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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95화 (95/248)

#95

화르륵!

염왕세계는 놀라운 기술이다.

시전자의 전신이 화염이 된다. 하지만 몸만 불타는 게 아니다.

용의 발톱과 초열봉황익의 화염 공격이 일정 선택 지점에 국한됐었다면 염왕세계는 그를 중심으로 반경 7m 안의 모든 걸 태운다. 선붕파, 용의 발톱, 초열봉황익 등을 합쳐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다.

그러니 정면으로 싸운다면 이제부터 반경 7m 안은 누가 더 강하냐의 싸움이었다.

“감히……!”

이를 마주한 글라투는 가소로웠다. 놈이 일으킨 만개한 화염은 그저 화려할 뿐. 하위 종 따위가 일으킨 화염으로는 자신의 털끝도 건드릴 수 없다.

“너를 삼키겠다.”

글라투는 머뭇거림 없이 타오른 찬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찬영도 바라던 바!

시작된 힘겨루기.

지잉!

온전히 찬영만을 노리고 터져 나온 두 줄기의 부식 파장.

찬영은 기꺼이 이를 마주했다.

츠츠츠!

닿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염왕세계는 놀랍게도 부식 파장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계속 피어올랐다.

‘크윽…….’

하지만 마나를 일제히 소진하고 있기 때문일까?

몸이 바스라질 것 같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멈추면 모든 게 끝이니까.

‘조금만 더!’

부식 파장을 이겨내며 양손을 가운데로 모은 놈을 향해 일권을 날렸다.

지이잉!

그러자 더욱 강해지는 부식 파장.

부식 파장 앞에 놓인 주먹이 좌우로 흔들렸다.

이를 내려다 본 글라투가 붉은 입술로 빙긋 비웃었다.

“큭, 꼴이 아주 우습구나.”

부식 파장을 견디고 있는 찬영을 보며 신난 글라투. 놈을 삼킬 때가 눈앞에 놓인 것 같다.

그 순간 찬영이 입술을 질끈 깨문 걸 글라투는 보지 못했다.

지잉!

곧 소멸되기 시작한 부식. 아니, 소멸된 게 아니다.

휘몰아치는 화염을 두르기 시작한 빛의 장막이 부식 파장을 밀어내고 있다. 이는 라인쉐리어의 가호이자 그 힘의 발현.

차폐.

-차폐遮蔽

-가치 : 2,500

-라인쉐리어와의 영혼 교류로 인해 차폐 가치 측정의 3배까지의 공격을 2회 무효화시킵니다.

-쿨 타임 : 20시간

‘됐어!’

차폐를 택한 건 나름 근거 있는 도박이었다.

차폐는 어떤 공격이든 2회 무효화시킨다.

이를 통해 부식 파장에도 영향을 줄 거라 확신한 거다.

7,500인 가치 측정으로 완전 무효화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놈을 조금만 흔들고 틈을 보이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전혀 예상 못했는데?’

이렇게까지 놈을 흔들어 놓을 줄 몰랐다. 그럼 설명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부식 파장의 공격이 차폐 가치보다 낮다?’

가능한 얘기다. 기술은 놈의 능력치와는 별개의 가치다.

그러니까 부식 파장이 가진 특수성이 특별할 뿐이지, 가치 측정으로 따졌을 땐…….

‘그렇게 높지 않다?’

찬영의 눈동자에 확신이 섰다.

츠츠츠!

소멸된 부식 파장을 보며 글라투의 눈동자 또한 현실을 부정하는 의심의 눈빛이 일렁였다.

그 찰나, 제이나가 움직였다. 뒤따라 글라투와 찬영을 가운데로 두고 사방에 자리 잡는 열 두 개의 거울. 염왕세계와 함께 준비한 그녀의 마법.

“미러 리플렉션.”

5서클의 거울 마법인 미러 리플렉션은 보통 날아오는 마법을 반사시켜 반격할 때 사용하는 마법이다. 하지만 이번엔 거울이 많다. 제이나는 그 뜻을 어렴풋이 알고 잘게 몸을 떨었다.

솔직히 두려웠다, 그 결과가.

* * *

마침 찬영도 주변을 뒤덮은 거울들을 보았다.

‘고마워요. 제이나.’

쓰게 웃은 뒤 놈을 올려다봤다.

화르륵!

부식 파장이 사라진 자리로 피어오른 염왕세계가 단숨에 놈을 집어삼켰다. 기다렸다는 듯 놈의 몸 주변을 갑옷처럼 둘러싸는 가시 방벽. 염왕세계의 불길을 견디며 다시 부식 파장을 일으키려는 글라투.

글라투는 분노했다.

‘고작 하위 종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다. 놈을 삼키는 것 따윈 이제 관심 없다. 이 자리에서 소멸시켜 버릴 것이다.

“네 영혼마저 짓밟아 주마!”

