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자동보상-94화 (94/248)

#94

그리고 시작된 찬영의 공세.

“그래비티 필드 20회 중첩.”

중력이 무겁게 글라투의 어깨 위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래비티 필드가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잠깐의 멈칫거림만 일으킬 뿐. 하지만 당장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쿵!

틈을 보인 녀석의 어깨를 보자마자.

“에어 펀치.”

허공을 향해 스툼을 사용했다. 아직 놈이 어떤 공격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타우린을 구했으니 물러나야 할 차례.

부웅.

스쳐가는 바람과 함께 지상 아래가 보였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피해요!”

뒤에서 들려온 제이나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진공나찰보를 사용했다.

퍼펑!

허공을 밟고, 또 밟은 그 찰나.

등 뒤로 나선형의 녹색 파장이 쫓아왔다. 부채꼴처럼 솟아오른 파장이 글라투의 양손 움직임을 따라 계속 쫓아왔다.

“아이스 스피어 4회 중첩.”

12개의 얼음창이 글라투에게 날아갔다.

퍼퍼퍼펑!

부식 파장을 멈추고 가시 벽을 세우는 글라투.

타닥.

그 틈에 제이나 곁에 착지했다.

“괜찮습니까?”

제이나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입고 있던 로브는 이리 저리 찢겨졌고 그 안에 그녀의 선혈이 흘러내렸다.

“괜찮아요. 조금 구른 것뿐입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게 사실, 물러나라 하려다가 그러지 않았다.

이건 자신만의 싸움이 아니다. 그녀도 이 싸움을 위해 사력을 다해 왔다. 물러나는 선택은 그녀가 결정할 일이다. 못내 신경 쓰이는 걸 억지로 접었다.

-음모오…….

뒤따라 비틀거리며 다가온 타우린.

타우린이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찬영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

계속 놔두면 타우린은 피를 흘리면서 적과 싸울 것이었다. 찬영은 그러길 원치 않았다.

충분히 잘해 줬어.

“인벤토리.”

녀석을 인벤토리에 쉬게 하려 하려했다.

-타우린이 인벤토리에 진입하기를 거부합니다. 대상의 거부로 인벤토리에 진입할 수 없습니다.

이윽고 띄워진 창.

-쒜액, 쒜액!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타우린을 지그시 바라봤다.

타우린은 계속 곁에 있겠다고 말하고 있는 거다.

누굴 닮아 고집불통인 건지…….

“대신 무리하지 마.”

타우린의 목 언저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음모오.

대답만 잘하지.

“드디어 왔구나, 사명이여.”

들려오는 글라투의 목소리.

놈의 목소리가 들뜬 게 느껴졌다.

“날 말하는 건가?”

찬영이 묻자 멀리 떨어져 있던 글라투의 붉은 입술이 빙긋 호선을 그렸다.

“무얼 뜻하는지 못하는 걸 보니, 네놈은 아직 무지한 자일 뿐.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였구나.”

그 말대로다.

놈이 말하는 ‘사명’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그저 새로 알았을 뿐이다.

‘사명을 찾는 게 아니고 내가 사명이라고?’

순간 베아트리체가 했던 이야기와 이제껏 봐온 여러 갓피스들의 장비들이 떠올랐다.

장비의 주인들은 긍지, 자유 등의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그럼, 내가 찾아야 할 건…….”

사명이 아니라 사명으로써 완성되어야 할 전용 장비.

‘이제 알겠다.’

확신하며 글라투를 노려보았다. 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놈에게 캐낼 게 있다.

“차라리 무지한 게 올드 원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거보다야 낫지. 그들의 의지가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너희 처지 아닌가?”

이 질문을 던진 이유는 하나. 올드 원이 방관하고 있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함이다.

하수인들에게 각 차원의 다리를 정복하라고 보내놓은 뒤, 어째서 뒤에 앉아 방관 하고 있는 지 말이다.

“그분들의 뜻을 받드는 고귀한 일에 대해 무지한 하위종인 네가 어찌 알까?”

“그래, 모르지. 그런데…….”

찬영이 눈을 치켜떴다.

“너는?”

글라투는 대답 대신 손을 들었다.

이를 본 제이나가.

“헤이스트.”

마법을 찬영과 자신에게 걸었다.

파밧!

위험을 감지한 찬영도 제이나를 끌어안고 몸을 날렸다.

뒤를 쫓아 몸을 피하는 타우린.

쐐액!

마침 그들이 떠나간 자리에 날아오는 부식 파장. 기습 공격과 함께 글라투의 눈동자들이 찬영을 쫓았다.

“사명. 너를 삼키고 그분들께 증명하겠다. 나, 글라투 역시 또 하나의 올드 원으로 태어나리라.”

찬영은 흥분한 놈을 보며 확신했다.

‘녀석은 아무것도 몰라.’

올드 원의 방관에 대해 글라투는 아는 게 없다. 할 말이 없으니 화가 난 거다.

