다.

“늘 느끼는 거지만 찬영 씨는 매번 저를 놀라게 하시네요. 대체 이런 회복력은 어디서……. 잠깐, 혹시?”

눈을 가늘게 뜬 이규복이 덧붙였다.

“저 몰래 좋은 거 드십니까? 보약이라든지, 뭐 그런.”

“생기면 나눠 드릴게요.”

“당연하죠. 제가 대신 해 드린 서류 작업만 해도 얼마나 많았는지 아십니까? 얘기를 안 해서 그렇지…….”

투덜거리는 이규복을 보며 너털웃음을 터트린 찬영이 주위를 둘러봤다.

한 때 뉴 빌드의 터전이었던 이곳은 이제 영지의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곧 이 사람들도 소수 병력만 배치되고 다시 영주성이나 다른 장소로 돌아갈 것이다. 어차피 이 일대는 지하수로 개발을 위한 공사현장이 될 테니까.

슬슬, 떠나야 할 것 같다. 그럴 바엔…….

“우리 지구에 좀 다녀올까요?”

찬영의 제안에 이규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요?”

“예.”

“뜬금 없으셔서 좀 놀랐네요. 하긴, 슬슬 가 보실 때도 됐죠. 미뤄 두신 일도 몇 가지 있지 않습니까?”

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있죠.”

그것도 꽤나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현재 상황상 이규복의 도움이 좀 필요하다.

“오 중령님과 연락 닿습니까?”

“네, 그럼요. 일전에 군 측과 하셨던 계약 건 때문에 그러시죠?”

“맞습니다. 사실상 그 계약 건도 새로 갱신해야 될 것 같아서요.”

“음, 그건 제게 맡겨 주세요. 몇 가지 동의서만 작성해 주시면 찬영 씨의 의견을 군 측에 전달할게요.”

“음, 그래주시면 고맙죠. 가능하면 계약 해지 쪽이 나을 것 같습니다.”

“동의합니다.”

이규복은 충분히 찬영의 뜻을 이해했다. 찬영과 군 사이의 계약은 껍데기만 남은 계약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찬영도 그런 생각이었던 모양.

“당시 계약서엔 ‘대한민국에 한해’라는 조항이 붙었었고, 이제 제가 활동하는 지역은…….”

“시드 대륙이죠.”

“네, 더 이상 계약 효력이 발휘되지 않는 거죠.”

사실 이 계약이 이렇게 된 데엔 더 이상 대한민국이 몬스터의 위협을 받지 않게 된 것이 가장 컸다.

시드 대륙이 방파제 역할을 계속해 줄 때까지는 말이다.

아무튼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계약을 굳이 맺고 있는 것 자체가 찜찜하던 차였기에.

“이참에 확실히 해 두는 게 낫겠어요.”

“네, 그러시죠. 하지만. 정부 측에서 여러 가지 조건들을 제시할 수도 있어요.”

“조건이요?”

“네.”

“어떤……?”

찬영의 질문에 이규복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예상인데요.”

“예.”

“새 계약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요.”

“제가 거절할 텐데요?”

“그걸 알고도 한 번 찔러보겠죠. 혹시 모르니까요.”

“그러기엔…….”

그로 인해 가져올 제약이 너무 많다.

다시 재건된 신성왕국의 상황과 뉴 빌드, 올드 원과 그 하수인들만 해도 머리가 아픈 지금, 괜한 계약으로 나라의 제약을 받고 싶지 않았다.

분명 이를 악용하며 자신을 옥죄려는 사람도 있을 거다.

나라는 믿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은 확신하지 못하겠다. 일전에 경험한 청문회만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걸 충분히 보고 느꼈다.

“번잡해지는 건 질색이라…….”

이규복이 대답했다.

“네, 잘 알죠. 아주.”

사실 찬영의 성격을 알기에 자신 또한 계속 갱신한 계약들에 어떤 제약도 두지 않았다.

그저 몇 가지 조항을 통해 서로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는 것 정도만 넣어 뒀을 뿐.

하지만 정부는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끊임없이 제안할 거다.

이를테면…….

“찬영 씨에게 직접적으로 접촉해서 정보를 듣고 싶어 할 거예요. 저희 펌을 통하지 않고서요. 그들도 독자적인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싶어 하니까요.”

“제게서 나오는 정보들을 독점하고 싶어 한다……. 이 말씀이시죠?”

“예, 세계 각국의 정부와 많은 펌들이 그 때문에 찬영 씨를 원하고 있죠. 찬영 씨와 식사 한번 하게 해 달라고 저희 측으로 요청해 오는 펌도 있었어요.”

“그래요? 이제껏 접근하지 않았던 게 더 의아하네요.”

“바쁘셨잖아요.”

한 마디로 일축하는 이규복.