찬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로막을 뿐.

‘차폐.’

다시금 부식 파장을 차단하는 차폐의 위용.

이 기회를 놓칠 생각 따위 추호도 없다.

‘지금!’

주변을 뒤덮은 11개의 거울을 쳐다보며.

“폭렬爆裂.”

모든 걸 쏟아 부었다.

맞닿아 있는 스툼과 헬레가 남은 마나를 일제히 연소시켰다. 몸 안에 휘도는 강렬한 기운이 일제히 밖으로 빠져나간 이 순간, 확실히 자신할 수 있다. 혼신을 다했다.

이젠 누가 사력을 더 쏟았는지 결과가 말해 주겠지.

그러니까…….

“확신하지 마라!”

부우우웅!

단숨에 스툼과 헬레를 중심으로 퍼져 가는 급속 마나 폭발. 이는 주변을 덮은 거울까지 팽창했다. 미러 리플렉션의 작용이 시작됐다.

위성처럼 주변에 떠 있던 거울들이 강한 폭발력을 각 거울에 서로 반사하자, 비산한 폭발력이 열한 개의 거울을 통과해 다시 글라투에게 쏟아졌다. 부서져 가는 글라투의 가시 방어벽.

쿠쿵!

“끄아악!”

놈이 울부짖었다.

양손을 바동거리며 부식 파장을 쏟아 내는 글라투. 하지만 부식 파장으로 사라질 위력의 작은 폭발이 아니다.

쿠쿠쿠쿠!

반사되어 놈에게 재차, 삼차 쏟아지는 에너지 빅뱅.

쩌적!

위성처럼 떠 있던 거울조차 빅뱅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일제히 산산 조각났다.

“크헉……!”

더 견디지 못한 글라투가 벗어나려 했다. 한데 갑자기 서늘한 게 비집고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얼어붙기 시작한 전신.

밀려드는 통증에 글라투의 흰 동공이 일제히 수축됐다.

츠츠!

둔화된 움직임에 말도 잇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글라투에게 아슬란을 더욱 밀어 넣는 찬영.

“네놈이……!”

내려다보는 글라투의 눈동자에 노기가 깃들었다. 찬영이 마주한 글라투를 향해 벙긋거렸다.

‘뭐라고?’

하지만 글라투는 그 말을 더 주의 깊게 들을 필요가 없었다. 타들어 가던 몸 주위의 비산하던 마나 폭발이 사그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크르르……!”

가시방벽이 모두 소멸되고 한쪽 팔이 날아가긴 했지만 아직 살아 있다. 글라투의 눈동자가 아슬란에게 반쯤 기대 있는 찬영을 향했다.

놈은 기력을 다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 낸 것이다. 붉은 입술에 다시금 웃음기가 돌았다.

“이것이 네 한계다, 하위종.”

글라투가 찬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 거슬리는 하위 종을 흔적도 없이 소멸시키리라.

스윽.

그때 아슬란에 기대어 있던 찬영이 불현 듯 고개를 쳐들었다. 아직 생생히 살아 있는 눈동자. 패배를 인정한 눈빛이 아니다.

글라투는 화가 났다.

‘뭘 믿고 이리도 겁 없이 날뛰는 것이냐? 그래, 놈의 눈부터 뽑아야겠다.’

하지만 글라투의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마주한 찬영이 다시 입을 벙긋거린 것이다.

아까 한 말이다.

“아직…… 안 끝났어!”

희미하게 흐르는 한 줄기 미소.

이제야 찬영의 말을 알아들은 글라투의 흰 눈동자가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놈의 속임수일 뿐이다.

‘끝까지……!’

“르리에의 브루인 날 우롱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그때 발밑에 균열이 일어났다.

순간 굳어 버린 글라투.

11개의 거울과 이어져 있던 마지막 1개의 반사 거울. 그 거울 안에 담긴 빅뱅의 마지막 폭발이 땅 밑에서 솟구쳐 오른 것이다.

“안 돼!”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는 글라투.

하지만 늦었다.

콰콰쾅!

시야 한 편에 종이 한 장 차이로 원기둥 폭발에 휩싸이는 글라투가 보였다. 이어서 예상 된 반탄력이 찬영의 몸을 덮쳤다.

쐐액! 쿵!

찬영은 강한 충격에 정신이 아찔해져 왔다.

“허억…… 허억.”

멎을 뻔 했던 호흡을 힘겹게 토해 냈다.

아프지만 소리를 지를 힘도 없다.

몸은?

옴짝달싹 할 수가 없다.

하긴, 당연하다. 마나가 전부 소비됐으니.

든든히 몸을 지켜줬던 공진이 더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할 테고, 솔직히…… 이젠 손가락 하나 까딱일 힘이 없다.

곧 떨어질 것이다.

쐐액!