‘계속 무시하던 나와 같은 처지라는 게 들통 나는 게 자존심이 상한 건지도…….’

어쨌든 올드 원의 방관 이유는 올드 원을 만나지 않는 이상 답을 알 수 없을 것 같다. 하수인들은 그저 하수인들일 뿐.

쿵!

놈이 다시 움직였다.

아까보다 더 빠르고 매섭게, 찬영이 그녀를 끌어안은 채 달리며 다급히 물었다.

“저 파장, 대체 뭡니까!”

“마나마저 부식해요! 글라투에게 닿은 모든 마법이 소멸됐어요.”

할 말을 잃었다.

‘마나를 소멸시킨다니…….’

하지만 그녀는 아직 살아남아 있다.

“놈의 약점은 찾았습니까?”

“아뇨.”

제이나가 단호히 대답했다.

“찾은 줄 알았으나 아니었어요.”

그로 인해 위험했던 위기를 간략히 들려 준 그녀.

사면초가가 따로 없다.

시시각각 쫓아오는 글라투를 막아 낼 대안이 없는 셈이었다.

그사이 놈이 다시 부식 파장을 쐈다.

‘이크!’

가볍게 옷깃을 스치는 부식 파장.

놈의 파장을 벗어나려 그녀를 끌어안고 공중회전 했다.

쐐액!

하늘과 땅이 뒤집힌다.

‘계속 도망가기만 해선 방법이 없어.’

이동 이네이트를 사용하는 것도 마나다.

무한정 도망칠 순 없다.

‘어떻게 해야 하지?’

놈의 공세를 피하며 물러나는 찬영. 하지만 어느 순간, 찬영이 제이나에게 말했다.

“제이나 경!”

“네!”

“거울 마법도 가능합니까?”

“거울 마법이요?”

“네. 제가 원하는 건…….”

찬영은 한 때 오수향이 사용했던 마법을 떠올리고 그녀에게 어떤 마법을 원하는지 빠르게 얘기했다.

“가능해요! 하지만 큰 마법이라 주문 완료 후에도 발동에 소요 시간이 걸려요.”

“얼마나 필요하죠?”

“3초면 돼요.”

“그건 제게 맡겨 줘요.”

“네, 그러죠.”

그녀가 듣기에도 지금 찬영이 얘기한 마법이 가장, 최선의 선택일 가능성이 높았다.

“네.”

“주문이 끝나면 말해 줘요. 곧바로 놈에게 접근할게요. 엄호를 부탁해요.”

“그럴게요.”

“갑니다!”

저 멀리 뛰고 있는 타우린에게 가까이 다가간 찬영.

흩날리는 머리칼 틈으로 옆을 힐끗 쳐다보았다.

타닥!

이어서 허공을 밟고 솟아오른 찬영이 땅을 미끄러지듯 질주하며 그녀를 타우린의 등 위에 태웠다.

동시에 두 방향으로 갈라지는 두 사람.

쐐액!

글라투는 그녀와 타우린을 무시한 채 사라지는 찬영을 맹목적으로 따라갔다.

파즈즈!

“타우린 멈춰!”

기다렸다는 듯 타우린의 네 발이 땅을 긁으며 속도가 줄어들자, 그녀는 글라투에게 벗어나는 찬영을 바라봤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마법 하나하나가 중요했다.

곧 새로운 주문을 되뇌기 시작한 그녀. 찬영이 시간을 끄는 동안 한시라도 빨리 주문을 준비해야 했다.

‘……조금만, 조금만 버텨줘요.’

그녀는 간절했다.

파밧!

그리고 찬영 역시.

둘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됐다.

탁!

부식 파장을 피한 자리에 어김없이 글라투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 속도가 가면 갈수록 빨라진다.

‘……버겁다!’

점차 그걸 느낄 정도.

최근 속도 면에서는 밀려 본 적 없기에 더욱 그랬다. 글라투는 단순히 부식 능력과 방어력만 있는 게 아니었다. 놈은 교활하고 공간을 잘 이용하며, 타우린 못지않은 속도까지 일으킬 줄 알았다.

지금처럼.

파지짓!

부식 파장을 벗어나기 위해 진공나찰보를 활용한 찬영.

타닥.

순간 등골이 싸늘했다.

위화감이 들어 황급히 방향을 틀자, 몸을 날리려 했던 자리 위로 두 번째 부식 파장이 날았다.

‘그대로 움직였다면 몸이 녹아내렸을 거야.’

섬뜩했다, 이것으로 알게 된 건.

‘놈이 수를 읽기 시작했어.’

싸우면서 놈은 강해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자신처럼 경험을 쌓고 있는 거다. 씩 웃는 놈의 붉은 입술이 보인다.

‘시간을 끌수록…….’

죽음이란 단어가 가까워질 게 뻔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찬영.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이젠 장담하지 못하겠다.

놈이 자신의 움직임을 계산하며 움직일 줄은 꿈에도 예상 못했다.

타닥!