찬영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수로부터, 각종 히든 퀘스트까지 분명 그들이 접근할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건 맞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당분간은…….

“접근할 수도 있겠네요?”

“네, 저희 측에서 보안을 한다고 애써도 아마 새어나갈 게 분명해요. 블루 게이트에 자리 잡고 있는 펌이 워낙 많아서…….”

“괜찮습니다. 접근해 봐야 딱히 소득이 없다는 걸 알면 더 접근하지 않을 테니까요.”

“네, 그럴 겁니다. 찬영 씨가 얼마나 대쪽 같은 사람인지 알면 안 그럴 수가 없겠죠?”

“칭찬입니까?”

“그럼요.”

이규복이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 이왕 이렇게 된 거 또 드릴 말씀이 몇 가지 있는데요.”

대화가 조금 길어질 것 같았다.

* * *

“아름답네요.”

제이나가 툴챠에 박힌 보석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찬영이 확산력 보석 2개를 모두 툴챠에 장착시켜 준 덕분.

그가 물었다.

“마음에 듭니까?”

그녀가 수줍게 웃었다.

“네.”

그 대답을 듣는 찬영도 기뻤다.

목걸이나 반지 같은 게 아닌 투박한 선물에도 기뻐해 주는 그녀에게 고맙기도 하다.

찬영은 그윽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제이나 경. 몇 가지 해 드릴 얘기가 있어요.”

자리를 뜬 영주가 부탁한 마정석 조각 관련 서류 작업을 하고 있던 제이나는 밀린 서류를 접은 채 찬영과 잠깐 대화를 나누고 있던 차였다.

“심각한 일인가요?”

그녀의 눈에 걱정이 실렸다.

찬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다행이네요. 저 그런데…….”

“예.”

“이젠 제이나라고 부르셔도 된답니다.”

좀 더 편히 불러 달라는 그녀의 말뜻을 이해한 찬영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입을 열었다.

“그래요. 제이나.”

말을 마친 찬영이 탁자 위에 올라와 있던 그녀의 손등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잠시 고향에 다녀와야겠어요.”

“고향이라면…….”

“네, 대륙 아래에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곳이에요.”

“가셔야 하는 이유가 생겼나요?”

찬영은 그녀에게 이규복과 나눴던 얘기들을 들려 줬다.

한동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미뤄 두신 일이었군요.”

“네, 진작 다녀왔어야 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너무 많이 생겨 버렸었죠.”

“그래도 잠깐이라도 여유가 생겨서 다행이네요.”

“조금 아쉽긴 하지만요.”

“네?”

“한동안 못 보잖아요. 우리.”

“아…….”

붉어지는 그녀의 볼을 보자 찬영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늘 무표정이던 그녀가 이런 귀여운 모습을 보이는데, 미소가 안 나올 리가…….

“언제 돌아오실 예정인가요?”

“글쎄요? 되도록 빨리 돌아올 생각이에요. 대륙 복원은 이제 시작이잖아요?”

제이나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찬영의 말이 맞다.

알폰 지방은 시드 대륙 중, 신성 왕국의 일부. 하지만 이 알폰 지방에서도 수많은 일들이 터졌다. 그의 말대로 복원을 위한 일은 이제 첫 걸음을 겨우 뗀 것뿐이다.

“성에서 기다릴게요. 아마 돌아오시게 되면 영주님께서도 찾으실 거예요.”

“영주님께서요?”

“네, 폐하를 알현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찬영 씨와 함께 하겠다고 하셨거든요.”

어느 정도 예상을 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은 찬영.

그가 담담하게 반응하자 제이나도 그가 예상했다는 걸 눈치챘다.

“예상하셨나요?”

“네, 첫 대면 당시 갓피스의 존재를 특별하게 여기셨던 영주님을 기억하면 다른 분들도 그러리라 싶었죠.”

“맞아요. 영주님도 그런 부분을 고려하시고 찬영 씨의 합류를 생각하셨어요. 괜찮으시겠어요?”

왕국을 지휘하는 왕과의 대면.

그건 청문회를 앞뒀을 때의 과거와 크게 다른 느낌이 아니었다.

조금 긴장됐고 궁금한 것도 많았다.

하지만 다른 게 있다면…….

“괜찮아요. 같이 가줄 거죠?”

그녀가 옆에 있어 줄 거라는 거.

“물론이죠.”

제이나가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로그인 3회 차 6회

떠 있는 창을 한참 올려다보던 찬영.

어깨에 감촉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블루 게이트로 향하는 진입로에 선 이규복이 보였다.

이제 블루 게이트는 철저하고 삼엄한 경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진입로를 거치고 검문소를 지나야 블루 게이트로 진입할 수 있는 거다.

……드디어.

마음이 조금 싱숭생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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