반탄력에 떠밀려 실 끊어진 인형처럼 날아올랐던 찬영의 몸이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끝인가……?’

이 순간.

혼자만의 고요함을 느꼈다.

어느 때보다 평온하다.

지상을 등진 채 바라보고 있는 르리에의 하늘.

힘겹게 얻은 자유 속에 이곳은 다시 활기를 되찾을 거다.

부디, 그 자유가 지속되길 빌었다.

‘늘…… 계속되……길…….’

찬영은 눈을 감았다.

-현상 수배가 완료되었습니다.

-글라투 제거, 업적으로 인해 플래티넘 1급 박스가 획득됩니다.

-그로 인해 25km ~ 50km 구간이 당신에게 복속 되었습니다.

-50km 바깥 구간은 차원의 돌 수집 이후 개방됩니다.

-봉인된 땅이 해방되었습니다. 그로인 지방, 빅토르 지방 등 10개 지방이 열렸습니다. 지방이 모두 개방되어 라이크 신성 왕국이 재건되었습니다.

-최초 신성 왕국 재건 업적 달성으로 인해 6등급 신성 마법, 홀리 스트라이크가 주어집니다.

-현상 수배 완료로 인해 200명의 갓피스가 활동을 시작합니다. 당신과 조우하는 갓피스는 빠른 각성이 가능합니다. 활동을 시작한 200명의 갓피스가 갓피스 앨범에 기록됩니다.

-앨범 100명 최초 등록,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4서클 랜덤 주문서가 주어집니다. 주문서 습득 시, 주문이 각인됩니다.

-앨범 200명 최초 등록,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복원 기술서가 주어집니다. 복원 기술서는 미완성 기술서들을 조건 없이 완성시킵니다.

-앞으로 조우하는 갓피스를 각성시킬 때마다 모든 아이템 + 1 영구 업그레이드권을 획득합니다.

-글라투를 제거하고 나호스의 활을 획득……

눈앞에 떠오른 수십 개의 창들.

하지만 일일이 읽어낼 여력조차 없다. 그저 계속 들려오는 알림음으로 많은 일이 일어났음을 짐작할 뿐.

‘음?’

그런데, 순간 몸이 가벼워졌다.

탁!

그리고 느껴지는 누군가의 팔과 따뜻한 손길.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시야에 들어온 건…….

“제이나 경…….”

찬영이 환히 웃었다.

“위험했어요, 정말로.”

온전히 그녀에게 기댄 찬영은 눈을 감았다 뜨는 걸로 그 말에 동의했다.

안다.

하지만 자신만 그랬던 건 아니다.

“제이나 경도요.”

“알아요.”

서서히 지상에 안착하는 두 사람. 바닥이 느껴지자 찬영은 비로소 가쁜 숨을 내쉬었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제이나도 찬영을 끌어안은 채 무릎베개를 자처했다. 서로의 심장 박동을 느낄 만큼 가까이 밀착한 두 사람. 그녀가 찬영을 따뜻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두려웠어요.”

찬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봤다.

“뭐가요?”

그녀가 웃었다.

“여러모로.”

찬영이 대답했다.

“저는 못 볼까봐 두려웠습니다.”

“네?”

‘늘 무표정한 제이나에게 이런 표정이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 들 만큼, 그녀의 눈동자가 놀란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잘게 떠는 그녀.

이 여자, 어째 글라투 앞에 있을 때보다 더 떠는 것 같다.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귀엽다. 정말…….’

하지만 찬영은 그 이후로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침묵을 지킨 채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참다못한 그녀가 되물었다.

“누굴 못 볼까 봐요?”

“정확한 대답이 필요하십니까?”

“네, 적어도 지금은요.”

그녀는 원했다.

찬영에게 확신을 가질 이유를.

그리고 그녀를 향해 솔직히 내뱉으려 마음먹은 순간 어떤 대답을 할지 결정했다.

그간 가졌던 머뭇거림 따윈 깨끗이 지운 것이다.

“제이나 경이…….”

찬영이 눈을 똑바로 뜨며 대답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이나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이를 보며 찬영이 말했다.

“울 겁니까?”

“아뇨.”

“그럴 줄 알았습…….”

대답과 동시에 그녀의 입술이 다가왔다.

그리고 이 순간, 입 맞추고 있는 두 사람의 뒤로 르리에의 하늘이 열렸다.

쿠쿠쿵.

그 직후 와선형의 돌개바람이 하늘 가운데에 나타나고 빛의 기둥이 르리에 지상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격변이 시작되었다.

* * *

같은 시기 영주가 있는 시드 대륙에서도 변화가 시작된 건 마찬가지였다.

“영주님. 하늘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 보고를 듣자마자 밖으로 나온 베이콥 영주.

하지만 하늘이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니다. 하늘 사이로 빛의 기둥이 떨어지고 있다. 영주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대륙이 복원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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