다시 지상에 착지하며 달리는 찬영과 평행선을 그리는 글라투.

쏴아!

이어서 날아온 파장을 피하기 위해 황급히 방향을 전환했다. 관성을 일부 무시하고 전환이 가능한 건 붉은 바람의 기예. 순간적으로 속도를 줄여버린 찬영의 앞으로 부채꼴 파장이 ‘탁’ 하고 퍼져나간다.

소멸되어 흩날리는 돌가루들. 그의 파장이 지나간 지상은 지반이 함몰됐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멈추면 빈틈이 생긴다. 찬영은 부식 파장이 지나간 자리 위를 달렸다.

발걸음을 뗌과 동시에 등 뒤를 스쳐지나가는 또 다른 부식 파장. 한 발 늦었다.

대처가 느린 게 아니다.

글라투의 반응 속도가…….

‘나를 능가하고 있어!’

뒤이어 찬영의 옆으로 달려오는 글라투. 찰나 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로 인해 찰나의 선택이 중요한 전투에서 우위를 빼앗겼다.

찰나 간 몸이 굳은 찬영. 다급히 뒤로 몸을 뺐지만 이미 글라투가 코앞에 다가왔다.

손을 뻗쳐오는 글라투. 놈과 엉켜 버리는 순간 끝이다.

‘젠장, 늦었어!’

다급히 아슬란을 뽑아 들었다.

그때 불쑥 나타난 창.

-자유의 발동으로 인해 이동속도 및 공격 속도 50% 증가했습니다.

‘이건!’

예상 못한 창에 놀랐지만 지금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다.

섬뢰보와 북빙진기로 인한 가속력에 추가된 50%의 버프가 붙자, 찬영의 발이 바닥을 움푹 함몰시키며 글라투의 예상을 벗어난 가속도를 냈다.

쾅!

한계 이상의 가속력에 단숨에 몸이 ‘붕’ 하고 솟아오른 찬영.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쳐가는 글라투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동시에 또렷하게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타깃 조준 완료.”

양 어깨에 견착 된 2개의 박격포를 차고 있는 글로리다.

양손을 들어 박격포를 끌어안은 글로리는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붉은 조준점을 글라투에게 겨눴다.

여전히 떨리고 두렵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믿고 싸우고 있다. 이들의 희생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다. 스스로의 자유를 위해 싸워야만 한다.

‘자유’라는 갓피스의 이름에 부합하는 존재가 되리라.

‘날 도와다오, ……크투가!’

지잉!

자동 조준 장치가 되어 있는 크투가의 조준은 글로리의 의지를 따른다.

그리고.

콰아앙!

양 어깨에서 발출한 포화 더미. 단순한 박격포가 아니다. 공격 속도, 이동속도가 150% 상승에 의해 진화한 벌컨 수준의 신성력 포탄이다.

콰콰콰콰!

찬영을 놓쳐버린 글라투의 등 위로 신성력 수십 발의 포탄이 쏟아졌다. 이 포탄은 글로리의 신성력이 존재하는 한 멈추지 않았다. 한 걸음씩 전진하며 글라투에게 모든 화력을 집중하는 글로리.

“죽어라!”

찬영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됐어!’

충분히 시간을 벌었다.

이젠 제이나가 나서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그녀의 외침이 들렸다.

“움직여요!”

그녀 양손 끝에서 시작 된 마나 파동. 엄호는 글로리가, 마법은 제이나가 준비한 이 최적의 타이밍.

그 완성을 위해 이제 찬영이 지휘할 차례!

그오오!

놈이 부식 파장으로 단숨에 포탄을 소멸시키며 가시 방어벽을 세웠다.

“얼마 못 버틸 거요!”

글로리의 외침을 들으며 찬영이 땅을 박찼다.

‘압니다!’

글로리의 엄호와 함께 글라투에게 초근접한 찬영.

“광화狂火.”

동시에 공진을 개방한 찬영.

공진의 마나 소모도는 1,300.

최근까지 두 가지 심법을 동시에 훈련한 결과.

기본 마나량은 8,820까지 뛰었다. 하지만 공진의 버프는 올 스텟 300%.

이는 마나도 해당된다. 즉, 26,460 정도의 마나 상승이 한시적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서쪽에서의 전투로 소모된 마나량에 추가로 사용할 기술의 마나 소모를 더한다면…….

‘내게 주어진 건 11초 정도다.’

하지만…….

“충분해!”

온몸이 검붉은 망토에 둘러싸이며 감춰졌던 공진의 슈트가 글라투 앞에 구현됐다.

올 스텟 300% 추가 상승과 함께 어깨에서 솟아오르는 불길, 용의 발톱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염왕권의 초열봉황익의 발동과 함께 시작된…….

“염왕세계炎王世界.”

부릅뜬 찬영의 동공이 그도 모르는 사이에 불꽃으로 일렁였다.

아니, 동공뿐이 아니다.

모든 마나가 타들어 가며 전신이 불꽃으로 활활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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